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드 프로세서 1984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奧妙(오묘)한 워드프로세서

 

2016년 현재 모든 공무원이 책상위에 마우스와 키보드의 깔끔한 디자인으로 제작된 PC를 한 대 이상 보유하고 있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테블릿피씨 등 첨단 장비로 부장하고 있는 가히 ‘람보’급으로 중무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공직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1984경, 30여년전으로 돌라가보면 상황은 이러 합니다. 우선 계장님 양수책상을 중심으로 차석과 삼석이 비행기 대형으로 양 날개를 달고 이어지는 7급 8급의 책상이 도열해 있습니다. 천정에서 내려다보면 항공모함이 동해바다를 항해하는 형상입니다.

 

그리고 책상에는 검은색 전화기가 2대1조로 배치되어 총 8대가 있지만 전화번호는 2개입니다. 대개 행정전화 번호는 2422, 6422입니다. 이 전화기는 계장님 책상위에서 시작되어 서무담당에게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흔히 앞 번호로 2번 전화 6번전화로 칭합니다.

 

그리고 책상위에 서류가 몇 장 쌓여있습니다. 결재판과 고무명판이 보입니다. 계장님의 명패와 이름 석자, 그리고 기결미결보류 함, 특히 당시에는 당당하게 자리한 대형 재떨이가 있습니다.

 

오전에 한 수북, 오후에 한 수북 담배꽁초가 쌓이곤 합니다. 컴퓨터는 없습니다. 컴퓨터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열심히 행정업무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 문서계에 중앙부처 과학기술처로 추정되는 기관에서 택배를 보내왔습니다. 종이박스 속 스티로폼으로 곱게 포장된 물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컴퓨터’라는 것입니다. 텔레비전 화면도 있고 타자기 자판도 있고 네모난 도트프린터가 들어있습니다.

 

이 처음 보는 물건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어느 부서에 주어야 하는 택배인가? 이 해괴한 기계, 컴퓨터를 어느 부서에 주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컴퓨터라는 말을 영어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영어사전에 전자 회로를 이용한 고속의 자동 계산기. 숫자 계산, 자동 제어, 데이터 처리, 사무 관리, 언어나 영상 정보 처리 따위에 광범위하게 이용 된다 등으로 설명되는데 자동계산기라는 말이 우선 보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부시맨의 콜라병처럼 어느 날 번뜻 공무원 앞에 나타난 UFO와도 같은 이 컴퓨터는 통계부서에 배정되었습니다.

 

어느 날 기획국장이 문서결재를 하던 중 문서 요지가 인쇄된 것을 확인합니다.

 

“아니 이 사람아! 얼마나 돈이 많다고 해도 결재문서 요지를 인쇄해서 붙이는가?”

 

“아닙니다 국장님, 저희 과에 컴퓨터라는 물건이 있는데 이 기계에 단어를 치고 한자로 바꾸면 이렇게 인쇄되어 나옵니다.”

 

“그러하다면, 이 기계는 보고서를 많이 만드는 기획부서에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후 국장님의 지시에 따라 장비가 옮겨지고 기획부서에 이 컴퓨터를 전문으로 하는 직원이 배치되고 서울 본사에 가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 장비는 기획계장님이 직할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업무와 관련한 중요문서는 이 기계를 통하도록 합니다.

 

어느 날 기획계장이 중요 보고서 초안을 기안하여 워딩을 부탁하니 50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인쇄된 개조식 보고 문서를 다시 검토합니다. 문장이 길면 줄이고 짧은 문장은 길게 늘려 다시 워딩을 부탁합니다. 워딩 심oo양은 5분 만에 수정을 완료하여 계장님께 넘겨줍니다.

 

저녁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와 보고서를 다시 검토한 후 최종 보고하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기획계장과 차석직원은 5분 만에 다시 가져온 인쇄된 보고서를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1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5분도 안 걸리나?”

