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리는 남이섬에서

이강석 전남양주시 부시장

비가 온다 해서 여행이 크게 방해받는 것은 아니다. 약속된 날이고 11쌍 부부가 함께하기로 한 여행일정이다. 사실 누구나 한번씩 해야하는 총무인데 오늘 여행의 총무님 부부도 오래전부터 준비했다.

우선 회원들에게 일정을 알렸고 동의를 받았다.관광버스를 예약하였다. 10월27일도 성수기라서 한달전에 버스를 잡아 두었다.

과일을 사고 떡을 주문했다. 여행지를 각각 예약하고 가이드, 해설사 일정에도 1-2시간 씩 우리의 일정을 넣었다. 부부들은 가족에게도 한달전에 오늘의 가평 여행일정을 알려서 각각의 스케줄에 반영해 두었을 것이다.

그러니 비가온다 해서 연기할 수 있는 여행이 아니다. 나로호는 작은 고무부품 때문에 발사를 연기했고 그것이 3-4일이 아니라 3-4개월이 될 수도 있단다.

 

 

그랬다. 비가 오는 날 아침일찍 집을 나섯다. 사실 비가 오면 더더욱 일찍 서둘러야 한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다 그러하듯이 조금 서두르면 걱정을 던다. 마음의 걱정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역시나 1착으로 가니 ‘비젼21’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기사님의 포스가 문학적이다. 이분의 능력은 나중에 소개한다.

9가족이 모였고 가평 현장에 2가족이 오신단다. 비가오는 팔달산에서 우리는 출발했다. 아마도 영동고속도로 타고 경부선을 지난다음 외곽도로를 돌아 가평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멋쟁이 버스 기사님은 우리의 차를 도청정문-만빈원동해장-남문-동문-경찰청으로 운행하신다. 보통은 북문으로 가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기사님의 권리다. 돌아올때도 남문과 구시청앞으로 통과하시고야 말았다.

1시간가량 달콤하게 졸았다. 차의 흔들림이 이미 고속도로를 벗어난 듯하여 창문의 흰 습기를 닦아내니 역시나 산과 들이 보인다. 조금 더 북쪽으로 왔으니 나무마다 각각의 색상을 나타내어 아름다운 가을 경치를 연출하고 있다. 단풍이라는 것이 매년 오는 진객이지만 일부 외국인들에게는 경이로운 자연현상이란다.

 

남이섬은 자연림의 보고다. 그래서 남이섬에 지난해 2012년에 230만 관광객이 왔다. 1일 6,300명이고 휴일에 10,000명 이상이 남이섬을 찾아 온다는 추산이다.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20명중 1명이 남이섬에 온단다.

그래서 ‘남이나라공화국’이라는 재미있는 국호(?)가 있다. 가평나루에서 남이섬까지 배를 타고 5분정도 서서 건너간다. 서너대의 배가 보이는데 만국기 장식이 아름답다. 우리가 해외가서 태극기 보면 가슴이 찡하듯이 모든 나라 사람들은 자국 국기를 보면 반가워한단다. 그것이 아이디어 발상의 시작이란다. 작은 배려가 큰 감동을 얻는 관광지 환경설정의 ABC인 것이다.

 

그리고 배에서 내리는 순간, 남이나라공화국에 입국하는 순간 또다른 외국에 도착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입국절차와 비슷한 진입로 구성에서부터 내리는 순간 모든 것이 이른바 ‘스토리텔링’이다. 물속에 발을 담그고 서있는 여신상, 부드럽게 물을 토해내는 석상, 나무를 둘러싼 나무조각에 써 있는 아름다운 글씨, 그리고 가을 낙엽을 쓸어 모았는데 그 모습이 ‘사랑의 하트’이니 이 또한 남이섬에서만 가능한 자원 재활용이다.

남이나라공화국 대통령은 60대 남자인데 화가이기도 하다. 사진 수천장을 환등기로 돌리며 강의를 하시는데 그 모습은 마치 만추의 단풍나무에서 낙엽이 쏫아지는 모습과도 같다. 쉼 없이 쏫아내는 아름답고 동글동글한 언어들은 어느 한 이파리도 버릴 수 없는 금과옥조다.

 

당신들은 남자에게 반해 보았는가? 그리고 이 분은 끊임없이 끌어오르는 마그마같은 아이디어를 이곳 남이섬에 가득 쏫아부어 오늘의 성공한 남이나라공화국 혁명을 완수했다. 대한민국 여러곳에서 그 열정을 뿜어내고 있기도 하다.

남이섬은 경기-강원의 경계를 이룬다. 북한강이 홍수로 범람할 때 섬이 되곤 하다가 청평댐이 완공된 후부터 완전히 섬이 되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그냥 쓰레기가 쌓이는 섬에 불과하였지만 강우현 사장님의 아이디어와 추진력, 지역주민의 참여속에 오늘의 혁명을 완성했다. 80세까지 일하고 종신으로 또 일하는 곳이 남이섬의 남이나라공화국의 취업방침인 것이다.

우리들은 우비를 쓰고 우산을 든채 배용준-최지우 커플을 만났다. 2002년 KBS에서 방영되었고 어쩌면 한류의 원조가 된 ‘겨울연가’촬영지로 유명한 곳이 남이섬이다.

