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시대 이야기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참 오래전의 약육강식과 수렵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지구에서 눈과 진눈개비가 구분된 이후정도의 일일 것입니다. 아니면 메뚜기와 여치가 색으로 구분되기 시작한 생태계의 고전적인 시대에 부족국가 이전의 시대일 것입니다. 한반도로 말하면 단군할아버지의 오래전 조상이 사시던 시대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석가모니 왕자님이 출가하시기 이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늘이든 지상과 지하 세계이든 생명체가 존재하던 아주 오래전의 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여러 가지 형태의 식물과 동물이 존재하고 그 동물들이 약육강식으로 살아가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 마을은 아주 작은 곳이었지만 몇 명 안되는 사람들이 몇가지 제한된 가축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30여호의 집이 있었고 가구마다 평균 9명정도가 살았습니다. 할아버지 부부, 아버지 부부, 삼촌과 고모들, 그리고 손자들을 합하면 13식구가 되는 집도 있고 1자리수 가정도 있었습니다.

 

가축의 대표는 무론 소이고 검은 돼지와 붉은 닭, 아무에게나 짖어대는 개, 염소와 양이 전부였습니다. 말을 본 것은 15살이 넘어서입니다. 하늘에 주인없이 날아다니는 새는 10여종입니다. 까치, 비둘기, 참새, 콩새, 때까치, 뜸북이, 꿩, 뻐꾸기는 소리만 들었을 뿐 새의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참새는 초가지붕 아래 굴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잡을 수 있습니다. 폭설 이틀후에 눈을 치우고 검은 천바닥에 흰 쌀을 뿌려놓고 타래방석(짚으로 엮은 곡식을 담는 큰 접시랄까)에 막대기를 걸치고 그 끝자락에 실을 매어 방으로 연결한 후 참새가 들어와 쌀을 먹는 순간에 실을 당깁니다. 두 번째 참새잡는 방법입니다.

 

꿩 역시 추운 겨울철에 잡을 수 있습니다. 단단한 흰 콩에 작은 구멍을 뚫고 약(‘싸이나’라는 극약)을 넣고 촛물로 봉합니다. 새벽에 이 독이든 콩을 꿩이 자주 내려오는 산자락 양지바른 곳에 종이를 펴고 뿌려줍니다. 그리고 10분안쪽에 곧바로 내려오면서 포인트를 방문하여 회수에 들어갑니다. 죽은 꿩은 발견즉시 내장을 빼내야 합니다. 독이 더 이상 퍼지기 전에 말입니다. 위험한 일입니다.

 

닭은 제사가 있는 날이나 어른 생신날에 잡습니다. 닭장에 가서 적당히 살찍 닭을 찍어내어 잡습니다. 뜨거운 물에 담가 털을 뽑고 내장을 빼내는데 간과 똥집은 잘 손질합니다. 똥집을 절반가량 잘라 뒤집으면 아침에 먹은 모이와 모래와 유리조각이 나옵니다.

 

적당량의 수준을 가지고 먹은 곡식을 불리면서 함께 먹은 모래와 유리조각에 혼합하여 비벼주는가 봅니다. 하늘을 날아야 하는 조류의 특성상 몸을 가볍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늘 물을 적게 먹습니다.

 

돼지를 잡을때는 ‘멱따는 소리’가 납니다. 돼지의 내장은 순대를 만들거나 무와 배추를 넣은 된장국을 끓이는데 들어갑니다. 멱 딸 때의 선지도 함께 들어가는데 그 맛이 푸근합니다. 돼지오줌통은 동네 아이들의 축구공입니다. 내편내편 없이 이리저리 차고 다니다보면 1시간후에 펑 터져버립니다.

 

그때 아이들은 돼지잡는 집마당에 모여들고 어른들은 구호소 소장님처럼 애들에게 순대국을 퍼줍니다. 참 맛있는 돼지기름에 대한 향수가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소를 잡을 수 없습니다. 농경사회인 당시에 소를 잡는 일은 금지되었습니다. 허가받은 이들만이 소를 잡아 붉은 전등을 켠 냉장고에 저장하면서 팔았습니다. 그래서 정육점 표어가 늘 “고기는 냉장고에 있습니다”입니다.

 

쇼윈도우는 텅 비어있는데 어차피 얼려야 하는 소고기를 쇼윈도우에 전시하려면 별도의 전기요금이 들어가고 냉장, 냉동기능도 약하여 그리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사가 다가오면 소고기 1근(600g)을 사와야 합니다. 정육점 아저씨는 별도 주문을 하지 않아도 소고기 반근만 사겠다 하여도 소년이 들기에 버거울 정도의 큰 고기 덩어리를 줍니다. 우지입니다. 옛날 라면에 들어가 우지라면으로 언론을 달궜던 소기름이지요.

 

이 우지야말로 지방을 채워주는 소중한 영양원천입니다. 시골 할머니들은 이것을 기름 끝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신 김치나 오래된 깍두기등 무배추를 원료로 하는 발효 김치류로 찌개를 할 때에 우지 한두토막을 넣습니다.

 

서양의 버터나 치즈의 역할을 하는 것이 우지입니다. 모든 김치찌개가 부드러워집니다. 牛脂(우지)의 힘입니다. 한글 우지의 첫 번째 한자변환으로 牛脂(우지)가 나오는군요.

 

세월이 지나 제주도에 가서 말육회와 말뼈를 먹어보았고 염소탕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그 시절 그 어린 시절의 먹거리는 보리밥, 콩밥, 미역국, 우지김치찌게입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앞에서 조류와 육류를 말했으니 어류가 빠진 것이지요. 붕어는 적어서 미꾸리와 함께 끓이는 추어탕이 있습니다. 여기에 국수만 넣다가 어느 해부터 라면 1-2봉지를 넣기 시작하였습니다. 라면스프만 넣어도 추어탕이 제 맛을 냈답니다.

 

요즘 우리는 과식합니다. 소식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과 영양이랄 정도로 많이 먹습니다. 냉장고를 가득 메운 재료들이 사계절 구분없이 먹을 것을 제공합니다. 냉장고 3대는 기본이라고 하니 정전되면 피해가 크겠습니다.

 

1961년에 냉장고가 우리나라에 몇 대 있었을까요? 냉장고를 돌리는 전기가 그 당시에 몇% 보급률을 기록하였을까요? 우리의 식생활이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만, 이쯤에서 한번은 어린시절 눈물을 섞어 먹었던 보리개떡, 삼립빵, 6kg를 소 짐으로 실어온 그 뻑뻑한 빵을 한번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가다보면 어느 후대에 2012년에는 참 이런저런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 저장해 놓고 먹었다더라 하면서 미국가는데 국산식품 알약 2병 가지고 가기는 하는데 그래도 미국가면 그 나라 알약을 먹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 할 수도 있을런지요?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