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에 가물어서 물이 부족하면 양수기가 동원된다. 1970년대 읍면사무소에는 대일(對日)청구권에 의해 들어온 양수기가 20대 정도씩 배정되어 있었다. 창고안에는 양수기 고유번호, 상태 등이 적힌 꼬리표를 단 양수기들이 노랑색 페인트 옷을 입고 춥고 긴 겨울을 지내고 봄을 기다린다. 그리고 양수기와 짝을 이루는 것이 관정이다. 논 중간에 흄관을 묻어놓은 우물인데 피자를 반으로 자른 듯한 시멘트 구조물의 뚜껑이 있고 거기에는 철근을 ㄷ자로 구부려 만든 손잡이가 있다. 이 뚜껑은 아주 무거워서 초등학생 한 두명이 들기에는 버겁고 어른이 두 손으로 힘을 써야 조금씩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안전사고를 위함일 것이다. 그리고 그 구조물은 노랑색으로 페인팅되어 있고 검정글씨로 코드번호, 채수량, 점검일시 등이 적혀 있다. 면사무소 담당자의 업무중 ‘관정 양수기’가 있는데 이것은 대개 토목담당이 맏게 되고 토목직이 없으면 농업직이 담당한다. 그리고 매년 군청으로부터 관정 정비예산을 받아 바닥으로 흘러든 모래와 자갈을 퍼내고 지상으로 나온 부분에는 페인팅을 했다. 그리고 중앙정부와 도청직원으로 구성된 듯한 합동점검반이 매년 읍면동에 점검을 나온다. 관정에 대한 점검은 뚜껑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소요산을 오르는데 우산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고 일단은 도전정신으로 차분하게 오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늘 우리는 산을 존중해야 하고 무겁게 생각해야 하며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대신에 신중하고 차분하게 한발한발 오르는 자에게 산은 늘 정상을 양보하지만 서두르는 자, 輕擧妄動(경거망동)하는 자에게는 쉽게 봉우리는 보여주지 않는 법이다. 인생살이도 마치 등산과 같아서 꾸준하게 오르고 오르면 어느 정도 높이의 산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오른 산의 높이를 다른 이와 비교할 것이 아니요 자신이 올라온 과정을 스스로 돌아보며 하산을 준비하여야 하는 것이다. 전철을 타고 도착한 소요산 역은 큰 규모에 비해 사람들은 적어 보인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러할 것이다. 전철이 연결되는 흔하지 않은 등산코스인 소요산이다. 소요산 초입에는 동두천시가 건립중인 ‘동두천 축산물 브랜드육 타운 조성공사’현장이 보인다.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이 우측에 있다. 단풍나무 잎새가 무성한데 가을에는 색채전람회를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청년 잎새들이다. 그리고 독립유공자 추모비가 보인다. 소요산 입장료는 1,000원이고 동두천시민은
동두천시와의 인연은 우연이거나 인사부서 직원의 배치에 의한 지극히 단순한 일로 출발하였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공직과 퇴직 이후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운명적인 관계가 정립되었습니다. 1997년에 경기도청에서 동두천시청으로 전출되어 생연4동장으로 근무하면서 보람찬 일들을 마주했고 수해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도 공직자로서, 인간적으로 큰 연관성을 찾아내고 관계성을 유지하면서 퇴직 이후에도 그런 연결고리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동장으로 일한 경험과 경력이 훗날 2011년에는 시정의 중요한 책임역할을 하는 자리에서 일하게 되면서 인생과 운명은 많은 관계와 관심으로 이어지는 동아줄 같은 끈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 것입니다. 함께한 나날을 회고하면서 동장으로 일한 추억, 동장이 지녀야 할 생각에 대한 작은 소견을 모아서 적었습니다. 2021년 10월 20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강석의 방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주머니는 욕심을 의미할 수도 있는데 저승가는 길에 가져갈 것이 없으니 주머니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세계에 가서는 또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에 힘들었던 이승의 그 어느 것도 가져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일 것입니다. 이승을 떠나는 것은 참으로 홀가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수의를 입을 때 옷고름에 나비고름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새롭게 발견되었습니다. 