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언론인·독자에게 추천하는 글
[ 어라! 이 친구 뭐지? ]
관선기자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공보실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공직자를 두고 출입기자들이 불러주는 별칭이지요.
그러나 모두가 별칭으로 불리워지진 않습니다.
기자보다도 뛰어난 필력에 정무적인 감각이 있어야 얻어지는 별칭입니다. <중략>
9급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해 1급 관리관으로 명예퇴직하는 전설로 남게 된 것도 홍보업무를 하면서 얻는 역량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연배는 아래지만 홍보업무를 함께 했던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존경했습니다. <중략> 그의 소중한 경험이 후배공직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공직사회를 이해하는 길라잡이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시인 홍승표(전 용인부시장/전 경기관광공사 사장)
언론과 관련하여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간부 공무원들은 본사 데스크를 연결하여 해결방안을 찾으려 합니다. 언론 관계는 보험과도 같아서 평소에 보험료를 내면서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상시에 발등의 불을 끄려하면 물도 바가지도 없고 소화기는 굳어서 발사조차 불가능합니다. 평소에 그 기관을 출입하는 언론인과 접촉과 대화와 소통을 축적함으로써 비상시에 위기를 막거나 충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취재기자의 기사작성과 데스크의 판단, 그리고 편집국장 중심의 회의 시 반응과 편집부의 최종적인 제목 작명 등의 과정을 거쳐서 신문 활자가 펑~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2명 정도의 기자가 아군이라면 그 공무원의 기사는 아주 부드럽게 처리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기사가 공무원 개인을 향해 나가는 경우보다는 기관의 업무에 대한 평가이고 그 속에는 약간의 경영적 요소가 가미되므로 한 두 명 공직자가 기사 전체를 감당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대부분 사건의 판단기준은 일단은 그 담당자의 역량부터 보기 시작합니다. 과거 1990년대 공직에서 예산계 차석, 인사계 차석, 기획계 차석에 대한 인사를 보면 어디에서 참으로 꼭 필요한 사람을 구해왔구나 하는 감탄
작은 기사를 키우는 전략이 있고 나쁜 기사 크게 잡힌 것을 아주 작게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방법이 있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언론인이 우리 부서를 취재하면 인맥을 동원하여 막으려 하고 좋은 기사꺼리가 있으면 사전에 술 한잔 하면서 어필을 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건 기사가 출입기자나 어떤 기자가 그냥 취재하는 것인지 본사 데스크의 오더를 받은 것인가를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큰 기사는 아침 9시 편집국장 중심의 편집회의에서 취재방향과 내용, 기사의 크기까지 결정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신문 몇 면에 어느 크기로 낼 것인가 이미 정해져 있고 보충 취재이거나 그냥 형식적인 취재의 모양을 갖추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몇 가지 묻는 것은 이미 써둔 기사에 대한 사전 통보로 보시면 맞습니다. 정책적으로 기사를 쓰는 경우에는 더구나 그 기사의 내용이 정해져 있고 비판의 강도가 아주 높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자가 취재하는 방법을 분석해보면 그냥 한건 기사를 취재해 두는 경우가 있고 기획기사를 준비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축적을 위해 취재하는 경우
언론인의 하루를 살펴보겠습니다. 아침 출근은 평온하나 밤늦게 찬란합니다. 조간신문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석간신문이 많았지만 이제는 몇 개 신문이 석간의 자리를 지키고 있고 대부분의 신문은 조간입니다. 기자의 출퇴근 시간은 아침 늦게, 저녁 늦게 입니다. 공무원이나 직장인들은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에는 일찍 퇴근하기를 바라겠지만 기자는 취재하고 편집하고 교정보고 마무리하는 과정이 밤 늦게까지 이어지므로 저녁시간 이른 퇴근을 기대할 수는 없는 분야입니다. 더구나 편집기자는 기사가 들어오는 오후가 되어야 본격적으로 신문제작 작업을 할 것이고 사진기자는 행사가 열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가지 현장을 누벼야 할 것이며 그 중간에 대형 화재, 교통사고, 사건사고, 검찰 출두 등이 있을 때 시각에 맞추어 현장에 달려가야 하는 재미있지만 힘든 직업이라고 여겨집니다. 사진 기자들이 재미있어 하는지는 모르지만 행사장에서 수 십번 이상 셔터를 눌러대는 것을 보면 자신의 직업에 큰 자부심을 갖는 것은 확실합니다. 편집기자들이 계속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면 편집 또한 묘미와 재미와 자부심이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편집기자상을 받으신 분들이 그 성과를
