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님 집무실을 그때에는 官房(관방)이라 불렀습니다. 관방을 “벼슬아치가 일을 보거나 숙직하던 방”이라 사전에서 풀어줍니다만 1960년대 군수실을 관방이라 불렀고 방 주인은 ‘군수영감’이라 칭했습니다. 令監(영감)이라는 호칭은 지금도 공식, 비공식적으로 쓰이는 줄 압니다. 그 관방의 부속실 벽에는 관청의 모든 부서 사무실을 밝히는 작은 5촉짜리 등불을 켜고 끄는 스위치가 있었습니다. (사진) 부속실 스위치에 연결된 5촉 전구는 각 과 사무실의 천정 구석에 붙어있어서 아침 8시반에 군수 출근시각에 켜지고 저녁 6시반 퇴근시에 꺼졌습니다. 주로 낮을 밝히는 전구입니다. 비서실에 스위치는 있는데 비서실에서는 불빛이 보이지 조명장치이고 각 사무실입장에서는 스위치가 없는데 알아서 켜지고 꺼지는 '공무원들의 출퇴근을 지휘하는 등대같은 등불'이라 할 것입니다. 오래된 청사의 천정에는 지금도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전구(사진)의 숫자는 12가 아니고 1과 2 입니다. 1은 군수실 비서가 스위치를 내리면 꺼지는 등불이고 2는 부군수실 비서가 전원을 OFF되는 전등입니다. 저녁 6시20분부터 많은 공무원들이 저 숫자 1, 2 또는 12를 바라보면서 1번이 꺼지기를 기다렸
파도소리와 뱃고동소리가 헝가리무곡 5번을 연주하듯 빠르게 혹은 느리게 들리는 오후 갈매기들은 은유의 광장에서 출렁이는 붉은 연꽃 밭을 노래한다 한때는 빛과 어둠사이를 오가며 노을과 도리섬 등대를 사랑했다밀물이면 밀물이어서 좋다썰물이면 썰물이어서 좋다 사랑도 그리움도 떨어진 꽃잎 되어밀물과 썰물 따라 이리 저리 흩어진다파도는 푸른 꽃대 세우며 하얀 물꽃을 여기저기 피우고 있다 고깃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궁평항에서 수평선 위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 본다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세상사 모든 시름 날려 버린다 이제 5만 년을 달려 온 별빛을 따라 호모 사피엔스로 되돌아가는 일이다. 정겸 시인 1957년 경기 화성출생(본명 정승렬), 2003년 시사사 등단, 시집 '푸른경전', '공무원', '궁평항', 공무원문예대전 시, 시조부문 행정안전부장관상, 경기시인상 수상, 현재 칼럼니스트와 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로 활동 -시작메모- 헝가리무곡 5번은 우리 귀에 익숙한 무곡이다. 독일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브람스가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와 연주 여행을 하면서 1869년 헝가리의 무곡을 모아 편곡하여 발표했는데 그 중 한 곡이다. 영화 '과속 스캔들'과 '4월
어린시절 동네 어디에나 맑은물이 흐르던 그 시절 동네청년들이 그물을 들고 나서면 동작 빠르게 따라가야 한다. 형들은 오늘 고기를 잡으러 가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동네 사람들의 몸속에 칼슘이 부족하다는 신호가 온 것이 분명하다. 형들이 준비한 장비들을 살펴보자. 우선 찌그러진 양동이와 대나무 막대 2개와 망으로 구성된 그물 하나가 전부다. 개천을 따라 내려가면서 고무신을 벗고 바지를 정강이까지 걷어 올리면 준비는 다 된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고기잡이가 시작된다. 개천이 휘어져 뚝을 파고 들어가는 곳에는 긴풀이 함께 어우러져 물살에 흔들리면서도 억세게 버티고 있는데 이곳이 바로 그물을 대는 포인트다. 검정고무신을 양손에 든 다리 짧은 형은 아주 빠르고 능숙한 발놀림으로 고기를 몰아가고 키큰 형 둘은 장대처럼 서서 장대를 잡고 타이밍을 재고 있다. 그물을 드는 타이밍에는 대개 2가지가 있는 것 같다. 그곳에 사는 물고기 종류가 그물을 드는 타이밍을 결정하는 것이다. 보통의 붕어나 미꾸라지를 노릴 경우 그물을 올리는 일은 여유가 있고 고기잡기에 실패해도 그물 담당이 책망을 듣지 않는다. 고기를 모는 숏다리 형이 얼마나 빠르게 고기를 몰아왔느냐가 성공의 관건이기
