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정치#차관행정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자료를 검색해 보니 차관정치란 한말에 일제의 조선통감이 임명한 각부 일본인 차관이 대한제국의 실권을 장악하고 직접 집행하던 정치라고 설명한다. 즉, 1904년의 제1차 한일협약 이후, 조선에서 이른바 ‘고문정치(顧問政治)’를 행하며 재정 ·외교문제 등에 내정간섭을 해온 일제는 1907년 7월 ‘헤이그특사사건’을 구실로 한일신협약(정미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고 조선통감부는 입법 ·사법 ·행정 전반에 걸쳐 조선의 통치권을 전담하였다고 한다.

 

 

차관정치가 시행됨에 따라 대한제국 정부의 중요한 관직에는 모두 일본인이 임용되어, 모든 관청에는 일본인 관리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정부의 각부에는 1~2명의 차관이 있다. 장관을 보좌하고 소관의 공무원을 지휘하는 자리다. 아마도 2차관제를 두는 이유는 행정내부의 공무원으로 임명하는 1차관과 달리 외부인사를 채용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는 역도선수 출신의 장미란 차관이 근무중이다. 평생의 직업공무원이 아닌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차관으로 임명하여 새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사실 지방자치제 이후에 광역과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원하는 인사를 임명하기위해 이른바 외부전문가를 들인다는 명분으로 다수의 어공(어쩌다 공무원)을 행정조직 안에 들이고 있다. 선거전 엽관제의 기능을 하는 바이지만 효율성에 대해서는 늘 늘공(늘상 공무원)의 비판무대에 올라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규정에 의한 정원외 어공을 채용한다면 늘공이 불평할 일이 아니지만 지방자치 초기부터 늘공의 자리를 꾸준히 잠식해 왔으니 그 불평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아시는 바와같이 경기도청의 경우에도 1부지사는 행정안전부라인의 정부인사, 2부지사는 자체 어공이 임명되고 있고, 정무, 평화, 경제 등으로 불리는 3부지사는 대부분 외부인사가 임명된다. 지인중에 특별하게도 행정고시, 늘공출신으로 경제, 행정2, 행정1부지사로 3부지사 자리에서 일하고 행정안전부 차관으로 근무한 인사도 있다.

 

경기도청과 도내 시군청에는 비공식 차관이 많이 있다. 도청은 사무관 팀장과 주사, 주사보, 서기 등 7~8명으로 구성된 과거의 계단위 조직이 있는데 사무관 다음으로 선임 6급을 통상 ‘차관’이라고 부른다. ‘차기에는 사무관’의 준말이라 스스로 해명, 변호하는 바이다. 공직에 근무할 때 차석급이었지만 1년 선임의 6급이 있는 팀에 있다보니 ‘3석주사’로 장기근속하고 마무리 6개월간 ‘차석’이되어 차관호칭을 들었다.

 

1990년경 경기도청 서무과 6급 차석과 7급 주무관이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에 있는 내무부(행정안전부)에 출장갔다. 당시에는 광화문청사와 과천청사에 대부분의 중앙부처 공무원이 근무했다. 점심시간이 임박한 11:50분경에 만원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공무원과 민원인이 가득한 만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7급이 속삭였다.

“차관님! 이쪽으로 오세요!”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7급이 6급을 배려하여 한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엘리베이터 안의 공무원들이 한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느 부처 차관인지는 모르지만 높은 공무원이니 불편을 덜어주겠다는 본능적인 몸짓이었다고 평한다. 요즘에는 기대하기 어려운 당시의 공무원 DNA의 조건반사이다.

 

3·1빌딩을 다 보고도 반값으로 15원만(층당 관람료 1원으로 사기를 당함) 내고 시골마을로 돌아왔노라 자랑하더라는 이야기가 신식 조크로 먹히던 시절의 이야기와 같은 고사성어이지만 얼마전 경기도지방행정동우회의 여주 세종대왕릉 방문시에 건강한 모습으로 오신 ‘그 당시의 그차관님’을 뵈었고 그래서 글 소재를 얻었다.

 

어느부서 어느기관이든 차관, 차장, 차석, 부사장, 부시장, 부군수는 할 일이 많다. 위아래로 치인다고 한다. 동시에 중간자로서 소통의 교통망이기도 하다. 사통팔달하는 도로처럼 기관장과 조직사이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발빠르게 연결하는 소통의 주체가 되기를 바란다.

 

경기도청의 종합청사 차관사건으로 인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느해에는 행정안전부에서 공문서가 왔단다. 시도에서는 7급 차석을 차관으로 호칭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차관 호칭 금지를 공신문서로 보냈다면 조금 서글픈 일이다. 정부조직법에 의한 차관은 아니지만 6급, 7급으로 팀을 이끌고 상하좌우 소통하는 진정한 “우리의 차관”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