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운산 자운암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조금 서둘러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서울 관악산 자운암에 가기로 합니다. 며칠전부터 아내가 인터넷을 찾아서 자운암 가는 길을 걱정하기에 일단 관악산 자운암 인근까지는 네비가 가는 것이고 가서 암자를 찾는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말했습니다.

 

수원을 출발하여 의왕-과천-사당에서 우회전하여 관악역으로 가는 긴 터널을 지나 U턴하고 돌고 돌아 서울대학교 정문으로 들어섯습니다.

 

 

구비구비 관악산 자락에 자리한 서울대학교 구내를 들어갔습니다. 1978년 78025-13251번 방송통신대학을 다닌 곳입니다. 이후에 동국대학교가 협력학교로 지정되었고 전문과정을 마친후 학사과정은 인천 인하대학교를 다녔습니다. 방송대, 서울대, 동국대, 인하대, 경기대를 다녔고 지금은 효인성대학원 휴학생입니다.

 

네비는 자운암 인근까지 안내한 후 할일을 다했다며 나가버리고 가을경치 풍성한 고갯길에 차를 세우고 이리저리 자운암을 찾다가 고개를 넘어가면 등산로가 있을 것이라 보고 500m를 걸어갔습니다.

 

드디어 등산로 입구를 찾았고 가을 낙엽을 밟으면서 산길, 돌길을 차분히 올라갔습니다. 가면서 등산객 3명한데 길을 물었습니다. 마지막 등산객이 확신에 찬 답을 주기에 좌측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좁은 길입니다. 서유기의 삼장법사가 걸어갔을 서역길처럼 좁습니다. 자갈과 바위와 가을 낙엽이 가득한 길인데 인적이 보이는 듯 합니다만 거의 다니지는 않을 것 같은 그런 애매모호한 길입니다.

 

그래도 길을 재촉하니 연등이 보입니다. 자운암이라는 글씨는 없고 스님께서 중생들의 길을 안내하기 위해 전기불도 없는 해지난 연등을 들고와서 5개정도 매달아 길을 안내합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그리고 다시 가파른 바위길을 오르고 돌고 가다보니 마지만 연등을 만났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순간에 산속에 자리한 건물의 지붕이 보입니다. 반가웠습니다. 구도의 길을 걸어온 듯 보람도 있습니다. 아내의 손을 잡고 부축하면서 어럽게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인생도 삶도 이런 길인가 생각했습니다.

 

자운암에 도착하니 5개 작은 건물이 보입니다. 고찰입니다. 그리고 대웅전은 좁고 작습니다. 부처님이 작은 몸으로 중생을 맞이하십니다. 우선 미륵불에 가서 인사를 했습니다. 1400년대 무학대사가 창건했다고 합니다.

 

이 미륵불을 조각한 장인은 이 깊고 높은 산속에서 수년동안 수양을 하면서 망치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 쪼개져 나간 돌가루는 산을 내려와 강물을 타고 서해안으로 가서 어느 물고기의 먹이와 함께 들어가 다시 동해바다를 돌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윤회설에 대한 나름의 생각입니다.

 

산신각으로 가서 절을 올렸습니다. 108번 절하면서 이 서울 한복판 관악산에서 절을 할 수 있게 해주신 부처님께 감사한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고 돌아 내려보면 산 아래에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301호실이 보입니다. 사찰에서 스님은 뵙지 못하고 학생을 만나 길을 물으니 오른쪽으로 가면 평탄한 길이 있다 알려줍니다.

 

고맙다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와 10여분을 걸으니 서울대학교 건물 옆으로 내려옵니다. 올라갈때의 험란한 길에 비하면 내려가는 길은 참으로 평온했습니다.

이 또한 부처님의 뜻인가 생각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중생들에게 어려운 길을 먼저 안내한 후 그 길에서 구도의 길을 찾도록 하고 내려오는 길은 평온한 곳으로 바꿔주시는 것 같습니다.