무슨 일을 시작할 때 그 내용을 널리 알리는 방법 중의 하나가 ‘에드벌룬(adballoon)’이다. 아파트를 분양하거나 체육대회를 하는 운동장에는 어김없이 큰 글씨를 쓴 ‘프랑카드’를 커다란 풍선에 매달아 올리곤 한다. 그래서 무슨 일을 시작하려 할 때 그 대강을 알리거나 넌지시 소문을 퍼트리는 것을 보고 ‘에드벌룬을 띄운다’고도 한다. 2차 대전때 어느 전장에서 심리전을 벌이기 위해 풍선에 적군의 사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의 글을 매달아 올렸다고 한다. 그러자 상대측에서 총을 쏘아 풍선을 터트리는 등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에드벌룬을 띄우는 측에서 아이디어를 냈다. 작은 수소 풍선 여러 개를 그물망에 담아 에드벌룬을 올렸다는 것이다. 여러 개의 작은 풍선은 그만큼의 총알이 날아가야 추락시킬 수 있었고 조준이 어려워 1개의 커다란 풍선을 올렸을 때보다 긴 시간 에드벌룬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축제나 축하행사, 환영대회에 등장하는 것이 오색풍선이다. 구호에 맞추어 풍선이 오르고 비둘기가 날고 색종이 가루와 테이프가 뿌려진다. 그러나 하늘 높이 올라간 풍선이 시간이 지나면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해 터저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수업 종이 울린다. 누구도 암흑의 시월이 올 줄 몰랐지. 미술 시간은 그 시절 제일 난처한 시간이었지. 스케치북 없어 교실 뒤편에 통금시간처럼 앉아 있던 미술 시간 선생님은 수업 시작과 동시에 준비물 검사를 했지. 눈 지그시 감고 생각하면 예닐곱 명은 대 뿌리에 손바닥을 갖다 댔지. 선생님은 한쪽 손으로 늘 때렸지. 우리는 원 밖에 있었고 선생님의 한 손은 늘 바지 속에 있었지. 후끈거리는 손으로 짝지와 장난을 쳤지. 주로 육성회비 못 낸 얘들 사정없이 없는 돈 가지러 집에 보냈지. 아무도 없는 집 가져올 돈 없는 집에 있다가 미안하고 미안해서 며칠 수업과 헛돌고 있었지. 시월의 호각 소리에 골목으로 뛰어드는 아이들도 교사들도 무기력했지. 준비물과 육성회비 때문에 늘 원밖에 머물렀지. 그래도 아이들은 알고 있었지. 암흑 속 도드라지는 건 군화와 표어라고 당신의 무기력한 손도 늘 원 밖에 있다고 그러기에 아이들은 아무런 반항 없이 미술 시간에 암흑과 원이라는 걸 배웠지. 지금 내 손바닥을 붉게 때리네. 갈까마귀 울음 같은 검은 종소리가 박우담 시인 1957년 경남 진주출생 2004년 《시사사》 등단, 《시와 환상》 주간, 제2회 형평문학상 지역문학상 수상 시집
어렸을 때 어른들의 심부름을 하면서 가장 갈등을 느끼는 것이 숫자의 문제와 이런 저런 말씀을 전해드리라는 말의 내용이었다. 봄에 못자리에서 제논으로 옮겨심기 위해 작업(시골에선 ‘모를 찐다’고 했다)을 하게 되는데 어른들은 ‘짚단 서너개만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시킨다. 3개 또는 4개인데 5개를 가져가도 별다른 말씀이 없으시고 때로는 2개를 가져가되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농사를 짓는 여러 가지 잡다한 일에서도 숫자의 개념을 아주 약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일을 도우면서 농사관련 숫자에서 틀린 기억이 없다. 그리고 가을에 추수를 마치면 시루떡을 만들어 집안 여러 곳에 잠시 놓아둔다. 대청마루, 우물가, 장독대, 짚으로 만든 터주대감 앞에도 놓았다가 가져오고 화장실에도 잠시 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그릇에 담아 이웃에 돌린다. 가끔 떡 나르는 심부름을 가곤 했는데 떡을 받아든 할머니, 아주머니들은 한결같이 ‘잘먹겠다고 전해라’하신다. 하지만 한번도 그분들의 당부 말씀을 어머니께 전해드린 일이 없으며 말씀을 전해드리지 않은 일로 인해서 책망을 들은 바도 없다. 사회생활 중에도 애매한 표현이 많이 있다. 그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면
수해가 극심했던 강원도지역을 가보니 가을 추수는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산기슭을 붉고 풍성하게 물들이고 있는 감은 아직 이슬이 내리지 않아 이를 철이기도 하겠지만, 부족한 농촌인력의 실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주렁주렁 풍성하게도 열려있다. 태풍과 함께 밀려온 폭우로 인해 여기저기 상처가 남아있고 개천 주변의 논과 밭은 말 그대로 상전벽해의 상황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자연은 파괴만을 일삼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결실을 맺고 다음 해를 준비하는가 보다. 모래속 깊이 발을 담근 벼포기는 머리를 내밀어 가을을 확인하고 흙먼지 속에서도 채소들은 새로운 잎새를 하늘을 향해 펼치고 있다. 줄기가 꺽인 참깨 줄기에도 결실을 위한 몸부림이 보이고 늘어진 호박넝쿨도 새싹을 티운 애호박을 길러냈다. 작물들이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위세에 눌릴 일만도 아니라는 자신감도 얻었다. 자연은 스스로 파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은 동시에 스스로 치유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저씨와 할아버지의 손길을 기다리는 나무가 또 있다. 붉은 잎새는 모두 털어내고 잔가지 농부의 등줄기처럼 휘어진 피로
