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라면 파동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우지라면 파동이 있었습니다. 공업용으로 분류되어 배달된 소기름(우지)을 라면제조 재료로 쓰여진 사건입니다. 온통 야단법석이 일었습니다. 우지라면의 소기름을 먹은 것이 큰 일이라도 나는 듯 그랬습니다. 그런데 라면제조 과정에 우지를 넣은 것이 잘못이 아니라 공업용 유지를 식용에 넣은 것이 문제의 핵심, 팩트였습니다.

 

 

즉, 공업용으로 쓰여질 우지는 모으는 과정, 유통과정에서 비위생적이라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유지를 모으고 차에 싣고 작업하는 과정이 비위생적이니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위생의 문제가 있으니 잘못된 것은 확실합니다. 절대 우지라면을 옹호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이제 본론으로 가야 하겠습니다.

'우지'란 한자로 풀면 소기름입니다. 정육점의 붉은 글씨 표어가 "고기는 냉장고에 있습니다"를 유행어로 떠올리던 시절 이야기 입니다. 제사가 있는 날 아침에 심부름을 명 받습니다.

 

6km를 걸어 읍내에 가서 소고기 반근, 즉 300g을 사오는 일입니다. 갈비집에서 뼈포함 400g을 1인분이라 하는데 반근이면 아주 작은 양입니다. 얇게 잘라서 양념한 후 육적으로 올릴 예정입니다.

제사에 육적, 봉적, 어적을 올립니다. 네다리 짐승고기, 통닭, 조기를 말합니다. 네다리 짐승은 돼지와 소를 말합니다. 그래서 소고기 반근, 300g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신 것입니다.

 

돈을 받아들고 6km를 걸어 읍내에 나가 소고기 반근을 사왔습니다. 명 받은 대로 '적거리'로 주문했습니다. 우리민족은 소고기 부위에 따라 적거리, 국거리로 구분하며 세계에서 가장 세분하여 소고기를 먹는다 합니다.

잠시 다른길로 나갑니다. 개척시대 미국에서 소를 잡으면 갈비뼈를 중심으로 등심과 안심을 동시에 먹을 수 있는 T본스테이크 꺼리, 깍뚜기처럼 고기를 잘라 모눈종이 철사판에 구워내는 스테이크가 전부였다고 합니다.

 

과거에 미국으로 이민 간 분들이 정육점에서 버려지는 소머리, 소다리, 소꼬리, 내장을 얻어와 소머리국밥, 우족탕, 꼬리곰탕, 내장탕, 막창구이로 다양한 조리법을 쓰게 되었고 미국사회에서도 요즘에는 소 부산물을 돈을 내고 사온다고 합니다.

정육점 아저씨에게 '적거리'로 주세요 까지는 성공적으로 이상없이 주문하였지만 갑자기 흰 기름덩어리를 쓱 잘라 함께 포장을 하시므로 그것은 시키지 않은 것이라 했던 것입니다.

 

달랑 테니스공 크기의 고기 한점을 들고 집에 돌아와 심부름을 마치려는 순간 어머니는 "왜 이것 뿐인가?" 물으십니다. 소고기 반근을 사면 반드시 따라오는 참외 크기의 소기름이 없으니 황당해 하시는 것입니다.

소고기 300g은 제사에 적으로 쓰고 할아버지께서 드시고 손자에게 한두점씩 배당되면 끝나는 것이고 온가족이 먹을 2kg의 소기름이 생명의 영양소인데 말입니다.

 

이 우지 덩이를 찬 바람에 매달아 두고 칼로 삭삭 베어내어 신김치 끓이는 냄비에 넣으면 김치 사이에 노랑 기름이 잘잘 흐르면서 그냥 짜고 텁텁하던 신 김치에서 환희의 기름맛이 나는 것입니다. 맛의 신기루를 만나는 것입니다.

1960년대 후반에 라면이 나왔습니다. 라면 1개를 끓이면 국수 한줌이 같이 들어갑니다. 대형 냄비에서 펄펄 끓고있는 라면 국수의 국물위에 노랗게 떠오른 우지기름을 보면서 입맛을 다졌지 말입니다.

무채를 썰어 끓이면서 우지 한덩이를 넣으면 이 또한 따끈한 쌀밥에 치즈 버터 넣은 듯 황홀한 맛을 연출하였던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우지라면을 먹일 부모는 한 명도 없을 것이고 안심, 등심을 불판에 구워 먹으면서 기름 부분을 잘라내는 상황에서 우지라면, 소기름 이야기를 꺼낸 것이 송구하기도 합니다.

아직도 50대의 몸속에는 10살 시절에 맛갈나게 먹은 소기름의 노란 알갱이가 함께 흐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 소기름, 돼지 순대를 먹고 뛰어다니며 행복해했던 유년의 시골 마을에 가보고 싶습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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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