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동 현충원에서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따사로운 날씨다. 1950년 6월에도 더웠을 것이다. 그리고 1950년, 1951년, 1952년. 국군 용사들은 인제에서, 백마에서, 수원에서, 철원에서 붉고 뜨거운 피를 이 산하 계곡에 뿌리면서 뜨거운 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며 가족을 생각하면서 떠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6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작은 상자만한 크기의 기단부와 어린이 키 정도의 비석에 이름 석자, 격전지,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 흘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날짜를 적어놓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다. 국립현충원 직원이 트럭에 싣고와 배부한 플라스틱 조화 한줌을 옆에 세운 채 오랜 세월을 지내온 용사들.

 

오늘의 주인공은 황해도 연백에 사시다가 18세이던 1950년에 입대하여 1951. 4. 27 강원도 인제에서 전사하신 분이다. 전후좌우 모두 같은 크기의 비석인데 전사지, 전사날은 각기 다르다. 아마도 뒤엉킨 전사자들을 수습한 후 신원이 확인되는 대로 현충원에 모시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이곳 현충원에 근무하시는 분들은 모두가 좋은 분들이겠다. 정문 근무하시는 분들의 표정도 인자해 보이고 간간히 작업을 하시는 인부들의 표정에도 욕심이 없어 보인다. 항시 망자들을 모시고 사는 분들이어서 그럴까.

 

육군하사 정성배, 육군일등병 이승봉, 육군하사 이재철, 육군중사 박수인, 육군oo 유계철, 육군병장 김경식, 육군하사 김순석, 육군병장 송봉현... 비석은 끝없이 이어진다. 전후좌후, 이계곡 저 산자락에 흰 비석은 가로세로 대각선을 군인 열병식처럼 줄을 맞추고 서있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모든 비석들은 비를 맞으며 서있을 것이다. 밤에도 낮에도 비석들은 늘 그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치 전선에서 나라를 지키던 그 모습으로 이 자리에서도 국민을 지키고 있다.

순국용사의 피와 뼈에서 민족의 저력이 나와 대한민국이 더 힘찬 ‘대한민국’이 되었다. 그 옆에는 월남전 참전용사의 비석이 한그룹 있다. 1950년 6.25가 난지 15년후인 1965년에 월남전에 파병된 이들도 ‘대한민국’의 힘이 되었다. 독일의 광부와 독일의 간호사처럼 대한민국은 참으로 많은 이들의 피와 땀으로 발전을 이룩했다.

 

병사들의 비석 인근 작은 언덕에서 DJ를 만났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 같이 떠오르는 나라를 만들 것입니다. 김대중’ 비문의 내용이다. 1992년 대선연설문의 일부라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하였다.

계곡위 정상부근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묘가 있다. 널찍하게 자리잡은 묘에는 큰 비석과 제단이 마련되었고 옆길에는 휠체어용 S자 도로가 만들어졌다. 33년 세월이 흘러서 주변의 모든 상황이 평화롭게 자리 잡은 것 같다.

 

두 분의 묘지에서 300미터 내려가면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을 이곳까지 모시고 온 영구차가 보존되어 있다. 당시 TV를 통해 본 그 버스다.

아침 9시에 출발하였는데 걸어서 이리저리 관람하다보니 11시가 지났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차분한 마음으로 전철을 타고 2정거장을 지나 버스에 올랐다. 가볍고 행복한 기분이 든다. 작지만 무엇인가 해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조국과 국가, 애국애족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은 있겠지만 지금 마음속에 가득 찬 것은 자신을 위한 현충원 방문이었다는 생각이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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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