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노인은 도서관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이 한 분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불탄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노인과 어른의 지혜가 소중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80년, 90년을 살아온 경험이 젊은이에게 큰 힘이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빼면 남는 것은 어릴적 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삼촌, 이웃집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입니다. 요즘 말로 “나 때는 말이야”가 통하던 시대입니다.

 

전기가 끊어지는 상황을 ’블랙아웃‘이라고 합니다. 대규모 정전사태를 이르는 것으로 ‘대정전’이라고도 합니다. 블랙아웃은 공급되는 전기보다 사용되는 전기의 양이 많아 특정지역에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정전사태를 말합니다.

사실 태어나서 고등학교 2학년까지 불랙아웃 구역에서 살았습니다. 전기를 처음 본 것은 1964년 유치원생일 때입니다.

 

우리 동네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아랫마을 방앗간에 3줄짜리 전선으로 방앗간용 동력선이 들어왔습니다. 여기에 장비를 연결해서 110v 전기를 뽑아내서 영사기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100촉 전구를 장대에 매달아서 주변을 밝혔습니다. 100촉이란 촛불 100개를 켰다는 말입니다. 어려서 제사 지낼 때 촛불 2개를 켜면 4칸 대청마루와 안마방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이전에는 등잔을 켰습니다. 석유라고 등유를 됫박으로 사다가 큰 병에 담아두고 커피병 바닥에 50cc정도 부어주고 철사줄에 매단 우산대 대롱 속 융단 심지에 불을 붙였습니다. 검은색 연기 그름이 올라오면 심지를 조금 내리면 됩니다.

 

심지가 크면 환한데 그름이 일고 그름이 나지 않으면 어둡습니다. 불꽃이 작아서 파란색만으로는 주변을 밝히지 못합니다.

 

등잔 10개를 켜도 촛불 하나를 당하지 못하는데 제사를 지낼 때 2개의 촛불이 이처럼 환한데 초 100개를 켰다는 100촉 전구는 온 동네를 환하게 밝혀주었습니다. 2km 떨어진 집에서도 잘 보입니다.

 

전기는 음향장비도 가동시켰습니다. 삼광 영화사가 지금도 건재했으면 합니다. 영화사의 마스코트인 辯士(변사)는 거즈 손수건을 노랑색 고무줄로 묶은 마이크를 잡고 목에 핏줄을 세워가며 영화상영을 홍보합니다. 늘 하는 말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자안리 주민 여러분’입니다.

 

우리 동네 어르신들이 언제부터 문화와 예술을 사랑했을까요. 아마도 이 동네에 어떤 할아버지께서 400년전에 낙향하셨을 때부터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셨나 봅니다.

 

조선시대에 공부에 집중했다면 한양에서 왕족으로 사셨을 것입니다만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셨기에 시골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변사님은 어찌하여 우리 집 내력을 잘도 알고 있습니다.

 

先塋(선영)의 조상님 비석을 살펴보면 단기 3941년에 태어나셨습니다. 시골에 내려오신 첫 번 할아버지 존함은 諱(휘) 李應綠(이응록)입니다.

 

비문에 諱(휘)應綠이라 적습니다. 휘는 ‘돌아가신 어른의 생전 이름’으로서 송구하게 존함을 부른다는 뜻이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20세에 낙향하셨다고 보면 서기 1628년입니다. 400년전부터 이곳에 사시면서 수 많은 자손들이 자자손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신기한 일이기도 합니다. 긴 세월 그 맥이 끊기지 않고 열심히 살았습니다. 400년이면 146,000일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긴 세월입니다. 400년 중 350년은 전기없이 살아온 가문입니다.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닌 줄 잘 알지만요.

 

우리 조상님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신 줄 잘 알고 있는 삼광영화사 변사는 늘 경품을 내놓았습니다. 영화가 끝나면 입장할 때 영화표를 반으로 잘라 넣은 추첨함에서 표를 꺼내서 손님들이 땀나게 쥐고 있는 나머지 표와 맞으면 그 자리에서 경품을 줍니다.

 

아마도 아폴로 우주선을 개발하다가 우주에서는 무중력으로 인해 볼트와 너트가 스르르 풀어진다는 문제점을 풀기 위해 소재를 개발하다가 플라스틱이라는 것이 나왔다 했습니다.

