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의 언론담당관, 그리고 남양주시청, 오산시청, 동두천시청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한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원장이 언론 기고문 중 100개를 모아 편집한 본인의 세 번째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2020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42년간 재직한 공직자로 공보부서에서 1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언론에 기고했다.
또한 경기도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공직을 마감하면서 ‘언론사의 도움을 받은 바 크다’면서 신문사에 퇴임 인사를 다녀간 친 언론공무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임인사는 많이 오지만 퇴직자가 언론사를 방문한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뉴스폼에 게재하는 '이강석의 세상만사'는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토대로 스마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다.
10년 전에 재미삼아 작성해 본 나름의 전화기 사용설명서인데 2023년 오늘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듯합니다. 일부 부분개정이 필요해 보입니다만 개정한다 해도 더 보강할 내용이 떠오를 뿐 삭제할 곳은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핸드폰 이전에 쓴 ‘자안리’ 마이크가 생각났습니다. 고향마을 1977년경에는 자안1리와 2리를 합해서 70호 200여명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우체국에서 공급한 전화기는 자안2리 이장님 댁에 1대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대략 45년 전 시골마을 이야기입니다. 이장님 댁 동네 스피커 방송이 전달되는 자안2리 주민들은 도시에서 걸려온 일가친척, 형제자매의 전화를 30분 시차를 가지고 걸고 받을 수 있었지만 윗마을 자안1리 고향마을 주민들은 본인이 필요할 때 아랫마을 이장님 집에 가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자석식 전화기의 손잡이를 잡고 전기를 일으키면 우체국에서 신호를 받아 통화가 되고 서울, 수원, 인천지역 번호를 신청하면 잠시 후에 전화벨이 울리고 수화기를 들고 기다리면 상대편에서 ‘여보세요’하여 통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빈약한 통신의 시대를 지나 1998년 동두천시청 동장으로 근무한다는 명분을 바탕으로 이동전화기를 신청하였고 사장
가정과 직장은 물론 기업이나 공장의 생산공정에서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다수가 크게 편리하고 생산성을 확충할 수 있는 사례를 자주 보게 됩니다. 중학생 때 시골마을에서는 부엌과 안방사이의 벽을 뚫어 밥과 반찬이 드나드는 창을 내는 작업이 유행했습니다. 방에 상을 펴고 부엌에서 어머니가 올려주는 반찬과 밥, 국그릇으로 아들딸은 방안에서 상을 차렸습니다. 초창기 할아버지들은 '에헴'하며 불편해 하셨지만 수년 내에 시골동네 모든 집 주방-안방간 사이에는 이른바 음식을 위한 ‘소통의 문’이 설치되었습니다. 그리고 음식이 들어오고 빈 그릇을 설거지하기 위해 드나드는 것은 물론 가족 간의 소통의 창문이 되었습니다. 주차장에서 건물로 들어오는 길이 멋스럽지만 불편하게 만들어져 있으므로 이곳에 지름길을 내는 개선안을 제안하여 공사를 했습니다. 미국에서 대통령을 하신 분(아마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Dwight David Eisenhower/ 1890~1969)이 대학총장으로 일할 때 학생과 교수들이 잔디를 밟고 다녀서 징계를 하겠다는 주장에 대해 현장을 살핀 결과 그 곳이 지름길이고 이곳을 막으면 먼 거리를 돌아가는 불편함을 확인하고 오히려 그곳으로 길을 낸 사례를 참고했습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3년고개'라는 글을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최근에서야 깨닫고 강의자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3년고개'라서 3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통념을 뛰어넘어서 3년을 산다고 생각한 며느리의 적극성에 박수를 보내게 되었고 그런 생각으로 매사에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토리는 이러합니다. 어느 날 노인이 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3년고개'에서 넘어져 3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걱정에 머리를 싸매고 누웠습니다. 건강하시던 시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며느리가 물었습니다. “아버님, 어찌하여 누워만 계십니까?” 시아버지가 대답합니다. “내가 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다가 저 '3년고개'에서 넘어졌단다. 이제 3년 후에는 죽게 되었으므로 이렇게 누워있단다.” 시아버지의 근심 어린 답변에 며느리는 말했습니다. “그럼 아버님, '3년고개'에 가셔서 한 번 더 넘어지시면 3년을 추가해서 더 사시겠습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말을 듣자 크게 깨닫고 '3년고개'에 가서 일부러 여러 번 넘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시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삼천갑자 동방삭(東方朔)은 이 고개에서 6만 번을 넘어졌다.” 며느리의 재치로 노인의 걱정을 해
