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시청 혁신강의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수도권교통본부 1년 근무를 마치고 오산시청으로 전보되었습니다. 오산시는 과거 화성군 오산읍이었고 군청이 오산읍에 있을때 5급을류(9급) 공직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추억이 있는 오산시청에 근무하게 되어 고향에 돌아온 심정이었고 실제로 고향마을이었습니다. 오산시청에 근무하면서 소소한 개선, 개혁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산시는 청렴도시입니다. 오산시청 공무원과 시민들 덕분으로 청렴을 주제로 하는 강연도 다녔습니다.

 

우선 발령 초부터 동료 공무원과의 소통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써보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부서방문입니다. 출근길에 또는 근무시간에 각 부서 사무실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녹차를 타서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처음에는 불편해 하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어느 부서 방문한 스토리가 소문이 나면서 우리 과는 언제 오나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다음으로 저녁식사시간에 자리배치 ‘사다리 타기’를 통해서 마음을 열었습니다. 일단 미리 준비해간 사다리타기 용지에 한 두 줄 더 그어서 공정성에 대한 시비를 타단하고 일단 정해진 사다리를 타면서 “다라라라라라~”로 소통의 길을 열었습니다.

 

사다리 결과가 어찌 나오든 부시장은 중앙에 안도록 합니다. 구석에 자리 했어도 소주 3잔을 마시고 나면 어느새 중앙에 앉아서 지난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공무원 9급, 8급당시의 이야기로 대화를 이끌어 갑니다.

과한 음주는 건강을 해치므로 원하는 만큼 소주를 따르거나 아예 다른 음료수를 권합니다. 요즘에는 업무지시를 강하게 해도 중앙 평가에서 감점이 되는데 술을 강권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 될 일입니다. 그래서 평온하고 재미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점심에는 일찍 도착해서 동료들이 기다리지 않도록 했습니다.

부시장으로서 부서 동료공무원과의 소통이 중요합니다만 각종 위원회 위원들을 잘 모시는 일도 시정발전에 도움이 됩니다. 우선 도시위원회, 건축위원회, 경관위원회, 인사위원회 등 다양한 회의가 부시장이 위원장이 되어 운영됩니다.

공직사회의 영원불변의 회의시간은 화요일 14:00입니다. 오후 2시로 회의시간을 잡는 이유는 참석자들을 배려하기 보다는 공무원들의 편리함 때문입니다. 점심이후 1시간이 지났으니 점심 대접 할 걱정이 없고 길어야 2시간 회의를 해도 16:00인 저녁시간까지 또다시 2시간을 기다릴 일도 없으니 말입니다.

 

최초 누군가가 14:00로 회의시간을 잡은 것은 다수의 공무원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지만 부시장으로서 14:00는 참으로 애매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 안을 제시하였습니다.

간명한 회의는 11:00로 하여 11:40분에 마치고 점심을 먹습니다. 좀 길게 시간이 필요하다면 16:00에 시작하여 90분간 회의하고 6시 전후에 저녁을 먹는 것입니다.

 

회의를 소집하면서 미리 오찬이 있고 만찬이 예정되었다는 점을 알려드려야 합니다. 아마도 시청에 회의차 오시는 위원님들은 오전 11시는 점심과 연결되고 오후 4시 회의는 저녁까지 먹을 수 있는 금상첨화, 일석이조, 도랑치고 가재도 잡는 황금코스의 스케줄 관리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다음으로 식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원장이 일찍 회의실에 가서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부시장의 평균 근무기간이 1년 전후일 것이니 1년에 한두번 열리는 위원회 위원님들은 모두 초면입니다. 따라서 부시장이 일찍 회의실에 가서 오시는 위원님 한분 한분과 명함을 드리며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다 셋팅된 위원회 회의실에 수첩 들고 정시에 뚜벅뚜벅 구두굽 소리를 내면서 도착하여 앞줄부터 명함주고 인사하고 이내 위원장 자리에 않으면 사회자가 상투적인 시나리오를 읽어가는 그런 위원회는 개선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11:00에 위원회가 열리는 날에는 11:45분에 회의실로 갔습니다.

그리고 위원님 오시는 분마다 인사드리고 명함을 드리고 다시 자리에 가서 기다렸다가 다른 위원님 오시면 인사하고 안내하고 다시 기다렸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해 하셨지만 이내 분위기에 익숙해지십니다. 그리고 바로 옆 간부들이 도착하면 회의를 시작합니다.

