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모든 이들이 아침을 시작하는 면도와 샤워를 하는 곳이고 여성도 하루 중 긴 시간을 보내는 장소이며 저녁의 피로를 푸는 휴식의 장이다. 뜨거운 물도 있고 찬물도 있고 섞으면 미지근한 물도 만을 수 있는 곳이다. 마른 수건이 있는가 하면 젖은 수건도 있으며 아주 여유롭게 자신의 전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볼 수 있는 개인의 공간이기도 하다.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개인데 따라 다를 것이지만 우선 면도를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면도날이 여러 개 여유가 있다면 문제가 아니겠지만 하나뿐인 면도날이 무디어 지면 걱정이 앞선다. 하루 더 무딘 면도날로 면도를 하겠지만 산골에 사는 경우라면 먼저 사용했던 것을 골라서 조금 나은 것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무디어진 면도날은 피부를 벌겋게 하거나 원하는 대로 말끔히 면도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불편을 받아들이는 입장은 두가지 측면이 있다. 면도날이 떨어져서 볼이 아픈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새 면도날이 여러 개 있지만 쓰던 것을 한 번 더 사용해서 피부가 따가운 것은 참을만한 일이다. 또, 요즘같이 쌀쌀한 날씨에는 목욕탕 안에서 잠시 망설임을 갖게 된다. 온수가 나오지 않기 때문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사촌은 가까운 親戚(친척)인데도 재산이 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상한다는 말이다. 나보다 사촌의 땅이 적었는데 땅을 사서 자신보다 많게 되면 배가 아플 것이요 나는 땅이 없는데 재산 많은 사촌이 땅을 늘렸으니 속이 상할 일이다. 그런데 공무원은 좀 다르다. 다른 사람이 일을 하면 즐겁다. 그 자료를 활용할 수 있으니 기분 좋은 일이다. 특출나게 잘한 일은 업무의 모델로 삼을 수 있으므로 더더욱 좋은 일이다. 요즘 경기도청에서는 모범적인 업무 모델을 여러 부서에 전파시키는 인터넷이 있다. 업무 노하우라는 것인데 행정만화 소개, 혼돈하기 쉬운 단어, 지식, 신문사설 모음집, 공무원 직급별 행정경비 등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공무원의 1시간당 행정경비, 보수, 차량비, 사무실 운영비, 공공요금으로 계산한 것인데 장관에게 들어가는 1시간 비용은 11만원, 차관 8만1천원, 부지사 4만원, 실장 3만6천원, 국장 2만6천원이다. 시군청 과장은 1만5천원, 7급 공무원은 1만원이다.<2000년 기준> 신문사설 모음집도 원하는 내용을 검색해서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공무원 사회에서 자신이 발견했거나 만들어낸 유용한
1958년생으로서 65세가 되는 2023년 생일 다음날부터 지하철 무료카드를 받게 된다. 그런데 주변에서 일부 선배들은 그 카드를 '노인인정카드'라면서 거부한다는 말을 한다. 나이를 먹은 것은 본인의 잘못이 아니고 국가나 사회가 잘못한 일이 아니고 정치인이 제대로 정치하지 못해서 국민들이 나이를 먹는 것은 아니다. 철학적으로 생각해보면 지구탓이다. 지구가 태양을 돌면서 사계절을 연출하다보니 1년이 지나고 10년이 흘러서 청년들의 머리에 흰눈이 내리고 얼굴에는 사막같은 주름을 일으켜서 노년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말했다. 선배의 잘못없이 나이를 먹은 것이고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나이든 것이 불편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받아들이고 '지공선사' 신분증을 받으시라 권한다. 지공선사란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나이든 분을 줄어여 칭하는 말이다. 몇몇분들이 불편해 하시므로 지하철 공짜를 전철무료로 호칭해 본다. 청년시절, 장년시절을 거치면서 88올림픽 때 꽃길을 가꾸고 IMF때에는 금 서너돈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친 이들에 대해 지하철은 무료로 타시라고 만든 제도다. 그러니 가슴에 달고다닐 훈장까지는 아니어도 나이들어 국가에서 내려주는 지공선사 전철카드를 흔쾌히
佛家(불가)에서는 인연을 말한다. 옷깃만 스쳐도 전생에 아주 오랜 인연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있어서 만남은 소중한 것이고 그 만남을 위해서는 깊은 연관성을 갖는 것 같다. 최근 국민적 관심이 조금은 식고있는 ‘로또’복권의 열풍은 참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확률 싸움이다. 그런데도 지난번에 13명, 요전번에 5명이 1등에 당첨되었고 그 중에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사는 이가 포함되었다. 하지만 3자리도 맞추기 어렵다는 로또의 확률을 뛰어 남는 일도 있다. 최근에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다. 군 근무 중 순직하신 대대장님 영결식장의 중학생 아들과 인품 높으신 대대장을 존경하였고 순직을 애통해하며 영결식장에서 총을 거꾸로 들고 속으로 울었던 일등병이 있었다. 중학생과 일등병 두 사람이 사반세기, 25년이 지나 장년이 되어서 아버님과 대대장의 이름을 통해 운명적으로 재회했다. 동시에 눈물을 흘린 ‘대를 이은 전우의 만남’이 결코 우연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40대 중반인 당시의 일등병은 주민과 부대원의 안전을 위해 불발탄을 직접 처리하다 순직하신 대대장님을 기리기 위해 부대 안에 동상을 세웠다며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는 순간 손수건으로 눈가를 두드렸다. 당시
