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숙대역 6번 출구로 나와서 좌측 골목에 유명 식당 남영돈이라는 고기집에 도착했습니다. 지난해까지 회의에 참석했던 분들의 모임입니다. 퇴직, 이직, 전출 등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참으로 맛집입니다. 저녁 6시까지 예약을 받는다 했습니다. 7시로 예약을 하면 영업시간에 손해를 본다는 논리인듯 보이는데 정말로 손님이 많습니다. 수원 매탄권선역에서 탑승하여 수원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여 금정역에서 갈아타고 사당을 지나 서울역 직전의 숙명여자대학교 역에서 하차하여 6번 출구로 나왔습니다. 그 길가에 구둣방이 있으므로 불쑥 들어가서 구두를 닦았습니다. 구둣방 사장님이 구두수선을 탓하기 시작합니다. ‘뒷축을 성의없이 붙였다, 바닥 본드칠이 미진하다’고 지적하십니다. 전문가들은 같은 계열의 전문가를 비판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나라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축구 해설을 들어보면 자신이 감독이고 선수이면 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선수교체에 잘못이 있다고 지적하고 선발 출전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교체선수가 들어가서 패스를 잘해 골을 넣으면 크게 칭찬하지 않습니다. 교체된 선수가 잘한 것인지 기존의 선수가 셋트풀레이를 잘한
인생사 세상일 모든 것들이 지나고 나면 윤회의 한 틀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만 지금 당장 자신이 겪고 있는 이 사건, 이 일이 힘이 듭니다. 인생사 일장춘몽, 남가일몽이라 했습니다. 봄날에 잠깐 졸아서 하늘 나라가서 신명나게 잘 살고 돌아와보니 잠깐의 졸음속 순간이었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그렇게 휙 하고 바람처럼 보이지도 않는 것이 어느 공간을 지나간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삼라만상이 생겨난 후 인간을 비롯하여 수많은 동물 생물이 이 세상에 나타났다가 다시 무기물로 사라지고 다시 유기물이 되어 생명체라 뽐내다가 어느 세월이 지나서는 사라지고 다시 그 자신으로 이어가기를 수억 수십억년을 지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인류중에 인간이 기억하는 인물은 예수, 석가, 모하메드, 공자, 맹자, 단군 등 몇분이 있습니다. 나머지 훌륭한 학자, 정치인, 교육자가 있었지만 모두 기억하지 못합니다. 음악으로 베토벤, 모짜르트, 그림은 피카고, 종합적인 미켈란젤로 등 중세와 그 이전에는 한사람이 그의 신격화되어 못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과거시험으로 글한수 잘 지어내면 장원, 차상 차하 참방을 받고 이호예형병공 여러 부서에 배치되었던 것입니다. 해서
방송도 그러하고 신문을 보면 언론사마다의 무게중심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거 어느 시대에는 국가정책 중 어려운 문제를 발표하는 경우마다 간첩단 사건을 그 앞에 보도하는 묘한 정무적 상황이 있었습니다. 반공이니 북풍이니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북한이 댐을 터트려 수몰작전을 펼칠 것이라면서 평화의 댐을 건설하는데 온 국민이 성금을 모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방송을 보면서 몇가지 방송의 강도에 대한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먼저, 제주도 남편 살해사건입니다. 배타고 시신을 버렸다고도 하고 가게에서 살인에 쓰인 도구를 구매하는 CCTV보도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다른 사건에 비해 크게 보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두번째는 베트남 아내를 폭행한 사건입니다. 2살 아들 앞에서 엄마를 폭행한 나쁜 아빠입니다. 참으로 발생하면 안 되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언론에 반복적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특히 종편방송이 그러합니다. 축구선수 출신 박항서 감독이 수년동안 이룩한 한-베트남간 우호의 분위기가 권투를 배운 나쁜 아빠의 아내, 엄마 폭행으로 인해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는 참으로 어렵고 분위기를 부수는 일은 쉽게 발생합니다. 안타까운 일
한 가지에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것으로 인한 생각의 겹침과 共鳴(공명)으로 인해서 나중에는 없던 사실이 진실처럼 생각되고 그래서 어떤 사건사고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遠因(원인)이 있고 原因(원인)도 있을 것입니다만 우리의 생각은 다원화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그 공명과 진동을 이겨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恐慌(공황)장애라는 것도 그러한 것 같고 고소공포증도 본인 스스로 만들어 낸 걱정꺼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무리 높아도 롯데타워 100층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는 것이 무섭지 않습니다. 