 

사실 위원님들은 지역사회의 지도층입니다. 교장선생님, 건축사, 회계사, 변호사가 참여하십니다. 전직 공무원 선배님도 위원이시고 여성단체협의회장, 통장협의회장님 등 시단위 단체장님이 위원으로 오십니다.

위원회 형식상 부시장이 위원장이고 이분들이 위원으로 참여하시는 것이지 시단위 행사에 가면 상황이 많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시장이 미리 회의실에 도착해 있으면 담당 팀장님의 체크리스트 하나가 줄어듭니다. 위원님들 모두 모이신 후 급하게 수첩을 꼭 왼손에 들고 와서 부시장실 노크하고 들어와서 회의준비 다 되었다 말하고 다시 회의실까지 안내하는 일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특히 어느 시점에 이른바 부시장님을 모시러(?)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들 덜어주는 것입니다.

한번은 15분 미리 와서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위원장석에 의사봉이 없는 것을 발견합니다. 담당자에게 의사봉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는 순간 이 직원은 마치 119 소방관 출동하듯이 내달리는데 왜 저래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갑니다.

 

그래서 의사봉을 가지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방송기자는 마이크를 든 펜기자와 카메라 감독이 한 팀입니다. 아나로그 시절에는 무거운 배터리통과 삼각대를 들고 따라다니는 보조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이분들의 임무분담을 자세히 살펴보면 촬영전 테잎은 보조 또는 카메라감독이 가지고 다니는데 일단 촬영된 테잎은 펜기자 가방에 보관합니다.

여기에 힌트가 있었습니다. 의사봉을 치지 않는 담당자가 그것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불합리하니 세 번 두드리는 부시장이 의사봉을 가지고 다니면 될 일입니다.

 

사실 도시와 건축위원으로 참여하시는 교수님들은 인근 3-4개 시군을 담당하십니다. 건축 안전 조경 교통 등 다양한 분야의 검토를 하시는 위원님들을 우리시에서 모두 다 모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오산시에 갔더니 부시장이 미리 회의실에 와 있더라, 의사봉을 들고 다니면서 활용하더라는 이야기가 주변에 전파됩니다.

 

건배사를 할 때 주향천리, 人香萬里(인향만리)라는 고급진 어휘를 구사하는 선배님이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소문이 널리 퍼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좋은 이야기는 비중이 높아서 자꾸만 아래로 가라 앉는가 봅니다. 나쁜 이야기 비판받는 이야기는 가벼워서 건물을 나가 들을 지나 산을 넘어 멀리멀리 퍼져나갑니다.

하지만 조금은 특이한 부시장 의사봉 이야기는 널리 퍼졌습니다. 아마도 전국의 민관에서 하루에도 수십 곳에서 의사봉을 쓰겠지만 봉을 두드리는 본인이 의사봉을 들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실용신안특허라도 받아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인근의 교수님들이 다른 시군에 가서 오산시의 사례를 이야기 하시고 그래서 점차 이 소식이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합니다. 널리 알리고자 한 일은 아닙니다만 금상첨화 격으로 알려지니 이 또한 기분 좋은 일이 되었습니다.

각종 위원회 위원들과의 오찬은 고급정보를 얻고 시정을 홍보하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오산시는 전쟁의 역사가 있습니다. 1392년 왜구가 침략하여 권율장군과 휘하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는 독산성을 포위합니다.

척후병의 보고에 의하면 독산성에는 샘물이 없어 건너편 황구지천의 물을 길어 먹고 있으므로 일주일동안 성 주변을 포위만 하고 기다리면 스스로 투항할 것이라 판단하였습니다.

 

왜군이 벌거숭이산에 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 한 지게를 산위로 올려 보냈습니다. 이에 권율은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백마를 산 위로 끌어올려 흰 쌀을 말에 끼얹어 목욕시키는 시늉을 했고, 이를 본 왜군은 산꼭대기에서 물로 말을 씻을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오판하고 퇴각한 역사적 일화가 있습니다.

이후 고양으로 이동한 권율장군은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크게 격퇴하였고 행주대첩, 진주대첩, 한산도대첩을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독산성 문화재에 가면 말의 등과 몸통에 쌀을 뿌리는 퍼포먼스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1950년 6.25당시에는 일본에 주둔하였던 맥아더장군 휘하의 스미스부대 (대대장 스미스 중령)원 540명이 참전하였습니다.

