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흑백TV 자바라를 열다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77년 흑백TV 자바라 문을 열다

 

고등학생 시절 명화극장, 토요명화 시간에 ‘빰빠빠바 빰빠바바’하면서 사자가 나타나고 별로 그려진 원을 따라 한번 울부짓고 나면 영화가 시작되고 에베레스트 산 정상의 사진이 원형으로 나타난 후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첫 장면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2년 먼저 TV를 구입하시고 안테나를 설치하신 이웃집 아주머니께서는 밤 10시경에 마치는 연속극만 보시고 TV를 끄십니다. 관객들은 눈치껏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정말로 보고 싶었던 명화의 예고편만 잘 알고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잘 모르고 있는 이유가 설명되는 것입니다.

 

1977년 두 달치 월급을 모으니 흑백 TV 한 대를 살 수 있습니다. 동네에서 가장 늦게 안테나를 세운 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1978년에도 1979년에도 토요명화, 명화극장은 계속되었습니다. 일요일 낮에는 어김없이 미국에서 撮影(촬영)된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타잔, 600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등 20대 청년이 보아야 하는,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늘 공급되었습니다. 그리고 형사콜롬보의 코트와 집요하게 범죄를 是認(시인), 自認(자인)하라는 언저리 질문에 진이 빠지기도 했습니다. 자바라 문을 닫을 시간도 없이 흑백 TV는 늘 사랑받는 가전제품 1호였던 것입니다.

 

어쩌면 20대의 서정이나 인간성이 흑백 TV를 통해 형성 되었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이후 만난 분들은 공무원과 민원인이 대부분이고 인생, 역사, 자연, 문화 분야의 첨단을 접촉할 기회는 대부분 TV와 수원소재 중앙극장과 수원극장이 전부였으니 말입니다. 나머지 실사회, 공직사회는 늘 경쟁하고 촉박하고 압박하는 시츄에이션만 보였으니 말입니다.

 

두 번째 가전은 冷藏庫(냉장고)입니다. 흑백 TV보다 냉장고가 간절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만 해도 4계절이 뚜렷하여 한여름에 수박을 넣었다 시원하게 먹거나 열무김치 익기 직전에 냉장에 넣었다 꺼내서 국수 말아먹는 정도가 冷藏(냉장)기능을 활용하는 것이 전부였기에 말입니다.

 

더러는 한여름 얼음 동동 띄운 설탕물을 마시거나 선식가루 미싯가루와 얼음을 함께 넣어 흔들어 마시는 정도가 조금 업데이트된 냉장고의 냉동고 활용법이었기에 말입니다.

 

냉장고의 활용성보다는 구입과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980년 화성군 팔탄면사무소에 근무하면서 냉장고를 사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질 즈음 사무실에 출근하여 ‘우리 집도 냉장고를 사야한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총무계장님께서 곧바로 손을 드시고 구매를 도와주시겠다 하십니다. 동생이 전자회사에 다니신답니다. 그리하여 도시에 나가 계장님 동생님을 만나서 냉장고를 접수하게 되었습니다.

 

디자인은 중요하지 않고 기능만이 중요하였던 바이니 아마도 150리터 짜리 냉장고를 미니 트럭에 싣고 기다리십니다. 그 차에 타고 시골 집으로 내려온 것이 냉장고 구매과정의 전부입니다.

 

그 과정에 이런 흑막이 숨어있습니다. 냉장고 제작이나 유통과정에 작은 상채기가 난 제품을 사원용 할인품으로 구매한 것입니다. 20%이상 싸게 구입하였는데 집에 와서 살펴보니 오른쪽인가 벽면을 신경 써서 보면 살짝 찌그러짐이 보입니다.

 

이 정도의 제품결함은 10년 이상 냉동·냉장기능을 발휘하는데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나중에 시흥시 고천읍으로 이사 갈 때 트럭 맨 앞자리에 오를 정도로 당당한 주방의 중심 가전으로 자리매김하였던 것입니다.

 

세 번째 가전은 녹음기인데 영어공부 한다고 007가방 속에 녹음기를 장착하고 헤드폰을 통하여 열심히 정철영어를 들었지만 그 단어들은 모두가 허공으로 흩어지니 외국인을 만날 일도 없지만 영어 앞에만 서면 늘 흑백 인간이 되고 냉동인간이 되는 것은 영원한 가전사 아픔의 작은 片鱗(편린)중 하나인 것이고 인생의 한페이지를 장식하는 白色家電(백색가전)의 추억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폴더형 전화기, 019PCS, 011, 010, 그리고 스마트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날을 위해 지금 쓰고 있는 스마트폰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자 합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