 

“아~ 예, 이 기계 속에는 문서를 저장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한번 작성한 문서를 기계가 기억을 합니다. 기계가 문서를 기억한다. 부르면 강아지처럼 쪼르르 달려온다는 말이지? 그 기계 속에 무슨 조화가 들어있기에 종이에 인쇄할 글이 들어있다가 부르면 나오고 들어가라면 愛玩犬(애완견)처럼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인가요.

 

이후 모든 부서의 예산편성 시 1순위 사업은 이 워드프로세서 구입요청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준을 세운 바 컴퓨터는 국에 1대, 과에 1대를 거쳐서 나중에는 계에 1대의 시대를 맞이합니다.

 

결국 1995년 전후에 드디어 ‘1인1PC시대’가 되고 동시에 찾아온 ‘1인1전화기 시대’와 함께 행정의 혁신을 이루게 됩니다.

 

각종 장비의 열을 식히는 장비 속 환풍기 때문인지 OA사무실이 생겨나고 이른바 칸막이가 더 세분되는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이른바 OA사무실을 꾸며 칸막이를 하니 조용한 자신만의 공간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기대했지만 요즘에는 다시 칸막이를 철거하고 疏通(소통)행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보와 자료는 플로피디스켓에 담아 보내면 상대편 PC에 저장하고 다시 꺼내서 수정하고 합산하는 작업을 통해 행정을 발전시켰습니다.

 

IT는 더 발전하여 작고 견고해진 USB시대를 맞이하여 간단한 선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스토리존이라고 아무리 큰 파일도 보내기만 하면 쪼르르 상대방에게 달려가 접수를 기다립니다.

 

글씨를 못써서 고민이 많았던 공무원들은 PC를 잘 다루고 문서를 멋지게 편집하면 일 잘하는 것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사실 아무리 글씨를 잘 써도 인쇄된 문서를 따라가지는 못합니다.

 

더구나 펜글씨는 1글자가 틀리면 1쪽을 다시 작성해야 하지만 워드르포세서는 저장기능을 활용하여 다시 불러들여 한 두자 수정하면 또 하나의 원본이 되어 출력할 수 있습니다. 행정의 대혁명을 맞이한 것입니다.

 

하지만 잃은 것이 많습니다. 전화기 2대 놓고 순서를 기다려 전화를 걸고 걸려온 전화기를 선배와 계장님께 바꿔주던 시대의 낭만은 사라졌습니다. 워드프로세서가 아니라 펜으로 타자기로 열심히 기안을 하던 시대의 동료 간 소통, 차석의 권위, 계장님의 멋진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각자가 칸막이 속에 숨어서 각자의 일에만 열중한 나머지 ‘칸막이 행정’이라는 지적을 받는 시대입니다.

마이카 시대는 공직사회를 바꿔놓았습니다. 이른바 ‘석양주’가 사라졌습니다. 소주잔에 두부찌게 조려가며 선배의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후배에게 토로하며 현장교육을 하던 모습도 없습니다.

 

술에 취해 동료의 신혼집에서 소주한잔을 더하고 다시 선배의 집에 가서 “형수님! 형수님!”을 연호하며 소맥을 들이키던 그 시절은 사라졌습니다.

 

한밤중에 집에 돌아와 보니 검정봉지에 들어있는 [쌤뱅이과자]를 아이들이 맛있게 먹었다 하므로 어제 오후 취중의 과정을 비디오로 돌려보니 어제 밤 10시경에 과일가게에서 계장님이 사서 손에 들려주던 장면이 어렴풋이 떠올라 가슴 먹먹하던 그 추억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溫故而知新, 他山之石. 지난날을 돌아보고 오늘을 새롭게 해야 하는 시대인가 생각합니다. 정보를 독점하여 경쟁력을 확보하는 시대가 아니라 공개하고 공유하면서 함께 발전을 도모하는 새 시대를 맞이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