식당에서 배우는 인생 며칠 전에 중년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두 집 부부가 점심을 먹었습니다. 주인장 와이프는 주방에서 생태와 코다리찜 2인분, 4인분을 찌그러져 수세미가 닿는 부분만 반짝이고 그 안쪽은 검정색이 남아있는 냄비에 담아 애벌을 끓여서 남편에게 인계하고 남편은 즉시 악어 입 옆으로 돌린 듯 보이는 집게로 번쩍 들어서 손님상에 배달해 줍니다. 12시 지나 들어간 식당에는 손님이 한가득이고 이미 식사를 마친 테이블을 정리하지 못 한 채 남자 사장 혼자서 홀 서빙하고 계산대에서 카드를 받고 친절하게 카드와 영수증을 건네는 모습을 보면서 장사는 이렇게 해야 잘 되는 것이라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요즘 코로나19로 손님의 등락이 크다보니 종업원을 한 분 더 두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동시수용 20명 정도의 식당에서 종업원을 채용하면 한 달 인건비와 함께 발생하는 잘잘한 비용을 감당하기보다는 스스로 발품을 더 팔아서 이른바 박리다매(薄利多賣) 전략으로 가시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이 식당이 손님을 끄는 힘은 아내의 손맛인가 생각합니다. 국물과 반찬이 입에 맞습니다. 살짝 건조 후 볶아낸 듯 여겨지는 어묵조림의 식감이 기분을 좋게 합
중앙지와 지방신문이 세로쓰기와 가로쓰기를 병용하던 1988년 전후의 시기에 국무총리, 대통령비서실장, 장관인선 발표를 보면 장관급 인사의 사진은 동그라미이고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원장, 그리고 대통령 비서실장의 사진은 동그라미 장관의 사진보다 조금 더 큰 네모사진이었습니다. 신문보도에서 사진의 크기는 그 인물의 위계와 비중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인사중 단 한명인 대통령비서실장의 위상은 아마도 총리급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비서실장, 조선시대 도승지는 '1인 지하 만인지상'이라는 국무총리와 현행 경제와 교육을 담당하는 부총리와의 중간쯤에 자리할 것으로 추측해 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비서실장의 위상이 높은 이유는 모든 조직과 기구와 대기업에서 비서실장의 위치는 공고하고 강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말 그대로 비서실장은 비밀스러운 일, 소중하게 다뤄야 할 자료를 챙기는 인물로 생각합니다. 야전에서는 '자료와 서류가 든 가방을 든다'해서 비서는 '가방맨'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요즘에 미국 대통령이 현장에 나갈 때 지근거리에서 가방을 들고 따라가는 정부요원이 카메라에 잡히는데, 이 가방 속에는 핵을 열고 닫는 장비, 즉 핵 단
최근 국회에서 양곡관리법을 제정하였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여 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쌀 수급 안정, 직불제 확대 및 농업·농촌 발전방안'을 발표했는데 이번 대책은 쌀값 하락을 막겠다는 취지이며 더불어민주당이 3월23일 처리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대안책이라고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 요구를 의결하며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농촌을 세심히 살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정부는 올해 수확기 쌀값이 한 가마니(80㎏)당 20만원 수준이 되도록 수급 안정 대책을 적극 추진한다고 했는데 이는 지난해 수확기 쌀값(80㎏당 18만7268원)을 웃도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마트에 가면 10kg(25,000원), 20kg(50,000원) 단위로 구매하여 필요한 만큼씩 플라스틱 병에 담아서 줄 세워놓고 밥을 지어먹었습니다. 그런데 80kg들이 쌀 1포대가 20만원쯤 나간다는 계산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양곡관리법 개정과 정부의 거부권 행사 내용이 언론에 회자(膾炙)되는 것을 보면서 1977년 9급 공무원 초임 당시의 기억
