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의 여관작업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아마도 공무원의 여관작업은 1990년 초까지 이어진 것 같다. 남녀 공무원들이 여관의 한방에서 낮에는 물론 밤늦게까지 일하고 새벽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 일하고 인근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작업하는 강행군이었다.

한번 여관작업이 시작되면 1주일에서 10일정도 걸리고 때로는 2-3일에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었고 처음에는 30여명이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304명이 남아서 최종 정리를 한다. 그리고 이중 대표선수는 중앙작업에 차출되기도 한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할 줄 안다. 이들은 이미 시군지역에서 수일간의 여관작업을 거쳐서 도 작업을 온 것이고 이어서 중앙작업까지 가게 된다.

이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여관작업은 복잡한 행정통계를 집계하기 위해 공무원들이 여관에 모여 숙식을 함께하며 일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한방에 3-4명이 일하게 되는데 이들은 복잡한 서식이 담긴 서류와 계산기, 주판 등을 가지고 일한다. 시군에 따라서는 남녀 젊은 직원이 거들기도 하므로 36개시군이 있었던 당시 도 작업을 하게 되면 그 인원은 40명이 넘었다.

그래서 불경기에 여관작업 한팀을 유치한 여관은 돈벌이가 되었다. 40명이면 최소한 방 10개 이상이 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업전용 여관에는 베니어판으로 짠 작업용 상이나 기존의 가벼운 교잣상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특히 베니어판 상은 계산작업은 물론 종이를 자르는데도 용이했으므로 각각의 작업용 상은 그 얼굴의 흉터로 관록을 자랑하기도 했으며 주변의 식당 전화번호, 다방 연락처가 적힌 스티커의 숫자로 연륜을 평가받기도 했다.

그리고 여관 카운터에는 시군 연락번호와 도청 번호가 있어서 수시로 전화를 교환해 주었고 소속 기관에서 보내는 서류나 아내가 보내는 속옷 보따리등도 차질없이 전달해 주었다.

 

작업이 끝나갈 즈음 본청의 계장과 차석이 한번쯤 격려방문을 한다. 오후 5시경 작업방이 있는 여관의 ‘본부방’으로 내려가 몇가지 격려의 말씀을 하시고 이어서 시군 대표공무원인 총무의 제의로 저녁식사를 하기도 했다.

작업이 끝나면 도 실무자는 최종 보고서를 작성한다. 내부 보고를 거쳐 당시 내무부 작업을 가야하기 때문이다. 행자부 작업기간은 시군이나 시도보다 조금 짧다.

 

그리고 행자부 직원은 작업 첫날부터 보고서 작성에 들어간다. 노련한 시도직원들이 전체 집계를 하는 동안 자체보고서를 꾸미면서 때로는 새로운 주문을 하기도 한다.

내무부의 특징 중 하나는 같은 업무에 대해서도 매년 조금이라도 변경을 해서 보고하는 것을 개선이요 개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내무부 작업장으로는 ‘필운여관’이 유명하다. 종합청사 주변에 있는 내무부 작업방은 정말로 작업장이다. 허름하고 좁은 것이 시골집 개조한 것과 흡사하다.

50대 선배공무원들은 8급, 7급 당시에 이같은 여관작업을 매년 반복했다. 그리고 안좋은 추억도 가지고 있다. 연관계수가 틀리면 그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때로는 도저히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처럼 전산으로 처리하면 숫자가 틀릴 수 없고 오류를 금방 찾을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별의별 방법을 동원해도 원인을 알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때 숫자를 흔들었다. 더 이상 설명은 안하는 것이 좋겠다.

지금은 전산으로 처리되고 연단위, 월단위, 주단위, 일단위, 시간단위로 통계가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당시에는 1년에 한번 내는 통계인데도 그처럼 힘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공무원 수는 반이하로 줄어도 될 법한데 늘 부족하다고 한다.

 

컴퓨터가 대신해주는 일의 양만큼 도민의 편익과 복지증진, 지역발전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읍면동, 시군, 시도, 내무부를 거치는 여관작업을 하지 않는 대신 새로운 영역의 일을 개발하고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여관작업은 힘든 일만은 아니었다. 50대 선배 공무원들은 중앙부처에 아는이가 많다. 함께 먹고 자면서 한해 10여일씩 한 3년 일하고 나면 내무부 직원 10명은 알게 된다.

 

이들이 움직이면서 또다시 만나기도 하고 승진하면 서로 축하해 주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그분들의 교류는 이어지고 있다.

지방자치가 활성화된 요즈음, 최소한 행정자치부의 관련부서 공무원을 만나 함께 일하고 토론하고 싸울 기회가 줄어든 것 같아 안타깝다.

 

그렇다고 여관작업을 부활할 수는 없겠고 무엇인가 중앙과의 교류창구나 수단이 새롭게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안면행정’만큼 확실한 것이 없을 것이기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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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