일요일 저녁 9시가 되면 “맞습니다! 맞고요”로 시작되는 ‘노통장’개그가 기다려진다. 그 전에 나오는 ‘우비삼남매’에서는 佛像(불상)한 개그와 ‘숯으로(스스로) 발전하는 개그’를 비롯해 다양한 유머를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코미디는 그저 그래서 안 본다고 하지만 하는 말씀을 곱씹어 보면 이 분도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서 하는 말이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다면 그 내용이 좋은지 나쁜지를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추억의 개그’가 되겠지만 북한 병사가 대한민국의 최신 유행가를 부르자 동료병사가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래를 불렀던 병사도 그 병사를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한다. 그 노래를 알아듣는 병사도 라디오나 다른 방법을 통해 그 유행가를 들었다는 주장인 것이다. 또 하나 썰렁한 추억의 개그가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광주에 집이 전주인 사람이 일을 보러 왔다가 급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나왔다. 그리고 버스를 기다리다 우연히 電柱(전주)에 쓰여진 붉은 글씨를 보았다. ‘전주는 위험하오니 절대로 올라가지 마시오’ 그래서 전주는 광주보다 더 심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광주의 사무실로 되돌아 왔다고 한다. 사실 ‘전
방송국에 가면 드라마 이산(정조대왕)의 사진이 걸려있고 효의 도시 수원에는 화성이 있습니다. 그 화성의 4대문은 장안문, 팔달문, 화서문, 창룡문이고 그 중심 행궁안에 함께한 화령전에는 정조대왕의 어진이 모셔져 있습니다. 화령전은 1801년에 건립되었고 왕의 親祭(친제)가 17번 열렸는데 순조 10번, 헌종 2번, 철종 3번, 고종 2번입니다. 2017년10월28일 오후 2에 華寧殿(화령전)에서 제265돌 정조대왕 탄신茶禮(다례)가 열렸습니다. 다례는 ‘차를 끓여 신이나 영혼 또는 사람에게 예를 갖추어 대접하는 법식’으로 순조는 선대왕의 탄신일에 39번 다례를 올린 최고기록을 보유한 임금이십니다. 정조대왕 탄신다례에서 강성금 원장은 조선시대 이래 끊겼던 의례를 문헌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탄신다례를 올린 것은 매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고 정조의 효사상을 실천하는 우리의 독창적인 祭禮(제례) 문화라고 평가했습니다. 탄신다례는 참신례, 초헌례, 독축, 아헌례, 종헌례, 헌다례 등으로 이어졌으며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 대표와 시민들이 참석했습니다. (사)수원화성예다교육원 주관으로 열린 행사로 경기문화재단, 수원문화재단, (사)경기차문화예절교육연구원이 후원했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나는 전류의 흐름이 그치고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고독하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아버지가 가출했다 실종신고 석 달 만에 돌아온 것은 달랑 유서 한 장이었다 검은색 비닐 봉투 속 꼬깃꼬깃 접혀 있는 색 바랜 종이에는 농협 통장의 비밀번호와 '늘 바람과의 전쟁에서 겨우 살아 온 늙은 몸 손자에게 티비 채널권 빼앗기고 애완견에게 밥 먹는 순서마저 빼앗겼다'라고 적혀 있었다 정겸 시인 1957년 경기 화성출생(본명 정승렬), 2003년 시사사 등단, 시집 '푸른경전', '공무원', '궁평항', 공무원문예대전 시, 시조부문 행정안전부장관상, 경기시인상 수상, 현재 칼럼니스트와 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로 활동 -시작메모- 낡은 리어카에 파지를 차곡차곡 싣고 힘겹게 언덕을 넘어가는 어르신, 80살은 족히 되어 보인다. 깊이 팬 이마의 주름은 굴곡진 우리나라의 역사 서적과 같다. 이 세대의 아버지는 한 가정의 기둥이었고 대한민국의 구세주였다. 나라의 지도자를 잘못만나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전쟁을 겪고 4.19혁명을 겪었다. 산업혁명이라는 명제 하에 저임금과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이 나라를 후진국에서 선진국 대열로 이끈 산 증인이요 주인공이다.