행정업무 서식에 '기타'와 '비고'란이 있습니다. 참으로 편리한 서식이고 오랜 기간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행정의 형식 중 하나로 봅니다. 대부분의 자료는 분류와 정리를 해서 작성하는 데 작업을 하다 보면 100개 중 한두 개로서 딱히 분류 항목을 정하기 애매한 경우가 서너 가지 발생합니다. 이들 자료는 기타 항목에 몰아서 집계를 하는 것입니다. 문서의 서식에서도 소속, 성명, 주소,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를 작성하고 나면 조금 남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를 비고란으로 설정하고 혹시 필요한 메모를 하도록 하는 것이 통상의 서식 구성 방식입니다. 다음으로 명함이 있습니다. 명함은 마음대로 만들 수 있습니다만 그 크기는 통상의 예에 따라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여러 사람의 명함을 받아서 손에 쥐어보면 튀어나오는 명함이 있는데 이 분의 명함을 다시 보면 그냥 왠지 불편한 사람이 됩니다. 여러 장 명함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오히려 불편을 주고 세로쓰기 명함은 수첩에 붙여 정리할 때 자리를 정하기에 애매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명함의 크기와 인쇄 방향은 통상의 경우를 따라 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네모의 양면이든 단면이든 내용을 편집하고 인쇄
골퍼들은 ‘운동’하러 간답니다 재미로 말하자면 골프의 3요소는 동반자(4인), 골프채, 부킹이라 하겠습니다. 골프는 4명이 함께 잔디밭을 이동하면서 골프채를 이용하여 자신의 공을 홀컵에 넣는 경기입니다. 사실 골프를 '운동'이라고 말하게 된 이유는 과거 일부 층에만 허락된 골프를 대놓고 말하기 어려워서 그리 한 것이라는 설이 있고 자신들만의 귀족스러운 운동으로 신비감을 주기 위한 이유도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합니다. 최근에는 누구나 편안하게 골프 간다고 말합니다만 1980년대에는 절대 비밀이었고 그래서 골프장에 가면서 '운동 간다' 했습니다. 골프의 3요소 중 가장 중요한 '동반자 4인'은 골프 실력보다는 마음이 통하는 사이이어야 합니다. 9홀 골프장에서 훈련 겸, 운동을 위해 골프를 하는 주말골퍼들은 골프장에 도착한 순서로 모르는 이들이 만난 4인이 차면,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한 후에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는 연습과 운동을 병행하는 분들의 급조한 팀인 것이고 사실 골프는 대략 2주 전에 약속을 정하고 마음속으로부터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나름 힐링의 시간을 갖는가도 모르겠습니다. 해서 골프 타수보다는 마음으로 뭉쳐진 4인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경기도청 현판과 의회 현판이 고철로 사라지기 직전에 구출했다는 자랑을 여러 번 한 바가 있습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당선되고 인수위 활동을 하면서 도청을 개방하고 도민들이 언제든지 방문하실 수 있는 곳이라는 취지로 도청주변 철조망을 철거하자는 의견을 내서 정리된 바 있고 취임 후에는 담장을 헐어내고 마지막으로 정문에 세워진 대리석 기둥을 철거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2008년에 정문과 후문이 철거되는 과정에서 가까스로 동판이라도 구한 일에 대하여 여러 번 자화자찬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1개월간 작업하여 노트북에 저장한 강의자료 PPT 125매 중 105매를 지워버리고는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노트북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스스로 지운 자료를 복원해보려 노력했지만 쏘아버린 화살처럼, 업질러진 음료수처럼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사건의 상황을 설명드리면, 드라이브에 저장된 파일을 바로가기로 초기화면에 연결해 둔 것입니다. 그리고 실수로 초기화면에서 파일하나를 더 복사하면 되는 줄 생각하고 복사한 파일을 20장으로 줄여서 저장하였는데 이는 초기화면으로 끌어온 ‘바로가기’이니 본체의 드라이브에 하나의 파일이 있었던 것이고
비가 그치는 듯 보이므로 광교산 등반을 결행하였고 열심히 한걸음 두 걸음 형제봉 정상을 향해 걸었습니다. 보통의 경기대에서 주차 후 출발하는 코스를 피해서 조금 가까운 문안골을 지나서 영동고속도로 지하도를 거쳐서 형제봉 인근의 나무계단 부근으로 직행하는 등산로를 선택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씨이고 국경일 대체휴무일인 월요일 이어서인가 시민들의 발길이 뜸해서 아주 편안한 산책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채 길을 걸어 오르는데 잘잘한 상수리나무의 도토리가 보입니다. 깊어가는 가을이고 마침 비가 내려서 상수리 껍질이 부드러워진 터라서 하나 둘 도토리가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등산객도 적으므로 떨어진 도토리가 쉽게 눈에 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토리는 이 길가에 떨어져서 등산객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땅위에 떨어져서 깊이 박힌 후에 다람쥐 등 산짐승 천적의 공격을 기하고 차가운 겨울을 거친 후, 내년 봄에 도토리의 양분으로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의 힘으로 지상에 푸른 잎을 올려 보내어 태양을 만나서 광합성을 통해 또 하나의 어미나무, 아비나무를 닮은 묘목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거치고자 어미 몸에서 분리되어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