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의 언론담당관, 그리고 남양주시청, 오산시청, 동두천시청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한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원장이 언론 기고문 중 100개를 모아 편집한 본인의 세 번째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2020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42년간 재직한 공직자로 공보부서에서 1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언론에 기고했다.
또한 경기도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공직을 마감하면서 ‘언론사의 도움을 받은 바 크다’면서 신문사에 퇴임 인사를 다녀간 친 언론공무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임인사는 많이 오지만 퇴직자가 언론사를 방문한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뉴스폼에 게재하는 '이강석의 세상만사'는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토대로 스마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다.
요즘에는 경찰청장이라 부르는 1980년대 치안본부장 출신으로 제20대 경기도지사에 발령된 이해구 도지사. 1984년10월부터 1986년1월까지 경기도지사로 일했다. 1980년 9월에 도지사에 취임한 염보현 도지사도 치안본부장 출신이다. 당시에는 경찰이 내무부장관 소속의 기관이었으므로 치안본부장을 도지사로 발령했다. 이해구 도지사는 안성 출신이다. 제13대 김태경 도지사(1971년6월~1972년6월)가 평택출신으로 최초의 경기도 출신 도지사였고 두 번째로 이해구 도 출신 도지사가 취임한 것이다. 이어서 22대 임사빈 도지사와 25대 윤세달 도지사는 양주 출생이고 23대 이재창 도지사는 파주 출생이다. 이해구 도지사는 화합으로 영광경기, 책임으로 지역안정, 창의로 헌신봉사, 특성 있는 균형개발, 향토애로 문화창달이라는 도정 방침을 정했다. 치안책임자로 일하다가 도지사로 발령되었지만, 하위직 8급 공무원의 느낌에는 지방행정과 중앙행정에 능통한 인물로 보였다. 특히 월례조회에서의 훈시는 연설형태가 아니라 편안한 이웃집 아저씨와의 대화 같았다. 취임 초 월례조회에서 어떤 상황을 설명하다가 매우 구체적인 사례를 설명하였다. 행정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설명이 길어지면
1978년 봄, 공무원 365일 근무한 어느 날의 기억이다. 자그마한 체구의 엘리트 행정가인 손재식 도지사(1976년 10월~1980년 1월). 요즘도 재난 방송과 뉴스에 나오는 그 유명한 노랑 민방위복을 곱게 다려입는 손재식 도지사가 한해대책 현장 점검에 나섰다. 화성군청과 비봉면사무소에는 비상이 걸렸다. 양수기로 물을 퍼 올리는 장면을 보여 드려야 한단다. 화성시 매송면~비봉면~남양면~마도면~송산면~서신면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비봉면에서는 오전 양수작업을 중단했다. 하천의 모래를 파내고 건수가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도지사님이 오시면 힘차게 퍼 올리겠단다. 중고생을 동원해 양동이로 물을 날라 가뭄에 타 들어가는 못자리에 뿌렸다. 당시 정부는 논농사가 곧 ‘안보적 차원’에서 추진하는 ‘총성 없는 전쟁’이라 했다. 도지사가 우리 지역을 통과할 예정시간이 임박해지자 공무원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도청에서 도지사 차가 출발하면 오산에 있었던 화성군청으로 알려주고 군청 농산과에서는 면사무소로 연락하기로 했다. 면사무소 공무원이 부락당 1대뿐인 이장님집 교환전화를 통해 소식을 듣고 오토바이로 현장에 달려왔다. 당시에는 ‘삐삐’조차 없었다. 경기1가1000번(도지사) 차
경인지역 국민에게 참 좋은 신문 경기일보에 불초소생 부족한 사람이 여러 번 200자 원고지 5~6매의 ‘천자춘추’를 쓰고 있다. 전 직장에 근무할 때에는 아침에 출근하여 오늘 신문에 게재된 글을 스크랩하여 바인더북에 곱게 고이 간직하는 나름의 작은 행복을 누렸는데 직장에서 나와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다 보니 원본 신문을 곧바로 받아 볼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신문을 구하기 위해 수원시청을 방문한다. 나름 공직 42년간 근무했다고 언론에 자화자찬을 한 바이지만 막상 관공서에 가서 신문을 얻으려 하니 몸이 굳어진다. 수원시청 어느 과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나름 밝은 표정을 지은 후에 가볍게 목례를 하고 오늘자 신문을 구하러 왔다고 부탁했다. 하지만 오늘 자 신문이 없단다. 다시 1층에 자리한 복지과 사무실을 노크했다. 그리고 참으로 기분 좋은, 마음 풀리는 상황을 만났다. 주무관에게 신문을 청하자 즉시 과장석에 가서 찾아 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주시기에 나도 모르게 90도 가깝게 인사를 했다. 참으로 고마웠다. 두 번째 기고날에도 같은 사무실에 가서 이번에는 차석에게 신문을 청했다. 동시에 눈이 마주친 팀장님이 차석에게 과장님 옆자리에 있다며 얼른 드리라 말
