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손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넝쿨식물 터널을 구경하였습니다. 컬러 호박과 수세미 줄기가 나무나 울타리를 타고 올라가면서 잎을 펴고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는 넝쿨식물이 잘 자라서 아름다운 풍광을 선물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처음 발견하였을 당시에는 나무상자 묘판에서 하늘거리는 정도였는데 보름정도 지난 오늘 다시 보니 양쪽에서 넝쿨이 올라와 다음 주면 둥근 터널 위에서 서로 마주칠 기세입니다.

 

 

연약한 풀줄기가 둥근 터널을 타고 오르는 힘은 ‘넝쿨손’에 있습니다. 호박 줄기를 예로 들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입새와 입새 사이에서 넝쿨손이라는 세손가락 줄기가 함께 나옵니다. 그리고 주변의 다른 풀이나 관리인이 매달아준 포장용 끈을 잡으면 10번 정도 돌돌 말아서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풀줄기를 지지해 줍니다.

생물시간에 배운 기억으로는 풀이 바람에나 폭우로 쓰러지는 경우 하루 이틀 후에는 다시 일어나게 되는데 그 힘은 이른바 '向日性(향일성)'식물이기에 태양의 에너지를 받기 위해 몸을 하늘로 향한다고 들었습니다. 풀줄기를 하늘로 향하기 위해서는 고개를 들어 올려야 하는데 이때 식물의 성장 호르몬은 늘 태양을 피해서 식물줄기의 그늘진 쪽으로 몰려든다고 합니다.

 

그러니 태양 반대편 줄기가 더 빨리 자라나서 결국 그 식물의 줄기가 태양을 향해 일어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대로라면 '넝쿨손'속의 성장 호르몬은 접촉되는 부분을 거부하고 접촉면 반대편으로 달아나서 성정을 촉진하게 되어 나뭇가지나 풀줄기를 만난 넝쿨손은 지속적으로 그것을 감아주게 되어 자신을 고정한다는 논리가 나옵니다.

식물에도 지능이 있다는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음악을 듣고 자란 식물은 더욱 생동감이 넘치고 이를 식재료로 하면 인체도 건강해 진다는 주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반추해 보면 줄기식물의 넝쿨손은 일단 나무줄기 풀 입새를 만나 5번 정도 말고 나면 스스로 성장을 멈추고 말라버린 것 같습니다. 역할을 다했으니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지요. 만약에 넝쿨손이 계속 성장하겠다고 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에너지가 부족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가족을 위해, 자식을 위해, 조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분들을 봅니다. 그 희생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발전을 위한 밀알이 되어 동료들의 가슴속에 녹아드는 것입니다. 합체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나서서 무슨 일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되고 건축물 바닥에서 보이지 않는 주추돌이 되어서 높은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것입니다. 매몰비용도 긍정적으로 보면 참으로 더 중요한 투자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나무를 보면 그 아름다운 모습만큼의 뿌리가 땅속에 숨겨져 있음을 생각하자는 말입니다. 흔히 취임사에서, 퇴임사에서 아내의 내조와 아내의 자리를 이야기 합니다.

 

마찬가지로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 포도나무 줄기 아래 뿌리는 지난해 추운 겨울부터 땅속의 양분을 모아 끊임없이 줄기를 통해 잎으로 보내주고 잎에서 태양의 힘을 축적, 농축하여 보내온 양분을 다시 열매로 완성하는 치열한 아내로서의 인생, 어머니로서의 삶이 있었음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이 사회를 지지하는 넝쿨손은 여러 곳에 존재합니다. 어제 저녁부터 전기를 보내주시는 분, 새벽 2시부터 도시가스 압력을 체크하시는 분, 새벽 4시에 광역버스와 시내버스를 점검하시는 분, 경찰서에서 소방서에서 숙직실에서 이 새벽 이 밤을 지켜내는 수많은 이 사회의 넝쿨손들에게 우리 모두 사랑의 V자 손가락을 내밀어야 하는 아침입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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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