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10,000장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육아일기 10,000장 ▦

“두 아이 키운 육아일기가 우리 집의 보물이죠” 20년간 써 온 육아일기를 경기도 끼네스북에 등재한 내용을 보도한 2010년 6월 15일 신문 기사 제목이다.

 

“스스로 작성해 온 육아일기를 한곳에 모아 놓으니 20년이라는 세월이 결코 짧지만은 않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아이들의 장성일기, 장년일기를 지속적으로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기사의 마무리다.

 

 

그 다짐이 10년을 이어왔다. 매일 1~2페이지씩 써온 일기를 담은 바인더 북이 이제 100권이다. 30년을 365일로 계산하면 10,950일이다. 바인더북에 간직한 일기장이 10,000장을 넘어선 것이다. 육아일기 쓰기의 주인공은 수원시 영통구 매탄3동 최경화(58). 최씨가 이처럼 30년간 일기를 쓰게 된 동력은 쌍둥이 남매다.

쌍둥이 이야기를 처음 보도한 언론은 경기일보다. 경기일보 월간지 ‘신경기’1994년 3월호, 4월호에 사진과 함께 육아일기가 소개됐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인간의 숭고한 의무이며 고귀한 권리이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나이 들어 갈 수 록 엄숙하게 다가오는 사랑의 실천이다.”

 

‘KTX매거진’ 2011년 3월 5일자에 육아일기 기사가 실렸다.‘우리는 얼굴 모르고 이름 짓지도 않은 두 아이를 위해 앨범을 마련했다. 태어나기 전부터 그들이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규격없이 정리해 결혼할 때 건물로 주고 싶다.’쌍둥이 남매 아이들은 1991년 9월생이다.

최씨의 쌍둥이 이야기의 전환점은 2010년 경기도가 주관한 끼네스 행사에서 20년 육아일기로 등재되면서부터다. 이후 2010년에 MBC, SBS, KBS 순으로 방송을 탔다. 기호일보, 한국일보, 교통방송 이홍렬이 만난 사람, 조선일보 에세이, 중앙일보, 경기신문, KTX 매거진, 국방일보에 글이 올랐다.

최씨는 결혼 후 5년 만에 쌍둥이를 임신했다. 의과대학교 교수님의 시험관 시술을 통해 쌍둥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노심초사 태교를 하며 관리했다. “모든 부모에게 자식이 소중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저에게 쌍둥이 남매는 특별했지요.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서 모든 것을 기록하고 보관하고 싶었죠”

 

최씨는 일기장 바인더북은 만물상이고 백화점이다. 아이들 사진첩도 열권이 넘지만 육아일기에는 색다른 것이 더 많이 있다. 병원 접수증, 영수증, 아이들 낙서, 발도장, 축전, 반찬먹기 수첩 등 다양한 자료들이 함께 있다. 쌍둥이 남매가 살아온 29년이 입체적으로 날짜순으로 고스란히 정리돼있다. 언제 몇시 몇 분에 분유를 먹었는지 우유를 마셨는지 병원에 가서 무슨 처방을 받고 어느 약을 먹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예방접종도 출생 1년 이내, 이후로 구분되어 기록하고 있다. 생후 12개월까지는 BCG, B형간염, 소아마비, 뇌수막염, 폐렴구균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 2개월, 3개월, 6개월, 12개월에 예방접종을 받아야 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급식과 이유식 등 주로 먹고 자고 배설하는 내용으로 일기를 썼다. 이후 유치원에 가면서 그리기 등이 추가되고 상장을 받으면 그날 일기장에 보관했다. 초등학교 생활도 기록되었다. 친한 친구, 싸운 친구, 선생님 말씀, 알림장 등 일기장을 넘기면 1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기록이 모두 나온다.

 

이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서 딸은 대학을 가고 아들은 논산에서 훈련을 받은 후 전경대에 배속되어 만기근무하고 전역했다. 22개월 군 생활 중 주고받은 편지와 아들을 군대에 보낸 소감을 별도로 적었다. 바인더북 13권 분량이다. 아들은 제대하면서 논산훈련소에 인터넷으로 보낸 편지뭉치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최씨의 기록에 대한 집념이 강했고 더불어 남편 이강석(61)씨의 도움도 있었다. 경기도청에서 2019년초 42년간의 공직을 마치고 행정사를 개업한 남편 이씨는 아이들을 위해 ‘쌍둥이 일기장’을 설계했다. 1994년 6월에는 ‘우리들의 사랑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일기장 서식을 만들었다.

일어난 시간, 병원 방문, 낮잠, 엄마일기, 아빠의 공간 등을 만들었다. 8월에는 ‘50년만의 폭염과 싸우며 비를 기다리며...’로 정했다. 1995년 4월에는 ‘자전거를 사달라는 아이들’, 6월에는 ‘여름의 길목에서 가을을 생각하며’로 정했다.