비행기는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데 비행기 타는 것으로 고소공포증을 감당하지 못하여 해외여행을 못가거나 수개월을 배를 타고 영국에 가야할까요. 뚝딱 마음 먹기에 따라서 우리의 현실은 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힘든 상황을 이겨내겠다는 정신적인 다짐이 필요할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불편함도 해소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지금 처한 아픔보다 더 큰 사건을 감당해야 한다면 그 이전의 작은 일들은 쉽게 통과할 수 있는 작은 장애물 경기의 허들정도로 보일 수 있습니다. 뉴스를 보니 술에 취해 운전하다 큰 사고를 내고 집에서 술먹고
광교 호수공원에 다녀왔습니다. 1시간30분정도 산책을 하였습니다. 대략 거리는 13km라고 스마트폰 어풀이 알리고 있습니다만 대략 10km정도로 추정합니다. 여름에 가까워지면서 원천천 兩岸(양안)에는 억새와 갈대와 여러가지 야생초가 群落(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물속에는 작은 고기도 보이지만 큰 잉어가 철석거립니다. 그 물고기를 먹고자 다리가 긴 흰 새와 잿빛 물오리가 서성거립니다. 인공이 만들어준 야생의 삶의 현장입니다. 조물주는 이 땅에 생물과 무생물을 가져다 놓으시고 생물은 식물과 동물로 분류하시고 식물은 풀과 나무, 이끼 등 수생식물까지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동물은 땅속과 지표, 지상, 수생으로 구분하여 다양한 동물들이 먹이사슬을 형성하면서 循環(순환)과 還流(환류)와 輪廻(윤회)의 길을 만드셨습니다. 식물에서 동물, 연체동물에서 척추동물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식물에서 동물로 이동하는 진화의 과정은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만 동물 중에는 식물 생태계에 적응하면서 진화한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진흙속에 사는 동물은 시력이 퇴화하고 촉각이 높아진 듯 보입니다. 야생의 동물들은 청각으로 천적을 피하며 생존했습니다. 후각으로 먹이
자료를 검색해 보니 차관정치란 한말에 일제의 조선통감이 임명한 각부 일본인 차관이 대한제국의 실권을 장악하고 직접 집행하던 정치라고 설명한다. 즉, 1904년의 제1차 한일협약 이후, 조선에서 이른바 ‘고문정치(顧問政治)’를 행하며 재정 ·외교문제 등에 내정간섭을 해온 일제는 1907년 7월 ‘헤이그특사사건’을 구실로 한일신협약(정미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고 조선통감부는 입법 ·사법 ·행정 전반에 걸쳐 조선의 통치권을 전담하였다고 한다. 차관정치가 시행됨에 따라 대한제국 정부의 중요한 관직에는 모두 일본인이 임용되어, 모든 관청에는 일본인 관리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정부의 각부에는 1~2명의 차관이 있다. 장관을 보좌하고 소관의 공무원을 지휘하는 자리다. 아마도 2차관제를 두는 이유는 행정내부의 공무원으로 임명하는 1차관과 달리 외부인사를 채용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는 역도선수 출신의 장미란 차관이 근무중이다. 평생의 직업공무원이 아닌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차관으로 임명하여 새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사실 지방자치제 이후에 광역과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원하는 인사를 임명하기위해 이른바 외부전문가를
▩ 이 새벽의 사람들 이른 아침 새벽에 일어나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맙게도 이 시각에 부처님 앞에 108번, 3번 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드립니다. 머리를 조아리고 깊은 숨을 몰아 쉬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절을 합니다. 나무서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나무서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나무 시아본사(南無 是我本師) 서가모니불(釋迦牟尼佛) 서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서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우리들의 본사 서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매일 아침 절을 올리는 중생이 흔하지 않을 것인 줄 알기에 더더욱 감사드립니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평온하게 절할 수 있게 加被(가피)를 내려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연말까지 이어간다면 5년을 기록합니다. 1년도 긴 세월이고 5년은 더더욱 깊은 시간의 흐름입니다. 절을 하면서 왼발과 오른쪽 발등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몸은 그대로 영혼이 시키는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겠습니다. 