신문사 편집국 정치부 옆에 제2사회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시군의 주재기자를 담당하는 부서입니다. 주재기자란 한자로 풀면 駐在(주재)하는 기자입니다. 군부대가 駐屯(주둔)한다고 할 때와 같은 한자를 쓰는 것으로 보아서 늘 그 지역에 머물면서 취재를 하고 동향을 본사에 보고하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그 주재기자들은 한 달에 한 두 번 본사에 와서 정보를 교환하고 편집의 방향을 전달받고 앞으로의 취재지침을 익히게 됩니다. 본사와 교류하면서 인맥도 형성하고 다른 주재기자들의 취재력을 배우기도 할 것입니다. 가끔은 주재 시군을 바꾸기도 합니다. 공무원을 하면서 동두천시청, 오산시청, 남양주시청에서 근무했습니다. 근무하면서 이분 주재기자님의 도움과 배려를 많이 받았음을 밝히며 지면을 통해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소극적으로 일한 것도 아니라 자평하는데 3개 시에 근무하는 동안 언론과 관련한 사건사고는 없었습니다. 오래전에는 관선 군수님이 토요일 오후에 간부들과 긴 시간 술을 마신 일이 가십으로 기사화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으신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근무초기에 인사차 기자실에 가니 공보실에 근무하였느냐 물으시면서 아무개 국장의 전화를 받았노라 하십니다. 도청 기자실의 원
[보도자료] 1977년 19세 철 모르던 시절에 불쑥 공직에 발을 들인지 42년만에 L원장이 퇴임했다. 공무원으로 40년, 공기관에서 2년을 일했다. 19살 청년은 60 회갑이 되어서야 공직의 부담을 벗었다. 이를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解官이라 했다. 매년 경기도청에서만 수백명이 명퇴, 정년퇴직 하겠지만 L원장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른바 언론을 아는 공무원이다. 기자에게 감히(?) ‘행간의 의미’를 안다고 자임하곤 했었다. 영화배우 김하늘이 주연한 국정원 직원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7급 공무원'이 2009년에 개봉되어 400만 관객을 기록한데 이어 요즘 정치권에서 6급 공무원과 5급 별정직 공무원이 부각되곤 한다. 1984년 공보실. 당시에도 짱짱하던 6급 공무원은 가끔 사업부서 계획서 하나 얻어다가 '1도1사'경인일보 기자에게 건네주면 다음날 세로쓰기로 신문 짝 만하게 기사가 났다. 칼로 오려서 민선 도지사에게 올리면 싸인펜으로 체크해서 내려 보낸다. 도지사에게 점수를 땄으니 우리 과장님 은 다음번 인사에서 관선군수로 나가겠다며 자화자찬을 했었다. 그래서 공보실 직원을 '관선기자'라고 불렀다. 1988년에 경기일보가
기자가 이렇게 기사를 써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만 그냥 공직을 마쳤다고 이 같은 기사가 올라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자화자찬의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사 퇴임인사를 다녔습니다. 대부분의 공직자들은 보직 발령시에는 언론사에 인사를 합니다만 퇴직하기 전에 인사를 드리는 예는 드물다고 합니다. 하지만 취임 인사보다 퇴직을 알리는 방문에도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멋진 기사를 써주신 기자님과 언론사에 감사드립니다. 2019년 1월31일 퇴직하는 이강석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의 '퇴임 인사차 언론사와 기자실 방문'은 색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19세 고졸사원으로 화성 비봉면, 팔탄면에서 공직을 시작한 이 원장은 1981년 경기도청에 전입하여 88년부터 공보관실에서 언론인과 마주했습니다. 이 원장은 1988년 지방언론이 재점화되는 시기에 공보실에서 경인일보, 경기일보, 기호일보, 인천일보 출입기자들과 당시 7급 공무원으로서는 독학(!)수준으로 공보현장을 뛰었습니다. 보도자료 발굴을 위해 도지사실 결재대장을 뒤지고 결재된 문서를 시군에 배포하기 위해 인쇄를 하는 '발간실'의 자료와 담당 계장의 협조를 얻어 도정 보도자료로 배포하였습니다.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동장