 

부부는 아이들이 성장하자 육아일기를 가족일기로 전환했다. 가족들과의 대소사를 적어가는 인생 일기로 발전했다. 힘든 일, 기쁜 일, 즐거운 이야기를 적었다. 보일러 수리 영수증과 기사님 명함을 일기장에 넣어두었다가 1년반 후에 요긴하게 재활용했다. 아빠가 쌍둥이 남매 생일축하로 보낸 축전은 지금도 멜로디를 연주한다며 자랑한다.

최씨의 관심은 출산과 육아. 최근 국가적으로 걱정하고 있는 저출산에 대해 ‘아이를 낳고 키우는 행복을 젊은이들이 공감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라고 말한다. 엄마가 되는 행복을 알게 하고 아빠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인문학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키우는 모든 과정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최씨는 강조한다.

그리고 육아일기를 쓰고 싶은데 매일 쓰는 것을 힘들게 생각하는 젊은 부모들에게 육아일기는 일기장에 글로 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삶의 조각을 모아 아이들의 인생을 모자이크해 주는 부모가 행복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기를 쓰지 않고 넘어갔다면 일기를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만큼 아이들에게 집중했던 것이라고 해석하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육아일기를 쓰다가 중단하는 것을 미리 걱정하는 엄마들에게 육아일기 쓰기를 권장하기 위함이다.

그동안 신문, 방송, 주간지 등에 게재되면서 일반에 알려졌고, 부부는 언론에 보도된 이후에는 평생 일기를 써야 한다는 사명감도 생겨났다.

남편 이씨는 공직을 마친 후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공직 경험을 글로 정리하고 있다. 공직경험을 정리한 책 ‘공무원의 길 차마고도(한누리미디어)’를 출간했다. 공직생활 중 공보실 근무경험을 정리한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가제목은 ‘악어와 악어새’다.

이씨는 2011년에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여러 엄마아빠의 육아경험을 적은 글을 담아낸 ‘아기냄새’(도서출판 푸른돛)라는 책속에 부부의 육아 이야기를 실었다. 3년간 육아를 도우면서 느낀 아빠의 마음을 적어냈다. 주변 지인들이 일기장을 보고 눈물지은 일도 있다고 한다.

 

부부는 쌍둥이 남매 1부터 3세 당시의 일기를 인터넷에 올려 젊은 부부들이 참고하도록 했다. 인터넷에서 ‘엄마엄마9109’를 검색하면 최씨가 쓴 아이들 1세~ 5세까지의 일기장 일부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육아Tip을 올리고 있다.

부부는 2019년에도 매일저녁 일기를 쓴다. 아내가 바쁘면 남편이 써서 화일을 채워준다. 더러는 글로 전하는 부부의 대화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이틀 이내에는 서로서로 일기장을 넘겨보기 때문이다. 힘든 일을 이겨 나가려는 의지,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공동대화의 무대가 일기장이다.

최씨는 “육아일기가 학생일기, 군대일기, 인생일기로 확대해 나가는 동안 나 자신의 인생을 기록하는 역사가 되었다”고 말하고 “쌍둥이를 키운 경험이 주변의 젊은 엄마아빠에게 작은 도움이 된다면 참으로 행복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아이들이 결혼해서 손자손녀를 낳으면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부부는 기록에 있어서 전문가다. 아내 최씨는 육아일기 100권과 함께 맛있는 음식 레시피를 모은 자료집이 76권이다. 가족 여행기록이 10권, 취미생활 자료집이 10권이다.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 수료증은 물론 강의들은 내용도 관리하고 있다. 부지런한 성격이니 개근상이고 봉사활동을 잘하니 공로상을 여러번 받았다.

남편 이씨는 42년간의 공무원 발령장 40장을 꼬박꼬박 모아 관리하다가 지난해에 경기도청 박물관에 기증했다. 이씨는 공직생활 중 가족이나 친지에게 보낸 편지 사본을 모았다. 공직근무 중 생각을 정리한 자료를 보관하면서 퇴직이후 활용하고 있다. 인터넷에 올려 관리한다. 이제 일을 시작하면 바인더북 제목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장기교육 중에는 강의내용을 적어 자료집을 만들어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최근에는 지인 부부와 4명이 여행을 다닌다. 휴게소에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메모를 하는 아내를 보고 ‘무엇을 그리 열심히 적느냐?’ 물었다. 아내가 답했다. 일기장에 쓸거에요.

 

오늘 다녀온 이야기는 밤 12시 안에 일기로 기록되고 그 영수증이 함께 첨부될 거에요. 해외 다녀온 기록장은 주변의 지인들에게 빌려주기도 했다. 최씨의 육아일기, 인생일기, 여행 기록은 앞으로도 쭉~계속될 것이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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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