1970년 초 서울이나 외지에 사는 친척에게 전화를 하려면 우체국에 가야 가능했다. 하루 4번 오가는 버스를 타거나 그냥 6km를 걸어가 우체국 교환식 전화기를 이용했다. 그런데 아랫동네 이장님 사랑채 사무실에 교환 전화기가 설치되었다. 아랫마을+윗마을에 1대의 전화기 쿠폰이 나왔다고 들었다. 이장님 집은 이제 행정의 현장이고 통신의 중심지가 되었다. 출향인사가 친척에게 전화를 하려면 우선 이장님을 통해야 한다. 전화를 받으신 이장님은 동네 확성기를 통해 알려준다. “아무개는 서울의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으니 이장 집으로 오기 바랍니다.” 방송을 들은 동생은 곧바로 이장님 댁으로 달려가고 잠시 기다리면 서울 사는 형과 통화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장님은 대변인이 되기도 한다. “아무개야!서울 형이 이번 주 일요일에 벌초를 하자고 한다.” 방송을 들은 동생은 더 이상 형에게 전화하지 않는다.일요일에 벌초를 가면 되는 일이다. 어느 날 이장님이 바뀌었다. 모든 서류와 비품은 인계되었지만 전화기는 넘겨줄 수가 없었다. 설치 당시에는 이장님 앞으로 나온 전화였지만 실제로는 개인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이장님댁에 방송시설은 그대로 두고 새로 되신 이장님 집에
역사시간에 배운 향약, 두레, 노동요 등은 힘을 합치고 일시에 노동력을 발휘하도록 한다는데 중점이 있다. 공사장에서 무거운 돌을 이동할 때 여러 명이 함께 ‘하나 둘 셋~!’하면서 힘을 모은다. 혼자서는 하루를 고생해도 안 될 일을 3명이 힘을 합치면 일거에 작업을 끝낼 수 있다. 창작이나 예술 분야에서는 혼자서 작업을 해 내지만 이 세상 대부분의 일들은 혼자보다는 여러 명이 힘을 합치면 쉽게 마무리할 수 있다. 그중에 가래질에 대한 어린 시절의 관찰기억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적은 힘을 들여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의 기회를 놓쳐 큰 힘을 들이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현대적 버전으로는‘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고 바꿔야 할 것이다. 호미는 손으로 잡고 밭고랑을 파고 농작물을 심는 개인 도구다. 가래는 최소 3인이 호흡을 맞추는 협동의 장비다. 가래질의 특징은 2인의 힘과 1인의 조율에 의해 흙을 깊게 파서 멀리 보내는 농업 인력 활용과 협업의 최고경지를 보여주는 조상들이 개발한 농기구다. 어린 시절 관심있게 본 가래질 과정을 보면 말하지 않아도 가래의 삽날을 땅에 대는 순간에 1번줄과 2번줄이
公職(공직)과 골프에서 잘 되려면 어깨의 힘을 빼라고 한다. 주말골퍼가 어깨 힘을 빼는데 3년이 걸린다고 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면 소금 3가마를 함께 먹어야 한다고 한다. 즉 3년을 함께해야 서로를 알게 된다고 한다. 공직은 세월이 갈수록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구조다. 그래서 신발가게 주인의 합리적 판매 전략을회고해 본다. 지금 그 상표가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1960년대 검정고무신의 상표 두 가지가 기억난다. 말표와 기차표다. 천리마처럼 천리길도 한걸음으로 시작하자는 의미라고 푼다. 기차처럼 쉼 없이 먼 길을 내달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제 신발을 사러 온 손님에게 가게 주인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자. 아들에게 신발을 신켜 본 엄마가 말한다. 엄마 : 신발이 조금 작은 것 같아요. 주인 : 이 신발은 부드러워서 잘 늘어납니다. 아빠 : 이 신발은 조금 커서 발이 빙빙 돌아갈 것 같군요. 주인 : 아이들 발이 금방 크므로 신발은 조금 큰듯해야 1년 후에도 편안하지요. 이는 마치 장터에서 만나는 창과 방패를 파는 장사꾼이다. 이 창은 세상에 못 뚫을 방패가 없지요. 그리고 이 방패는 세상에 못 막을 창이 없지요. 구경꾼이 말하기를 그럼 이 창으로 이 방
