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목기좌와 소좌 중좌 상좌 대좌 과거 공무원 직급에 행정직에는 5급에 사무관이 있고 기술직렬 5급에 ‘기좌’가 있었습니다. 내무부 토목5급으로 근무하시던 간부가 서울시내에서 不審檢問(불심검문)을 받았습니다. 자신있게 공무원증을 내보이자 나이 어린 전경이 ‘기좌’라는 직위를 보고서 ‘아저씨는 북한에서 왔나요?’라는 어처구니 없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1983년2월25일 북한에서 이웅평 대위가 미그 19기를 몰고 귀순하여 수원비행장에 내리는 ‘실제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신문 방송에 북한군 전투기 조종사 이웅평 대위 귀순 소식이 大書特筆(대서특필)되었습니다. 그런데 북한군 장교 계급에는 소좌, 중좌, 상좌, 대좌가 있다는 내용도 언론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내무부 간부를 검문한 초보 전경은 공무원증에 ‘토목기좌’라 적혀 있으므로 북한군 신분증으로 오해를 하고 북한에서 왔는가 물은 것입니다. 이 토목기좌 간부는 이른바 ‘소원수리’(訴願受理, 불법 부당한 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한 구제요구 및 불합리하고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한 시정요구를 건설적인 부대 운용을 위해 검찰관이 받아서 처리하는 행위)를 통해 당시의 당혹스러운 사례를 소개하면서
김선태 홍보맨과 임사빈 도지사 충주시청의 홍보맨으로 유명한 김선태 주무관이 공직 7년만에 6급에 승진했다. 공무원 9급으로 공직에 들어와 6급에 승진하는데 소요되는 기간은 대략 15년이라는데 2016년 1월에 9급으로 입직한 김 주무관은 다른 공무원보다 6년 빠른 7년만에 승진했다. 주사는 사무관 바로 다음 단계의 직위이다. 어린시절 마을에서는 50세 전후의 어르신을 주사라 호칭했다. 공직에 들어가니 50대 중후반의 선배공무원이 주사이고 부면장님도 6급 주사였다. 9급 공무원에서 1급 경기도지사에 이른 분이 있다. 임사빈 경기도지사이다. 1935년생이고 1999년 8월에 63세로 별세했다. 1987년 12월부터~1990년 6월까지 제22대 경기도지사로 일했다. 88올림픽을 준비하고 전국체전에서 열무김치국수를 제안하여 도민들의 칭송을 들었다. 임두목이라는 이름으로 도출신 도백으로서 인기가 높았다. 내무부 공보관으로 일할때 기자와 친밀했는데 다른 부서로 승진하여 이동하니 그 기자들이 공보관을 버리고 임사빈 국장실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말술에 말씀도 잘하신 행정의 달인이고 뚝심있는 공무원이었고 국회의원을 하였으며 도지사 후보로 나선 바 있다. 당시 공보실에 근무
해외여행이 일반에게 개방되던 시절에 마음씨 착한 시골 할머니가 비행기 이코노미석에 탑승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몇 시간 지나서 기내식을 먹고 화장실에 들러서 돌아와야 하는데 점보비행기라서 길을 잘못 들었다. 잠시 다른 칸으로 가서 커튼을 열고 들어가니 큰 의자가 여러 곳 비어있었다. 비즈니스석으로 간 것이다. 할머니는 지금까지 좁은 좌석에서 불편하였던 것을 생각하면서 자신을 差別(차별)대우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즈니스석에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비즈니스석 승객이 돌아오니 할머니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 승무원에게 상황을 말했다. 급하게 달려온 승무원이 할머니에게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시도록 안내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搖之不動(요지부동)이다. ‘나를 불편한 자리에 앉게 하고 자기들만 편안한 의자에서 쉬면서 즐기고 있다’며 오히려 逆情(역정)을 냈다. 팀장이 오고 실장이 와서 이야기해도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승무원들이 더이상 어쩌지 못하고 右往左往(우왕좌왕)하자 옆자리 승객이 승무원에게 자신이 나서보겠다 말했다. 차분히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번쩍 일어나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할머니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면이 2019년 10월에 퇴계원읍으로 승격했다. 인구 29,896명에 이장님이 29명이다. 읍면중에 전국에서 가장 작은 면적으로 생각한다. 여의도면적(2.9㎢)의 1.12배인 3.25㎢다. 서울과 경계하고 있고 사드부지와 교환하여 대기업에 제공된 군부대 토지가 퇴계원읍에 있다. 퇴계원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몇가지 있다. 