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에 우리 남양주시에서도 3·1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3·1독립만세를 부른지 97년이 흘렀고 1919년 그 해에 승하(昇遐)하신 고종황제는 사후에 대한민국 백성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는 3·1운동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종황제(1852~1919)와 명성황후(1851~1895)를 홍유릉(洪裕陵·사적207호)에 모셨습니다. 홍릉(洪陵)에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모셨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왕릉에 등을 기댄 듯 위치한 유릉(裕陵)에는 순종황제와 순명황후, 순정황후가 영면하십니다. 명성황후(明成皇后)는 고종과 국정을 논의하는 파트너였으며 당시 외국의 세력들이 고종보다 예의주시했던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배경이 없는 분이라서 황후(왕비) 자리에 올랐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홍유릉을 지나 뒷산으로 가면 영친왕을 모신 영원(英園), 이구 황세손을 모신 회인원(懷仁園)이 자리합니다. 의친왕묘가 같은 자락에서 마주하며 특히 고종황제의 외동딸 덕혜옹주 묘가 참으로 단아하게 우리를 맞아줍니다. 고명딸 덕혜옹주(1912~1989)의 교육을 위해 고종황제께서는 덕수궁에 우리나라 최초의 유치원(幼稚園)을 설립했다고 합니다. 정략결혼과 따님을
화성궐리사지(華城闕里祠誌) 연혁에 보면 오산시 궐동에 소재한 ‘화성궐리사’는 정조 16년 (1792년) 칙령으로 창건된 공자의 사당이다. 정조가 왕권강화책으로 신도시를 화성에 추진하는 시기에 수원지역의 고적을 탐사하던 중 중종 대에 경기감사와 대사헌을 역임한 孔瑞麟(공서린, 1483~1541) 선생이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던 서원임이 확인되었다. 이 같은 역사를 확인한 正祖(정조, 1752~1800)는 수원부사에게 명하여 사당을 건립하게 하고 공자의 유상을 보내 봉안하도록 하였으며 ‘궐리사(闕里祠)’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봄가을에는 국왕의 이름으로 제사를 올리고 국왕이 친히 축문과 이름을 써서 지방관에게 주어 初獻(초헌)하도록 명하였고 공씨 후손 중에 행실이 높은 자를 亞獻(아헌), 終獻(종헌)으로 삼았다. 궐리사는 서원이다. 궐리란 중국 곡부(산둥성)의 지명으로 공자의 고향을 일컫는 말이다. 일반 서원이 사립학교라면 궐리사는 왕립(국립)학교다. 다시 말하자면 요즈음의 공립 중고등학교라 할 수 있다. 십수 년 전부터 궐리사에서는 교육사업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서예, 경전, 민요, 다도, 우리 춤, 사군자, 대금반이 요일별로 운영된다. 학생 교육도 준비되
학생의 미래 직업을 드립니다 - 중·고생 청소년 진로지도 강의 - 미래 직업의 방향성 제시 전문 직업인으로 활동한 신중년들이 사회 공헌의 일환으로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진로 교육을 강의하는 ‘드림n드림’의 진로교육 프로그램이 교육현장에서 청소년들의 직업관 정립에 크게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영리단체인 드림n드림(대표 : 이용의)은 2023년 중고생에 대한 진로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였으며 최근에 전문강사진을 대폭 보강하여 2024년 서울, 경기, 강원의 중고생을 대상으로 하는 진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강사들은 강의를 통해 중학생에게 자신의 삶 이야기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장래의 직업관에 대한 공감을 갖도록 하였으며 교육활동을 통하여 학생들이 자신의 꿈과 비전을 찾아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며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을 제시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강사의 유형을 보면 대학교수를 비롯하여 행정, 기후환경, 민화, 미술, 창업, 경제, 정책, 성악, 여행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자체 강의프로그램을 통해 중고생들에게 적합한 강의기법과 강의 방향성을 조율하는 등 수준높은 강의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다. 최근
