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 이야기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60년대 초등학교 운동회는 지역사회의 구심체 역할을 다했다. 가장 높은 국기대에 태극기가 걸리고 만국기가 휘날리는 가을운동회. 국민학생 200명, 동네주민 300명이 모여들어 청군백군을 연호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동네청년, 처녀총각들이 모두 모였다. 사실 어린이 운동회이면서 부락 체육대회가 열리는 것이다.

 

물기가 흐르는 대형 축전지에 연결된 마이크 소리가 신기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축전지가 떨어지기 전에 다른 축전지를 등에 지고 읍내까지 가서 충전해 오시는 소사 아저씨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발틀을 밟아가며 연주하는 풍금소리, 축전지로 돌리는 검정 레코드판에서 나오는 행진곡이 운동회 음향이고 나머지는 사람들의 함성, 발자국 소리, 농악소리.

 

 

아침 9시. 구불구불한 논길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든다. 태극문양을 연상하게 하는 모자는 청색과 백색천으로 만들어졌으므로 흰색으로 쓰면 청군, 백식으로 쓰면 백군이다. 청군백군은 아주 오랫동안 전통을 이어온 대진표다.

먼저 청군과 백군이 양쪽에서 입장하면 교장 선생님의 인사말씀.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을 맞이하여...로 시작된 말씀은 승패를 떠나 스포츠 정신을 살리자는 말씀으로 마무리된다.

 

학년별 경기가 열리고 오전행사가 끝나면 점심시간이다. 그늘이 조금만 있으면 식탁이고 펼치면 밥상이다. 준비된 음식이 많다. 어머니, 할머니가 직접 가지고 오신 것이고 식사할 인원도 소풍때보다 많기 때문이다.

2시경부터는 부락 체육대회다. 할아버지 공굴리기. 할아버지 10분씩 2팀이 국민학교 5학년 학생 키만큼 큼 공을 릴레이로 굴린다. 10분이 다 굴리면 반바퀴 정도에서 승부가 난다.

 

공을 굴리시는 할아버지의 행장을 볼라치면 한복에 검정색 구두를 신으셨고 중절모를 쓰셨다. 흰 수염을 날리며 담뱃대를 든 채 공을 굴리는 분도 있었다.

다음은 할머니와 미취학 유치원생급 아이들의 과자 따먹기. 처녀들의 달리기. 가을 운동회의 마무리는 부락대항 400m 계주. 눈썹을 휘날리며 운동장을 도는데 승패를 가르는 것은 ‘바통’이다.

 

플라스틱 막대기를 4명이 100m 마다 전달해야 하는데 성급한 나머지 이 ‘바통’을 떨어트리는 팀이 질 수 밖에 없다.

앞서 달려가다 바톤터치가 미숙하여 패한 부락 주민들의 아쉬움은 짧은 가을 오후의 햇살과 함께 사라지고 더 어둡기 전에 운동회는 끝난다.

 

그런데 만국기와 함께 휘날리던 길죽한 종이가 생각난다.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찬조금을 내신 것이다. oo리 김아무개 1仟원이라고 썼다.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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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