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고등학교 20회 이강석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비봉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렵게 힘들게 수성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시골 중학교를 나와서 도시 수원의 공립 고등학교에 들어간 것은 약간의 모험이었습니다.

 

비봉중학교에서 6명이 진학했습니다. 지금 수원에 송죽동은 과거 솔대라 불렀습니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많아서 솔대라 했으므로 한자 그대로 松竹洞(송죽동)이라 작명했습니다.

 

율전동은 밤밭입이다. 밤나무가 많은 곳이라 해서 밤의 밭, 밤밭이 된 것입니다. 일본식, 왜식 작명의 흔적이 보이기도 합니다.

 

밤밭, 송죽동에 이모님이 사시고 사촌형님, 형수님은 교사를 하셨습니다. 이모님 덕분에 3년동안 불편없이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이모부 돌아가셨을때 상가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종사촌들이 고등학교 3년동안 이모부와 함께 했으니 펑펑 울만도 하다 했습니다. 2012년에 이모님이 돌아가셨을때는 아주대 병원에 이들동안 상근하고 장지에 갔습니다. 이모부와 나란히 잘 모시는데 동참하고 걸어내려와 점심을 먹었습니다.

 

이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노인 요양원에 갔었습니다. 나이를 들면 그런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교회 열심히 다시시던 '한권사'님은 하느님 앞으로 평온하게 가셨습니다. 요즘 어머니 모습에서 한권사님의 그 얼굴을 보곤 합니다. 이모님과 어머니들이 참으로 많이 닮으셨습니다. 더구나 옛날의 자매들은 더더욱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의 자매들은 삶의 방식이 다르고 사는 곳도 산, 들, 강, 아파트이고 생각도 다양하므로 그 모습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 같이 시골에 사신다면 그리고 1960년대를 인생의 정점으로 사신 분이라면 우리나라 당시의 시대상이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수성고등학교를 열심히 다니고 문예반에서 선배들의 시, 수필을 어깨너머 곁눈질하면서 어찌보면 인생의 정점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인생의 완성이라고 본다면 20세의 나이는 생의 기초를 다지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공자님도 20세 기본을 세운다 하셨습니다.

 

 

사진 왼쪽의 정성명 교장은 고등학교 3년내내 같은반이고 짝으로도 공부했던 친구인데 최근에는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래까지 만났던 오른쪽 이기창 신한은행 지점장은 2020년 코로나19를 이기지 못하고 타계했습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