올 가을에는 먼저 온 겨울 때문에 대부분의 은행나무들이 프른 잎을 회색 보도위에 뿌리며 아주 짧은 생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을이 겨울을 미워하지 않고 겨울도 미안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풍성한 가지를 머금은 은행나무는 그 잎새들과 약속도 안한 것 같은데 순서도 없는 것 같은데 겨울날 눈 내리는 모습을 미리 배워왔는지 차례차례 내려와 차곡차곡 쌓입니다. 쌓인 잎새들은 아직도 푸르지만 서로 불편함 없이 쌓이고 포개져서 대지의 품으로 돌아갈 채비를 합니다. 다만 인간들이 만든 시멘트 블럭으로 인해서 잎새들이 원하는 토지가 아닌 곳으로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곱디고운 잎새 피부가 이리저리 흐트러진 후에야 아주 낯선 땅으로 보내집니다. 이 가을에는 모든 이들이 본래 태어난 대지와 토양을 생각하고 그곳을 향해 잠시 두 손 모아 생각하고 여인들은 노랑 저고리 여미며 기도하고 남정내들은 잃어버린 과거를 되돌려보려 애써보는 것 같습니다. 어느 도시의 환경미화원들은 떨어진 은행잎을 자루에 담아 제약회사에 팔았고 그 돈으로 동료 자녀의 장학금으로 전달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올가을 은행잎이 저렇게 이른 아침을 택해 일시에 떨어져 그 값을 올리고자 하
강원도 동해시 수해현장은 모래와 자갈을 상대로 싸우는 전쟁터였다. 1925년 7월 18일 을축대홍수 이래 처음이라는 노인의 말씀을 들었고 산불이 난 자리에 산사태가 발생한 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로 이해하였으며 밀려오는 물기둥을 피해 달리다가 팔을 다친 할머니의 말씀으로 그날 상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일요일 아침 5시50분에 집결하여 3대의 버스를 타고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을 향해 출발했다.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도시락으로 아침을 먹었다. 고속도로를 지나 동해시로 들어서자 곳곳에 수마의 상처가 일행을 압도한다. 신문에서 본 항공사진이 실감난다. 이어서 도착한 수해현장은 전쟁터였다. 가재도구가 길 앞에 늘어서 있고 계절을 뛰어넘는 빨래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다리 상판이 털석 주저앉았고 시멘트 공장을 연결하는 구조물(수로와 비슷한)이 물살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조금 전 올라오다 본 철 구조물이 바로 그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수해복구 현장에는 이미 굴삭기와 덤프트럭이 굉음을 울리며 재건의 의지를 선도하고 있고 군장병과 벌써 도착한 자원봉사자와 이재민들도 복구에 나서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도착하자마자 동해시 공무원의 안
[시작하는 말] 초등학교때 漢字(한자)교육을 하다가 말다가해서 混沌(혼돈)의 시기를 거친 세대입니다. 그래서 상용한자를 몇자 넣었습니다. 인터넷에서 한자를 검색하니 漢字工夫(한자공부)를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2000년대 경기도는 2002월드컵 준비와 세계 도자기엑스포에 행정력을 집중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언론홍보를 하면서 기고문에도 행사에 대한 홍보성 내용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기고집의 제목은 ‘錦衣夜行(금의야행) 朝三暮四(조삼모사)’라 정했습니다. 열심히 해도 언론에서 비판을 받고 더러는 기대 이상의 좋은 홍보결과를 얻기도 하니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기도 하고 아침 3개가 4개가 되기도 하고 저녁 4개가 5개도 되었습니다. 공무원 사무관으로서 치열한 시기를 보냈던 시기인 만큼 당시에 써 올린 글 속에서 몇 가지 모순과 과도한 홍보 열기가 보이기는 합니다만 큰 加減(가감)이나 添削(첨삭)없이 원문 중심으로 편집하였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시는 마음으로 一瞥(일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의 제자를 석제 임동빈 선생님께 부탁드렸습니다. 수원에 있는 사무실을 찾아가서 금의야행#조삼모사, 군자불기#대기만성을 받
o 숯불 다리미 전기다리미가 없던 시절에 옷을 판판하게 다리는 다리미가 있었습니다. 장닭의 벼슬 모양을 한 자동차처럼 만들어진 철 다리미에 숯을 넣어서 쇠판을 달군 후 입안 가득하게 물을 머금은 후 푸~하고 뿌린 후 이불천이나 옷을 사르르 다렸습니다. 냉면 그릇처럼 생긴 다리미 위에 숯을 올려서 달궈지기를 기다려 옷을 다렸습니다. 오픈된 다리미에서 불이 튀면 옷을 버리게 되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니 완전히 타서 붉은 기운만 있는 숯불을 올려야 합니다.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는 숯은 위험합니다. 참나무 숯은 줄기가 터지며 타오르기에 마치 활화산 같아서 옷을 다리는 도중에 불꽃이 튀어나오면 옷감이 불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정말로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시골 할머니는 나일론 점포가 구겨졌다고 인두로 다려서 떡을 만든 사건이 전국 방방곡곡에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아는 천은 누에고치로 만든 비단, 목화꽃으로 실을 뽑아 만든 광목, 그리고 삼베가 전부였지요. 나일론은 1960년대에 석탄을 녹여서 만든 천인데 방풍은 잘 되지만 습기 차고 열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골 친구들이 입은 나일론 옷은 구멍이 나고 주머니 안에서 스펀지가 솔솔 빠져나왔
