桑田碧海(상전벽해)란 뽕나무밭이 바다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1960년대에 시골 마을 산기슭에는 뽕나무를 심었습니다. 누에고치가 완성되면 뜨거운 물에 삶아서 외국에 수출하던 시절입니다. 누에고치는 누에가 4잠을 자고나서 몸속의 진액을 비단실로 뽑아내어 자신의 羽化(우화)를 준비하는 방을 만듭니다. 이를 우리는 누에고치라 하는데 통으로 삶아서 수출하였다 합니다. 더러 가정에서 고치를 끓는 물에 넣어 첫 번 가닥을 잡아내어 비단실을 뽑아내기도 하였습니다. 비단천을 만드는 실이 나옵니다. 한 번에 몇 개의 고치실을 잡아당겨서 돌돌 말아내면 비단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제조 기술이 부족하였으므로 고치를 통으로 출하를 하고 정부가 수매하여 외국에 수출하여 달러를 벌어와 석유를 사다가 산업발전에 투입했다고 들었습니다. 누에는 일시적으로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는 농사입니다. 그래서 시골 마을 아낙네들의 손길이 많은 집에서 누에를 쳤습니다. 기른다 말하지 않고 누에를 친다 했습니다. 누에씨 1장에는 수 천마리의 씨누에가 있습니다. 이를 받아다가 뽕잎을 잘게 썰어 먹였습니다. 한잠을 자고 뽕잎을 먹고 두 잠을 자고 뽕잎을 먹었습니다. 네 잠을 자고 나서는 엄청
요즘 젊은이들은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돌리며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는 빨래방을 갑니다만 시골 아낙들의 대화방은 빨래터였습니다. 이런저런 빨래를 가득 머리에 이고 와서 빨래를 합니다. 아기가 똥을 싼 기저기는 맨 아래로 내려가서 우선 휘휘 지어 걸러내고 애벌 빨래를 한 후에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서 비누칠을 한 후 다시 문질러 줍니다. 그 아랫마을 아낙들은 내려오는 시냇물이 청정수인양 빨래를 했습니다. 당시 시골 하천 주변에는 풀과 나뭇가지, 자갈, 모래등이 있어서 자연적인 정화작용이 가능했습니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상하수도관으로는 불가능한 정화과정을 자연은 아주 당연스럽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한 마을 아래로 내려가면 하천은 다시 새로운 개천으로 탄생하곤 하였던 것입니다. 당시의 아낙들은 빨래를 할 때 양잿물 비누를 썻습니다. 양잿물이란 화공약품인데 이를 물에 끓인 후에 쌀겨를 넣어서 응고시킨 것입니다. 이를 맨손으로 잡아서 빨래에 문지르니 그 손이 거칠어지고 심한 경우 손바닥에 구멍이 날 정도입니다. 그래도 밭일로 논일로 단련이 된 손이라서 웬만한 양잿물 비누는 견뎌내는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더러는 손바닥을 보이시는데 양잿물로 손바닥은 닳았고 손등은
땅을 놀리는 것은 농부의 도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논뚝에도 콩을 심었습니다. 논 뚝에 콩을 심으면 꿩이 와서 파먹으므로 싹이 날 때까지 꿩을 쫓기 위해 허수아비를 세웠습니다. ‘허수아비의 아들’은 ‘허수’라는 조크가 크게 통하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꿩이나 새들도 시골 할아버지가 대충 만든 허수아비에 놀라서 논두렁 밭두렁에 심은 콩을 꺼내어 먹는데 어느 정도 부담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는 독수리 모양의 연을 날려도 새들은 가짜임을 다 알아차리고 농작물을 쪼아먹습니다. 요즘 농부들이 더 이상 독수리를 키우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아차린 모양새입니다. 그 시절에는 논두렁에 콩을 심었습니다. 푸른 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콩이 파랑 주머니를 달고 익어갈 무렵에 동네 아이들은 논두렁 근처에 불을 지피고 콩튀기 놀이를 합니다. 불 위에 파랑 콩을 익혀서 알콩을 꺼내먹는 것입니다. 알콩달콩하다는 말이 여기에도 어울릴 것입니다. 그 맛이 참 좋았습니다. 살짝 익은 콩은 흰 밥 위에 올려진 그 콩맛을 내기에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입가는 물론 콧구멍까지 검정으로 물들었습니다. 검은 재 속에서 익어가는 콩을 주워서 껍질을 까고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
