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뭉게구름이 하늘을 장식하였는데 오후에 이르러 하늘에 구름과 태양이 遭遇(조우)하여 가을 날씨를 연출한 가운데 소나기가 잠시 내렸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일기현상입니다. 이런 기상을 보면 여우가 시집을 간다고 했습니다. 호랑이가 시집을 간다고도 했습니다. 아주 번잡스러운 일이겠지요. 하늘은 맑은데 뭉게구름만 지나가는데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는 소나기가 내린다는 말입니다. 부천-서울-수원-안산으로 이어지는 길에서도 비가 내렸을 것입니다. 부천을 출발한 비가 서울 교대역으로 갔고 수원에서 떠난 전철이 교대역에 도착하였는데 소나기가 내렸을 것이고 안산을 출발한 전철도 구로를 거쳐서 교대역으로 환승할 즈음에 소나기를 만났을 것입니다. 엄청난 천둥, 번개, 낙뢰 등 수많은 스토리가 전개되었습니다. 구름은 양전기와 정전기가 만나서 충돌하고 결합하면서 양쪽에 머금은 구름에서 수증기가 뭉쳐지면서 땅위로 떨어지니 이를 비가 온다하고 따스한 겨울날에는 높은 곳에서 비행기가 구름을 흔들어 눈이 내리고 진눈깨비가 오기도 하고 눈이 녹아 빗물이 되어 땅에 흐리기도 한다 했습니다. 어떤 물이든 눈이든 우박이든 기상상황에서 발생하는 수준의 기체, 고체, 액체상태의 어떤 흐름은 기상상
어제는 토요일로서 테크노파크 과학축전이 열리는 날이라서 부부가 안산에 갔습니다. 행사장을 재미있게 구경하고 일행들과 구내식당에서 5,000원짜리 중고생들이 좋아하는 갈비탕에 쏘시지가 곁들여진 점심을 잘 먹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시간이 좀 있으니 시화호 방조제를 가보자 했습니다. 넓고 시원하고 탁 트인 바다를 보는 것도 일상에서 탈출하여 새로운 세상을 보는 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시화호 방조제를 절반쯤 달렸을때 불현듯 충남의 어느 장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차 네비게이션을 바꾸니 그 노선은 수원 집으로 가는 길에 봉담으로 내려가서 평택을 달려 충남으로 가는 국도 41입니다. 전에는 고속도로인 줄 생각하면 서 달렸던 길인데 다시보니 국도입니다. 국도가 고속도로급으로 업데이트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애초에 목표한 현장에 당도하였지만 오늘은 일을 볼 수 없었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생각하다가 내려오던 길에 본 마곡사라는 교통표지판이 생각나서 부부는 일단 네비게이션에 의지하여 마곡사까지의 거리와 방향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좀 거리는 있지만 수원을 향해 가는 길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부터 차에 지도를 한권 두고자 합니다.
여주에 소재한 신륵사는 고려 말 우왕 5년(1379) 각신(覺信)·각주(覺珠) 스님에 의해 중창되었고, 세종 22년(1440)에 중수했다고 하는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로 지정된 지금의 극락보전은 정조 21년(1797)부터 3년에 걸쳐 완공한 건물이라고 한다. 2018년 10월 27일 토요일에 이강석 최경화 부부가 두 손을 잡고 이곳 신륵사를 찾았습니다. 오전 11:55분 집을 출발하여 영동 고속도로에 진입하였는데 강원도로 향하는 차량이 가득하고 용인에서 고속도로를 하차하여 광주, 이천을 거쳐서 우회하여 여주에 이르러 세종대왕께 우선 인사를 드리기 위해 얼핏 보이는 '세종대왕릉역'을 왕릉으로 착각하고 갔다가 다시 네비게이션을 고쳐서 12km를 달려 세종대왕릉 관리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박물관급은 아니지만 세종대왕 관련 자료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양령대군, 효령대군, 그리고 세종대왕이신 충령대군에 대한 설명문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종대왕릉은 보수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1시간30분 걸리는 왕복 도보관람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난해 병우회 모임에서 다녀온바 있고 해서 그냥 산쪽으로 바라보고 마음속으로 인사만 드린 후에 차를 돌려 여주
