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논산훈련소의 아들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아들이 논산훈련소로 입소하는 날이 됐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입대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아들에게 “이 병장!, 밥 많이 먹게!” 하면 못마땅한 듯 고개를 가로졌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수 시간을 달려 도착한 논산 훈련소는 봄바람에 꽃잎이 눈처럼 휘날리는 아주 오래된 교육시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설이 현대식이었다. 특히 내무반과 식당이 깔끔했다.

 

세상에 태어나 21년 만에 집을 떠나가는 안타까운 1천800여 가족의 사연을 함께 하고 집으로 돌아와 허전한 마음으로 10여일을 보낸 어느날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아들의 군복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온 것이다.

 

군복을 입고 맨 앞줄에 앉아 ‘파이팅!“을 외치는 아들의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같은 중대원으로 만난 이 땅의 아들들이 모두가 한 집 아들인지 참 잘 생겨 보였다. 군복이 아들에게도 어울린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가슴 찡했다.

 

열흘 전을 회고했다. 그날 오후 1시30분에 연병장에 모였다. 1천800명이 넘는 장성한 아들들이 모였다. 가족을 포함하면 1만 명이 넘었다. 21년 전 득남하고 좋아했던 분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소식, 여성 대령이 연대장이었다.

 

그녀는 스탠드를 향해 “여러분의 장한 아들을 잘 훈련시켜 훌륭한 군인으로 육성하겠습니다.”고 말했다. 우리 부모들의 귀에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듬어 안겠다”고 들렸다.

 

 

입소 후 수일이 지나자 전화가 왔다. 아들의 목소리였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묻기만 하고 답을 듣지 못했다. 아들은 잘 있다고 말했다.

 

고마울 뿐이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건강하겠구나 생각했다. 우체국 택배처럼 깔끔하게 포장된 2개의 박스를 받은 아내는 혼자서 울었을 것이다.

 

사실 며칠 전 아내에게 전화가 왔었다. 눈이 퉁퉁 부어서 병원에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젊은 중대장이 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 주려고 엄마에게 전화 연결해 주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아내는 1998년에 폐지됐다가 13년만에 부활된 ‘가족 면회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스박스를 닦고 김밥용 김을 챙기고 준비할 품목을 메모하기 시작한다. 메모지 품목수가 15개를 훌쩍 넘어가고 매일 늘어난다.

 

“흔히들 요즘 군대 좋아졌다. 나 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말하지만 정말로 2011년 대한민국 군 훈련소는 시설도 좋고 IT도 장난이 아니고 살아 움직이는 홈페이지를 만날 수 있다. 훈련일정을 알려주고 무슨 훈련을 받고 있을지 상상도 가능하다.

 

그리고 매일 한번 이상 인터넷 편지를 보내고 있다. 아들은 엄마와 아빠가 경쟁적으로 보내주는 편지를 읽기에도 힘들 것이다. 3주쯤 지나니 아들이 종이 한 장을 빼곡하게 채운 편지를 받았다. 인터넷과 핸드폰은 아직 접근금지다.

 

면회가서 아들을 만나면 어떻게 안아주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즐거운 고민을 하는 중이다. 결국 아빠가 군대간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태워다 주고, 편지 쓰고, 오는 전화 받고, 면회 때 좋아하는 음식과 음료수를 싣고가는 차를 운전하는 일 뿐이다. 이런 일이 주어져서 행복하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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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