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명이 발전하고 세상이 변화하면서 어린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해도 젊은이들이 귀 기울이지 않는 시대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10년 간격으로 보이지 않는 벽돌벽을 두고 사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방송국의 패널조차 앵커와 거리를 두고 그 사이에 아크릴 투명 격실을 만들어 나만의 공간에서 토론을 하고 세상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틈새만으로도 마음이 답답한데 세상은 온통 장벽이 가득합니다. 그러다보니 1960년대에 전기·전화가 없던 시절의 농촌 모습을 서서히 잊어버리고 만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를 이곳저곳에 정리하다가 한 권의 책으로 모았습니다. 그냥 세월 지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는데 기초가 되었던 그 시절 그 당시의 이야기를 몇 가지 기록해둔 자료입니다.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흐르는 것이 안타까운 시기가 되어서야 정신 차리고 이 글을 적어보고 있습니다. 장문을 정리하다 보면 추가하거나 수정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몇 가지 편리한 기능을 알려드리겠습니다. 250쪽에 달하는 파일을 정리하면서 오늘까지 작업한 곳에 표기를 해 둡니다. 刻舟求劍(각주구검)이 아니라 정확하게 이전의 작업을 종료한 지점에 편하게 3333을 입력해 둡니다. 3자
오산시에 개장한 '맑음터공원 캠핑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캠핑장은 까산이(까마귀)존에 잔디사이트 4인용 33개, 매화존 에 데크사이트 4인용 20개 등 텐트 53개와 캐러밴 4동이 설치됐다. 오산시가 시조를 비둘기에서 까마귀로, 시화를 개나 리에서 매화로 바꾸어 까산이존과 매화존이 설치됐다. 오산의 '맑음터공원 캠핑장'은 오산천변 환경사업소 부지에 마련되었다. 환경기초시설인 하수처리장 주변에 야영장을 조 성하는 프로젝트가 추진되자 초기에는 '말도 안 된다'며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시 공무원들은 선진사례를 조사하고 자료를 연찬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 추진했고 이제 성공적으로 공 사를 마치고 만석, 만실을 앞두고 있다. 과거에 캠핑은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여겼다. 1970년대 시골에 는 검정 미제(美製)천으로 텐트를 만들고 석유 버너에 밥을 해 먹으며 10일 이상 야영을 하는 청년들이 많았다. 당시 캠 핑은 무전여행과 한 조를 이뤄서 청춘들의 번뇌를 삭이는 과 정이었다. 요즘에는 1박2일이나 2박3일 동안 현대적 장비를 갖추고 안 전한 곳에서 캠핑을 하는 젊은 부부가 많다. 자라나는 어린 이, 생각이 깊어지는 중고생들에게도 부모와 함께하는 '캠핑 장 1박2일'은
지난해 말 39년 8개월 공직을 마감하게 되었을 때 마음속 흔들림과 당혹함이 적지 않았는데 어느 날 새벽 1시에 잠에서 깨어나 손에 잡은 책이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牧民心書(목민심서)’로 흔들림을 잡은 바 있습니다. 제도의 개혁 원리를 말하는 經世遺表(경세유표), 형법서 흠흠신서(欽欽新書), 그리고 목민관, 즉 현대의 공직자가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인 목민심서를 ‘1표2서’라 하며 1762~1836년 74세 일생 동안 심혈을 다하신 508권 茶山(다산) 선생님의 저서 중 壓卷(압권)입니다. 목민심서를 잡고 이리저리 방황을 하다가 만난 활자는 바로 ‘解官(해관)’이었습니다. ‘관직이 교체되어도 놀라지 마라. 수령직은 교체됨이 있는 것이니 교체되어도 놀라지 않고 관직을 잃어도 연연하지 않으면 백성이 그를 존경할 것이다. 평소에 문서와 장부를 정리해 두어서 청렴하고 명백하게 하여 후환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지방행정 기관의 공무원에 대한 인사는 여건상 단기간에 진행됨이 현실이니 현재 공직에 몸담은 1962년생쯤 나이에서 다산 선생님의 ‘해관’을 생각하고 그 글을 읽으면서 공감해 봄직하다 하겠습니다. 또한 목민심서에서 다산은 선배
