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임 교통카드 이야기입니다. 지패스, 즉 "경기도 우대용 교통카드"입니다. 이 카드로 전철을 무료로 타고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배중에 생일이 지나서 무료교통카드를 받을 수 있는데도 발급신청을 하지 않은 분이 몇 명 있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게 나이 든 것을 틀켜 버릴까봐 카드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카드를 쓰면 전철 개찰구 주변에서 만나는 알지 못하는 분들이 "저분은 나이가 드셨구나!" 정도로 알아차릴 것이지만 서로 누구인가는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러니 우대용교통카드를 이용하여 전철을 타고 내려도 그분에 대하여 나이가 60대 70대초인 것을 나중에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아는이를 만나면 다른 이야기로 교통카드 음향을 듣지 못하게 하면 될 일입니다. 이는 마치 산 정상에 올라 "야호!" 소리를 쳐도 주변의 등산객들은 이분이 누구인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나무와 바위와 시냇물이 누구인지를 알 것입니다. 자연은 인간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지만 말하지 안고 아는 체도 하지 않으며 다른 식물이나 동물에게 그 말을 전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을 사랑합니다. 인간보다 자연을 좋아합니다. 자신에 대
큰형 '이재율' 부지사와 맏형 '재율'이 형 그냥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었다. 이재율 부지사님이 퇴임하신단다. 그냥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었다. 이 부지사님은 퇴임하지 않을 줄 믿었다. 늘 경기도정의 중심에서 일할 줄로만 생각했다. 축구 경기로 말하면 풀백과 링커였다. 행정이 어려우면 풀백이 되고 도정이 느슨하면 센터포워드로 뛰었다. 숱한 기자들의 표현대로 ‘뼛속까지 경기맨’ 이재율 부지사가 퇴임을 한단다. 50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이재율 ‘데자뷰’처럼 어린 9살 소년의 마음속에 그런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흰 브라우스에 검은 스커트를 입은 우리의 여선생님을 처음 보았다. 동네 누나들과는 다른 의상이었고 얼굴도 달랐다. 그래서 여자 선생님은 화장실을 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 선생님은 매운 고추장, 시큼한 된장을 먹지 않을 거라 짐작했다. 설악산 사슴이 이슬만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처럼 선생님은 그냥 흰 쌀밥, 시금치나물, 순두부 등 예쁘고 흰 음식만 먹을거라 상상했었다. 그래서 이재율 부지사도 어려서 만난 초등학교 ‘사슴 여선생님’처럼 절대로 나이 들지 않고 퇴직하지 않고 경기도청에서 아주 오래도록 일할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는 말이 있지만 행정자치부 혁신인력개발원에서 만난 10인의 강사진은 모두가 나의 스승(我師)이었다. 혁신에 대한 설명은 간명했다. 묵은 제도와 방식을 고쳐 새롭게 하는 것이 혁신이며 창조적 파괴나 문제의식을 갖고 새롭게 바꾸는 것이 혁신이라고 했다. 그런데 실질적인 혁신의 의미는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는 순간, 득음·득도의 심정이었다. 1, 2년 안에 같은 경력의 공무원 봉급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총액인건비제도가 활성화되면 고참 공무원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한다. '젊은 공무원 2명을 쓰는 것이 낫다'고 하면 어쩔 것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답을 준비하지 못했다. 대기업 삼성이 일본 기업보다 우수한 초인류 기업이 된 힘은 바로 ‘혁신’에서 나왔다는 대목에서 허리를 고추세우게 되었다. 혁신은 참여정부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정부에서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강사진의 공통된 견해였다. 그리고 혁신의 주체는 공무원이며 중앙정부에 비해 지자체의 혁신은 조금 뒤져있다는 지적에 공감했다. 사실 지방행정은 중앙보다 혁신이 자리잡을 공간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혁신은 권위를 떨쳐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일상 업무
