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의 언론담당관, 그리고 남양주시청, 오산시청, 동두천시청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한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원장이 언론 기고문 중 100개를 모아 편집한 본인의 세 번째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2020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42년간 재직한 공직자로 공보부서에서 1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언론에 기고했다.
또한 경기도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공직을 마감하면서 ‘언론사의 도움을 받은 바 크다’면서 신문사에 퇴임 인사를 다녀간 친 언론공무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임인사는 많이 오지만 퇴직자가 언론사를 방문한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뉴스폼에 게재하는 '이강석의 세상만사'는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토대로 스마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숨쉬기, 심장 뛰기, 눈 깜빡, 그리고 절하기입니다. 그렇게 인생은 매일매일 아침을 맞이하면서 시작하고 저녁에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날을 보내는 것입니다. 100년을 산다면 36,500일을 그렇게 하면 됩니다. 어려서는 못하고 나이 들어서도 못하는 일이니 대략 20,000일 정도를 그런 수행의 마음으로 살아가면 인생은 멋지게 구성되고 완성될 것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는 나이는 대략 12살로 봅니다. 그리고 노후에 5년정도 와병을 한다고 가정하고 12년을 90세에서 빼면 72년 정도를 주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인간으로서 자기 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어진 나날을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매일매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부모님, 조상님, 신이 내려주신 인생을 소중하고 쓰고 관리해야 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모든 자료를 관리하고 후대에 물려야 합니다. 그런데 시대가 많이 변해서 가족들이 사후에 이런 물품, 물건, 자료들을 잘 보관하기 어려운 2022년이고 100세인 2057년에는 더더욱 더 보존에 대한 인식이 흐려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서책들이 지금까지 서당이나 고
수개월 월급을 쪼개고 모아서 오토바이를 장만했습니다. 자전거로 시작한 공무원 생활이 동력장치로 그 장비를 업그레이드한 것이지만 추가비용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에도 젊은이들이 새 차를 사면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도 크거니와 주유, 엔진오일, 보험, 세차 등 기본적이거나 부가적인 비용이 추가됩니다. 여기에 더 큰 소비양태의 변화로 인해서 소비 수준이 높아지게 됩니다. 전에는 그냥 갈비탕을 먹었는데 차가 움직이다보니 주차장이 넓고 편안한 식당을 찾게되고 그래서 점심 식사비가 12,000원이던 것이 2만원 이상으로 올라갑니다. 설렁탕, 해장국이 뚝불고기나 갈비정식으로 바꾸는 것이고 그래서 소비를 말하는 엥겔게수가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사실 1978년도에 오토바이를 운영해도 큰 비용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는 오일쇼크를 몰랐습니다. 그냥 동네 원동기 수리하는 아저씨가 비공식으로 판매하는 휘발유를 넣었습니다. 큰 소주병에 휘발유를 담아두었다가 면직원이나 농협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가면 한 병, 두 병 넣어주고 얼마를 받습니다. 그리 비싼 금액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신 오토바이의 기동성은 뛰어났습니다. 부면장님은 49cc 오토바이를 타고 오로롱 거
2008년에 중앙지급 월간지에 자료로 제출한 글입니다. 실제로 일부가 실렸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부는 이미 실현 중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도청은 수원 팔달산에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도청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청사는 보통 생각하시는 것보다 많습니다. 우선 소방공무원들은 도청직원입니다. 의정부에 경기도 제2청사가 있습니다. 제2청이 아니고 청사(廳舍)입니다. 즉 경기도청의 조직 중 가족여성정책실, 기획행정실, 경제농정국, 문화복지국, 도시환경국, 교통도로국, 제2소방재난본부 사무실이 의정부에 있는 것이지요. 팔당수질개선본부는 팔당호 주변에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입니다. 조선시대 도자기를 굽던 분원리 말입니다. 풍성한 나무가 우거진 축령산 휴양림 관리소, 물향기수목원 등 많은 기관이 도내 여러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2청 의정부 청사에 근무하는 간부들이 회의에 참석하거나 의회에 나가 도정을 설명하려 하면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했다가 다시 버스를 타거나 승용차를 이용해 1청사인 수원으로 와야 합니다. 참 번거로운 일이지요. 물론 영상회의 시스템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대면하는 회의가 효율적이고 의미전달이 정확한 법
