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처삼촌 벌초하듯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교시절 처가를 멀리하던 사상과 세도정치에 신물이 났던바에서 생성된 말인가 생각합니다. 妻 三寸(처삼촌)의 묘를 벌초하는 사위가 흔하지 않을 것이지만 여건이 그래서 처삼촌 벌초를 한다면 지극정성으로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처삼촌이면 아내의 작은 아버지나 큰아버지이니 나이 20대후반에 알게 된 분이거나 이미 아내를 만나기 전에 돌아가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외할머니 떡도 커야 사먹는다'는 애교섞인 속담이 있습니다만 동시에 외삼촌 소에서 남겨 먹지 않으면 남길 곳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선 외할머니 떡도 가격이 맞아야 구매한다는 말입니다. 친인척으로부터 납품을 받는다 해도 정품이 완벽하게 오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는 사람이라 해도 납품이 제 때에 안되거나 품질이 떨어지면 언제라도 거래를 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안성맞춤이라는 말은 '안성유기맞춤'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과거 안성지역에서는 유기를 만드는 장인들이 많았습니다. 방자유기란 놋쇠와 합금을 두드려 얇게 펴고 이를 접시, 밥그릇, 국그릇 등 그릇을 말합니다. 한양의 사대부들이 딸을 시집 보낼때 안성 鍮器(유기)장인에게 필요한 만큼을 주문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거나 유치원 다닐때에 아내가 이것 저것 사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돈을 함부로 쓰면 안된다 하자 아들과 딸은 "엄마!!! 수협에 가면 누나, 언니가 돈을 줘!!!"했답니다. 아이들과 함께 수협에 가서 돈을 찾았는데 이를 본 애들이 은행에 가면 돈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돈을 벌어서 수협 통장에 넣어주어야 돈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 알려주었다 합니다. 아빠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가끔 아이들에게 5,000원씩을 주었고 아이스크림, 떡볶이 등을 사주었습니다. 모든 것을 엄마가 결정하고 사주고 먹여주므로 아빠는 밤늦게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 귀찮은 아저씨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그리했습니다. 이후 현금자동인출기(ATM = automated teller machine)보고 이용하면서 이런 기계를 집안에 한대 설치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돈을 달라하면 이 기계에서 꺼내 쓰도록 하면 되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려서 해외여행을 하면서 비행기를 탓습니다. 비행기에서는 식사, 간식, 음료등이 무료이므로 기분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KTX를 타고 부산을 가는 길에 두
강릉과 원주가 江原道(강원도), 충주와 청주가 忠淸道(충청도), 전주와 나주가 全羅道(전라도), 그리고 경주와 상주를 잇는 慶尙道(경상도)가 되었다. 경상북도 尙州郡(상주군) 공무원들이 상주가 되어 喪服(상복)을 입고 근무를 한다는 기사가 관심을 끌었다. 1965년 상주군 인구가 26만5천명이었는데 54년이 지난 2019년에 99,986명으로 10만선이 무너졌다. 그래서 상주군 공무원들이 인구 10만선을 지켜내자는 각오의 표현으로 상복을 입었다고 했다. 누구의 제안인지는 알 수 없다. 1978년 화성군청 소속 9급 공무원으로 비봉면에서 일했다. 추곡수매 담당자를 하였는데 그해 목표량이 18,532가마니였다. 산촌 2개 마을을 담당하였으므로 논비율이 적어서 목표량을 채우지 못했다. 부면장께서 '수매 담당자로서 자신의 목표량도 채우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어렵게 20가마니를 出荷(출하)독려를 하였지만 수분초과로 반품되었다. 그 벼를 2등급 가격으로 구매해서 건조하여 다음번 수매일에 검사를 받으니 3등급이 나왔다. 건조하니 18가마로 줄었다. 월급 50,000원의 2/3를 벼를 구매하고 말리는데 날렸다. 이번에는 부면장님, 재무계장님을 따라서 상주군으로 달려