 

다시 올라온 길을 되집어 내려갔다면 많이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나 부처님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올라가는 길은 조금 어렵게 하시고 내려가는 길은 평온하게 제공하시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라는 생각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차를 몰아 양재동 꽃시장으로 갔습니다. 20km안쪽에 소재하였으므로 서울교통 치고는 막힘없이 도착하여 주차하고 강원도 푸드 행사장에서 녹두전, 감자전으로 점심을 먹고 아이들 준다고 전 2개를 사고, 산삼 한뿌리 5천원주고 먹었습니다. 황태포를 사고 더덕도 한 봉지 구매했습니다.

 

이번에는 결혼 33주년 꽃바구니를 만들기 위해 지하에 있는 꽃매장으로 갔습니다. 보통 35,000원, 50,000원인데 기존에 만들어진 꽃바구니에 다른 꽃 몇송이를 보강해서 그냥 35,000원에 구입했습니다.

 

결혼 33주년, 이강석 최경화라는 리본을 달아서 차에 싣고 이번에는 군포시 옷매장으로 달렸습니다. 군포 또한 낮시간이라 막히지 않고 도착했습니다. 매장은 수많은 건물속 어디엔가 있나 봅니다. 금방 간판이 보이지 않습니다.

 

전화를 해서 확인하여 보니 토일은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형 매장들이 전통시장을 위해 매달 2일씩 휴업을 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아내와 현아가 인터넷으로 찾아낸 값싸고 예쁜 옷이 많은 매장이라는데 그래서 토일에는 문을 닫아야 하는 의무가 있나 생각했습니다. 서서 음료수를 마시는데 맥주배달 트럭이 자리를 곧 떠날 것인가 묻기에 얼론 양보하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의왕시에 이르러서 봉담 아울렛이 생각나서 봉담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싱싱 달려가서 주차한 후 차안에서 감연시와 물을 먹고 화장실을 다녀와서 이러저리 매장을 돌았습니다.

 

생각보다 가격이 높습니다. 이 작은 옷한웅큼이 저리도 비쌀까 생각했습니다. 봉담에서는 얻은 것 없이 오산쪽으로 차를 달려서 영통방면에서 수원으로 향한 후 수원터미널 NC매장으로 갔습니다. 평상복 바지를 하나 사고 운동복 바지를 하나 더 구매했습니다.

 

아내의 옷을 사기위해 나선 길이 신랑의 바지를 사는 것으로 마감되었습니다. 인터넷 서핑과도 같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뉴스를 보려다가 어느 한가지 정보에 빠져서 엉뚱한 곳에서 인터넷구매를 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과거에는 자신만의 사색으로 수많은 글과 시를 만들어 냈는데 요즘에는 자의식보다는 다른 매체에 이끌려 다니므로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이른바 아노미 현상에 빠지게 되거나 나아가서는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은 인터넷 정보에 빠져서 허우적댑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일상이 그러하다고 합니다. 자신이 주체가 되기 보다는 다른이들이 만들어낸 뉴스에 동참하고 자신의 판단보다는 다른 이가 임의로 만들어 결정한 결론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심할 일입니다. 댓글에 사람이 놀라고 고통받는 시대이니 말입니다.

 

모르는 이의 글 때문에 아이돌 가수가 고통을 받는 시대입니다. 나는 안되니까 잘되는 너를 아프게 하는 댓글을 마구 올리는 것이고 그것에 상처받고 아파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터미널 E마트에서 장을 보고 호4개를 사면서 한개를 종이컵에 담아 맛있게 먹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아파트 토요장에서 옷을 팔고 있고 절하기에 좋은 바지를 하나 더 사달라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이 바지를 입고 절을 하지 다리에 힘이 절로나서 싱싱싱 신나게 108배+3배를 올렸습니다. 하루의 여정을 여기에 소개합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