108배를 하면서 불교방송을 보니 커다란 바위에 마애불이 새겨지고 그 옆에 사찰이 자리하고 있는 이른바 자연친화적인 배치를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바위를 옮긴 것은 아닌 듯 보이고 멋진 바위 옆에 절을 지은 듯 보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사도 바위를 옮기지 못하니 그 근처에 건물을 짓듯이 내가 안 되면 스스로 다가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기준이 아니라 세상의 보편적인 모습이 중심이 된다는 말이고 그래서 중용이 중요하다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할 때 나보다 키가 크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말합니다만 당신의 키가 몇cm인지, 당신의 체중이 몇kg인지, 몇 살인지는 절대 말하지 않으면서 자신과 상대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천정이 낮아서 구부정하게 서 있는 걸리버 여행기의 거인에게 바른 자세를 강조하기 보다는 더 넓은 공간으로 나가서 꼿꼿하게 서서 움직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늘 나의 기준에 주변을 맞추려고 합니다. 물론 내 나이나 상황에 맞게 행동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최근 김형석교수님의 글을 보면서 몇 가지는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는 공직에 근무하면서 늘 나보다 더 실력있는 사람이 이 자리에서
비봉노인대학 강의 비봉면 자안1리 208번지에서 태어나 청룡초등학교와 비봉중학교를 졸업한 이강석입니다. 비봉면의 여러 어르신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수개월전에 안희창 노인대학장님이 오늘의 강연을 예약하셨습니다. 수개월동안 여러 어르신을 뵙고 드릴 말씀에 대해 매일매일 생각하면서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10가지 소재를 가지고 어르신들게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10가지 소재는 주변의 자연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제가 평생을 공무원으로 근무한 바이어서 특별한 이야기보다는 삶속의 일상적인 스토리를 전해 드리려 합니다. 우선 어르신들게 꽃다발을 한아름 드립니다. 꽃은 늘 아름답고 향기롭고 주변에 희망과 기쁨을 줍니다. 받는 사람도 즐겁고 주는 이도 행복한 것이 선물이고 그중에서도 꽃은 선물하기에 참으로 편안합니다. 우리 비봉면에는 비봉초등학교, 청룡초등학교가 있고 과거에 유포리에 분교가 있었습니다. 대부분 초등학교를 다니셨을까요. 1906년에 보통학교가 세워졌다하고 1926년에는 심상학교, 그리고 1941년부터 국민학교라 불렀는데 1996년에 이를 초등학교로 개칭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에 아이들에게 국민학교라고 말하면 이내 초등학교라고 대꾸를 합니다. 워드프
음식은 어우러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기내식이 맛있는 이유는 음식의 양이 적고 포크도 귀엽고 식판도 좁아서 그런 것일까 생각도 해 봅니다. 전문가들이 공장에서 만들어낸 음식이고 비행기타고 7,000m 고공에서 밥을 먹는다는 낭만 때문에 그 맛이 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냥 자리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승객들로서는 시간은 맞지 않아도 음식을 주면 행복한 마음에 포크를 들게 됩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음식도 궁합이 있습니다. 서로 어우러짐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 같이 먹으면 안 되는 음식도 있습니다. 생닭의 뼈는 강아지가 먹어도 좋겠지만 삶은 닭의 뼈는 위험하다고 합니다. 닭의 뼈를 푹 삶아내면 더 단단해지고 뽀족하게 쪼개지므로 가축에게 먹이면 크게 나쁘다고 합니다. 게그맨 주병진씨가 대·중·소 강아지 3마리를 반려견으로 함께하는데 생닭을 주기에 주변에 확인한 결과입니다. 저의 지식이 조금 부족했습니다. 생닭은 좋고 삶은 닭은 강아지, 개에게 위험하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들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주방을 살펴보니 시원한 해장국과 인삼물이 끓고 있습니다. 해장국에 밥말아 먹고 인삼달인 물로 목을 추기면 이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역사는 기록을 통해 이어진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후대에 전해지지 않습니다. 기록이 없으니 전설이라고 합니다. 구전으로 전해 온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수천의 입으로 전해진 역사보다 그 근거가 되는 비석, 금석문, 묘지, 성곽이 얼마나 확실한 역사입니까.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참으로 좋은 생각을 머리가득 담았다 해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상상과 생각은 잠시 머물뿐 남아있지 않으니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사그라지는 연기 같은 것입니다. 기록하지 않은 생각은 혼자만의 상상의 그림이었던 것입니다. 