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방앗간집 딸의 패션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시골동네에서 양조장 집 딸 다음으로 패션을 리드하는 2·8청춘 처자는 방앗간 집 딸입니다. 양조장 집 딸은 부모님이 돈이 많으니 풍족하게 패션을 꾸밀 수 있는 것이고 방앗간 집 딸은 나름의 용돈 전략이 있습니다.

 

방앗간 집 딸은 친구와 함께 2인1조로 삭대를 이용한 쌀 수집을 합니다. 삭대란 장성의 지휘봉을 예리한 칼로 아랫부분을 대각선으로 내리친 결과물로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손에 잡고 있으면 점 없는 느낌표입니다. 끝부분을 곡식이 든 가마니를 찌르면 소량이 흘러내립니다. 아버지가 낮술을 하시고 주무실 때에 허리에 찬 방앗간 쇳대를 잠시 빌리는 것입니다.

 

친구와 함께 방앗간을 열고 들어가면 어제 오늘 방아를 찧어서 쌓아둔 쌀 포대가 가득합니다. 삭대로 쌀과 보리 등 곡식의 포장망을 찔러서 내용물을 조금씩 꺼냅니다.

 

주인집 딸은 삭대를 찌르고 그녀의 친구는 삼태기를 들고 따라가면서 쌀을 받는 것입니다. 30분 동안 300번을 찌르면 쌀 2말이 나옵니다.

 

쌀 2말을 자루에 담아서 동네 쌀가게에 가져가면 큰 돈을 내어 줍니다. 이 돈으로 읍내에 나가서 삼원색 원색이 들어간 원피스를 살 수 있습니다. 너풀거리는 원피스 자락을 흔들면서 온 동네를 청소합니다.

 

아랫동네에 가설극장 영화가 들어오면 역시 방앗간에 가서 쌀 3되를 뽑아 들고 쌀가게에 가서 돈을 받아 표를 삽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추첨을 통해 플라스틱 바가지를 받습니다.

 

 

이 또한 방앗간 집 딸들에게 주어지는 특혜이기도 했지만 방앗간은 한 집 뿐이고 일반농의 딸들은 부엌 쌀 항아리에서 3되 정도 쌀을 퍼담아 팔아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훔쳐낸 쌀이니 헐값으로 저가로 흥정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당시 시골에서는 쌀장사로 한 자본 잡은 사례가 많습니다. 개미군단이 물어오는 쌀을 모아 창고에 보관했다가 한 달에 한 번 ‘쓰리꼬따’ ¾톤 트럭에 실어냈습니다.

 

그런데 쌀을 주고 돈을 받으면 쌀을 삿다고 하고 돈을 주고 쌀을 받으면 쌀을 팔았다고 했습니다. 누군가의 설명은 농경사회에서 쌀을 거래하는 것을 금기시하였으므로 쌀, 보리 등 곡식의 거래에는 반어법을 쓴 것이라 합니다.

 

어려서 어른들 이야기 중에 쌀을 팔고 산다는 말이 현실과 달라서 큰 혼란이 있었습니다. 대화의 내용으로는 쌀을 내어주고 돈을 받은 것 같은데 쌀을 삿왔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동네 방앗간은 모두 사라지고 정부에서 운영하는 대형 방앗간이 그 역할을 합니다. 현대식 搗精(도정)시설은 어디로 벼가 들어가고 어느 부분에서 쌀이 나오는지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니 도정 공장 아들은 삭대가 있어도 쌀을 빼내지 못할 것이니 이제는 사장님 아버지로부터 월급을 받고 용돈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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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