 

미군이 참전한 것인데 UN군 초전비로 불리는 이유는 미군이 UN군의 일원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540명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소련제 탱크를 감당하지 못하고 181명이 전사 실종되었습니다.

미군의 피해가 많았습니다만 이 전투로 인해 북한군은 잠시 남하를 멈추게 되고 아군은 낙동강 전선을 구축하는 시간을 갖게 되고, 소련과 북한의 남침에 대해 우방은 긴급히 UN군을 결성하여 참전하고 의료지원과 물자지원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산시는 이곳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고자 준비하고 있으며 죽미령 전투와 관련한 자료를 모아서 자료실을 보충하는 등 다각적으로 힘쓰고 있습니다. 18살 전후의 젊은 미국 병사들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역사를 우리는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참 많은 것을 안다고 하십니다. 사실 오산하면 죽미령 전투와 세마대의 역사, 그리고 고인돌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공자님을 모시는 궐리사가 있습니다.

 

闕里祠(궐리사)는 절이 아니고 孔子님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매년 봄가을 제사를 올리는데 부시장이 초헌관으로 참석하여 제를 올렸습니다.

오산시청 청사뒷편 주차장의 동선이 복잡하여 지름길로 들어오던 사람들이 가시나무에 옷이 걸려 고생하는 것을 보고 그 지름길에 주차면을 포기하고 길을 냈습니다.

디귿자 형태로 들어오는 길을 일직선으로 바꾼 것입니다. 담당 팀장은 10년 넘게 근무하면서 이 같은 불편이 있는 줄 몰랐다면서 신기하다 합니다.

 

4층 회의실에서 직원 조회나 포럼이 열리는 날에 동료 공무원들이 공무원증으로 참석 체크를 하는데 두 개의 문이 열려서 좁아진 틈새로 한명씩 들어가서 출석 확인하는 것을 보고 체크기의 선을 길게 늘려 풀로어에 테이블을 놓고 체크기를 쓰도록 해서 전철역에 카드 체크하고 들어가듯이 두 줄로 이용이 가능해졌습니다.

간부회의를 개최하는 상황실의 두 가지 개선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하나는 라운드 책상중 하나를 빼내서 통로를 만든 일이고 다른 하나는 국장은 뒤편으로 배치하고 PPT화면을 벽으로 이동하고 추가로 화면을 설치하여 다원화된 자료설명이 가능하게 한 일입니다.

 

아마도 간부 20명 당시에 설치된 스크린은 상황실 2/3지점에 있었습니다. 이후 간부들이 50명으로 늘어나도록 스크린은 그 자리를 지켰고 가끔 회의 중에 PPT를 보려면 스크린 뒤편의 간부들이 우르르 앞쪽 좌우의 빈자리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면은 벽으로 5m이동 설치하였고 양쪽에 대형화면을 추가하였으며 시장님 자리에는 작은 모니터를 설치하는 등 동시에 5개 화면을 구현함으로써 상황실 어디에서나 화면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개선하였습니다.

 

실무자 한 두 명이 조금만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면 수많은 동료 공무원은 물론 시민들에게도 큰 편리함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변화이고 혁신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오산시는 청렴의 도시입니다. 청렴평가는 시민평가와 내부 공무원의 평가를 합산합니다.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면 시민의 청렴평가가 올라갑니다.

인사를 명쾌하게 하고 상하간 의사소통이 원활하면 내부평가 점수를 잘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잘한 결과 2년 연속 최우수 청렴기관으로 선정되었습니다.

 

20년 내에 10위안에 들기도 쉽지 않은 일이고 1등 한 번도 어려울 것을 2년 연속으로 청렴평가 1등을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산시 간부공무원들에게 청렴사례를 소개해 달라는 주문이 몰렸습니다. 아마도 담당 과장님이 일정이 바쁠 때 슬쩍 부시장에게 넘겼나 봅니다.

지방행정연수원에 강의를 가게 되었습니다. 수원시 파장동에 있던 지방행정연수원이 전북 완주시로 이사 갔습니다. 사무관 교육을 받는 교육장으로도 유명합니다만 전국에서 감사부서 공무원들이 교육을 받으러 옵니다. 거기 가서 오산시의 청렴사례를 소개하였습니다.