나는 항구라 하였는데 너는 이별이라 하였다 나는 물메기와 낙지와 전어를 좋아한다 하였는데 너는 폭설과 소주와 수평선을 좋아한다 하였다 나는 부캉,이라 말했는데 너는 부강이라 발음했다 부캉이든 부강이든 그냥 좋아서 북항, 한자로 적어 본다, 北港, 처음에 나는 왠지 北이라는 글자에 끌렸다 인생한테 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로든지 쾌히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맹서를 저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신하기 좋은 북항, 불꺼진 삼십 촉 알전구처럼 포구에 어선과 여객선을 골고루 슬어놓은 북항, 이 해안도시는 따뜻해서 싫어 싫어야 돌아누운 북항, 탕아의 눈밑의 그늘 같은 북항, 겨울이 파도에 입을 대면 칼날처럼 얼음이 해변의 허리에 백여 빛날 것 같아서 북항, 하면 아직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편이 있을 것만 같아서 나를 버린 것은 너였으나 내가 울기 전에 나를 위해 뱃고동이 대신 울어준 북항, 나는 서러워져서 그리운 곳을 북항이라 하였는데 너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하였다 안도현 시인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석·박사) 졸업,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등 저서『서울
신혼부부에게서 깨가 쏟아진다고 하고 참기름 냄새가 난다고도 합니다. 정말로 농부로서는 참깨 수확하는 행복은 신혼부부의 사랑과 견줄만하다 해서 깨가 쏟아진다는 말을 붙인 것 같습니다. 우선 참깨는 팔각모양의 사찰 탑처럼 생긴 씨방에 8줄 깨알이 한 줄로 늘어섭니다. 한여름에 참깨밭에 15줄기씩을 베어 묶어서 세워 말려둔 참깨를 수확하러 갑니다. 행정용어로는 小束立乾(소속입건)입니다. 작은 단으로 묶어서 세워 말린다는 말입니다. 잘 마르면 할머니는 검은 천과 부지깽이 막대를 가져갑니다. 세워둔 참깨 묶음 바로 옆에 검은 천을 펼치고 두 손으로 정숙 보행하여 묶음을 이동시켜 검은 천 안에 안착시켜 줍니다. 그리고 나서야 묶음을 거꾸로 들고 준비한 부지깽이로 톡톡 건드려줍니다. 한여름 태양열에 바싹하게 마른 씨방안의 흰 깨알들이 소르륵 쏟아져 나옵니다. 농부의 수확의 기쁨이란 이런 것입니다. 신혼부부의 행복입니다. 들깨는 회생의 동그란 씨앗입니다. 참기름은 고소하고 들기름은 향긋합니다. 들깨는 자라면서 깻잎을 제공합니다. 삼겹살에 싸 먹는 쌈 중에 깻잎은 들깨잎입니다. 참깨잎은 타원형인데 작기도 하거니와 거칠어서 쌈으로 먹지 않습니다. 특히 참깨잎은 장어나 삼겹살을
상가 꼭대기에서 아파트 쪽으로 이어진 여러 줄의 전선 끝에 반달이 쉼표처럼 걸려 있다 꽁지가 긴 새들과 초저녁별 두어 개도 새초롬하게 전깃줄 위에 앉아 있다 돌아오는 이들을 위해 하늘에다 마련한 한 소절의 악보 손가락 길게 저어 흔들면 쪼르르 몰려나와 익숙한 가락을 몇 번이고 되풀이할 것 같은 노래 한 도막을 누가 어두워지는 하늘에 걸어 놓았을까 이제 그만 일터의 문을 나와 한 사람의 여자로 돌아오라고 누군가의 아빠로 돌아오라고 새들이 꽁지를 까닥거리며 음표를 건너가고 있다 도종완 시인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충남대 문학박사,1984 동인지《분단시대》를 통해 작품 활동 시작,시집 『접시꽃 당신』,『접시꽃 당신2』,『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당신은 누구십니까』,『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부드러운 직선』,『슬픔의 뿌리』,『해인으로 가는 길』,『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등,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그대 가슴에 뜨는 나뭇잎 배』,『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모과』,『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동화집 『바다유리』 『나무야 안녕』 등,신동엽 창작상,
냉장고의 냉동칸과 냉장박스에 들어가면 "모든 식품이 영구히 안전하다"는 타성에 젖은 우리는 음식을 만들어서 그릇에 담아 냉장칸에 넣고 하루, 이틀, 사흘동안 꺼내어 먹고 다시 넣고 다시 꺼내는 셔틀냉장을 이어갑니다. 어느집 냉동칸은 음식을 담은 비닐이 흰 벽을 구성하고 있기도 합니다. 식재료마다, 음식과 반찬마다에는 나름의 유효기간이 있을 것인데 우리는 그냥 냉장에 넣으면 보름은 가고 냉동에 넣으면 다시 한해가 바뀌어 그날이 다시와도 탱탱 얼어있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위생당국에서는 유효기간과 유통기간을 정하고 단속을 합니다만 이는 편의점 등 오픈된 장소에서는 수시로 행해지는 행정지도단속이지만 정작 식품을 만드는 큰 공장에서의 위생에 대해서 편의점만큼 알뜰하게 관리하는가에 대한 확신은 부족하다 봅니다. 대형공장에서 제조일자, 유통기한, 유효기간의 일자를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 부위에 흐릇하게 찍어내어 마트, 편의점 등에 공급하고 소비자들은 그 날짜를 확인하면서 작은 두뇌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유통기한 만료일이 임박한 제품은 진열대 앞에 놓고 조금 여유있는 물건은 뒷편의 꺼내기 어려운 곳에 전시합니다. 이에 소비자들은 일단 구매할 제품을 정하면 앞부분의