화성시 신규공무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퇴직공무원 이강석입니다. 저의 고향은 우리 화성시 비봉면 자안리입니다. 태행산 자락에서 태어나 하늘과 산과 논밭을 보고 성장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후에 처음으로 비봉면 소재지를 다녀왔고 초등학교 3학년때 수원 영화동을 가 보았으며 6학년때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이모님댁에 가서 마침 치과의사를 하시는 이모부님으로부터 초등학교 3학년때 부러진 앞니를 무료로 끼워넣었습니다. 이후 비봉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마친 그해 1977년 2월에 여러분과 같이 9급 공무원 시험을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5급을류 공무원이라 했습니다. 현재의 8급은 5급갑, 7급은 4급을, 6급은 4급갑, 5급은 3급을, 4급은 3급갑입니다. 이후 지금처럼 공무원 급수가 9단계로 바뀌면서 5급 공무원 들어와서 25년만에 다시 5급 공무원이 되었다는 농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할 제목은 적극행정과 공직생활 길라잡이입니다. 길라잡이란 길을 인도하는 사람, 길앞잡이, 길나장이가 섞여서 이루어진 말이라고 합니다. 길나장이는 옛날에 수령이 외출할 때에 길을 인도하던 나장(관아에서 심부름 등을 맡아보는 사람)을 가리키던 말입니다. 최근에 종영된 드
우리가 다중장소라 할 수 있는 회의실이나 강의실, 강연장, 전철 안에서 실수로 방꾸를 뿡~~~하고 발사했다 해서 무슨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소리를 들은 주변 사람들이 저 사람 가스가 찻구나, 조절이 안 되는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을 하고 옅은 미소를 지을 것이고 10초 후에는 다 잊어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방구의 당사자는 그 순간의 쑥스러움이든 창피함이든 당황스러운 기억을 원하지도 않는데 평생 간직하거나 최소 수개월 머리속에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언론에 우리의 이야기가 나오면 당사자는 정말 방구 뿡~ 이상으로 평생의 기억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기사로 나온 것이라면 나이 80을 넘어도 자랑으로 남아서 어느 모임에서든 어찌해서라도 분위기를 바꿔서 지금 진행중이던 이야기를 자신의 자랑스러운 TV방송에 나온 이야기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났었던 사실을 자랑스럽게 영웅담으로 풀어낼 것입니다. 반대로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방송이나 신문의 보도나 기사에 대해서는 유사한 사례만 보아도 머릿속에 그 당시의 아픈 기억이 떠오를 것입니다. 트라우마라고 합니다. 우리가 언론을 대하는데 있어서 지나치게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손해가 됩니다.
2015년 10월25일에 화성 제부도에 가족여행을 갔습니다. 제부도 섬 뒷편에 철봉과 나무로 테크를 만들어 여행객들이 재미있게 섬 뒷편을 산책할 수 있는 참 좋은 코스가 있습니다. 참으로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분히 걸어가다가 파도에 씻겨나간 절벽 위에 힘겹게 매달린 소나무를 발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무너지는 절벽에 늘어진 소나무라 생각했는데 거꾸로 매달린 세월이 2~3년은 되는 듯 보였습니다. 아래쪽 가지에 솔방울이 많이 달려있고 그 솔잎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向日性(향일성)이라 해서 식물의 잎과 가지는 태양을 향한다는 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늘어진 것이 아니고 몇 년 된듯한데 아주 싱싱하게 거꾸로 매달려 잘 자라고 있습니다. 붉은 바위틈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화성시청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액자를 만들어 세우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소나무와 관광객이 서 있는 바다위 데크길은 20m정도 떨어져 있으니 그 중간 10m지점에 네모난 액자를 설치하면 좋겠습니다. 그 액자 테두리에 "생명스러운 소나무 화성시와 함께...."라든지 "화성시민 힘의 원천입니다"라든지 "힘내라 힘!!!" 등 격문을 적어보자 했