 

[강의1]

청렴 평가 결과는 뇌물을 받아서 나쁘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질문지에는 뇌물을 주었는가, 뇌물 주는 것을 목격 했는가 등 험악한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공무원의 친절과 적극적인 자세입니다.

그래서 공직 남은 기간이 9년 미만이라면 이제부터 후배들에게 조직에 대하여 시민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근무하고 즐겁게 일하자고 강조했습니다.

 

[강의2]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불편이 혹시 아프리카 흑인청년들이 강을 건널 때 가슴에 안고 가는 동그랗고 검은 돌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물살이 강한 강을 건너야 하는 흑인청년들은 체중이 가벼우면 무거운 돌을 가슴에 안아야 하고 체중이 나가는 경우는 좀 가벼운 돌을 들고 건너갑니다.

이는 조상 대대로 이어지는 풍습인데 선교사들이 과학적으로 확인해 보니 물살을 이기기 위해 돌을 가슴에 안음으로써 체중을 90kg정도로 맞추는 것이라고 합니다. 조상 대대로 경험한 바 이정도가 이 물살을 이기는데 적정하다는 것입니다. 상세히 살펴보면 우기와 건기에 들어야 하는 돌의 무게가 마치 볼링장 선수들이 들고 경기하는 볼링공의 무게와는 반비례한다 할 것입니다.

 

[강의3]

독수리 평균수명이 40년인데 38세쯤에 설산에 올라 스스로 묶은 털을 뽑고 발톱을 갈고 부리를 암벽에 쪼아 빼낸 후 알몸으로 보름 이상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내면 깃털이 나고 부리가 자라고 발톱이 생겨나서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몸과 강력한 부리와 발톱으로 사냥에 나서면 체력을 보충하고 자신감을 충전하여 30년을 더 산다고 합니다.

 

[강의4]

아프리카 밀림에서 사냥꾼의 그물에 잡혀온 2살 아기코끼리는 10살이 되도록 굵은 쇠줄에 묶인 채 곡마단 단장님의 교육을 받고 무대 공연에 출연하면서 살았습니다. 8년이 지나면 단장님은 굵은 쇠줄을 풀고 아주 연약한 새끼줄로 바꿔줍니다. 쇠줄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난 코끼리는 언제라도 새끼줄을 풀고 밀림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현재의 삶에 익숙해진 코끼리는 탈출이나 외출을 감행하지 않습니다.

긴 세월동안 살아온 곡마단을 벗어나기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금연을 결심하는 순간의 떨림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오듯이 변화를 도모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기는 한 일입니다만 우리는 늘 블루오션으로 노를 저어 가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강의5]

행정에서의 편리함과 합리성을 도모하기 위한 노력을 서명하였습니다. 의사봉 들고 다니기, 보고자가 앞줄에 앉기, 회식장에서 사다리타기를 이용한 자리배정, 국민의례에서 ‘이하의식은 생략하겠습니다’를 생략하기 등 우리의 주변에서 반복적으로 관행적으로 답습하는 일들에 대해 반성해 보자고 했습니다.

 

[강의6]

공직자라면 누구나 불편한 진실이 인사발령 의식입니다. 행사시작 30분전에 공무원증을 달고 어색한 자세로 회의실에 가면 인사계 직원들이 먼저 온 사람들을 잡고 줄을 세웁니다. 아예 늦게 오면 줄을 서지 않고 비어있는 자신의 자리에 가면 됩니다. 그리고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어제 오후 5시에 이른바 인사발령 나팔을 불었습니다. 다 알고 있는 인사내용인데 회의실에 모이면 서로 어색합니다. 불편한 이유는 4급, 5급, 6급, 7급 모두를 한방에 발령하기 때문입니다. 잘 모르는 분들이거나 알아도 평소 대화를 할 기회가 적은 소통부재의 집단이 바로 동일자 인사발령자들입니다. 전혀 연관검색어가 나오지 않는 사이입니다.

많이 바쁘시겠지만 발령권자는 일찍 오시지 못합니다. 정시에 오시거나 10분정도 늦습니다. 왜 늦게 오셨는가 따지지도 못합니다. 그냥 논산 훈련병처럼 기다릴 뿐입니다. 결국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걸어나가 인사하고 받고 돌아가서 인사하고 나의 줄 맨 뒤에 서는 1분정도입니다. 나머지는 다른 이를 위해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인사 발령장을 주는 절차를 줄이자는 말입니다. 가상의 일사발령 현장을 중계 합니다. 우선 정시에 회의실이나 1층 로비에 모이도록 합니다.

