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소요산 등반기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소요산을 오르는데 우산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고 일단은 도전정신으로 차분하게 오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늘 우리는 산을 존중해야 하고 무겁게 생각해야 하며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대신에 신중하고 차분하게 한발한발 오르는 자에게 산은 늘 정상을 양보하지만 서두르는 자, 輕擧妄動(경거망동)하는 자에게는 쉽게 봉우리는 보여주지 않는 법이다. 인생살이도 마치 등산과 같아서 꾸준하게 오르고 오르면 어느 정도 높이의 산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오른 산의 높이를 다른 이와 비교할 것이 아니요 자신이 올라온 과정을 스스로 돌아보며 하산을 준비하여야 하는 것이다.

 

 

전철을 타고 도착한 소요산 역은 큰 규모에 비해 사람들은 적어 보인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러할 것이다. 전철이 연결되는 흔하지 않은 등산코스인 소요산이다.

소요산 초입에는 동두천시가 건립중인 ‘동두천 축산물 브랜드육 타운 조성공사’현장이 보인다.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이 우측에 있다. 단풍나무 잎새가 무성한데 가을에는 색채전람회를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청년 잎새들이다.

 

그리고 독립유공자 추모비가 보인다. 소요산 입장료는 1,000원이고 동두천시민은 신분증을 보이면 무료입장이다. 차분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가끔 차량이 지나가는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사찰로 가는 길은 평온한 가운데 오름과 내림이 있는 起伏(기복)있는 등산코스다.

오늘 소요산 등산 목표지점은 공주봉이다. ‘요석공주와 원효대사’라는 글귀가 소요산 진입로 우측에 보이는데 역사적인 두 인물이 이곳 소요산에 머물렀다는 역사기록이 있다고 한다.

 

<공주봉 안내판> 소요산 일주문에 들어서서 우측 능선으로 오르면 첫 번째 만나는 봉우리가 공주봉이며 해발 526m이다. 공주봉은 자재암을 둘러싸고 말발굽 모양으로 펼쳐지는 등산로의 우측 첫 봉우리가 되며 이 공주본을 지나면 최고봉인 의상대와 만나게 된다. 전설에 의하면 소요산에 자재암을 창건하고 수양하던 원효스님을 찾아온 요석공주가 산아래 머물면서 그 남편을 사모했다고 하는데, 이 공주봉의 이름은 요석공주의 남편을 향한 애뜷는 사모를 기려 붙여진 이름이다. 공주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구절터가 남아있어 이들의 고귀한 사랑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오르는 길이 쉽지 않다. 가파른 길이다. 바위틈새를 어렵게 지나가는데 이마에 흐르는 땀이 안경렌즈를 적시고 앞이 보이지 않으니 수없이 안경을 닦아가며 오르고 오른다. 평소 등산을 자주하시는 듯한 두 분은 힘차게 잘도 오르는데 말이다.

그 와중에도 지난주 등산을 하지 않은바 오늘 힘이 든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니 늘 생활화하여 이산 저산을 오르면서 체력을 관리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게된다.

 

바위길을 지나니 가파른 숲길이 나오는데 경사도가 예상외로 심하여 바위길이나 별 차이없이 힘이들고 숨이 차다. 길 왼쪽에 큰 바위와 벼랑이 보이고 100살쯤으로 보이는 소나무가 바위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이곳이 공주봉인가 했다.

아무런 표지판이 없으므로 다시 오르니 숲길이 수백m 이어지고 갑자기 하늘이 넓게 보이고 바람이 불어 앞을 보니 이곳이 공주봉이다. 일단 소요산 자락의 봉우리에 오른 것이다.

 

전망대처럼 일부 목조시설이 있다. 우선 마음이 급하여 인증사진을 찍었다. 딸을 데리고 온 아빠에게 부탁하여 이마에 수건을 묶은 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되받아 안내판과 여기저기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힘들게 올라온 만큼 여러장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

이제 하산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시조시인, 시인들이 하나의 글에 같은 글자를 쓰지 않듯이, 천자문이 각기 다른 한자로 구성되어 있듯이 방금 올라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처럼 머슥한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하여 위험한 산행이 시작되고 말았다.

 

의상대를 향하여 발거름을 시작하니 200m를 지나 바위낙석이보인다. 통행로위에 3톤 정도의 바위가 쌓여있다. 지난번 폭우와 천둥 번개에 수만년 버티던 바위도 무너져 내린 것이다. 소요산이 생성된 것이 어찌 수만년만 되었을까? 부러져 내린 바위뿌리의 절단 부위는 마치 피를 흘린 듯 붉고 선명하게 바위색을 보인다. 저 색이 지구가 생성될 당시의 컬러였을까?