다음은 오리잡기 입니다. 요즘 가창오리떼가 군무의 멋을 보여줍니다만, 과거에도 저수지에 오리떼가 날아왔습니다. 사람팔자 뒤훔박 팔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박이란 풀섭이나 젖은 지붕위에서 영그는 흥부놀부전에 나오는데요 한여름을 지내고 가을에 그대로 굳어지면 하늘을 본 반쪽은 뽀시시하고 바닥에 눌린 쪽은 쭈구렁하고 검버섯이 가득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흰쪽면과 검버섯면을 갈라서 각각 말려서 바가지 제품을 완성하게 되는데 이때 뽀시시한 쪽은 탈이나 조각품의 소재가 되고 최소한 물바가지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만, 검버섯면은 좀 수준 낮은 분야로 배속되거나 박터지기 게임의 희생양으로 팔려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팔자를 뒤훔박 팔자라 합니다. 남편을 잘 만나고 못 만나고, 아내를 잘 만나고 못 만나고, 사장을, 상사를, 동료를, 후배를, 그 누구를 어찌 만나느냐에 따라 본인의 팔자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이 뒤훔박에 사람의 얼굴을 양면에 그린 후 저수지에 던져넣습니다. 둥둥 떠다니는 농구공처럼 생긴 뒤훔박이 처음에는 사람인줄로 알고 오리들이 피하다가 자꾸 접하다 보니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발로 툭툭 하면서 수구놀이를 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오리 12마리씩 두 편으로 갈라서
꿩의 암수는 구분이 있습니다. 새타령에 나오는 까투리는 암컷입니다. 까투리는 ♀이고 숫꿩♂은 장끼라고 부릅니다. 농악에서 깃대에 매단 멋진 깃털은 바로 숫꿩 장끼의 꼬리털입니다. 꿩은 성질이 급해서 산길 풀섭을 지나가는 나그에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푸다낙하고 날아갑니다. 이 꿩을 몇 마리 잡아보겠습니다. 재봉틀에 매단 송곳돌리기로 흰 콩 가운데를 동그랗게 파낸 후 ‘사이나’라는 약을 미량 넣은 후 촛물로 봉합합니다. 사이나는 극약이므로 아무에게나 판매하지 않지만 1960년대에는 은밀히 구매가 가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재봉틀이 있는 집 아들에게만 가능한 싸이나 꿩잡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싸이나 극약을 내장한 사이나콩을 이른 새벽 꿩들이 자주 날아와 먹이를 찾는 양지바른 산기슭에 흰 종이를 깔고 3알씩을 놓아줍니다. 그리고 산기슭에 숨어서 꿩이 날아오기를 기다립니다. 이 작업은 폭설이 내린 다음날이 좋습니다. 동장군이 활개를 치는 겨울날 효과적인 작전입니다. 먹이를 찾아 날아온 꿩은 까투리와 장끼가 있습니다. 이들이 한겨울 폭설속에 배가 고픈 차에 맛있는 콩을 발견하고는 잠시 주변을 경계하는 척 하다가 이내 낼름널름 먹어줍니다. 그리고 몇 분 후 스르르 잠이든 꿩
2014년 신문방송 스크랩 기술은 첨단입니다. 신문 스크랩은 화면에 들어가 원하는 기사를 클릭만 하면 곧바로 그 기사문을 다운 받을 수 있고 이 파일을 편집하고 게시판에 올리고 프린터로 출력도 할 수 있습니다. TV방송내용도 인터넷 기사를 다운 받거나 아예 동영상을 내려받아 보고서로 제출할 수도 있습니다. 참으로 편리한 시대이고 시공을 초월하는 첨단 과학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1988년에는 종이신문과 TV방송, 라디오 방송이 주류였고 대부분 아나로그방식으로 스크랩을 하여 보고서로 제출하였습니다. 공보실 직원들은 아침 7시전후에 출근하여 신문 한아름을 안고 사무실에 도착하면 신문별 담당이 있어서 1면부터 32면까지 살펴 경기도에 대한 기사를 찾아내야 합니다. 스포츠면에 '경기'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를 보고도 '경끼'를 하는 것입니다. 초임 공무원은 스포츠면 '경기'가 나온 기사를 칼로 오려온 경우도 있습니다. 종이신문의 경기도 관련 기사를 모두 찾아내 정리하고 나면 이번에는 TV보도 내용을 적어야 합니다. 당시에는 인터넷으로 TV내용을 전해주지 못하므로 뉴스가 훅~~~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VTR실이 있어서 녹화된 부분을 찾아내야 하지만 당
1988년 7월 4일에 경기도청 문화공보담당관실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공보계, 보도계, 문화재계, 문화계 등 4개 부서가 있는데 각각의 업무에 열중하는 가운데 보도계장님과 차석은 기자실을 사무실처럼 쓰시므로 사무실 자리에 앉으시는 시간은 아침, 점심 합쳐서 30분 이내입니다. 공람문서에 싸인하시고 회계문서에 결재하시는 시간이외에는 늘 기자실입니다. 기자실에서 그냥 눌러 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입니다. 중앙지 지면에 힘들게 바위산 틈새에 작은 산도라지처럼 자리잡은 명함 크기의 기사도 잘라서 복사지에 여러장을 첨부한 후 기사보다 더 큰 신문명 고무인을 찍고 (9)면이라고 적습니다. 지방지는 면톱의 경우 복사지를 넘게 차지하므로 밖으로 삐져 나가는 제목의 일부를 접어야 합니다. 그래서 스크랩하기 편하게 박스처리한 기사가 참 좋습니다. 사설 2건이 행정관련이면 정말로 편리합니다. 데스크컬럼도 스크랩에 적합합니다. 공무원 간부들의 기고문도 환영입니다. 이런 기사가 사진과 함께 나는 과정은 쉽거나 재미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여 스크랩을 마치면 어제 현장에 다녀온 사진을 받습니다. 같은 행사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임사빈 도지사님이 촬영된 두장의 사진과 그 행사