시골동네에서 양조장 집 딸 다음으로 패션을 리드하는 2·8청춘 처자는 방앗간 집 딸입니다. 양조장 집 딸은 부모님이 돈이 많으니 풍족하게 패션을 꾸밀 수 있는 것이고 방앗간 집 딸은 나름의 용돈 전략이 있습니다. 방앗간 집 딸은 친구와 함께 2인1조로 삭대를 이용한 쌀 수집을 합니다. 삭대란 장성의 지휘봉을 예리한 칼로 아랫부분을 대각선으로 내리친 결과물로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손에 잡고 있으면 점 없는 느낌표입니다. 끝부분을 곡식이 든 가마니를 찌르면 소량이 흘러내립니다. 아버지가 낮술을 하시고 주무실 때에 허리에 찬 방앗간 쇳대를 잠시 빌리는 것입니다. 친구와 함께 방앗간을 열고 들어가면 어제 오늘 방아를 찧어서 쌓아둔 쌀 포대가 가득합니다. 삭대로 쌀과 보리 등 곡식의 포장망을 찔러서 내용물을 조금씩 꺼냅니다. 주인집 딸은 삭대를 찌르고 그녀의 친구는 삼태기를 들고 따라가면서 쌀을 받는 것입니다. 30분 동안 300번을 찌르면 쌀 2말이 나옵니다. 쌀 2말을 자루에 담아서 동네 쌀가게에 가져가면 큰 돈을 내어 줍니다. 이 돈으로 읍내에 나가서 삼원색 원색이 들어간 원피스를 살 수 있습니다. 너풀거리는 원피스 자락을 흔들면서 온 동네를 청소합니다. 아랫동
술은 알콜입니다. 시골에서 직접 만드는 술은 3가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동동주, 막걸리, 곡주로 만드는 소주입니다. 우선은 密酒(밀주) 중에 동동주입니다. 술을 담그는데 필요한 재료는 쌀, 수수, 누룩, 항아리입니다. 우선 꼬두밥이라고 시루에 쌀을 올리고 무쇠솥에 올린 후 시루와 솥의 테두리를 쌀가루 떡으로 봉합을 합니다. 솥단지 안에서 끓어오르는 수증기압력이 옆으로 새지 않고 시루 아래 뚫린 구멍을 통해서 올라가 쌀을 익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쌀이 잘 쪄지면 넓은 멍석 위에 펼친 후 누룩가루를 뿌려 줍니다. 밥쌀 알에 누룩가루가 고르게 묻힌 후에 항아리에 넣습니다. 항아리는 조금 전에 불붙은 창호지를 넣어서 그 열기로 소독을 하였습니다. 항아리에 남아있는 다른 균을 제거하고 잡귀를 내보내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항아리안에 들어온 누룩밥은 오로지 누룩이 가지고 있는 효소에 의해 술로 익어갈 것입니다. 누룩은 통밀을 갈아서 물에 반죽하여 메주 크기로 만든 후에 생으로 베어온 쑥으로 감싸줍니다. 일주일쯤 지나면 발효되어 누룩곰팡이가 생성됩니다. 이 누룩곰팡이가 가득한 누룩의 푸른 곰팡이 가루는 빗자루로 쓸어내고 누룩속에 들어있는 곰팡이로 술을 빗는 것입
카인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도심으로 손돌바람 몰아치자 전선줄은 일제히 발정 난 암고양이 울음 토해냈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누군가를 흘긋흘긋 훔쳐보며 좀비 영화의 엑스트라처럼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하나 둘 불이 켜지고 있는 베스트실버요양병원 고양이 한 마리 음식물 쓰레기통 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가시 덮인 청미래넝쿨 숲을 뚫고 흙먼지 날리는 황토길 달려 왔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짙은 어둠을 밀어 내고 빛을 모았다 크로노스가 작곡했다는 쉼표도 없는 악보 속에서 난이도가 높은 음계 따라 파도를 타며 살아 왔다 아다지오와 안단테가 표시되지 않은 악보 속에서 보이지 않는 오아시스를 찾아 거친 사막을 가로질러 가야만 했다 삶을 끌고 가던 주파수가 끊겼다 이어지고 다시 끊긴다 희미해지는 전파채널을 잡으려 양쪽 귀와 꼬리를 곧추 세워본다 음파가 멈춘 난청지대에서 안테나를 조절하며 주파수를 찾고 있지만 이제는 잡음조차 들리지 않는 침묵이다 무뎌진 발톱 보듬고 허공 향해 앞발 치켜들며 휘젓는 늙은 고양이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 비틀거리며 걷는다 길 옆, 폐휴지 가득 실은 낡은 리어카 가로수에 몸 지탱하고 있다. 정겸 시인 1957년 경기 화성출생(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