평창 올림픽 기념 2,000원 지폐가 8,000원에 판매된다고 하는데 큰 정성과 적극적인 노력이 없으므로 구매하지 못하였습니다. 지난번 문재인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도 우체국앞에 장사진을 치고 전량 매진, 소진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한국은행 최초의 기념주화가 3천만원을 호가한다고 하니 대단한 일입니다. 미국의 2달러의 소중함을 벤치마킹한 듯 지극히 서민적이고 전통시장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우리나라돈 2,000원짜리는 발매되어도 시중에 돌아다니지 않고 각각의 집안 장롱, 앨범, 수첩속에 곱게 간직될 것 같습니다. 소중한 것은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내보내지도 않는 것이 사람들의 고운 심성이니 말입니다. 아이들 어려서 20년전쯤에 500원주화 등 몇가지 기념화폐 동전을 사둔 기억이 있고 아이들에게 전해주었으므로 앞으로 30년 정도 잘 보관했다가 손자들에게 전해주면 가문의 작은 가보가 되거나 급할 때 팔아서 쌀이라도 사서 밥 해먹을 유산아닌 유산이 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솔직히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1945년 전후에 누군가와 사업상, 개인 삶의 과정에서 편지를 많이 쓰시고 주고 받으셨다면, 그리고 그것을 자손들에게 곱게 관리하여 물려주셨다면 땅
청량산 청량사에 다녀왔다. 신라 문무왕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골리에 있다. 주소를 입력하고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사찰이 보이지 않았다. 1982년에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바 등산객을 위한 주차장과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주차장시설과 차량에 집중하다보니 왼쪽 가파른 길가에 세워진 청량사 입구라는 돌간판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청량사 입구를 지나 공원안으로 수백미터를 더 올라갔으나 사찰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유턴하여 사찰의 일주문을 건립중인 하천부근까지 내려와서 다시 주소를 입력하고 목적지 부근에서 이리저리 청량사를 찾았다. 그리하여 글씨조차 잘 보이지 않는 청량사 입구 안내석을 발견했다. 차분하게 가파른 길을 올랐다. 신발속에서 발이 미끄러지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비탈이 심하다. 차가운 초겨울 날씨로 숨이 가쁘다. 속도를 늦추고 걸었다. 대부분의 사찰이 산 중턱 이상의 자리에 있으니 청량사를 만나려면 구도자의 심정으로 차분하게 장시간 걸어야 할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실제로 거대한 바위를 오른편에 두고 오르고 돌고 다시 좌측으로 돌고 우측으로 걷기를 반복하다보니 돌탑이 보인다. 작업복을 입은 분이 비탈길
인생목표 60권중 55권 수필집 출간 수필집 60권을 목표로 꾸준히 글을 쓰고 편집해온 이강석(66) (전)남양주부시장이 55번째 수필집 ‘뒤늦게 오신 100만화성 시의원님’이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출간했다. 이 씨는 공직 42년 퇴직 후 첫 번째 수필집으로 공직생활과 젊은 날을 회고하는 ‘공무원의 길 차마고도’를 출간한 바 있고 이후 경기도청 공보실에서의 경험을 모은 책 ‘기자 공무원 밀고 당기는 홍보이야기’를 출간했으며 이후 수필, 신문기고문, 시, 기행문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모아 편집하고 이를 인터넷으로 출간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인터넷 출간사인 BOOKK.co.kr을 통해 출간하고 그 파일을 지인들과 공유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뒤늦게 오신 100만화성 시의원님’은 시의원이 늦게온 것이 아니라 바쁜 일정으로 행사중에 도착한 시의원을 소개하는 사회자의 멘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데 이와함께 공직이나 단체등에서 미스하기 쉬운 의전상의 문제를 경험적 바탕으로 상술하고 있다. 사회자는 행사에 참석한 손님을 최대한 예우하여 소개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중간에 참석자를 소개하는 경우에도 “바쁜 일정중에 행사에 참석해 주신 홍길동 의원님을 소개합니
조상님 묘소를 깔끔하게 하고자 형제들이 벌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만 이미 둘째형이 고조부 벌초를 마쳤고 증조, 조부, 아버지 등 넓지 않은 묘소의 벌초를 남겨두었다 하므로 이번주 일요일에 날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에게 다른 일정이 들어왔으므로 다시 형과 날을 조절해야 하는데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닌듯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예초기 빌려주는 곳이 많다고 하므로 수원의 농기계 가계가 밀집한 매교동 공구상가에서 기계를 빌렸습니다. 이 기계는 전날 토요일에 직장 동료 결혼식이 있었고 집에서 5km정도를 걸어서 교회 혼례식장에 참석하여 지인 선배와 점심을 먹고 예식장에 올라가 축하했습니다. 이어서 매교동으로 이동하여 적정한 기계를 찜하고 다시 수원천변을 잉어와 붕어, 그리고 오리와 물새를 친구삼아 찬찬히 걸어 세교에서 전철을 타고 수원시청역을 지나 매탄권선역에 도착한 후 집에가서 차를 운전하여 다시 가서 예초기를 차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 5시에 출발하였습니다. 신나게 내달리다가 주유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양노2리 발이골이라고 중학생시절 걸어다니던 길에 주유소가 있는 것이 기억나므로 가보니 아직 5시반이라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