오늘 우리 부서에서 큰 행사를 한다고 가정을 하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점검을 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이 행사가 회사를 위한 것인지 다른 기관이나 단체에 상호부조의 정신으로 돕는 일인가를 판단해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오늘 이 행사의 주최, 주관, 진행이 우리가 감당하는 일인지 다른 기관을 돕는 것인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우리가 중심이고 주인이고 주최측이며 잘해도 우리 탓, 못나가도 우리의 책임이라는 결론에 이르면 정신 똑똑히 차리고 한번 두번 점검해야 합니다. 우선 행사의 제목이 중요합니다. 기사문이 우리가 준비한 행사명으로 기사 제목을 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주최측의 네이밍에 관심을 갖고 기사 제목이 나올 것입니다. 물론 취재기자는 제목을 정하지 않고 편집부에서 결정합니다. 앞서 기관장님이 언론사, 특히 신문사 방문 인사하실 때 시간을 억지로 내서라도 옆방 편집부에 인사하시도록 동선을 잡으라 했던 바가 있습니다. 바로 기사가 나갈 때 제목은 이 편집부의 편집기자가 정한다는 사실을 알아두면 좋습니다. 다음으로 이 행사를 통해 수익이나 기쁨이나 공익적 가치를 얻는 분이 누구인가를 파악해 봅니다. 물론 대다수 공기관의 일이나 행사는 추진하는 만큼 공익
홍보·기획부서에 근무한다면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심정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보도자료는 각과의 행사나 행정실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로 내놓을 자료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요즘에는 우리 기관에서 보도자료를 낼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도자료가 될 수 있으며 기자들에게는 호재가 될 것입니다. 보도자료가 적은 이유가 기관장의 외유 때문인지 부단체장의 소극행정이 그 이유인지 아니면 간부들의 복지부동으로 인한 결과인지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감사기관의 강도 높은 사정방침이 행정을 위축시키고 실무자의 생각을 마비시키고 중간 관리자의 결정을 미루게 만드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3개월 이상 지지부진 늘어진 인사작업으로 인사 온통 피로도가 쌓이고 결국 행정의 진도에 큰 걸림돌이 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보도자료가 현격히 줄어든 것은 물론 각부서 문서발송 건수도 감소하고 발간실이 파리를 잡는 등 인사 지연은 공무원의 업무능력을 크게 감소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곧 인사가 있을 것이니 조금만 며칠만 미뤄보자는 생각일 것입니다. 며칠 후에 떠날 부서에서 새로운
홍보의 중요성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인 공무원들은 홍보의 중요성과 그 기능성에 대한 고려보다는 당장 홍보 전중후의 여러가지 힘든 과정때문에 홍보를 피하려 합니다. 급기야 공보부서 책임자로 근무하다가 부서를 이동하는 경우 일성이 보도자료를 내지 말라고 한답니다. 다른 부서의 홍보를 장려하고 강권하던 업무를 했지만 막상 새로운 부서로 이동하면 언론과 멀어지려 한다는 점을 언론인이 살펴야 하고 공무원도 고민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공직 상층부의 기류가 왜 우리의 업무를 언론에 알리는가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이 팽배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직자들은 자신의 일을 독점하고자 합니다. 다른 부서의 간섭을 거부하는 분위기에서 언론에 이를 알리고 싶지 않습니다. 언론의 긍정적인 보도가 나와도 간부 중에는 이 내용이 왜 언론에 유출되었는가를 따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 나와도 본전에 미달하니 차라리 보도자료를 내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홍보는 그 사업이나 시책이나 업무를 성공시키는 힘이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행정이 독점일수록 알려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행정 시책이 더 많은 수요자에게 알려져야 성공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