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바라보는 방법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자연을 바라보는 방법

先山(선산) 들녘에 대한 기억은 유년의 추억이 더해져서 무난하고 편안합니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접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것도 고향이라는 마을의 평온한 정경입니다.

 

 

그 묘역에서 하루종일 풀을 깎으시던 할아버지가 생각납니다. 반백의 반대머리 할아버지는 숯돌에 무쇠 조선낫을 솔솔솔 삭삭삭 갈아 시퍼런 날을 세운 후에 이른 아침 이슬이 마르기 전에 선산에 가셨습니다.

점심까지 짧은 잔디를 조금씩 잡아당겨 깎아낸 풀은 뒤에 내려놓고 잡은 풀 중 한 줌을 다시 가져가서 풀깍기를 이어가십니다.

 

그 모습은 마치 지하수를 퍼 올리는 펌프를 작동하기 전에 물 한 바가지를 부어 넣는 것과도 같습니다. 철과 고무로 만든 펌프는 스스로 물을 퍼 올리지 못하고 압력을 늘려줄 물을 반쯤 채우고 펌프질을 해야 지하 10m속의 물을 끌어 올려 촤르륵 하고 시원하게 뿌려줍니다.

 

여기, 물을 퍼 올릴때 미리 부어주는 한 바가지 물을 ‘마중물’이라 합니다. 손님이 오시는 날 미리 동네 어귀에 나가서 모셔오는 것을 ‘마중’이라 합니다.

지하에 고여있는 물을 이끌어 올리는데 쓰이는 물이니 마중을 나가는 것이고 그래서 마중물이라는 멋진 표현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마중물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어휘력 천재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펌프를 작동시켜 물을 퍼올리기 위한 한 바가지 물이 마중물이라면 낫으로 풀을 깍기 위해 한 줌 깎은 풀을 한줌 쥐고 풀깎기를 시작하는 것이니 '마중풀'이라 해야할것 같습니다.

차를 운전하면서 과도하게 높아서 차량에 충격을 주는 불편한 방지턱을 설치한 것에 대해 '과속방지턱 갑질'이라는 말을 아마도 최초로 여기에 꺼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중풀이라는 표현도 처음일까 기대합니다. 많은 분들이 풀깎기를 하면서 한줌 풀을 쥐고 시작하였지만 그 것을 '마중풀'이라든지 다른 어떤 표현을 하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우리의 삶속에는 그것을 시작하기 위해 어떤 사전적 작업을 하곤 합니다. 바이올린이나 관악기를 연주하기 전에 점검하는 것도 전문용어가 있더군요.

 

조상님 선산의 벌초 작업은 세월을 돌아보고 미래의 세월을 예견하는 일입니다. 수 많은 조상님들이 긴 세월을 살아 오셨습니다.

저 위에 모신 할아버지는 400년전 조선시대에 태어나셨고 농사를 지으시며 사셨습니다. 그리고 이곳 선산을 지키는 후손들의 정성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묘역을 잡으셨습니다.

 

스스로 정하신 것은 아니고 조상을 모시는 후손들이 높은 곳에 모신 것이지요.

여우가 객지에서 죽더라도 首丘初心(수구초심)이라 해서 고향의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고향이 있고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다행스럽게도 고향마을을 굽은 소나무와 함께 지켜내는 행복한 인생을 사시는 후손들이 있습니다. 부러운 분들입니다. 당신들은 힘들다 하실지 모르지만 장구한 세월속에서 돌이켜보면 가장 행복한 자손입니다. 부모님 終身(종신)하는 자식이기도 하니까요. [참고] 종신(終身) 1. 목숨을 다하기까지의 동안. 2. 일생을 마침. 3. 부모가 돌아가실 때 그 곁에 지키고 있음.

 

조상님들이 후손을 마중 나와서 이곳에 머물게 하고 당신들은 홀연히 떠나서 그 자리에 머무시는 곳이 선산이고 종산입니다.

말씀은 없으신데 후손, 자손이 선산에 와서 잡초를 뽑고 입구의 답답한 길을 넓히는 작업을 하는 자손에게는 각별한 마음씀이 있으실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고마운 마음으로 오늘 선산에 다녀왔습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