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의 음덕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세상사 잘되면 내탓, 안되면 조상탓을 한다고 한다. 점쟁이들은 복잡한 가계도속의 조상이 당신의 혈자리를 누르고 있다며 십만원짜리 부적을 베갯속에 넣어야 아픔이 있는 조상의 마음을 달래서 후손이 평안하다며 장사를 펼친다. 5대조 할아버지의 여동생중 시집을 못간 처녀귀신이 구천을 돌면서 후손들 중 될만한 집으로 스며들어 해코지를 한단다. 족보에도 나오지 않고 할아버지 할머지조차 모르는 조상을 후대가 모셔야 하는 상황이다.

 

 

점쟁이들의 업무영역은 넓다. 3대가 한집에 살지 않는 핵가족 시대에 5대조 할아버지, 할머니의 억울함이 남아서 후손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쟁이의 논리는 오늘날 자동차산업이나 IT분야 이상으로 개척하고 투자하고 발전시킬 영역이 더 넓어 보인다. 사실, 점집에 간 할머니는 점쟁이의 신통력에 크게 놀란다. 순서가 되어 방석의 깃을 잡고 긴장하여 앉은 할머니에게 젊은 처녀보살 점쟁이는 한마디 한다. 점보러 왔지! 과거에는 의사가 반말을 하는 것이 사회적 공감이었다면 이제는 점쟁이가 그 자리를 차지한 듯 보인다.

 

할머니는 점쟁이의 신통력에 감동하여 이후의 이야기를 앞질러서 술술 말한다. 아들 둘, 딸이 하나이고 남편은 술고래이고 시아버지 시어머니는 매일 싸우는 틈새에서 힘겹게 산다고 실토한다. 하지만 점쟁이는 절대로 살아있는 현직에게는 해코지 어휘를 날리지 않는다. 과거지사 조상을 들먹이면서 부적을 쓰거나 더 큰 행사를 해야한다 분위기를 끌어간다. 더큰 행사는 굿판을 말한다. 견적 4백~500만원.  

 

솔직히 60대 어머니가 점집에 온 이유는 60%이상이 아들딸 혼사문제다. 30에 결혼했으면 아들딸이 30대 결혼적령기인데 소식이 없으니 어찌해야 결혼을 시켜서 마음의 평온을 얻는가 물어보려 점집에 온 것이다. 그런 어머니에게 점쟁이의 점보러 왔다는 말은 정확하고 확실한 신뢰의 이유다. 이어서 점쟁이의 일갈이 이어진다. 몸에 큰 상처가 있군.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다. 피부의 상처, 몸속의 상처, 정신적 상처를 가지고 산다. 국민학교때 연필을 깍다가 손을 베인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다. 여기서 점쟁이는 큰 상처라고 말했다. 몇cm 내외의 상처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할머니는 상처가 있는 것을 맞춘 점쟁이가 용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한신뢰의 분위기로 이어진다. 결국 점집에 와서 자신의 걱정을 말하고 그에대한 처방을 들여면서 나름 힐링을 했다고 생각하고 오만원짜리 여러장을 쾌척하고 홀가분하게 점집을 나선다.

 

이제 그 점쟁이가 적극 활용하는 우리의 조상을 만나야 한다. 추석연휴를 맞았다. 제사상에 과일과 음식을 올린다. 어적, 육적, 봉적을 올리고 두부전, 육전을 올린다. 과일은 대추, 밤, 배, 사과 등이다. 대추는 씨앗이 1개이니 왕을 의미하고 밤은 3개가 알차게 결실을 맺으니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요 배와 사과의 씨앗은 이호예형병공이란다. 이외에도 감과 수박, 참외등 다양한 과일로 제상을 풍성하게 한다.

 

부락에서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당제사를 지낸다. 고향마을 뒷산 중턱에가면 네모난 집이 한채 있는데 이를 당집이라 불렀다. 삶지 않은 통돼지를 올려 제사를 지내고 고기를 동네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눴다. 김이박 다양한 성씨의 대표들이 제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다보니 말이 많아진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 등 알 수 없는 말로 젯상의 음식진열 방식으로 논쟁을 벌인다. 그러다가 가장 중요한 신주단지는 개가 물어가도 아무도 모른다. '사당차례 지내다가 신주단지는 개물려 보낸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논외로 하고 작은 일에 격론을 벌이는 지경을 이르는 말이다.

 

5일간의 추석 연휴이니 앞뒤로 하루씩 휴가를 내면 일주일 해외여행 가기에 충분하다. 조상님 제사를 지내기보다는 휴가를 즐기는 젊은이가 많다는 시대다. 그래서 조상의 의미와 명절의 이유를 생각해 본다. 공직중에도 시간을 내서 조상님 벌초와 시제에 열심히 참석했지만 문중 어르신들이 공직을 마치자 총무를 맏기셨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벌초에 오는 종원들에게 차비를 지급했다. 이전에는 점심을 제공했었다. 시제에 오시는 분들에게도 여비를 드렸다. 다른 집안에서 시집와 고생하는 며느리들에게는 두배를 지급하자 제안했지만 부결되었고 10년후쯤에 다시 시도할 생각이다.

 

조상님을 수호봉사하는 일은 벌초, 시제, 성묘다. 고향을 방문하는 경우에 선산에 들러 큰 절을 올린다. 점쟁이의 부적 이상으로 조상님의 음덕을 만나는 일이다. 부처님으로 말하면 가피를 받는 일이다. 종산 행사날에는 음식을 많이 준비한다. 점심으로 잘 먹고 음식을 포장에서 가가호호 들려보낸다. 소문을 내서 다음번 행사에 문중 종원들이 더 많이 참여하라는 메시지다.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 다른 가족에게도 조상의 존재, 문중의 소중함을 알리는 나름의 편지다.

 

젊은이들에게 조상의 존재를 알리고 가슴으로 인식해 달라는 바램의 전달이다. 아이들이 과일과 떡을 먹으면서 부모들이 오늘 벌초가 있었고 시제를 올렸음을 말하는 것을 듣고 자신의 존재에는 먼 윗대조부터의 조상이 있었음을 인식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다. 아이들은 눈앞의 엄마아빠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증조, 고조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존재를 알려하지 않고 궁금해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사실 18대 400년전 할아버지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 문중은 그 전체가 존재하지 않는 엄청난 일인데도 이시대 청년들은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는 듯 보인다.

 

돌아가신 조상이 후손에게 무슨 영향이 있을까 반문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처음본 사람에게 생일 정도를 묻고는 그가 살아온 인생을 말하고 살아갈 세상을 설명하는 점쟁이도 무슨 과학적 근거가 있을까. 조상은 우리를 이어준 분이니 팩트다. 점쟁이와는 다른 분이다. 확실히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주고 미래를 연결해준 조상이다. 대가족을 거부하고 효심이 흐려지며 조상의 존재를 회피하는 듯한 요즘세상 청년들에게 중추절을 맞아 조상의 의미를 화두로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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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