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항

안도현

 

나는 항구라 하였는데 너는 이별이라 하였다

나는 물메기와 낙지와 전어를 좋아한다 하였는데

너는 폭설과 소주와 수평선을 좋아한다 하였다

나는 부캉,이라 말했는데 너는 부강이라 발음했다

부캉이든 부강이든 그냥 좋아서 북항,

한자로 적어 본다, 北港, 처음에 나는 왠지 北이라는

글자에 끌렸다 인생한테 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로든지 쾌히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든 맹서를 저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신하기 좋은 북항,

불꺼진 삼십 촉 알전구처럼

포구에 어선과 여객선을 골고루 슬어놓은 북항,

이 해안도시는 따뜻해서 싫어 싫어야 돌아누운 북항,

탕아의 눈밑의 그늘 같은 북항,

겨울이 파도에 입을 대면 칼날처럼 얼음이

해변의 허리에 백여 빛날 것 같아서

북항, 하면 아직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편이

있을 것만 같아서 나를 버린 것은 너였으나

내가 울기 전에 나를 위해 뱃고동이 대신 울어준

북항, 나는 서러워져서 그리운 곳을 북항이라

하였는데 너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하였다

 

 


안도현 시인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석·박사) 졸업,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등 저서『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연어』, 『관계』,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 등 다수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윤동주 문학상 등 다수 수상


 

 

-시작메모-

 

항구의 이미지는 독자, 그리고 상황과 환경에 따라 각자 생각하고 연상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만남과 이별이 공존하는 동시에 복합성, 복잡성, 다양성이 점철되어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게 하는 풍부한 시적 감각을 품게 하기 때문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북항이라는 말은 부산항이나 인천항, 목포항 등 항만구역이 넓은 경우 어떤 특별한 의미나 전설, 사연이 없음에도 그 지역의 방향적 감각에 따라 편하게 지어진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항이라는 말은 왠지 모르게 쓸쓸함과 외로운 정서가 가슴속으로 번져가며 뭉클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것은 어쩌면 항구라는 이미지가 이별이라는 상징성과 서정성이 부각되어 가슴 아픈 추억으로 반추되는 인자로 승화되기 때문이다. 북항이라는 시어는 생성과정과 시인의 환경적 마음에 어떠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지 시를 읽는 순간 알 수 있다. 특히 항구의 이미지를 시 속으로 끌어 들여 낭만적 정서를 혼재시키며 독자로 하여금 또 다른 세상을 생각하게 하는 어떤 마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능숙함과 조용함이 시속에서 용해되는 순간 독자는 본인만의 항구를 가슴속에 만들어 가며 아름다운 추억 혹은 슬픈 추억 등 끝없는 상상의 날개를 펼쳐가며 갈매기 울음 가득한 어느 항구를 기억 할 것이다.

정겸​(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