 

눈이 내린 메타세과이어길을 거니는 배용준-최지우 커플의 모습을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 아줌마들이 더더욱 난리다. 외국 관광객들이 겨울연가 사진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에서는 엄숙한 진지함이 보일 정도다.

누가 심었을까? 메타세콰이어도 그렇고 그냥 심겨진 나무들이 줄을 서고 분위기를 연출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 누구든 남이섬에 들어오면 모든 사물에 대한 심미안이 생겨난다.

 

돌 하나 풀 한포기도 허수로 볼 수 없고 마음속으로는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끊임없는 고민을 하게 한다. 그것이 이곳 남이섬이 관광객을 맞이하는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 마술에 걸려들어서 지금 최면상태로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몇년전에 남이섬에 와이어가 설치되었다. 짚와이어. 줄에 매달려 일순간에 남이섬에 도착하는 시설인데 번지점프보다 안전하다고 한다. 순간의 이동이 짜릿함을 준다고 한다. 오늘은 비가 와서 짚와이어를 타는 청춘들을 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맛있는 매운탕으로 점심을 먹은 일행은 오후에는 아침고요수목원으로 이동했다. 누가 날을 잡았든 오늘 비가 온다는 사실은 참 좋은 일이다. 점심을 먹으며 되돌아 생각해 보니 오전의 남이섬에서 우리가 본 것은 자연의 조화였다. 나무와 숲과 낙엽을 더 의미있게 연결한 가을비를 만난 것은 우리의 행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침고요수목원의 모든 풀, 나무, 돌, 바람은 가을비를 머금음으로써 본디 자신들의 진면목을 우리에게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웅덩이에 수초가 자라고 물방개와 장구벌레가 오고가는데 동글동글한 빗방울이 울려 퍼지는 그 모습을 눈을 감고 상상만 해 보아라. 그리고 실제로 그 현장에 분홍색 우비를 입은 청춘들이 서있는 모습을 보기라도 해봐라. 이건 뭐 자연의 조화다. 완벽이다.

 

국화와 은행잎의 노랑이 더 진해 샛노랑이 되고 붉은 단풍잎은 가지에 달려있든 바닥을 장식하든 쌔빨강이다. 노송의 여유로운 허리 구부림은 카메라를 부르고 호수 가운데 서있는 육각정은 반드시 올라가야 하는 포토존인 것 같다. 우리는 이제 피톤치드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나무가 인간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다. 그래서 산길을 걸으면 피로를 모른다. 우리의 몸이 그 산속 나무와 풀과 바위와 함께하는 것이다. 산의 기운이 우리의 몸속을 콘트롤 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필링캠프인 것이다.

 

정말로 남이나라공화국이다. 강을 건너고 섬을 방문하고 산을 돌아다니면서 나무, 풀, 꽃을 보고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자연은 자연스러워야 자연이다. 그리고 비가 내리는 자연은 아름다움의 완성이고 완벽인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흥미롭다.

점심 식사 후 우리의 예술적인 분위기의 버스기사 사장님이 섹소폰을 연주했다. 노트북에 악보를 준비하신 가운데 수준높은 연주회를 열어 주었다. 작은 음악회였다.

 

그리고 일행은 돌아오는 길에 버스안 노래방을 틀고 각각의 노래솜씨를 자랑했다. 조금전 버스기사님의 섹소폰 연주를 상상하면서 노래하고 박수와 함성으로 화답했다.

남양주 어느 길가에서 두부를 주제로 한 저녁을 먹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식당이란다. 맛있다. 담백하고 풍성한 저녁상이다. 그러고 보니 이 식당은 손님이 밀려드는 경우만을 생각하였던 것인지 서비스 정신은 조금 덜하다. 남이섬처럼, 아침고요수목원처럼 늘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마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가평군에서 운영하는 수목원의 나무는 물론 오래된 시골집과 절구통, 농기구 등 민속자료가 잘 보존되고 관리되어서 더 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수목원 안의 모든 나무와 풀을 끔찍하게 자식처럼 사랑하시는 해설사님도 더더욱 열심히 손님들에게 설명하고 해설해 주시고 본인도 더더욱 日就月將(일취월장) 하시기를 바란다.

 

세상사 늘 잘되는 것만은 아니다. 식당도 손님이 밀려들 때 더더욱 서비스 정신을 연마하기를 바란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다. 화장실에서 만나는 명언 중 ‘성공의 그늘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마라’는 글이 있다. 우리가 살면서 항상 가슴에 새겨야 할 말씀인 것이다.

오늘 일행은 남이섬 혁명의 주역 강우현 사장님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아침고요수목원을 가꾸시는 주인을 뵙지 못했다. 그러나 남이섬의 스토리와 아침고요수목원의 꽃과 나무를 통해 주인을 만나고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의 숨결을 느꼈다. 그리고 그 결론은 모든 이들이 참으로 자연스럽고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속에서 즐겁게 일하며 산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깊어가는 2012년의 가을날 하루를 택하여 남이섬과 아침고요수목원에 오시기 바란다. 말 그대로 심신을 평안하게 하고 미래를 향한 풍성한 구상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치유와 사색과 상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얻을 것이 없다면 마음속에 자리한 아픈 기억, 슬픈 흔적을 지우는데도 큰 효과가 있다는 점을 강조해 드린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 무한히 준다. 나무와 풀과 꽃은 우리 사람들을 평화롭게 해준다. 그리고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우리의 마음도 무게를 더해 보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