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의 언론담당관, 그리고 남양주시청, 오산시청, 동두천시청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한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원장이 언론 기고문 중 100개를 모아 편집한 본인의 세 번째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2020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42년간 재직한 공직자로 공보부서에서 1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언론에 기고했다.
또한 경기도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공직을 마감하면서 ‘언론사의 도움을 받은 바 크다’면서 신문사에 퇴임 인사를 다녀간 친 언론공무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임인사는 많이 오지만 퇴직자가 언론사를 방문한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뉴스폼에 게재하는 '이강석의 세상만사'는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토대로 스마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다.
2015년 10월25일에 화성 제부도에 가족여행을 갔습니다. 제부도 섬 뒷편에 철봉과 나무로 테크를 만들어 여행객들이 재미있게 섬 뒷편을 산책할 수 있는 참 좋은 코스가 있습니다. 참으로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차분히 걸어가다가 파도에 씻겨나간 절벽 위에 힘겹게 매달린 소나무를 발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무너지는 절벽에 늘어진 소나무라 생각했는데 거꾸로 매달린 세월이 2~3년은 되는 듯 보였습니다. 아래쪽 가지에 솔방울이 많이 달려있고 그 솔잎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向日性(향일성)이라 해서 식물의 잎과 가지는 태양을 향한다는 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늘어진 것이 아니고 몇 년 된듯한데 아주 싱싱하게 거꾸로 매달려 잘 자라고 있습니다. 붉은 바위틈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화성시청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액자를 만들어 세우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소나무와 관광객이 서 있는 바다위 데크길은 20m정도 떨어져 있으니 그 중간 10m지점에 네모난 액자를 설치하면 좋겠습니다. 그 액자 테두리에 "생명스러운 소나무 화성시와 함께...."라든지 "화성시민 힘의 원천입니다"라든지 "힘내라 힘!!!" 등 격문을 적어보자 했
평창 올림픽 기념 2,000원 지폐가 8,000원에 판매된다고 하는데 큰 정성과 적극적인 노력이 없으므로 구매하지 못하였습니다. 지난번 문재인 대통령 취임 기념 우표도 우체국앞에 장사진을 치고 전량 매진, 소진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한국은행 최초의 기념주화가 3천만원을 호가한다고 하니 대단한 일입니다. 미국의 2달러의 소중함을 벤치마킹한 듯 지극히 서민적이고 전통시장에서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우리나라돈 2,000원짜리는 발매되어도 시중에 돌아다니지 않고 각각의 집안 장롱, 앨범, 수첩속에 곱게 간직될 것 같습니다. 소중한 것은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내보내지도 않는 것이 사람들의 고운 심성이니 말입니다. 아이들 어려서 20년전쯤에 500원주화 등 몇가지 기념화폐 동전을 사둔 기억이 있고 아이들에게 전해주었으므로 앞으로 30년 정도 잘 보관했다가 손자들에게 전해주면 가문의 작은 가보가 되거나 급할 때 팔아서 쌀이라도 사서 밥 해먹을 유산아닌 유산이 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솔직히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1945년 전후에 누군가와 사업상, 개인 삶의 과정에서 편지를 많이 쓰시고 주고 받으셨다면, 그리고 그것을 자손들에게 곱게 관리하여 물려주셨다면 땅
청량산 청량사에 다녀왔다. 신라 문무왕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골리에 있다. 주소를 입력하고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사찰이 보이지 않았다. 1982년에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바 등산객을 위한 주차장과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주차장시설과 차량에 집중하다보니 왼쪽 가파른 길가에 세워진 청량사 입구라는 돌간판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청량사 입구를 지나 공원안으로 수백미터를 더 올라갔으나 사찰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시 유턴하여 사찰의 일주문을 건립중인 하천부근까지 내려와서 다시 주소를 입력하고 목적지 부근에서 이리저리 청량사를 찾았다. 그리하여 글씨조차 잘 보이지 않는 청량사 입구 안내석을 발견했다. 차분하게 가파른 길을 올랐다. 신발속에서 발이 미끄러지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비탈이 심하다. 차가운 초겨울 날씨로 숨이 가쁘다. 속도를 늦추고 걸었다. 대부분의 사찰이 산 중턱 이상의 자리에 있으니 청량사를 만나려면 구도자의 심정으로 차분하게 장시간 걸어야 할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실제로 거대한 바위를 오른편에 두고 오르고 돌고 다시 좌측으로 돌고 우측으로 걷기를 반복하다보니 돌탑이 보인다. 작업복을 입은 분이 비탈길
