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동네 빨래터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요즘 젊은이들은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돌리며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는 빨래방을 갑니다만 시골 아낙들의 대화방은 빨래터였습니다. 이런저런 빨래를 가득 머리에 이고 와서 빨래를 합니다.

 

아기가 똥을 싼 기저기는 맨 아래로 내려가서 우선 휘휘 지어 걸러내고 애벌 빨래를 한 후에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서 비누칠을 한 후 다시 문질러 줍니다.

 

그 아랫마을 아낙들은 내려오는 시냇물이 청정수인양 빨래를 했습니다. 당시 시골 하천 주변에는 풀과 나뭇가지, 자갈, 모래등이 있어서 자연적인 정화작용이 가능했습니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상하수도관으로는 불가능한 정화과정을 자연은 아주 당연스럽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한 마을 아래로 내려가면 하천은 다시 새로운 개천으로 탄생하곤 하였던 것입니다.

 

당시의 아낙들은 빨래를 할 때 양잿물 비누를 썻습니다. 양잿물이란 화공약품인데 이를 물에 끓인 후에 쌀겨를 넣어서 응고시킨 것입니다. 이를 맨손으로 잡아서 빨래에 문지르니 그 손이 거칠어지고 심한 경우 손바닥에 구멍이 날 정도입니다.

 

그래도 밭일로 논일로 단련이 된 손이라서 웬만한 양잿물 비누는 견뎌내는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더러는 손바닥을 보이시는데 양잿물로 손바닥은 닳았고 손등은 논과 밭의 흙으로 인해 거칠어졌습니다.

 

거친 손은 ‘동동구르무’로 조금 부드럽게 합니다. 화장품 장사가 두말들이 나무통에서 주걱으로 퍼 주는 기름덩이입니다. 아이들은 겨울에 손이 트면 소죽에 쌀겨를 함께 끓인 물에 담갔습니다. 그 물기가 터진 피부를 치유하고 손결을 부드럽게 했습니다.

 

빨래의 맛은 두드림입니다. 당시 농담으로 마누라는 삼일에 한 번 두드려야 한다 하고, 신랑을 때리는 심정으로 남편 해장국 끓일 북어를 패준다고도 했습니다.

 

전날에 과음 만취로 돌아와 밤새 이 앓는 소리를 한 남편의 숙취를 풀어주기 위해 북어국을 끓입니다. 속썩이는 남편을 때리는 심정으로 북어를 代打(대타)하는 것입니다.

 

무명옷 속에 들어있는 때를 발래 방망이로 펑펑 두드려 빼냈습니다. 그 박자가 잘 맞아야 재미가 있습니다. 2~3명이 동시에 두드리면 작은 음악회가 열리는 것 같습니다.

 

빨래는 각자의 일이고 입담 좋은 어머니가 동네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새로 시집온 며느리 칭찬을 하기도 하고 아기 낳은 스토리, 송아지 키우는 이야기 등 뉴스를 만나게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손바닥 안에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만 당시의 어머니들은 빨래터라는 공간에서 동네 뉴스, 근동의 소식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혼 10년차이면 뉴스의 앵커가 될 수 있지만 시집온지 2~3년으로는 뉴스 진행에 끼어들지 못합니다.

 

그냥 TV앞 시청자처럼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를 듣고 보고 기억할 뿐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10년차가 되면 저 빨래터 뉴스앵커의 자리에 자신이 앉게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신입일수록 초졸, 중졸이 많았습니다. 1980년경에 고졸 며느리가 들어왔습니다. 윗집의 며느리가 ‘산까치’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산까치야 산까치야 어디서 날아오니. 이런 노래를 부른 심 아무개집 며느리가 지금 70세가 넘었습니다.

 

 

근래에 그 빨래터가 있던 개울가를 바라보니 그냥 작은 하천입니다. 지금까지 머릿속에 기억하는 그 하천은 없어졌나 봅니다. 그 빨래터 상류에서 가재를 잡았는데 농약이 들어온 이후 1급수 생명체는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 공간에서 물 막기 시합을 하고 물장구치고 놀았는데 지금 바라보니 그런 공간은 사라졌습니다. 혹시 상상의 공간이었던 것인가.

 

꿈을 꾼 것인가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10살 전후의 DB를 돌려보니 이곳에 빨래터가 있었고 빨래하는 분이 없을 때에는 아이들의 놀이터였습니다.

 

어려서 넓었던 동네가 나이들어 바라보니 작아진 것과 같은 비율로 빨래터의 크기가 축소된 것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미니어처가 되어버린 어린 시절의 빨래터에 더 작은 아이가 되어 들어가 뛰놀고 싶습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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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