아들이 논산훈련소로 입소하는 날이 됐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입대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아들에게 “이 병장!, 밥 많이 먹게!” 하면 못마땅한 듯 고개를 가로졌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수 시간을 달려 도착한 논산 훈련소는 봄바람에 꽃잎이 눈처럼 휘날리는 아주 오래된 교육시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설이 현대식이었다. 특히 내무반과 식당이 깔끔했다. 세상에 태어나 21년 만에 집을 떠나가는 안타까운 1천800여 가족의 사연을 함께 하고 집으로 돌아와 허전한 마음으로 10여일을 보낸 어느날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아들의 군복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온 것이다. 군복을 입고 맨 앞줄에 앉아 ‘파이팅!“을 외치는 아들의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같은 중대원으로 만난 이 땅의 아들들이 모두가 한 집 아들인지 참 잘 생겨 보였다. 군복이 아들에게도 어울린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가슴 찡했다. 열흘 전을 회고했다. 그날 오후 1시30분에 연병장에 모였다. 1천800명이 넘는 장성한 아들들이 모였다. 가족을 포함하면 1만 명이 넘었다. 21년 전 득남하고 좋아했던 분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소식, 여성 대령이 연대장이었다. 그녀는 스탠드를 향해 “
지난 2010년에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큰 기록을 세운 ‘세계 속의 경기도민’들이 끼네스 인증을 받았습니다. 경기도 최고기록 인증패를 받았습니다. 65년 된 트럭, 33년 운전경력, 2만941시간 자원봉사(872일×24시간), 375회 헌혈에 마라톤 53회 완주기록, 9살 미용사, 16년 영농일기, 자격증 53개의 기록을 보유한 분도 나왔습니다. 9살 미용사의 동생이 언니의 끼네스 인증 이후 언니를 따라 미용사 자격을 받았다고 TV에서 보았습니다. 경기도가 주관한 끼네스의 압권은 용인시에서 온 13명의 다둥이 가족이었습니다. 아들 5명, 딸 6명, 어머니, 아버지 등 모두 13명입니다. 장남이 21살, 당일 3개월 된 아이를 안고 행사장에 나왔는데, 11명 중 쌍둥이는 없고 모두 1명씩 태어났다고 합니다. 모두가 밝고 예쁘고 활기찹니다. 위로 3명의 아들이 장성해 동생들을 잘 챙기고 둘째 것 같은데 아기포대를 늘 어깨에 걸고 다닙니다. 우리 부부도 20년간 쌍둥이 양육일기를 쓴 기록이 끼네스에서 인증되어 인증패를 받았습니다. 현재 바인더북 55권과 사진앨범, 기타 유치원, 초중고 시절의 자료를 관리하는 또다른 바인더가 20여권 있습니다. ‘육아일기’로 시작
모두가 잘 아는 바와 같이 기우제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인디언 추장이 있었다. 그가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리니 다른 부족에서도 기우제 제관으로 초청을 받게 됐다. 주변 사람들이 효험 있는 기우제를 지내는 비법을 추장에게 물었다. 추장의 답은 간단했다. “나는 비가 내릴 때까지 꾸준히 기우제를 지냅니다.” 그는 아마 1년 내내 기우제를 지냈거나 때로는 1년 이상 비가 내리기를 소원하는 기도만 했을 수도 있겠다. 추장이 사는 동네의 건넌마을 유행어는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로 말하면 복지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일반행정은 문서 한 장을 기안한 후 여러 부 복사해 뿌리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복지는 문서 한 장에 한 사람씩 붙어 복지사무, 행정업무를 수행한다. 복지행정은 그냥 서류를 배포하면 실현되는 일이 아니라 각기 다른 복지요구에 맞게 음식과 옷을 먹이고 입히고, 편안한 잠자리에 재워야 한다. 우리나라 1970년대로 가보면 ‘마을 입구 논농사’는 온 동네 사람이 함께 짓는다는 말도 있었다. 이 말은 과거 행정력이 농촌 농사에 집중하던 ‘농정 최선의 시대’에 생겨난 요즘 청년들의
[LA올림픽 금메달, 고 김원기 선수를 추모합니다.] 올 들어 가장 추웠다는 지난 토요일(2011년 1월 15일) 오전 9시30분. 안양 노인복지회관(동안구 호계2동)에 노인들이 한 분 두 분 오십니다. 은행이 아닌 복지관에 오신 분들이 번호표를 받아 가십니다. 배식 순서를 정한 표라고 합니다. 하지만 복지사들이 오늘은 회원증을 보이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면서 번호표를 드립니다. 회원증이 필요없는 이유는 '사랑의 금메달 자장면'이 제공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700그릇의 자장면을 준비했습니다. 그 자장면집 주인들은 수년전 온 국민을 행복한 순간으로 이끌었던 금메달리스트들이 참여하는 '함께하는 사람들'입니다. 황영조, 장윤창, 이경석, 김원기, 심권호, 이은철, 임오경, 이진택, 정재은, 장정구, 황충재, 이형철, 이경근, 홍차옥 선수가 바로 '함께하는 사람들' 회원들입니다. 마라톤, 배구, 레슬링, 사격, 핸드볼, 높이뛰기, 권투, 유도, 탁구에서 금메달을 따고, 챔피언이 되어 온 국민을 열광하게 하였던 스포츠 스타들입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30대, 40대임에도 주방에서 면발을 뽑고, 면을 삶고, 자장을 볶고 노인들에게 배달하고 가위로 잘라드리고 단무지를