후진 자세로 내려와야 할 정도의 가파른 길을 내려가다가 다시 그만큼의 오르막을 지나니 의상대 정상이 나온다. 소요산의 주봉이란다. 해발 587m. 자재암을 창건한 원효의 수행 동반자인 의상을 기려 소요산의 최고봉을 의상대라 부르게 되었단다.

 

주봉에 오르니 작지만 무엇인가를 성취하였다는 감성적인 분위기에 잠시 쉬기로 하였다. 60중반의 부부가 서로 물을 권하며 주봉 등반을 자축하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사진을 찍어달라 요청을 할까하다가 두 분의 행복한 시간을 위해 핸드폰 셀카를 찍었다. 참, 셀카에 나오는 글씨는 거울속 글씨처럼 거꾸로 나온다.

주봉에 올랐으니 하산길이다. 해외원정단의 사고는 하산길에 더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결국 자재암을 향한 하산길 막바지에 태양이 구름을 밀어내고 얼굴을 보여주면서 숲속 높은 습도가 어우러져 온몸에 땀이 뒤범벅이 되었고 오른손에 안경을 쥐고 하산하던 중 오른쪽 발이 물기를 머금은 잎새를 밟은 듯 와장창 몸이 휘청하면서 엉덩방아를 찌었다. 동시에 오른손에 안경을 쥔채 바위를 치고 말았으니 손가락 마디에 찰과상을 입었고 안경렌즈에 상처가 났다.

 

그 순간 털썩 주저앉은 순간 안경이 깨졌을 것이라는 걱정이 앞고 뒤이어 손가락에 통증을 느껴 살펴보니 붉은 피가 흐른다. 1분여를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뼈가 부러진 것은 아니니 걸어갈 수 있고 찰과상은 이틀정도 샤워가 불편할 것이다. 늘 모든 사건사고에 대해 이만하길 다행이다 생각하면 참 편안할 일이다. 손가락 상처 난 것을 애통해한다고 달라질 것이 있는가?

禍不單行(화불단행). 사건사고는 홀로 다니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제부터 더더욱 신중할 일이다. 좀전에 넘어진 것은 워낙 체력을 오버하는 등산 강행군으로 인한 것이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려가자. 그런데 계곡길을 따라 얼마를 가다보니 폭포입구에 이른 것이다. 오른쪽 길을 가야 나무계단을 타고 자재암으로 가는는 코스였던 것이다.

 

자재암에 이르니 일상의 평온함이다. 원효대사가 마셨다는 약수를 받아 목을 추기고 다시 등산객 3명의 뒷줄에서 기다려 반병을 채워 한 번에 마셨다. 지난번 구두신고 자재암 왔다가 내려가는 길은 참 힘들었는데 오늘 소요산을 한바퀴 돌고 내려가는 길은 그져 편안함이다. 세상사 비교하면 지금이 편안하고 다행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산길에 만난 낙석, 바위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150년쯤 살아온 것 같은 키작고 단단한 소나무, 산 중턱에서 만난 200살은 된 것 같은 허리가 부러진 소나무,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한 시간의 흐름, 아니면 타임머신일까? 재미있는 나무속의 나선형 구조물 등을 촬영한 것은 행운이다.

 

산채 비빔밥은 6,000원이다. 손에 난 상처를 보신 인심좋은 아주머니께서 반창고를 가져와 두 손가락을 감싸주셨다. 1시반경 옆 테이블의 60대 두분이 산채 비빔밥에 막걸리를 드신다. 큰맘 먹고 왔는데 자재암까지만 다녀왔다고 고백하신다. 공부도 때가 있듯이 등산도 나이가 있는가 보다.

오늘 소요산 산행은 등산화를 신은 이래 가장 많은 땀을 흘린 역사적인 일이다. 역사적인 현장을 힘차게 다녀온 등산이었다. 혼자 생각할 것도 많았고 이곳 소요산과 동두천에서 일하게 된 것에 대한 무한한 감사의 생각을 함께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시 내려온 소요산 역에는 오전에 타고 온 그 열차인 듯 익숙한 모습의 전철이 마치 첫 소요산 종주를 환영하는 것 같다. 참 행복한 하루다. 소요산의 하루.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