인생목표 60권중 55권 수필집 출간 수필집 60권을 목표로 꾸준히 글을 쓰고 편집해온 이강석(66) (전)남양주부시장이 55번째 수필집 ‘뒤늦게 오신 100만화성 시의원님’이라는 제목의 수필집을 출간했다. 이 씨는 공직 42년 퇴직 후 첫 번째 수필집으로 공직생활과 젊은 날을 회고하는 ‘공무원의 길 차마고도’를 출간한 바 있고 이후 경기도청 공보실에서의 경험을 모은 책 ‘기자 공무원 밀고 당기는 홍보이야기’를 출간했으며 이후 수필, 신문기고문, 시, 기행문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모아 편집하고 이를 인터넷으로 출간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인터넷 출간사인 BOOKK.co.kr을 통해 출간하고 그 파일을 지인들과 공유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뒤늦게 오신 100만화성 시의원님’은 시의원이 늦게온 것이 아니라 바쁜 일정으로 행사중에 도착한 시의원을 소개하는 사회자의 멘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데 이와함께 공직이나 단체등에서 미스하기 쉬운 의전상의 문제를 경험적 바탕으로 상술하고 있다. 사회자는 행사에 참석한 손님을 최대한 예우하여 소개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중간에 참석자를 소개하는 경우에도 “바쁜 일정중에 행사에 참석해 주신 홍길동 의원님을 소개합니
조상님 묘소를 깔끔하게 하고자 형제들이 벌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만 이미 둘째형이 고조부 벌초를 마쳤고 증조, 조부, 아버지 등 넓지 않은 묘소의 벌초를 남겨두었다 하므로 이번주 일요일에 날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저에게 다른 일정이 들어왔으므로 다시 형과 날을 조절해야 하는데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닌듯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예초기 빌려주는 곳이 많다고 하므로 수원의 농기계 가계가 밀집한 매교동 공구상가에서 기계를 빌렸습니다. 이 기계는 전날 토요일에 직장 동료 결혼식이 있었고 집에서 5km정도를 걸어서 교회 혼례식장에 참석하여 지인 선배와 점심을 먹고 예식장에 올라가 축하했습니다. 이어서 매교동으로 이동하여 적정한 기계를 찜하고 다시 수원천변을 잉어와 붕어, 그리고 오리와 물새를 친구삼아 찬찬히 걸어 세교에서 전철을 타고 수원시청역을 지나 매탄권선역에 도착한 후 집에가서 차를 운전하여 다시 가서 예초기를 차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 5시에 출발하였습니다. 신나게 내달리다가 주유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양노2리 발이골이라고 중학생시절 걸어다니던 길에 주유소가 있는 것이 기억나므로 가보니 아직 5시반이라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말 중에 유치원에 가보니 선생님 책상에 PC가 있었다 합니다. 아침에 집앞에서 노랑버스를 타고 신호등을 지나 어디론가 빙빙 돌아 내려주는 곳에서 가방메고 들어가면 그곳이 유치원이고 식판들고 줄을 서면 밥을 줍니다. 선생님이 가라 하면 가고 버스타고 달리는 차창가 가로길 구경하다 보면 아침에 탄 그 자리에 내리라 해서 내리면 엄마가 나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갑니다. 집에가면 집 전화, 핸드폰 5대, TV2대, 냉장고 3개가 있으므로 먹고 마시고 놀고 보다가 저녁먹고 다시 재롱 부리다 이 닦고 잠자면 다음날 아침이 옵니다. 요즘 아이들은 밤새 누가 전기를 보내주는지 가스를 공급하는지 군인 아저씨가 지켜주시는지, 경찰관이 야간 순찰을 하시는지, 소방관이 방호활동을 하는지, 공무원이 동향보고를 하는가는 알 필요가 없습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런 문명의 근원에 대한 고민이 없습니다. 오로지 나의 유치원과 엄마와 동네마트와 대형매장에서 물건 고르고 카운터에 신용카드 내밀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밥은 밥상위에 있고 음료는 냉장고를 열면 나옵니다. 우리집은 도깨비 방망이로 지어진 그런 곳입니다. 아침에 해가 뜨고 비가오면 우산을 들고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요즘 방송에 나오는 자연인, 갈데까지 가보자 등에서 현대문명 몇가지를 포기하는 대신에 자연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얻는다는 스토리를 보게 됩니다. 문명에서 벗어나 신석기시대로 돌아가면 전기가 없습니다. 전기는 불을 밝히는 것은 기본이고 냉장고, TV등 가전제품을 움직입니다. 야채를 갈아주는 믹서기도 가동되지 않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프로그램에서는 자전거 발전기에 믹서기를 연결하거나 선풍기를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 인간의 동력으로 움직이라 합니다. 선풍기를 내 힘으로 발전하여 돌려서 시원함을 얻으면 운동효과는 극대화 될 것이지만 시원함은 부족할 것입니다. 차라리 자전거 페달을 돌리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더 나을뻔 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에너지의 중요성과 화석 연료를 줄이자는 캠페인으로는 성공적입니다. 자연속에 들어가 원시생활을 해도 키보드는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1970년대 처럼 타자기를 들고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전기없는 산속에서 컴퓨터 키보드를 치려면 배터리가 있어야 합니다. 시내에서 먼 곳이니 일주일에 한두번 배터리를 짊어지고 다니는 것도 어렵다고 하면 태양광을 이용한 축전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낮에 축전지를 채우고 밤에 글을 쓰