남아있지 않으니 후대의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과학자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두었을 것이고 그중에 아주 일부가 현실에 나타나고 인류를 위해 쓰이고 있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일에도 인간의 생각이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생각을 즉시 바로 기록으로 남기고 전에 있었던 일들은 자료로 관리해서 후대에 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행위중 중요한 일이 책을 쓰는 일입니다. 과거에는 종이가 귀해서 한두권에 적어서 자자손손 전했지만 요즘에는 인쇄술이 발달하고 종이의 질이
조금 서둘러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서울 관악산 자운암에 가기로 합니다. 며칠전부터 아내가 인터넷을 찾아서 자운암 가는 길을 걱정하기에 일단 관악산 자운암 인근까지는 네비가 가는 것이고 가서 암자를 찾는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말했습니다. 수원을 출발하여 의왕-과천-사당에서 우회전하여 관악역으로 가는 긴 터널을 지나 U턴하고 돌고 돌아 서울대학교 정문으로 들어섯습니다. 구비구비 관악산 자락에 자리한 서울대학교 구내를 들어갔습니다. 1978년 78025-13251번 방송통신대학을 다닌 곳입니다. 이후에 동국대학교가 협력학교로 지정되었고 전문과정을 마친후 학사과정은 인천 인하대학교를 다녔습니다. 방송대, 서울대, 동국대, 인하대, 경기대를 다녔고 지금은 효인성대학원 휴학생입니다. 네비는 자운암 인근까지 안내한 후 할일을 다했다며 나가버리고 가을경치 풍성한 고갯길에 차를 세우고 이리저리 자운암을 찾다가 고개를 넘어가면 등산로가 있을 것이라 보고 500m를 걸어갔습니다. 드디어 등산로 입구를 찾았고 가을 낙엽을 밟으면서 산길, 돌길을 차분히 올라갔습니다. 가면서 등산객 3명한데 길을 물었습니다. 마지막 등산객이 확신에 찬 답을 주기에 좌측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어제 저녁에 지인의 출판기념회에 다녀왔습니다. 분기에 한번정도 만나는 분입니다. 공직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저자는 소통의 리더십으로 살아온 삶을 역사적 인물과 현장을 연결해서 참으로 무게감있게 정리한 책을 내셨습니다. 드림은 '다른이에게 전함'이라는 말 이상의 큰 뜻이 담긴 용어이고 또 다른 드림은 꿈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꿈을 이룩하는데 나 혼자 나만을 위해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베풀고 전함으로써 그와 나의 꿈이 함께 이룩된다는 의미로도 이해되었습니다. 책 제목이 "드림으로 드림하라"입니다. 평생을 봉사의 정신으로 살아오신 분이니 늘 마음속에 다른 이를 향한 봉사와 희생의 화두가 담겨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주변에 참 좋은 분들이 함께하십니다. 출판기념회에서 나온 워딩 그대로 “경향각지(京鄕各地)”에서 오신 선배, 후배, 동료, 지인들이 1층과 2층의 자리를 채우고 함께 박수를 보내고 같이 공감하면서 자칫 무미건조할까 걱정하신 사회자의 저자와의 대화시간이 오히려 재미를 더하는 멋진 '북콘서트'장이 되었음을 즐겁게 기록하는 바입니다. 부부가 나와서 흔쾌히 참석자의 나이에 맞는 선곡으로 윤시내 가수의 노래로 축가를 부르고, 남편은 목이 불편하여
마곡사의 대웅전 가운데 기둥의 재질이 싸리나무라고 합니다. 소나무중 금강송이 대략 300년동안 자란다고 하는데 이 싸리나무는 요즘의 나무와 비교해 본다면 200년 넘게 살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구나 요즘 싸리나무는 대략 여건이 좋은 곳에서 지금 10cm정도면 더이상 크지 않는 이른바 '떨기나무'인듯 보이는데 500년, 700년전에는 이처럼 지금이 1m넘게 잘 자랐던가 봅니다. 사실 사방사업에 쓰이는 수종으로는 아카시아, 싸리나무, 오리나무 등이 있습니다. 사방사업이란 산의 흙이 밀려내려오는 것을 막는 나무심기 작업으로서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산이 온통 붉은 산으로 황폐화되어가자 정부가 산림녹화 5개년계획을 여러번 추진하여 오늘날 푸른 강토를 이룩한 것입니다. 그런데 초기에 사방사업을 하면서 황무지에서 생명력을 발휘하였던 아카시아를 심었는데 이 나무들이 최근에 돌아보면 모두 사라졌습니다. 왕성한 생명력이 50년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시골 고향마을 앞산에도 이 아카시아 나무가 번창했습니다만 불과 40년만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남은 나무들은 잎파리에 힘이 없고 병들어 있습니다. 애국가에 나오는 소나무가 1,000년을 이어왔는데 요즘 힘들어 합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