첫 번째 유래는 도제원이 있었기 때문에 '도제원' 또는 '토원'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퇴조원 또는 퇴계원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음으로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환궁하던 중, 이곳 냇가에 이르러 삼각산의 세 봉우리를 보자 분이 복받쳐서 다시 풍양궁으로 물러가 있었으므로 '퇴조원'이라 하다가 '퇴계원'으로 변하였다 한다. 내각리에 연안이씨 이조온이라는 이의 아들이 ‘퇴조원’이 아버지 이름과 비슷하여 귀에 거슬리므로 ‘퇴계원’으로 고쳐 부르게 했다는 설명이 읍사무소 홈피에 나온다. 마지막으로, 예종(睿宗)이 선왕 세조(世祖)의 광릉(光陵)에 참배차 행차하는데 교통이 불편하여 길을 새로 만드는데, 냇가를 길로 닦기 위하여 밖으로 물리쳤기 때문에 退溪(퇴계)원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다. 위 세 가지 스토리
이번에도 조선 22대 왕 正祖(정조)는 민복을 하고 민정을 살폈다. 경호실장만 대동하고 지금의 남태령 고개를 올라가 땀을 식히고 있는데 저편 밭에서 촌로가 김을 매고 있었다. 왕은 민정 시찰길에 백성을 만나자 잠시 쉬면서 말을 걸었다. “노인장, 잠시 쉬면서 일하세요. 그런데 이 고개 이름이 뭐요?” 밭 일을 하던 노인은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정조와 마주했다. 그런데 곧바로 답하지 않고 잠시 궁리를 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나서 노인이 말했다. “남태령이라 하오.” 이때 옆에 있던 경호실장이 나섰다. “이분이 누구신 줄 알고 거짓을 아뢰는가?” 노인은 여유롭게 답했다. “누구신지 다 아는 바입니다. 그래서 상서롭지 못한 이름을 곧바로 아뢰지 않았던 것이지요. 제가 급한 마음에 새롭게 고개이름을 지어서 남태령이라 고하였나이다.” 왕이 고개 이름을 물었을 때 ‘여우고개’라 하지 않고 ‘남태령’이라 한 데서 유래된 이 고개는 서울과 과천을 연결하는 고개로서 당시로서는 한양을 기점으로 ‘남쪽으로는 가장 큰 고개’였던 것이다. 그래서 노인은 ‘南泰嶺(남태령)’이라 답했다고 한다. 이제 남태령을 차를 타고 넘나들고 전철을 타고 지나갈 때에는 민생을 살피고 백성과 어려움
조선 정조(1752~1800)시대로 추정되는 시기에 시골에서 풍년 농사를 수확한 것이 임금님 덕이라는 생각을 한 농부가 수수엿을 만들어 짊어지고 한양궁궐 앞에 도착했다. 임금님께 감사 인사를 드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城(성)은 높고 넓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병사들은 임금님께 엿을 드린다 하니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하며 들어 보내지 않았다. 이틀을 굶고 지쳐 파김치가 된 농부는 성곽 한구석에서 슬피 울었다. 저녁에 민정 시찰에 나선 왕은 성곽 한편에서 구슬프게 우는 백성을 발견하였으므로 당연히 살펴보게 되었다. 평범함 양반 복장을 한 임금과 대화를 시작했다. “그대는 무슨 사연이 있어 이렇게 늦은 시각에 예서 울고 있소?” “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인데 풍년이 들어서 임금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수수엿을 가져왔는데 전할 길이 없어서 울고 있습니다.” “거참 장하고 고마운 일이군요. 그대가 임금에게 이 엿을 올리면 벼슬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인데 고을 원님 벼슬을 내리면 받겠소?” “예, 감사한 일이지요. 고을 원님 벼슬을 받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어서 임금님과 농부의 벼슬 이야기는 관찰사, 참판, 판서를 지나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에
공직을 마칠 때 그 허전함의 공간이 크고 넓었다. 명예퇴직을 결정한 그날 늦게 귀가하여 서재를 정리하다가 다산 선생님의 목민심서가 수록된 소책자를 발견했다. '마음으로 쓰는 목민심서'라는 제목으로 2016년 3월에 실학박물관에서 발행한 자료다. 다산연구소 박석무 이사장님의 소개글로 시작된다. 사무실에서 받은 자료인데 그냥 책장 틈에 넣어두었다가 공무원 퇴직을 앞두고서야 운명적으로 눈길이 다다른 것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살펴보던 중에 후반부에서 제12부 해관(解官)이라는 부분에 눈길이 겹쳤다. 관직이 교체되어도 놀라지 마라. 수령직은 반드시 교체됨이 있는 것이니, 교체되어도 놀라지 않고 관직을 잃어도 연연하지 않으면 백성이 그를 존경할 것이다. 조선시대 식 표현이니 이를 현대적으로 풀어보면, 공무원은 늘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날 것이니 항상 준비를 하여야 하고 공직을 떠나게 되어도 연연하지 않으면 주변의 동료들이 여러분을 존경할 것이다. 40년 공직을 떠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긴 세월 근무하다보니 막상 퇴직, 명예퇴직을 하는 것이 실감되지 않았다. 하지만 목민심서를 다 읽고나니 자신도 역사속의 한사람으로서 젊은 나이에 공직에 들어와 일하고 이제 나이가