몸은 내가 근육으로 움직이는 듯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영혼이 근육을 운동시키는 것 같습니다. 절을 해야 한다는 의지는 다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출발한다는 말입니다. 몸은 그저 시키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번뇌는 머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부서를 떠나는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다가 조직을 떠나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다시 읽어보니 가슴이 뭉클합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일이니 안타까움이 큽니다. 하지만 지난날에 적어올린 글을 다시 꺼내어 읽을 수 있으니 행복이 배가됩니다. 아마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게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적어둔 들을 꺼내어 첨삭하고 수정하다보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기에 행복합니다. 작업의 시간동안은 시공을 초월하여 과거의 멋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기에 즐겁습니다. 글을 쓰는 즐거움, 자신의 글을 마음대로 수정하는 키보드 손맛이 있습니다. 나의 생각이 손가락과 연결된 키보드를 통해 화면에 글자로 나타나고 이를 마무리하면 활자가 종이에 찍혀 나올 것이라는 기분좋은 과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소중한 오전시간을 할애하여 글쓰기와 수정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성원해 주시는 모든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1번째 책을 마무리하면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2021년 9월 30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강석의 방에서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
▩ 빠진 원고가 더 있을 것 같지만 퇴색한 노트와 공무원 수첩 갈피에서 가끔 발견되는 낙서와도 같은 글들을 모아 1개의 파일로 정리하고 나니 어린 시절 초등학생들이 가을 들판에 떨어진 이삭을 모은 것이 벼 10가마니는 족히 된다며 보람을 느끼게 해주셨던 선생님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노트에서 플로피디스크로 정리하고 근무부서를 옮길 때마다 늘 복사해서 다시 하드디스크에 넣고 디스켓을 흰 봉투에 담아 탄탄한 상자속에 보관했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이제는 파일이 지워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조금은 덜게 된 것이 큰 기쁨입니다. 걱정을 덜어주신 도움 주신 모든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작은 책을 끝까지 읽어줄 사람은 몇 분 안 되겠지만 그래도 표지와 목차까지만 보아 주시면 저에게는 아주 큰 행복입니다. 처음에는 제목을 ‘말 많은 소년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만 마지막에 ‘말많던 그 소년은 어디로 갔나’로 변경했습니다. 비봉중학교 다닐때의 노트를 보면서 그 시절이 있었지 생각하였고 수성고등학교 ’야생초‘일원으로 선배들과 함께 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30년, 고졸 그해 공직에 들어 온지도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
어린시절 아버지 슬하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부재중이라는 말인데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들리는 말이라고 했다. 이야기는 어느 시골에서 돈을 빌린 아버지와 그 아들이 함께 있는데 돈을 빌려준 사람이 오는 것이다. 돈을 갚기 싫었던 아버지는 급히 다락으로 숨으면서 아들에게 말했다. 저 아저씨가 와서 아버지를 찾거든 “부재중”이라고 말해라. 잠시후 도착한 전주(錢主)는 아이만 있으므로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아버지는 어디에 가셨느냐? 네, 아버지는 부재중이십니다. 돈 받을 사람이 집에 없다고 생각한 전주는 그냥 돌아가려다가 어린아이가 문자를 쓰는 것이 대견하여 또다시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너는 부재중이라는 말의 의미를 아느냐?” “네, 압니다. 부재중이라는 말은 아버지가 빚쟁이를 피해서 다락장에 숨었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소년의 아버지는 다락장에서 내려와 아들앞에서 큰 망신을 당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눈다. 말로 대화를 하고 글로 말하며 손으로 의사를 소통한다. 영어로 “바디랭기쥐”라는 말이 있듯이 몸으로도 말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상대편에게 한 의사표현이 100% 전달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