축구에서 골을 넣으려면 골대안으로 공을 차 넣어야 하고 골프에서 버디를 하려면 홀컵을 지나갈 정도의 힘으로 공을 보내야 합니다. 골대앞에서 투스텝으로 망설이면 꼴인이 없고, 골프장에서 '공무원 퍼팅'으로 골프공을 홀컵 20cm까지만 보내면 '버디(Berdie)가 보기(Bogey)'가 됩니다. 공무원퍼팅이란 '최소한만 일 한다'는 데서 유래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사도 마찬가지이고 언론홍보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일단 충돌하여 번쩍하고 광채가 나고 나면 흥하든 망하든 무슨 일이든 벌어지게 됩니다만 추돌을 피하려 살살 가면 얻는 것이 없거나 적습니다. 공보부서 공무원, 홍보담당 직원은 골대앞 축구선수처럼 내달려야 합니다. 손흥민 선수처럼 내달려야 골키퍼와 1:1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매니저 이야기가 나오는데 매니저가 방송국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자신의 연예인을 소개하는 모습을 봅니다. 전혀 안될 것같은 일이 실전으로 가능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까 손흥민, 박지성, 안정환, 차범근 등 축구에서 꼴을 많이 넣은 선수는 늘 꼴대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바다에 낚시바늘을 던진 횟수만큼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듯이, 슈팅이 모두
1988년경 중앙 언론이나 지방언론의 기자들은 기사보다 가십에 관심이 높았습니다. 기사는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각종 행사와 시책을 알리는 것으로서 보통의 업무라 할 것이고 가십은 도정 전반이나 도지사와 간부들의 동향보고라 할 것이기에 관선 도지사 시절인 당시로서는 큰 관심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1988년 상반기까지는 이른바 1도1사로서 경인일보가 경기도·인천광역시 지방기사를 독점하였고, 그해 8월부터 10월까지 3개 지방지가 창간되었습니다. 경인일보(1961. 9. 1), 경기일보(1988. 8. 8), 기호일보(1988. 7. 20), 인천일보(1988. 7. 15)가 4파전으로 경쟁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창간초부터 가십을 활용하기는 어려운 일이고 기호일보와 인천일보는 인천에 본사를 두고 경기권에는 작은 지국수준의 사무실에 3-4명이 근무하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래서 경인일보 가십이 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매주 간부회의가 09:00에 열리면 발빠르게 30분 안에 원고지 1매 200자 이내의 핵심을 정리하여 전화로 부르면 오후 2시경 도지사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이 게재되는 것에 큰 보람을 삼았던 것입니다. 독자들이나 공무원들은 그 기사가 기자의 취재
2003년을 전후해서 중앙지는 가판을 냈습니다. 가판이란 街頭(가두)판매가 아니라 조간으로 나갈 신문을 전날 저녁에 미리 일부층에 판매하는 신문을 말합니다. 형태는 신문으로 나오고 서울 동아일보사 인근의 길에서 중요 고객에게 팔려 나갑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신문이 최종으로 인쇄되어 나갈때에는 가판기사가 일부 부드럽게 조정되어 가정에 배달됩니다. 부드럽다는 말은 기사편집 내용과 아침 보도기사의 제목 일부나 내용의 수정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가판에서 "경기도 행정 - 식물인간"이라는 제목이 다음날 아침 "경기도 행정 일부 차질"정도로 완화된다는 말입니다. 이를 위해 밤늦게까지 전화가 오가고 그 시각에 윗선에 보고되기도 합니다. 2글자 수정을 놓고 공보관과 중앙지 데스크가 2시간 이상을 전화를 걸고 받으며 싸우는(?) 장면을 목격하였고 다음 날 아침 조금 부드러워진 기사제목을 들고가서 '장'에게 보고하기에 참으로 대단한 밤을 보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중앙지 가판제도가 주는 긍정적인 면은 혹시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에 오해가 있다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점에서는 필요해 보입니다. 아무리 전문기자라 해도 공무원의 이야기를 잘못 이해하거
공무원과 언론인의 끝없는 말 싸움은 자료를 달라하고 못준다 하는 것입니다. 자료를 주라는 법이 없으니 심한 경우 '정보공개청구'를 하라 합니다. 대외비가 아닌 문서라면 달라하고 내가 처리한 문서를 기자에게 줄 수 없다고 버티는 것입니다. 닭과 계란의 선후의 문제이고 부산까지 달려도 늘 평행선인 좌측 철길과 우측 레일입니다. 숫자 2는 곱해도 4, 더해도 4이듯이 언론인과 공무원의 대화는 늘 평행선입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모든 보도자료는 공보실을 통해서 주고받자입니다. 각 부서는 공보관실이 요구한 자료를 공보관실 직원에게 전달하고 공보관실은 그 자료를 기자에게 전하니 각각의 책임부담을 조금씩 분담하는 것입니다. 공보관실 직원도 공무원이니 자료의 내용을 파악하고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사업부서에서도 자료를 제공하면서 기자에게 나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 마음속 위안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기자들도 무턱대로 행정기관의 자료를 보도하기에는 나름 규율이 있을 것입니다. 언론이 폭로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언론보도의 수위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기사를 보도한 언론인에게 어필을 하면 '행간의 의미를 읽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