維歲次 庚子 十月 朔初三日17 代孫 유세차 경자 시월 삭초삼일17 대손/敢昭告于 감소고우 顯 十二代 祖考 通政大夫 敦寧府都正 府君 현 십이대 조고 통정대부 돈영부도정 부군 顯 十二代 祖妣 淑夫人 平山申氏 之墓 氣序流易 현 십이대 조비 숙부인 평산신씨 지묘 기서유역 霜露旣降 瞻掃 封塋 不勝感慕 상로기강 첨소 봉영 불승감모 謹以 淸酌庶羞 祗薦歲事 尙 饗 근이 청작서수 지천세사 상 향 이 제문을 한글로 풀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니 마치 한편의 漢詩(한시)와도 같습니다. 한문으로 쓰는 문장의 멋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과의 외교에서는 늘 한시나 한자 숙어를 인용하여 演說(연설)을 하고 對話(대화)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2023년 10월10일에 후손들이 고하나이다. 12대에서 5대조 할아버님 할머님 ! 서리가 내리는 계절이 돌아오니 영원토록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옵니다. 이에 삼가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을 올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해석문에서는 瞻掃封塋(첨소봉영)이 생략된 듯 보입니다. 이는 묘역주변을 정리, 벌초했다는 말입니다. 한문으로 읽고 이처럼 한글로 번역한 자료를 젊은 후손들에게 배포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젊은이 부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벌초
통상 시집은 손바닥에 올려서 조금 큰 정도의 싸이즈입니다. 단행본 책은 대략 250~300쪽에 15×21cm 크기가 적정하다고 봅니다. 지금 글 쓴 부분이 대략 255쪽 부분이니까 이제 30쪽 분량, 원고지 150매 정도를 쓰면 마감할 수 있습니다. 전에 쓴 시집은 쓰다 보니 360개 정도의 시를 올렸기에 기억하기 좋게 여기저기에서 시를 찾고 새로운 시를 써서 모두 365편을 실었습니다. 447쪽이 나오므로 모아찍기로 페이지당 2개의 시를 실었더니 출판사에서 반송되었습니다. 결국 21×29cm에 책 두께는 2cm가 되는 큰 책이 되었고 제목을 바꿔서 ‘그다지 크지 않은 인생시집’이 되었습니다. 유명한 시인 강원석님의 시집을 보면 11.5×18.5cm에 두께 8mm입니다. ‘내 그리움이 그대 곁에 머물 때’(구민사 출판)라는 멋진 제목을 보라색 남녀의 뒷모습 컷을 넣은 표지에 새겼습니다. 시인은 ‘꿈과 희망 그리고 사랑과 위로를’보낸다는 서문과 함께 독자를 향해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좋은 시는 잎이 울창한 나무처럼 마음의 휴식을 준다.’면서 ‘휴식 같은 시를 쓰고 싶다. 누군가 시 한 편에 마음 한번 쉬어 간다면 시를 쓰는 시간이 마냥 싱그럽겠지.’라고
우리 주변의 할머니 중에 ‘오만가지 걱정을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에게는 50,000가지 이상의 걱정이 있나 봅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동양적으로는 오만가지, 서양에서는 과학적으로 45,000가지 걱정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 중소기업 사장님이 사업을 하면서 늘 걱정이 있으므로 모든 걱정을 메모한 후 하나둘 해결된 것을 지워보았고 그 결과 정말로 신경을 써서 걱정할 것은 전체 걱정한 것의 2% 이내였다고 합니다. 그리니 우리의 삶 속에서 걱정할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 그냥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발생하는 걱정과 지구, 우주의 걱정은 다르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매울까봐, 추울까봐, 무서울까봐 걱정을 합니다. 하지만 우주는 그런 느낌의 걱정은 없을 것입니다. 대신에 움직임과 균형을 걱정할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잘 모르지만 지구와 달과 태양계는 팽팽한 인력을 바탕으로 한 균형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균형이 깨지만 지구에서는 해일, 지진, 태풍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태양은 흑점 활동으로 지구에 큰 영향을 주는데 흑점활동이 큰 해에 임신된 아이들의 초등학교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