한번 염습을 하면 다시 풀어볼 일이 없기에 세 번 네 번 꽁꽁 매어 드린다고 합니다. 여러 겹의 옷을 입혀 드리고 힘차게 매어 드려야 좋아하신다고 시골 아저씨가 말씀하셨습니다. 이 아저씨(할아버지) 몸을 모아드려야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매장으로 모셔도 수의는 흙이 되어 함께 할 것이고 화장을 해도 수의 옷고름은 연기가 되어 나비처럼 창공을 훨훨 날아갈 것이므로 미리 나비넥타이 매듭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장에서 조총을 발사하는 것은 그 영혼이 새가 되어 하늘 높이 날아가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비가 되고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영혼은 참으로 편안해 보입니다. 최근 건축물 리모델링 중에 수십억원어치 금괴가 발견되었고
광교산은 넓은 가슴으로 우리 모두를 기다린다. 아침 버스를 타고 상광교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필 것도없이 걸음을 재촉한다. 가파른 산행으로 가슴이 뻐근해지고 이내 등줄기에 온기가 불면서 등산의 즐거움이 시작된다. 지난주 눈이 많이 내린 후 일요일 산행을 거슬러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가는 것은 또다른 묘미가 있다. 우선 절터를 올라 약수터에서 사람들은 만나는 것이 행복하다. 모두 같은 마음일 것 같은 중년층 남녀들의 다채로운 등산복을 보는 것도 즐겁고 서로 양보하며 줄서있는 그들만의 질서가 흐믓하다. 패트병 8개에 약수를 받아가는 이가 있어도 기다림이 편안하다. 많은 양의 물을 받기 위해 함께 보내는 휴식시간이 줄을 선 모든 이에게 제공되기 때문이다. 좀 늦어면 어쩔 것인가. 빨리 간다고 해서 감독관이 체크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광교산이 좋고 산행이 즐겁고 등산이 필요해서 온 사람들 아닌가. 그러는 중에도 줄 뒤에 선 ‘작은 병 들고온 청년’에게 패트병 2개짜리가 순서를 양보해 주고 시청에서 준비해 둔 현대식 표주박(스텐레스)에 물을 떠서 처음 본 나에게 주는 내 또래의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 아니겠는가. 심장의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올 즈음 다시 산행은
경기도의회로 가는 길은 3가지 방법이 있다. 지역구 출마, 비례대표의원, 그리고 의회사무처 공무원으로 발령을 받으면 의회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방법도 있다. 수원역에서 내려 도청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언덕을 300m터 오르면 도의회와 도청 건물이 보인다.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의 화서문을 지나 화서파출소를 우축으로 놓고 좌측길을 통해 병무청을 지나면서 좌회전하면 의회와 도청의 후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전철 성대역에서 수원역 방면으로 오다가 수원역사가 보일즈음 좌회전 하여 1㎞정도 달리면 마치 프랑스 몽마르트언덕만큼의 위치에 서있는 회색으로 빛나는 의회건물을 만나게 된다. 과거 방위협의회가 자주 열리던 시절에는 육군의 별들이 헬기를 타고 곧장 도청운동장에 내려 회의장으로 가는 모습을 본 기억도 있다. 승용차나 버스를 타고 도의회와 도청으로 들어오는 3개의 문을 지날 때 누구나 2개의 간판을 보게 된다. 경기도청이라고 굵직한 체의 간판과 경기도의회라고 도청간판보다 가는체의 간판을 보게 된다. 경기도청 간판은‘새마을 정신의 생활화’라는 글씨체와 같아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임을 짐작할 수 있다. 경기도청은 1967년 6월
글을 잘 쓰려하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다른이의 생각을 많이 들어야 하는데 소주와 안주값이 많이 드니 주점대신 서점에서 그분들을 만나는거다 주점의 시간은 갈수록 취해가고 서점의 시간은 갈수록 편해진다 숙취는 당신을 괴롭히지만 책향기는 늘상 봄같이 향긋하고 가을처럼 풍요롭다 표절이나 모방이나 매한가지 인생 사는 것 또한 남의것을 배운다 잘사는 인생도 배우고 실패한 삶도 느끼고 돈많은 회사도 처다보고 지혜의 출판사도 바라본다 모두가 대통령이 되는 나라도 안되고 서로가 국회의원 안하면 법안은 누가 의결해 아무나 가수하면 TV 싱겁고 몽땅 노무자 뿐이면 설계도는 누가 보냐 인생을 잘 살려면 남의 삶을 곁눈질해야 한다 결혼식은 돈봉투 보내고 영결식은 돈내고 참석해야 한다 결혼식에서 보이는 것은 희망뿐이지만 장례식장에서는 다보인다 몽땅 보인다 망자의 가족이 보이고 죽은이의 친구가 다녀가고 떠난이의 회사장부 대차대조표도 보인다 글 잘 쓰고 잘살려면 서점과 영안실을 자주가야 한다 서점옆에 영안실을 장례식장 인근에 출판사를 세우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은 이의 인생사와 가족사를 보면서 자신의 인생 나침반을 수정하게 하자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따사로운 날씨다. 1950년 6월에도 더웠을 것이다. 