 

 

金型(금형)으로 여러 가지 가재도구를 찍어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플라스틱 바가지입니다. 바가지는 본래 박이라는 작물을 재배해서 얻는 호박보다 둥근 박을 반으로 잘라내서 농산물을 담거나 물을 퍼담는 도구 중 하나입니다.

 

흥부전에서는 金銀寶貨(금은보화)가 나와 흥부를 부자로 만들기도 하고 도깨비가 나와서 놀부를 때리기도 합니다. 요즘에도 예능에 ‘박깨기’가 나오는데 한 번에 쳐서 깨지만 다행인데 어설프게 쳐서 깨지지 않으면 충격만 크고 머리 통증이 더하다고 합니다.

 

박은 사람의 운명과 팔자에도 영향을 줍니다. ‘뒤훔박 팔자’라고 땅바닥 쪽에서 생장한 부분은 막 바가지가 되고 태양을 보며 자란 부분은 하회탈이나 예술작품의 소재가 됩니다. 최소 물바가지가 됩니다.

 

그래서 사람 팔자 ‘뒤훔박’ 팔자라고 했습니다. 공부나 재능보다 시집을 잘 가거나 금수저 집안에 태어나면 편하게 사는 것이고 하인의 자손이나 흙수저 집안에 태어나면 낮은 신분에 경제적으로도 힘들게 사는 것입니다.

 

이 바가지가 플라스틱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그래서인가 물건값을 터무니없게 비싸게 지불했거나 내 물건을 헐값에 팔았을 경우 우리는 바가지 썼다 하고 바가지를 씌웠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영화사에서 경품으로 준 이 바가지가 생각보다 헐값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바가지를 쓴다는 말은 물건가격에 적정하지 않고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를 말하는가 해석해 봅니다.

 

아니면 큰 양동이를 머리에 씌우고 우르르 두드리거나 뭇매를 가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심각한 폭행을 당한 것도 바가지를 쓴 사건이 되겠습니다.

 

영화는 끝나고 경품 한 개를 받아들고 집으로 오는 길은 어둡습니다. 달도 구름 속에 있고 시골집 창틀로 새어 나오는 석유 등잔 불빛을 북극성으로 삼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전기를 만난 것은 문명이지만 그 화려한 불꽃놀이가 끝나고 나면 다시 암흑의 세상으로 돌아왔다가 새벽 닭이 열어주는 여명을 타고 밝은 다음 날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1960년대 경기도 화성군 비봉면 자안리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에 순응하고 농촌의 정서에 길 들여진 착한 아이들입니다.

 

큰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주어진 현실에 마주하면서 하루하루를 맞이하고 먼 미래에는 나도 역시 어른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 소년이 회갑을 지나 과거를 회상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가 아닌 농촌, 시골에서 전기 없이 살았던 어린 시절이 나이 들어서는 이야기의 源泉(원천), 생각의 창고가 되고 있다는 점을 최근에서야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런 환경이야말로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를 날아다니는 우주여행과도 같은 상황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정말로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고 銀河水(은하수)가 밤새도록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란 아이이니 그 상상의 폭은 아파트 벽보다 넓고 도심 스포츠센터의 수영장 레일보다 훨씬 큰 자연의 호수를 거닐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대로 하늘의 달을 동네 소나무에 매달아 보기도 하고 대나무 숲으로 보름달을 데려와 보기도 합니다. 더러는 필요하면 도개비도 만들고 허수아비를 슈퍼맨으로 삼아서 수수깡 밭을 날아다니는 마녀와 싸움을 걸기도 했단 말입니다.

 

그런 상상의 나라에서 보낸 유년시절은 지워지지 않는 인생 기억이고 그 무대를 바탕으로 시작되는 스토리는 폭이 넓고 내용이 깊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사가 마음먹은 대로 가는 것이 아닌 것처럼 글쓰기 또한 처음의 준비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다른 길로 갔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더러는 전혀 새로운 분위기 속에 서 있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팔리기 위한 책, 읽히기 위한 글을 쓰겠다는 다짐이 쉽게 자리를 지켜낼지는 아직 모르는 상황에서 일단은 허우적거림을 시작합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