가보면 과자, 과일, 녹차, 커피 등 다양한 다과류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줄을 세우지도 않습니다. 10분후에 인사발령권자가 오십니다. 작은 테이블에 수북하게 쌓인 발령장 하나를 들고 호명을 하십니다.

홍길순 주무관! 우리 홍 주무관은 그동안 도시과에 근무하였는데 이번에 승진하여 중앙동으로 가십니다.

이것이 인사발령입니다. 마지막 인사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신규 공무원으로 발령받으신 분들은 발령장을 들고 소속 부서에 가서 서무담당자에게 신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 부서에 근무할지를 알려주고 팀장, 과장, 읍장님께 인사드리도록 안내할 것입니다.

근무하시다가 힘이 들면 옆의 동료에게 묻고 팀장에게 의논하시기 바랍니다. 공직에서 가장 절친한 사람은 동료이고 직근 상사이니 건너뛰는 일은 가급적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것은 아니다 생각되시면 본청에 오셔서 당당하게 따지셔도 되겠습니다만 공직 내내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발령 끝!

실제로 신규 공무원 발령 시에는 주무과로 모이라 하고 인사팀과 같이 가서 발령장을 주었습니다. 20명이 주무과 과장님 앞에 모였고 부시장이 인사팀 주무관과 함께 발령장을 들고 파출을 나갔습니다. 복지분야 선배들이 보는 앞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신규 임용자에게 발령장을 전했습니다.

이때에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임의의 발령장을 뽑아서 호명하고 전달합니다. 일부러 2장을 남긴 가운데 이상으로 임용장 교부를 마친다고 선언합니다.

2명 신규 대기자가 사색이 됩니다. 영등포 청량리 학원에서 컵 밥을 먹어가며 3修(수)를 해서 합격한 공무원인데 발령장을 주지 않으니 얼마나 황당할까요.

아직 발령장을 받지 못한 분이 있나요? 나오세요. 2명이 손을 들고 나옵니다. 두 분이 가위바위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기신 분이 먼저 나오세요. 발령장이 여기 있습니다. 그 표정이 조금은 풀어집니다.

동료들의 표정에 안도의 빛이 퍼집니다. 작은 이벤트입니다. 삼수생으로 합격하였다면 성공한 공무원입니다. 신규 발령장을 받는 자리는 이벤트가 있어야 하고 재미를 첨가해야 합니다. 공직에 들어오는 일이 논산 훈련소, 해병대 훈련소 입소식이 아니니까요.

9급 신규 공무원에게 당부합니다. 사무실에 가서 마음에 드는 선배가 있으면 사귀자고 하라. 선배가 8급이어도 걱정 마시라. 3년안에 나도 8급이 되리니. 3년 사귀고 8급 승진한 다음 달에 날 잡으면 되는 일이다. 처음에는 그냥 웃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의미를 이해할 것입니다.

결혼할 거라면 서둘러야 합니다. 정년퇴직 이전에 아이들이 결혼하여 독립하기 위해서도 지금 급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결혼은 빠를수록 유리한데 공무원 합격 나이가 늦어지니 발령 받자마자 결혼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부시장이 신규 공무원에게 국가관이나 공직정신을 훈시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이미 공무원 필기시험에 합격한 후 면접강의를 받았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시청을 알고 시장님 부시장님 국장님 과장님에 대해 소상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국가관이 하늘을 찌르고 공직관은 벌써 이른바 퇴임의 변을 쓰고 있답니다.

청렴강의와 일상의 근무에서 기인까지는 아니어도 특이한 상황을 보였나 봅니다. 출근할 때 가는 길도 늘 그 코스가 아니라 매일매일 다른 길을 걸어보려 노력했습니다.

이과 저과의 커피 마시기 무전여행도 다녔습니다. 작은 변화가 큰 물결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소식이 주변에 알려지고 어느 날 강원도 원주시에서 오라 합니다. 경기도 양평군에서 강의를 해 달라 하십니다.

