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동네폰이 여유를 배우자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70년대 후반에 시골마을에 전화가 가설되었다. 우체국에서 처음으로 시골동네에 전화가 가설된 곳은 이장님 집이었다. 리(里)단위로 1대씩만 보급되었기 때문에 이장님집에 전화기가 설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래서 이장님댁은 정보의 현장이 되었다.

 

서울이나 외지에 사는 친척에게 전화를 하려면 4㎞이상을 차를 타거나 걸어가야 했던 것을 동네 이장님댁에서 전화를 통화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안해진 것인가? 또 외지에 사시는 친척이 전화를 해오면 10여분 이내에 받을 수 있으니 문명은 참으로 인간을 편안하게 해 주는 기기로 이해되었다.

 

외지에 사시는 분이 고향동네 친척에게 전화를 하려면 우선 리장님을 통해야 한다. 전화를 받으신 이장님은 전화를 끊고 동네 확성기를 통해 알려준다.

 

“아무개는 서울의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으니 이장집으로 오기 바랍니다.” 방송을 들은 동생은 곧바로 이장님댁으로 달려가고 잠시 기다리면 서울 사는 형이 다시 전화를 걸어오면 통화가 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장님은 대변인이 되기도 한다. “아무개야! 서울 형이 이번주 일요일에 벌초를 하자고 한다.” 방송을 들은 동생은 더 이상 형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일요일에 벌초를 가면 되는 일이다.

 

그러던 어느날, 이장님이 바뀌었다. 모든 서류와 비품은 인계되었지만 전화기는 넘겨줄 수가 없었다. 전화 설치당시에는 이장님 앞으로 나온 전화였지만 실제로는 개인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논의를 거듭한 결과 해결책이 나왔다. 전 이장님댁 방송시설은 그대로 두고 새로되신 이장님댁에 방송장비를 추가로 설치하여 스피커에 연결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각 가정의 대소사가 전화를 매체로 하여 동네방송을 타는 관계로 온동네 사람들이 알게 되었는데, 전(前) 이장님과 신(新) 이장님댁에 마이크가 설치되면서 모든 행정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면사무소에서 긴급히 리장님 회의를 하려면 전이장님댁에 전화를 했고 전화를 받은 전이장님은 동네 방송을 통해 신이장님에게 면사무소의 이장단 회의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날 오전에 리장님이 회의참석을 위해 면사무소에 가시는 것이 자연스럽게 알려지고, 호적, 주민등록을 발급받을 주민들은 리장님댁에 가서 신청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면사무소→전이장→신이장, 그리고 동네사람들에게 면사무소 리장단 회의개최 사실을 알리는 과정은 참으로 여유롭고 흥미롭다. 전화를 받은 전이장님은 마이크를 잡고 “이장님께 알립니다. (대부분 2회반복함) 내일 오전 10시에 면사무소에서 이장님 회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동네사람들은 이제나 저제나 내일의 이장회의 개최소식을 신이장이 들으셨는지 궁금해 하기 시작한다. 일정하지는 않지만 신이장님이 집에 계신 경우에는 5분이내일 것이고 뒷산에서 일을 하셨다면 30분도 걸리고 그이상도 걸릴 것이다.

 

마침 신이장님이 집에 계신 경우에는 방송이 끝나자 마자 답방(答辯放送)이 흘러나온다. “네 이장님!(전임 이장님에 대한 예우) 잘 알았습니다.”

 

이제는 집집마다 일반전화가 있음은 물론 개인전화기가 가족수만큼 보급되어서 아침이면 본인 전화기 찾는 일로 바쁘다고 한다.

 

정말로 편리한 개인전화기의 고마움을 알고 공중전화기 박스에서 개인전화를 쓰는 서글픈 모습은 없어야 겠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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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