아침 TV뉴스를 보니 강원도 설악산을 관광하는 것만으로도 수재민을 돕는 일이 된다는 생소한 보도가 나왔다. 수해를 입었지만 응급복구를 마쳤기 때문에 등산로도 연결되었고 음식점을 비롯한 편익시설도 새롭게 단장하고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년에는 1만5천명이 다녀간 이곳에 올해에는 수해로 인해 3천명 정도만 다녀갔다고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수해지역에 관광을 가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관광객이 적은 것으로 보이나 오히려 수해지역에 관광을 가는 것이 수재민을 돕는 일이라고 밝혔다. 우리는 그동안 수재민 돕기 골프대회는 안되고 수해성금 모금을 위한 축구경기는 된다는 식의 보도에 익숙해 있다. 재난이 극심해도 프로골퍼의 경기는 장시간 중계방송이 되지만 일반인의 골프는 르포나 카메라출동의 표적이 되고 있다. 골프나 축구나 스포츠인 것은 같지만 대중성의 정도에서 차이가 있고 그래서 다른 시각으로 보이는 것일까. 여하튼 이 TV방송국의 기자는 강원도민을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강원도 관광을 홍보하는 뉴스를 내보냈다. 참으로 잘한 일이다. TV도 그렇고 신문도 그러하듯이 최근의 우리 언론은 대부분 우리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지면을
1970년대 후반에 시골마을에 전화가 가설되었다. 우체국에서 처음으로 시골동네에 전화가 가설된 곳은 이장님 집이었다. 리(里)단위로 1대씩만 보급되었기 때문에 이장님집에 전화기가 설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래서 이장님댁은 정보의 현장이 되었다. 서울이나 외지에 사는 친척에게 전화를 하려면 4㎞이상을 차를 타거나 걸어가야 했던 것을 동네 이장님댁에서 전화를 통화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안해진 것인가? 또 외지에 사시는 친척이 전화를 해오면 10여분 이내에 받을 수 있으니 문명은 참으로 인간을 편안하게 해 주는 기기로 이해되었다. 외지에 사시는 분이 고향동네 친척에게 전화를 하려면 우선 리장님을 통해야 한다. 전화를 받으신 이장님은 전화를 끊고 동네 확성기를 통해 알려준다. “아무개는 서울의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으니 이장집으로 오기 바랍니다.” 방송을 들은 동생은 곧바로 이장님댁으로 달려가고 잠시 기다리면 서울 사는 형이 다시 전화를 걸어오면 통화가 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장님은 대변인이 되기도 한다. “아무개야! 서울 형이 이번주 일요일에 벌초를 하자고 한다.” 방송을 들은 동생은 더 이상 형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일요일에 벌초를 가면 되는 일이다
제주도에는 돌이 많았고 바람이 많이 분다.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 제주를 설레이는 마음으로 처음 다녀왔다. 김포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50분만에 제주도 해안선을 따라 낮게 비행하더니 사뿐히 공항에 내려 앉아서는 이리저리 활주로를 움직여 승객을 내려주었다. 제주공항은 사진에서 보던 그 모습이었다. 곧바로 서귀포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차창쪽으로 붙어 앉아서 제주도 거리를 감상했다. 즐거운 일이었다. 잘 정돈된 시가지는 국제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고 스위스 풍의 시가지는 이곳이 섬이라는 사실을 망각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곳이 섬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곧바로 자동차 번호판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틀동안 시내를 다니면서 제주 이외 지역의 자동차 번호판을 본다면 행운을 얻을 것 같아서였다. 어린시절 네잎크로버를 찾던 심정으로 이틀동안 자동차들을 살폈다. 다음날까지 수백대의 차를 보았을 것인데 행운이 따르지 않았는지 관찰력이 부족했는데 타지역 차번호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다음 날에는 제주 월드컵 경기장을 관람했다. 이 경기장의 관람석은 42,256개다. 수원 경기장 관람석이 43,288석이니 1,032석 더 많다. 소개 책자에 보니 환경을 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