아마도 초등 4학년경(1968)에 유치가 빠지고 새 치아가 나서 막 자리를 잡을 즈음에 앞니 하나가 부러졌습니다. 시골에는 당시 소 잔등에 새끼로 망을 엮는 구조물을 올려서 두엄(퇴비)를 실어날랐습니다. 과수원에 도착하면 그물망 아래에 끼워놓은 가느다란 막대기 2개를 동시에 빼줍니다. 균형을 잡아야 하기에 동시에 타이밍이 맞아야 합니다. 소잔등에 올려진 두엄은 막대를 빼는 순간 바다에서 어망아래 줄을 풀어 고기를 갑판에 풀어내듯 스르르 쏫아져 내립니다. 그런데 아저씨가 그 막대를 빼는 순간에 뒷편으로 지나가다가 그만 아저씨의 팔꿈치에 턱이 치이고 그 순간 입안에 작은 자갈같은 돌같은 물질이 느껴졌습니다. 이 한 개 부러진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은 더 흘러서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에 수원시에 소재한 어느 치과에 가서 반쪽 남은 것을 발치합니다. 아주 깊이 박힌 반토막 이발을 빼내느라 치과선생님이 보조자와 함께 고생을 하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초등 6학년 겨울방학에 서울 성동구 금호동 이모부님이 운영하시는 '시민치과'에 가서 당시 듣기로 '산브로찌'라는 치아를 보철합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6년을 다지고 공직 2년을 근무한 1979년 봄에 치아가 더 자라난
아주 오래된 벨트(혁대)를 매고 마트에 갔으므로 오늘은 반드시 이 고장난 골동품 벨트를 버리고 새것을 마련하겠다는 결심을 보이기 위해 매장에 들어가기 전에 벨트를 풀러서 쓰레기통 재활용함에 넣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안으로들어가 벨트를 골랐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아주 저렴한 벨트는 창구에서 계산을 하기 전에는 허리에 맬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부품을 풀어서 허리에 매고 나가다가 멈칫 풀어서 계산대에 올린다면 이는 절반 이상은 절도의 저의가 깔려있다고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벨트는 골랐지만 자구만 바지가 내려가려는 것을 잡고서 올리고 다시 내려가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이를 본 아내가 그것 하나를 얼른 계산하고 다시 들어오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2층 옷매장, 1층 식재료 매장을 1시간 정도 돌아다니고, 최근 사랑이빨을 뺀 따님의 부드러운 식단도 마련해야 하는 등 오늘 마트 쇼핑은 어느때보다 큰 의미가 있는 날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1시간 이상을 허리옷을 잡고 마트를 다닌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미 재활용함에 버린 약간 불량품 벨트를 다시 데려올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지요. 결국 아내의
1971년이면 북에서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목표로 침투하고 강원도 해안으로 수십 명이 들어와 온 나라가 술렁이던 시절이 한 3년 지난 후이다. 1968년 무장공비 청와대 침투 사건으로 예비군이 창설되고 여기저기 목진지라 해서 참호, 벙커, 근무초소 등이 설치되었으니 이를 통칭하여 당시에는 예비군 보초막이라 불렀다. 그래서 당시 초등학교 5학년 학생 4명은 예비군 아저씨들을 흉내 내게 되었다. 마침 학교에서 작업이 있어 키 만한 삽을 하나씩 들고 등교하였던 터라 하교시간에 누군가가 우리 모두 심심하니 참호를 하나 파자는 제안을 내놓았고 토론도 필요치 않았으니 신속히 작업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주 넓은 방공호(防空壕)가 만들어졌다. 아이들 6-7명이 들어서서도 불편하지 않을 구덩이가 생겨난 것이다. 이에 한 걸음 더 나가 주변의 나무를 베어 덮고 그 위에 다시 흙과 풀을 덮어 소위 위장까지 하고나니 재미가 더더욱 나는 것이다. 해서 옆으로 문을 내고 지붕위에는 낙엽을 뿌리는 등 완벽하게 위장한 소위 '비트'가 완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나가던 다른 학생들이 구경을 왔는데 친구중 한명을 놀려대자 이 학생이 우리가 작업해 설치한 비트의 나뭇가지를 불쑥 잡아
