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때 국어선생님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초등학교 5, 6학년때 글짓기 대회를 나갔지만 상을 받지는 못하였고 그냥 붉은 칸으로 막힌 원고지 200자를 채우기 힘들었던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에 가서도 국어시간 숙제로 원고지 5매를 쓰라하면 8매 정도 채운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말을 하다보면 원고지 5매속 붉은 칸에 검정 글씨를 가두어 둘 수는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원고지는 글자를 가두는 듯 보입니다. 요즘에는 워딩프로르램에 인서트 기능이 있으므로 손쉽게 문장을 첨삭할 수 있습니다만 원고지라는 아나로그 종이는 칸에 맞춰 쓰고나서 추가할 말이 생각나도 좁은 골목길에 대형 피아노를 옮기는 작업과도 같았으므로 아예 새로운 문장을 추가하는 것을 포기하곤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나의 글이 원고지라는 감옥에 囚人(수인)처럼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5장 숙제에 8장을 써서인지 선생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어느 날 하숙집 가방에서 어떤 서류를 꺼내어 오라는 국어선생님의 심부름을 가서 주인집 아주머니의 허락을 받고 가방을 열었더니 우리 반 학생들의 국어숙제 원고지 뭉치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매표소에서 1,000원짜리 9장을 묶고있는 또다른 천원짜리처럼 우리반 학생들의 원고지 뭉치를 묶고 있는 원고는 바로 나의 글이 적힌 원고지입니다.

이후 선생님께 여쭈어 보지도 않았고 선생님께서 아무말씀 하신바 없지만 우리반에서 원고지 숙제에 뽑힌 것인가 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혹시 선생님께서 그냥 집은 것이 나의 원고이고 그것으로 풀어지지 않게 묶듯이 끼운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린 마음에는 뽑힌 것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밀고 있었습니다.

 

이후 어럽게 수원시 수성고등학교를 진학하여 특별활동으로 문예반에 들어갔습니다. 3년 내내 문예반에서 국어선생님의 문학 지도를 받았고 지방신문사 기자, 문화부장, 논설실장을 하신, 1975년 당시에는 수원시청 수도과에 근무하신 임병호 선생님의 문학지도를 받기도 했습니다.

부족한 서정과 정서적 메마름으로 큰 작품을 쓰지는 못하였지만 수원화홍문화제에서 가작 수상을 하였고 경희대학교 전국고교생 백일장 대회에서 4등 상을 받는 영광도 있었습니다. 척박한 실력이지만 중학교 국어선생님 가방속 원고지 위치라는 작은 일로 전국대회 4등상을 받아 지금도 큰 자랑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사에 최선을 다하는 노력의 결과와 성과는 반드시 올 수 있다는 점에 강한 강조점을 찍으며 오늘부터 지나간 추억에 대한 기록들을 하나하나 더더욱 정리해서 작은 수필집 하나를 이 세상에 내놓는 일도 60을 바라보는 시기에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책 한 권을 쓰는 일이 쉽지 않다고도 합니다만 막상 시작을 하니 재미있어서 반복하게 됩니다. 책의 수준은 낮지만 외형은 한권의 책으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그 점에 감사한 마음으로 책편집과 글쓰기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이 같은 노력을 꾸준히 반복하면 훗날에는 큰 성과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500권은 아니어도 그냥 50권에 이르고 싶다. 그때 나이가 70을 넘겠지.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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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