그리고 1950년, 1951년, 1952년. 국군 용사들은 인제에서, 백마에서, 수원에서, 철원에서 붉고 뜨거운 피를 이 산하 계곡에 뿌리면서 뜨거운 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며 가족을 생각하면서 떠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6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작은 상자만한 크기의 기단부와 어린이 키 정도의 비석에 이름 석자, 격전지,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 흘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날짜를 적어놓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다. 국립현충원 직원이 트럭에 싣고와 배부한 플라스틱 조화 한줌을 옆에 세운 채 오랜 세월을 지내온 용사들. 오늘의 주인공은 황해도 연백에 사시다가 18세이던 1950년에 입대하여 1951. 4. 27 강원도 인제에서 전사하신 분이다. 전후좌우 모두 같은 크기의 비석인데 전사지, 전사날은 각기 다르다. 아마도 뒤엉킨 전사자들을 수습한 후 신원이 확인되는 대로 현충원에 모시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이곳 현충원에 근무하시는 분들은 모두가 좋은 분들이겠다. 정문 근무하시는 분들의 표정도 인자해 보이고 간간히 작업을 하시는 인부들의 표정에도 욕심이 없어 보인다. 항시 망자들을 모시고 사
1986년에 세정과 세외수입계에서 수입증지를 담당하였습니다. 수입증지란 지방자치단체의 수수료를 받아 들이는 우표처럼 생긴 증표인데 당시 50원, 150원, 300원, 500원 등 몇가지 유형의 수수료에 맞춰 액면가를 정해 조달청 인쇄창에서 받아온 것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8시반경에 새마을금고 직원이 1일 대력 150만원어치를 받아갔습니다. 그런데 수입증지 수불부상에 5원짜리 증지 30,000원어치, 대략 6,000장이 이월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수년간 이월된 것으로 추측되었습니다. 이미 50원이상으로 수수료가 인상된 1986년에 5원짜리가 남아있으니까요. 전임, 전전임 담당자들이 지속적으로 이월시켜온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일은행 금고에 확인한바 철제금고 바닥에 5원짜리 증지가 남아있다는 확인을 해 주었습니다. 요즘에는 엑셀이나 전자프로그램으로 장부를 정리한다고 하지만 당시만해도 수작업이므로 매일아침 5원짜리 증지 6,000장 30,000원어치를 정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으므로 이를 정리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방법은 다 사버리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음날 3만원어치를 수불하고 새마을금고를 통해 개인 돈으로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바인더북에 잘 보
우리는 가정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와 직장에서 늘 사람과 소통하면서 살고 있는데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회적 소통의 센서인 배려와 양보라는 씨줄과 날줄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인간사회에 품성에 의한 배려와 양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와 다름없을 것이다. 1981년 공무원 9급으로 지금 지방서기관, 4급에 해당하는 도청 과장을 강사로 초빙해 승용차로 안내하게 됐다. 기사가 운전하는 차량에는 이미 사무실 선배 공무원 2명이 타고 있었다. 따라서 과장과 함께 승차하면 만원이 되는 상황이었다. 뒷자리 2석이 비어 있으므로 과장을 잘 모신다고 차 문을 열고 먼저 타도록 했다. 하지만 과장은 머뭇거린다. 다시 한번 권하자 과장은 먼저 타라 한다. 과장이 차 문을 열어주고 먼저 차에 오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생각했다. 제대로 된 승차의전은 앞자리에 타고 있는 직원이 내려 뒷좌석 차 문을 열고 대기하면 가장 후임인 필자가 가운데 타고 나서 과장이 차에 오르면 정중하게 차 문을 닫고 앞좌석에 탑승 후 출발하는 것이다. 나중에 승용차 승차예절을 이해하고 그날의 해프닝을 마음에 새기고 후배 공무원들에게 주법과 함께 승차 질서에 대한 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