함흥차사(咸興差使)란 심부름 간 사람이 돌아오지도 않고, 아무런 소식도 없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출전] 조선 초기, 방석(芳碩)의 변(1차 왕자의 난)이 있은 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는 정종(定宗)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고향인 함흥에 은거했다. 그 후 형제들을 살해하면서까지(2차 왕자의 난) 왕위를 차지한 태종(太宗) 이방원(李芳遠)은 분노한 태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함흥으로 차사를 보냈으나 태조가 번번이 활을 쏘아 차사들을 죽이거나 가두어 돌려보내지 않았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함흥차사’는 심부름 간 사람이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이에 대한 전고는 다음과 같다. 「태조가 만년에 왕업을 일으킨 함흥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북궐(北闕)로 행행하고 나서는 대궐로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 이에 조정에서 매번 돌아오도록 청하였으나 청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전후로 보낸 사자만 10여 명이었는데 모두 돌아오지 못하였다. 판승추부사(判承樞府事) 박순(朴淳)이 비분강개하여 자신이 가기를 청하였다. 함흥에 이르러 멀리 행궁이 바라보이자 일부러 새끼 말은 나무에 매어 두고 어미 말을 타고 가는데, 말
돌아가신 본인의 아버지를 先親(선친)이라 한다고 들었습니다. 손학규 도지사님께서 월례조회시에 사회자가 살아계신 아버지를 선친이라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바로잡아 주신 기억이 납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당신께서'라고 존칭하기도 합니다. 저의 선친께서는 제가 중학교 1학년 1학기 다닐때 42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중학생으로서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1학년 학기 기말고사를 준비한다고 저녁에 책을 보고 있는데 고모님들이 울면서 옷을 챙겨 입으라 하셔서 집을 나서 비봉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수원에 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성빈세트병원 영안실에 모셔졌습니다. 낮에 야외에 나가셔서 업무를 하시다가 땀을 많이 흘리셨는데 병원으로 모셨지만 돌아가신 것입니다. 수원에서 이틀을 보내고 시골로 모셨습니다. 1971년 당시에는 상가에는 온 동네 분들이 오십니다. 아이들은 상가에서 도시락을 챙겨서 학교로 가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상가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동네의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상가에서 일을 돕기 때문입니다. 3일되는 날 아버지는 동네 뒷산 좋은 자리에 모셔졌습니다. 장례를 모시고 다음날부터 매일아침 상복을 입고 절을 올렸습니다. 집에서
사무실에서나 가정에서나 금고는 그 존재로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습니다. 금고 안에는 귀중품이 들어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금고속에는 귀금속이나 금전, 채권 등이 들어있으므로 금고라 하는 것입니다. 사무실 금고에는 중요한 계약서나 소중한 자료 등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팔탄면사무소에 근무하면서 회계담당을 하게 되었는데 아주 오래된 금고가 하나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하였는데 어느 날 총무계장님께서 수첩 안쪽에 글씨를 보시면서 금고를 열어서 서류를 꺼내십니다. 그리고 두달 정도 지나자 회계담당인 저에게도 그 금고 다이얼 번호를 알려주시면서 서류를 꺼내라 하시고 다시 넣으라 하십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에 시간이 나기에 금고속을 상세히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문을 열고 서류와 내용물을 살펴보니 오늘날 이해하는 비밀문서, 을지연습 문서 등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오래전 폐기된 직인함, 기타 고무인 등이 있습니다. 내용물 확인이 끝나고 나서 금고의 내부시설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니 인간의 머리로 이해될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일본제 금고인 것 같습니다. 우선 다이얼이나 손잡이가 금색입니다. 바닥과 외벽에는 많이 녹슨 부분이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