장애인복지법시행령 제2조의 장애의 종류 및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 유형은 15가지로 정하고 있다. 최근에 ‘뚜렛증후군’이 정신장애 영역에 포함되어 지난 5월에 첫 번째 장애인 등록을 받았다. 장애의 범주가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에 무게가 실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터넷 동영상 강의와 화상 실시간 수업을 통해 장애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는 중이다. 법적으로 장애가 없는 사람은 일반인,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라 한다. 휠체어장애인이 아니라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라 한다. 우리나라 장애인은 전체인구의 5.39% 267만명이다. 이중 50세 이상이 76.9%를 차지한다. 장애인 비율이 높은 나라가 복지국가,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한다. 외국의 장애인 비율을 보면 그렇다. 영국 21.0%, 미국 19.3%, 호주 17.7%, 스웨덴 16.1%, 독일 14.9%다. 선진국이 장애인 비율이 높은 것은 장애를 바라보는 다양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은 자국어를 못하는 외국이민자를 장애인으로 분류한다. 여권을 들고 스웨덴의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다시 출국하는 날까지는 우리는 스위덴 언어를 모르는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장애인 강사님들의
지인의 소개로 경기도장애인협회를 방문하여 회장님과 사무처장님을 만났다. 두 분이 이구동성으로 장애인인식개선 강사를 해보라 추천하셨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홈페이지에서 필요한 서류를 받아서 정성을 다해 작성한 후 메일로 접수했다. 코로나19로 학생들이 집에서 선생님과 양방향으로 인터넷 수업을 하는 것처럼 강사양성과정이 진행되었다. 우선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15가지 유형의 장애인이 있다. 크게는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장애로 나눈다. 신체적 장애는 외부와 내부로 구분하고 정신적 장애에는 발달장애와 정신장애가 있다. 외부기관의 장애는 지체장애를 비롯하여 뇌병변, 시각, 청각, 언어, 안면장애가 있고 내부기관의 장애는 신장, 심장, 호흡기, 간, 장루와 요루, 뇌전증 장애가 있다. 발달장애는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로 나누고 정신장애는 15번째로 분류되는 장애인데 최근에 ‘뚜렛증후군’이 정신장애 영역에 포함됐다. 2020년5월에 첫 번째 등록 등록을 받았다. 장애의 범주가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에 무게가 실린다. 인터넷 동영상 강의와 화상 실시간 강의를 통해 장애에 대한 포인트를 인식하게 되었다. 먼저 장애인이 있으니 아닌 사람을 비장애인이라 한다. 일반인,
타임캡슐을 열면 과거의 자료를 만날 수 있습니다. 2011년 9월에 동두천시 보산역 광장에서는 "한미안보협력 60주년 기념 타임캡슐 매설식"이 열렸습니다. 한미안보 100주년이 되는 2051년에 후손들에 의해 개봉되록 했습니다. 당시에 부시장으로 일했는데 간부회의에서 이 타임캡슐에 들어갈 자료에 대한 논의를 했습니다. USB, CD 등 첨단부품에 정보를 담아서 보관하자는 의견에 대해 40년후에 이를 열어볼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으로 최소한만 넣기로 하고 대부분 아나로그 자료를 선정하기로 했습니다. 당시의 오세창 3선 시장님은 2051년에 개봉행사를 보려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겠다 하시면서 함께한 간부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덕담을 주셨습니다. 올해 만 65세로 경기도 우대용 교통카드를 받았으니 2051년에는 93세의 나이로 행사장에 초청을 받아서 개봉현장에 함께 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행사장에 초청받기를 원하고 그 내용물을 보고 싶은 이유중 하나는 그 안에 꼭 보고 싶은 서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직에 들어와 34년을 근무하고 부시장이 되어 행사 준비와 마무리에 함께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타임캡슐을 열면 당시 오세창 시장님을 비록한 간부들의 명단이 적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