그리하여 지방행정연수원 초청 강의를 포함하여 5번 청렴강의를 하였습니다. 강사수당이 수 십 만원입니다. 이 강사료는 내가 받을 수당이 아니고 오산시청 공무원이 몫이었습니다. 수박 철에 수박을, 땅콩 철에 부럼을, 다른 달에는 귤을 사서 돌렸습니다. 그리고 잔액이 남으면 계란을 삶았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사서 베란다에 보관한 계란 4판을 삶았습니다. 7시30분 출근길에 노랑 보자기에 싼 계란을 들고 가다가 한번 쉬어야 할 정도로 계란이라는 것이 무겁습니다.

첫날에는 4층 의회에 올라가 1판을 의회 사무과장님께 전했습니다. 직원들과 나눠드시도록 한 것인데 이를 의원님께도 전했답니다. 의원님 한분이 삶은 계란 잘 먹었다면서 문자를 주셨습니다.

계란을 삶는 비법이 있습니다. 우선 냉장고에서 차갑게 저온으로 관리되었다면 실온에 꺼내서 30분 정도 적응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가스렌지에 물을 올리면서 동시에 계란을 투하해서 저온부터 적응시켜야 껍질이 개지지 않습니다. 물이 끓기 시작할 즈음에 국자 등을 이용하여 저어주면 노른자가 중앙에 자리 잡는다고 합니다.

식초를 넣어주면 계란 껍질이 잘 벗겨진다 하고 소금을 넣어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대략 소요시간은 15분 정도입니다. 펄펄 끓은 냄비를 싱크대로 옮겨서 반쯤 기울여서 뜨거운 물을 내보내고 찬물을 틀어 식혀줍니다. 두차례 정도 찬물을 바꿔주면 흰자와 껍질사이가 수축되어 껍질 까기가 수월하다 합니다.

구내식당 대형 솥을 빌려서 20판 600개 삶기에 도전하였습니다. 구내식당 무쇠 솥은 핸들이 있어서 손잡이를 돌리면 솥이 옆으로 눕게 됩니다. 물을 뿌려 청소를 하고 다시 기어를 돌려서 수평으로 한 다음 물을 받으면서 계란을 넣습니다. 소금 한바가지를 뿌리고 삶기를 시작합니다.

불을 붙이고 40분정도 기다리면 계란이 익게 됩니다.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므로 3명 정도 지원을 받아 작업을 합니다. 불을 지피는 동안 구내매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습니다. 이때에도 부시장과 대화, 소통의 시간을 갖습니다.

계란이 익으면 다시 종이판에 담아 과별 인원에 따라 1판 반판 2판을 전달합니다. 600개를 본청에 돌리고 다음날에는 600개를 삶아서 보건소, 환경사업소, 동사무소에 전했습니다. 아직 몰랐던 장소에 공무원이 근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복지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이클이 3번 반복되었습니다.

계란삶기를 통해 행정의 조직과 그 역할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삶은 계란이라는 아재게그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사시던 청년이 삶이란 무엇인가 알아보기 위해 서울역에서 기차에 올랐습니다.

영등포역에서 광주리에 계란을 들고 오신 여사님이 ‘삶은 계란, 삶은 계란, 이 열차에는 식당 칸도 없고 도시락도 없습니다. 삶은 계란입니다’하시므로 청년은 ‘인생이란 계란처럼 둥글게 살라는 말이구나’ 하면서 수원역에 내려서 정착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쓰지 말걸 그랬습니다.^.^)

2014년 메르스로 인해 온통 비상이 걸렸을 때 오산시에서는 발병하지 않았습니다. 홍삼이 메르스 예방에 효과가 있다 하므로 보건소에 다량의 홍삼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훗날 보건소장님의 기술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시청을 떠나 경기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으로 발령된 날에 군대에서 제대하는 고참 보내주는 마지막 소원수리 편지 쓰듯이 보건소 동료들이 엮은 편지다발을 떠나는 부시장에게 보내왔습니다. 지금도 사무실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독산성 문화제에서는 세교 노인정 어르신들 틈에서 장구를 쳤습니다. 2012년 장기연수 중에 사물놀이를 강의하신 소OO 선생님이 이곳 세교지구에 사십니다. 배운 대로 신명나게 장구를 치며 시민들 사이를 누비고 공무원들과 눈인사를 했습니다.

오산시 근무는 보람과 변화와 혁신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임 발령을 받고 현관에서 사진을 찍다가 눈물을 보이는 공직생활 중 처음이자 마지막 울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오산시청 근무당시의 열정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마음 푸근해집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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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