미국 영화에서 대통령의 멋진 활약상을 보여주는 액션은3번을 보아도 재미가 있다. 비행기에서 긴급 탈출하는 캡슐이 바다 한가운데 떨어지고 이를 구조하는 미 공군의 활약상도 멋지고 가족과 국가를 두고 고뇌하는 대통령과 측근 경호원의 멋진 액션은 볼수록 흥미롭고 닮고 싶은 일이다. 아직도 낭만스러운 영화보다는 비행기가 날고 군함이 함포사격을 하고 잠수함이 해저에서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영화가 재미있으니 마음은 젊은 것이라는 자부심도 가져본다. 미국의 부자(父子)대통령인 아버지 부시가 94세(2018)에 영면했다. 대통령 중 장수하신 부시 전 대통령의 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낸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 원’으로 텍사스 자택을 떠나 워싱턴DC 의사당 중앙홀로 옮겨졌다. 장남 조지W부시 전 대통령 내외 등 가족과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한 추모식에서 공화당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그는 위대한 애국자였다. 여기 위대한 남자가 누워 있다”고 추모했다. 인터넷 기사 중 일부다. 또 다른 기사가 생각났다. 2011년 5월3일자 신문을 보니 5월1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미국 수뇌부가 오사마 빈 라덴 작전 관련 상황보고를 받는 사진이 실렸다. 중앙에는 합동특수작전사령부 준장이 검고
그랬다! 경기일보사 유명 관심 코너인 ‘천자춘추’ 필진으로서 첫 번째 글로 ‘해관(解官)’이란 제목을 썼다. ‘지난해 말(2017년) 39년 8개월 공직을 마감하게 되었을 때 마음속 흔들림과 당혹함이 적지 않았는데 어느 날 새벽 1시에 잠에서 깨어나 손에 잡은 책이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목민심서(牧民心書)로 흔들림을 잡은 바 있다’고 했다. ‘관직이 교체되어도 놀라지 마라. 수령직은 교체됨이 있는 것이니 교체돼도 놀라지 않고 관직을 잃어도 연연하지 않으면 백성이 그를 존경할 것이다. 평소에 문서와 장부를 정리해 두어서 청렴하고 명백하게 하여 후환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지방행정 기관의 공무원에 대한 인사는 여건상 단기간에 진행됨이 현실이니 현재 공직에 몸담은 1962년생쯤 나이에서 다산 선생님의 해관을 생각하고 그 글을 읽으면서 공감해 봄 직하다 하겠다’고도 했다. 다음으로 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 현판을 살려낸 사건(?)에 대해 자랑을 하다가 경기일보 기자의 취재로 그 현판이 경기도청 행정박물관에 잘 보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가슴이 시리도록 행복했다. 2008년 토요일에 정문과 의회문의 문설주를 철거하는 현장에 가서 동판을 온전히 회수하
최근에 석좌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 건물 7층에 햄버거 가게가 성업 중이라고 한다.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햄버거를 주문한 젊은이들이 예약시각 햄버거 가게가 있는 7층 건물의 현관에 와서 7층에 있는 가게를 올려다보며 사인을 보내면 즉시 비닐 낙하산에 매단 햄버거가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이다. 건물 7층은 1층보다 임대료가 저렴해 업주에게 유리하고 젊은 손님들은 늘 1층에서 만나는 햄버거 가게보다 7층에서 비닐 낙하산에 매달아 던지는 햄버거를 받아먹는 이벤트 가게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25년 전에 이와 비슷한 아이템이 있었다. 1994년경 우리 부부 쌍둥이 남매가 4살이던 시절에 주공아파트4층에 살았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아내는 밀린 일을 보기 위해 외출하였고 아이들과 셋이 있는 상황에서“딸랑딸랑” 鐘을 흔드시는 두부장수가 오면 두부 한모를 사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만 집에 두고 밖에 나갔다 오기에는 걱정되고, 엄마 아빠 아무도 없으면 아이들이 놀랄 수 있다. 그래서 작은 아이디어를 냈다. 일단 두부장수 딸랑이가 들리면 베란다로 나가서 큰소리로 외친다. 사장님! 여기 두부 한 모 주세요. 사장님은 주변을 두리번 거리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고 두부 한모 달라
시작이 반이라고 등산화를 신는 것만으로도 운동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들은 바 있는데 새해가 되면 개인적 여건이 등산하기에 좋아질 수 있으니 자주 산에 오르리라 마음을 먹는다. 인생사 모든 일은 부족하고 어려운 여건에서 결정을 감행해야 의미가 있고 그 결과에서 큰 행복을 얻는다. 그래서 내일이라도 당장 등산을 가고 싶어진다. 등산로에서 700m 남았다고 이정표에서 확인했는데 평지보다 산에서는 더 멀게 느껴진다. 전문가 말씀이 산에서의 거리는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거리란다. 그러니 가파른 산등성이를 오르고 내려가는 것은 온전히 등산객이 감당할 몫인 것이다. 흔히 말하는 ‘걸어서 5분’은 지나친 주관적 표현이다. 어른과 아이에게 차이가 있는데 자신을 기준으로 말한다. 등산길은 그래서 짧은 거리는 멀게 느끼고, 먼 거리도 등산에 취하면 생각보다 가깝게 받아들인다. 골프장에서 T-샷을 하면 계곡이나 해저드 위를 날아가 안착하니 비거리는 200m 정도다. 하지만 골퍼는 카트를 타고 500m를 우회하여 쎄컨 샷을 하게 된다. 골퍼는 500m를 이동하지만 골프공은 지름길로 날아간 것이다. 하지만 골퍼의 맨탈은 계곡으로 빠질까, 물로 들어갈까 걱정하여 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