푸른 기운 하나 없는 잎 떨어진 버드나무에 동그마니 앉아 있는 새 칼바람을 악기 삼아 노래 부른다 추억의 소야곡인지 희망의 속삭임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아련하게 사라져 간 청보리 밭에서 내가 불렀던 그리운 노래였다 바람 부는 날은 새가 울었고 흰 눈 내리는 날에는 새가 웃었다 새는 항상 나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내가 새를 좋아하는 것도 새가 나를 좋아하는 것도 항상 서로가 눈빛을 함께 나누었기 때문이다 가시덤불 우거진 산길을 나 홀로 걸어 갈 때 새 한 마리 날아와 낮에는 햇빛 한 줌을 밤에는 별빛 한 줌을 선물로 주었다 여윈 하현달빛 아래로 은빛 억새풀이 바람에 흔들린다 어디선가 겨울 나그네의 노래가 들려오는 지금 작은 한 숨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김재자 시인 경기화성 출생, 시집 『말 못하는 새』가 있으며 문예지 및 일간지에 작품 발표, 글샘동인, 현재 용인병원유지재단 이사 -시작메모- 우리의 삶의 언저리에는 항상 새라는 날짐승이 등장한다. 이솝우화, 전래동화, 혹은 시와 소설 속에도 새는 주인공이거나 아니면 길동무정도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새는 그만큼 우리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새를 소재로 이야
우리나라의 역사 중 개화기라 함은 통상적으로 1876년 2월 27일 일본과 맺은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라 칭하는 강화도 조약 이후 시기이다. 일명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이라고도 말하며 외국과 체결한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라는 의미와 함께 일본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독소조항도 있지만 을(乙)의 한계로 이를 받아드렸다. 사실상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음으로 양으로 일본에게 우리 민족의 권익을 침해당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나라가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의 봉건적인 사회 질서 즉 양반과 중인 상인 천민으로 분류된 신분제도를 타파하고 근대적 사회로 바뀌어 갔다. 또한 이 시기에는 시대적 조류상 어쩔 수 없이 외국의 사상이나 문물이 밀려오며 한 사회의 사상과 풍속이 새롭게 바뀌었다는 사실에 일부 긍정적인 요인도 있었다. 요즘은 시간이 날 때마다 개화기 시절 교과서를 판독한다. 한문과 일본어 그리고 한글 고어로 인쇄되어 읽기가 더디지만 그런대로 읽을 만하다. 그런데 지금 소개하는 개화기 시기의 동양사는 고종임금당시 대한제국이 탄생한지 2년차인 융희2년 즉 1908년도에 발간한 중등교과과정 교과서인데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중의 하나인 임
매주 토요일 경기도청 광장에는 토요장터가 열린다. 도청 신관앞 4차선 양쪽에 작은 포장 안에 펼쳐지는 30여개의 가게에는 서민들의 마음에 꼭 드는 물건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먹을 것으로는 떡, 쌈, 잣, 인삼, 순대, 계란이 있고 끓여서 마시는 결명자, 계피 등 약재가 전시된다. 벼룩시장도 있다. 깔끔한 중고품 옷을 고르는 재미가 있고 새 것처럼 깨끗한 가방도 손님을 기다린다. 옆칸에는 여성용 브로찌등 장신구들이 1970년대 박물장수 보따리를 풀어놓은 듯 다양하게 반짝거린다. 통통한 순대 옆에는 오징어 순대도 함께 미각을 자극한다. 초콜릿색 순대는 추억을 불러오는 서민의 음식이 아니던가. 불을 꺼도 식지않는 무쇠솥에서는 추어탕, 내장탕, 육개장의 구수한 냄새로 손님을 부른다. 설렁탕 냄새값을 내라하니 동전소리를 들려주었다는 김선달이 생각난다. 조선후기 우리나라 난전의 설렁탕집 풍경이 이러했을 것이다. 냄새뿐만 아니라 향기도 있다. 작은 화분의 선인장과 함께 무지개색보다 더 많은 색상들이 어우러진 꽃들은 저마다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어 마치 봄에서 여름을 향해 가는 듯 화사한 것이 아직 나목으로 둘러싸인 주변경관과 대비된다. 이런 장터를 오가는 분들의 표정이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