◈ 두 머리 동물의 최후 옛날에 한몸에 머리가 2개 달린 동물이 살았습니다. 어느날 왼쪽 머리가 잠시 조는 사이에 오른쪽 머리가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고 혼자서 먹었습니다. 왼쪽 머리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오른쪽 머리의 입가에 맛있는 음식을 먹은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왼쪽 머리는 크게 화가 나서 따져 물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를 깨워서 같이 먹어야지 너 혼자서 먹었느냐? 하지만 오른쪽 머리는 혼자서 참으로 맛있게 먹었다고 자랑을 하며 오히려 왼쪽 머리를 잠꾸러기라고 놀렸습니다. 화가 잔뜩 난 왼쪽 머리는 언젠가 복수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오른쪽 머리가 잠깐 조는 사이에 독초를 발견했습니다. 왼쪽 머리는 오른쪽 머리를 골탕 먹일 생각으로 평소에는 먹지 않던 그 독초를 많이 먹었습니다. 오직 오른쪽 머리를 아프게 하려는 생각에서 독초를 먹었는데 과하게 먹는 바람에 독초에 중독되어 결국 '두머리 동물'은 죽고 말았습니다. ◈ 외눈 원숭이와 두눈 원숭이 어느 섬마을에 눈 하나인 원숭이들이 살았습니다. 마을의 할아버지 원숭이, 할머니 원숭이, 아버지 원숭이, 아들딸 원숭이가 모두 외눈입니다. 그런데 두 눈 원숭이들이 배를 타고 이 섬 해안가
◈ 관사를 떠나는 아내의 편지 김ㅇㅇ 주무관님께 감사드립니다. 1년 동안 관사에 살면서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참으로 편하게 잘 살았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시청에서 물론 청소를 하시겠지만 제가 조금 이라도 짐을 덜기 위해서 김치 냉장고는 통 8개 다 씻어 깨끗이 말려서 정리 해 놓았고 혹시 냄새 날까봐 문도 열어 놓았습니다. 일반 냉장고는 1년 전에 사주셨던 것처럼 표시 안 나게 잘 정리하고 씻어 깨끗이 해 놓았습니다. 주부가 1년 동안 쓰던 냉장고인데 갈 때도 잘 정리 해 놓아야 될 것 같아서요. 뒷 베란다도 매일 같이 빨래하면서 잘 썼습니다. 그래서 물청소도 한번 대충하고 환기되게 문도 매일 매일 열어 놓았습니다. 습기 차서 매일 매일 열었다가 닫아야 합니다. 전 있는 동안 관사에 오면 제일 먼저 환기시킵니다. 주방 청소도 대충 해놓았습니다. 일일이 다 먼지 닦았습니다. 처음 제가 1년 동안 살 집처럼 환기가 되게 문도 다 열어 놓았습니다. 나무라 가끔 환기도 시켰어요. 이젠 물건이 없어서 다 열어 놓고 가요. 청소하시기 좋게 쓰던 락스나 퐁퐁 비누, 걸레, 유리 닦는 수건 등은 제 자리에 있습니다. 앞 베란다는 날씨도 춥고 운동 기구가 있어서 앞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春秋五覇(춘추오패)의 한 사람인 초나라 장왕의 리더십을 소개한다. 장왕은 신하들을 불러 연회를 베풀었다. 갑자기 광풍이 불어 연회장의 불이 모두 꺼지고 만다. 그 순간 한 신하가 춘심을 못 이겨 왕의 애첩을 농락하고 말았다. 애첩은 신하의 갓끈을 잡아 뜯고서는 범인을 색출해달라고 장왕에게 하소연했다. 하지만 장왕은 사사로운 일로 신하를 벌하면 안 됨을 익히 아는 현명함을 지녔기에, 연회에 참석한 모든 신하에게 다음과 같이 명했다. "오늘 이렇게 즐거운 연회자리에서 과인과 함께 술을 마시는데, 갓끈이 끊어지지 않은 이는 제대로 즐기지 않은 것으로 알겠소" 명에 따라 신하들은 모두 자신의 갓끈을 끊어버렸다. 이후 연회장에 불이 켜졌지만 신하들의 갓끈이 모두 잘린 상태였기에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었다. 몇 년 후, 초나라는 진나라와 전쟁을 하였다. 누구보다 앞장서 적을 격퇴하는 뛰어난 장수가 있었는데, 장왕이 그를 불러 죽음도 불사하고 용맹하게 싸운 연유를 물었다. 이에 장수는 과거 자신의 허물을 덮어준 장왕의 은혜에 보답한 것일 뿐이라고 답하였다. 이는 유명한 絶纓之會(절영지회)의 故事(고사)이다. 장왕이 눈앞의 애첩에만 정신
어느 분의 자살 기사를 보고 곧바로 포털사이트를 검색하였습니다. 출생 1960년 1월 10일-사망 2017년 10월10일. 자살했다는 기사가 올랐을 뿐인데 포털사이트 인적사항 담당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망 날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호적이나 주민등록이 아닌 포털의 인적사항 검색창인데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사에는 시간과 순서를 조정, 조절해야 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동네 의원의 名醫(명의)는 환자보다 환자를 모시고 온 분을 보고 진료 내용을 달리한다고 합니다. 며느리가 모시고 온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일주일치 처방을 한 후 푹 쉬시라 하고 딸이 모시고 온 친정 아버지와 친정어머니이면 3일치 약을 주고 다시 오시라 한다는 말입니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오늘 7일치 약타시고 내려가시도록 하는 닥터의 처방이고, 딸이 모시고 온 경우에는 3일간 딸 집에서 쉰 후에 다시 오셔서 진료를 받고 약을 타시라는 配慮(배려)라고 합니다. 딸 집이라도 일주일치 약 타고 그냥 머물기에는 사위 눈치가 보일 것이니 3일씩 나누어서 3일이라도 딸 집에 머무시도록 하자는 조처인 것입니다. 의사의 처방과 진료가 병을 낫게 하겠지만 동시에 딸 집에서 행복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