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조홍시가(早紅枾歌)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수해가 극심했던 강원도지역을 가보니 가을 추수는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산기슭을 붉고 풍성하게 물들이고 있는 감은 아직 이슬이 내리지 않아 이를 철이기도 하겠지만, 부족한 농촌인력의 실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 주렁주렁 풍성하게도 열려있다.

 

태풍과 함께 밀려온 폭우로 인해 여기저기 상처가 남아있고 개천 주변의 논과 밭은 말 그대로 상전벽해의 상황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자연은 파괴만을 일삼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결실을 맺고 다음 해를 준비하는가 보다.

 

모래속 깊이 발을 담근 벼포기는 머리를 내밀어 가을을 확인하고 흙먼지 속에서도 채소들은 새로운 잎새를 하늘을 향해 펼치고 있다.

 

줄기가 꺽인 참깨 줄기에도 결실을 위한 몸부림이 보이고 늘어진 호박넝쿨도 새싹을 티운 애호박을 길러냈다. 작물들이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위세에 눌릴 일만도 아니라는 자신감도 얻었다. 자연은 스스로 파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은 동시에 스스로 치유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저씨와 할아버지의 손길을 기다리는 나무가 또 있다. 붉은 잎새는 모두 털어내고 잔가지 농부의 등줄기처럼 휘어진 피로속에서도 풍성한 가을을 짊어지고 있는 감나무가 그것이다.

 

산자락 논둑과 밭둑사이, 초가집 뒤편 산자락과 장독대를 절묘하게 경계지으며 서 있는 감나무는 우리 농민들과 참으로 오랫동안 함께 한 귀뜨라미 만큼이나 친숙한 가을의 전령사다. 그래서 짧은 감성, 메마른 서정으로 시조 한수를 찾아냈다.

 

반중(盤中)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 하다마는 /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노라.

 

 

해설을 찾아보니 “쟁반에 놓인 붉은 감이 곱게도 보이는구나! 비록 유자가 아니라도 품어갈 마음이 있지마는, 품어가도 반가워해 주실 부모님이 안 계시기 때문에 그를 서러워합니다.”이다.

 

귀한 음식을 대했을 때 그것을 부모님께 갖다 드렸으면 하는 것은 당연한 심정이다. 그러나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고 그것을 갖다 드리지 못하는 서운함을 노래하고 있다.

 

부가 생존해 있을 때 효도하라는 風樹之嘆(풍수지탄, 효도를 다하지 못했는데 어버이가 돌아가시어, 효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슬픔을 이르는 말)의 교훈이 담긴 시조이다.

 

'早紅柿歌(조홍시가)'라 이름하는 이 시조 작자 박인로 선생(1561 -1642)이 선조 34년 9월에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을 찾아가 조흥시의 대접을 받았을 매, ‘회귤(懷橘)의 고사(故事)’를 생각하고 돌아가신 어버이를 슬퍼하여 지은 효도의 노래이다.

 

‘회귤(懷橘)의 고사(故事)’는 삼국 시대 오군(吳郡) 사람 육적(陸績)이 여섯 살 때에 원술(袁術)을 찾아갔더니, 원술이 귤 세개를 먹으라고 주었는데, 육적이 그것을 품속에 품었다가 일어설때에 품었던 귤이 방바닥에 떨어졌다.

 

원술이 그 연유를 물은즉, 어머님께 드리려고 품었다고 대답하더라는 고사인데, 회귤의 고사는 곧 효도를 뜻한다.

 

오랜만에 강원도 단풍 구경을 하면서 잎새 모두 떨어진 감나무를 보면서 잠시나마 먼 곳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것은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많은 혜택 중 하나였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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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