걸산마을에서 기다림 하늘 공주가 진주를 잃었다 장수가 지상에 내려와 공주의 진주를 찿으려 이리파고 저리 파고 손자국은 산줄기가 되고 발자국은 호수가 되었다 그 중 엄지 손가락이 만든 마을 걸산동은 태초에 더 높은 산이었다 지금은 산이다 둥굴게 감싼 산자락에 자리한 집집집 한눈에 보이는 집은 다섯채 사는 이 보이지 않지만 주민등록 들여다보니 124명 면적설명에 비교되는 여의도의 3배반 크기라는데 여의도 사람수 34만명 오늘 우리는 걸산동 새아기 탄생을 기다리고 타이탄 짐 싣고 귀농하는 청년을 보고싶다 하늘나라 공주의 귀환을 기다린다 1박2일 4가족의 자연친화 걸산체험을 권고한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조선시대 임금 중 효성을 상징하는 분은 정조대왕이다. 정조는 영조의 손자이며 임금에 오르지 못한 사도세자(장헌세자)의 아들이다. 장헌세자와 정조의 능은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에 있다. 왼쪽의 융릉은 정조의 생부인 장헌세자와 동비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이고, 오른쪽의 건릉은 조선 22대 정조와 동비 효의왕후의 합장릉이다. 장헌세자의 능은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당시에는 양주의 매봉산)에 있었으며 현재의 이곳으로 옮겨진 것은 정조 13년(1789년)의 일이다. 그 후 한해에 수차례씩 아버지의 능참길에 올랐던 정조는 때때로 가마를 멈추고 통곡하기를 그치지 못했다고 한다. 어느 비 오는 날에는 ‘아버지가 얼마나 추우실까’라는 생각에 사람을 시켜 무덤에 가보게 했더니 전날 밤 꿈속에서 계시를 받은 능참봉이 능 앞에 엎드려 있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능참봉이 스님을 만났는데 ‘오늘 살아남으려면 능앞에서 부복하여 일어나지 마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조가 부친의 묘소를 옮긴 후 능 주변의 소나무에 송충이가 번식, 솔잎을 갉아 먹는 것을 보고 진노해 송충이를 잡아 입에 깨물면서 “아무리 미물일망정 네 어찌 내가 부친을 그리워하며 정성껏 가꾼 소나무를 갉아 먹느냐”고 꾸짖고
옛날에 의좋은 형제가 길을 가다가 금덩이를 하나씩 주웠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중 형은 주머니에서 조금전 길에서 얻은 금덩이를 꺼내어 강물에 던졌다. 깜짝 놀란 동생이 그 이유를 묻자 형은 ‘아무래도 네가 주은 금덩이가 큰 것 같아서 형제간 의가 상할까 걱정이 되어 강물에 버렸다’고 대답했다. 금덩이보다 형제의 우의를 중요하게 생각한 동생도 금덩이를 강물에 버렸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옛날이야기다. 의좋은 형제 이야기는 정말로 금덩리를 버리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 초등학교 교과서에 올라간 것은 아닐 것이다. 형제간의 의리는 황금과도 바꿀 수 없고 세상의 무엇보다도 존귀함을 강조하고자 함일 것이다. 경제개발을 위한 목표에는 인식을 함께 하면서도 수도권과 비수도권간의 견해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경기도는 도내 인프라를 활용한 경제 활성화 정책을 강조하는 반면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수도권 규제를 통한 비수도권의 균형발전을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경기도와 수도권을 규제한 결과 투자를 희망하는 기업은 외국으로 가고 있다. 규제를 피해 강원, 충청과 경기도 경계지역에 입지하고 있다다. 의좋은 형제가 금덩이 크기가 다르다고 해서 강물에 버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