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 인사발령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80년대 경기도청과 시군청의 인사발령 상황을 소개하겠습니다. 당시의 인사권자야 말로 인사권자입니다. 전혀 중간 간부들이 인사권 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로지 몇 사람만이 미리 아는 인사안을 청내 방송으로 알려야 전체가 알게 됩니다. 당시에는 청내 방송으로 발표하는 것을 '인사발령 나발을 분다'고도 하고 '인사가 터졌다'고도 했습니다.

 

 

"딩동댕~~~" 차임벨이 울리면 청내 모든 사무실은 전화통화를 하다가도, 민원인과 대화중에도 모든 활동이 정지됩니다. 마치 민방위 훈련 사이렌이 울린 듯 정막한 가운데 오로지 청내방송을 통해 나오는 인사발령 내용을 들으면서 부서 전체가 "와~"하기도 하고 "우~"하기도 합니다. 와는 승진이고 우는 엉뚱한 분이 발탁된 경우일 것입니다.

150여명 인사발표가 끝나고 나면 사무실과 복도는 장날의 장터가 됩니다. 우르르 몰려가서 인사발령 내용이 담긴 문서를 입수해야 합니다. 공보실은 인사계 차석이 방송하러 와서 생수 한 컵과 인사발령지를 교환합니다. 150명 정도의 명단을 다 발표하려면 인사계 차석의 입이 마를 것이니 미리 종이컵이나 유리컵에 물 한잔 챙겨들고 방송실에 들어간 것입니다.

 

따라서 인사발령지를 구하기 좋은 부서 중 한 곳이 공보실입니다. 10분 먼저 인사발령지를 받은 곳이니 이미 복사기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인사발령지가 여러 장이니 요즘처럼 발전한 아래한글 워드프로세서라면 ‘모아찍기’로 1장에 2쪽을 넣으면 좋을 것입니다만 과거에 A4 두 장을 70%로 줄여서 축소 복사하는 것조차 급한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서 계속 1매1면으로 자동복사기를 돌리는 것입니다.

사실 한 시간 후에 살펴보아도 다 알 수 있는 일이고 안본다고 바뀌는 것도 아닌데, 더구나 자신은 인사발령 대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왜 그리도 급하게 인사발령 내용이 궁금했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다도 급할 것 없는 일이었는데 당시에는 참 재미있는 일이 인사발령입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정말 갈 사람이 그 자리에 가고 승진할 사람이 급수가 올라가는 것을 늘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갈 사람이 가고 승진할 사람 승진한다는 말속에 숨어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직자의 경우 그 자리에 가면 그만한 일을 한다는 말입니다. 기획부서에 가서 근무하면 늘 기관의 정책, 미래를 담당하므로 일하는 모습이 보이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청사관리 부서 공무원은 아침저녁으로 청사를 빙빙 돌고 챙기고 화장실 휴지가 있는지 청소는 잘 되었는지 챙겨보지만 간부님이 오셨을 때 미비한 점은 늘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던 공무원이 아이가 아파 병원에 다녀온 그 순간에 국장님이 이미 사무실에 오셨고 매일매일 땡땡이 치던 선수가 술 한잔 더하려고 서랍 속 비상금 챙기러 밤늦게 사무실에 왔다가 퇴근하시다 소관 사무실에 들르신 국장님을 만났다는 이야기 입니다. “아이고! 이 사람 늦게까지 고생이 많구먼.”

 

술값 비상금 가지러 왔다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으며 다음번에 승진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자 당할 수 없다고 하고 실력있는 사람을 능가할 수 없다고 하지만 결국 '재수 좋은 놈'은 그 누구도 이길 수가 없다는 말이 맞습니다.

 

승진은 또다른 승진의 기회를 마련하는 발판이 됩니다. 그래서 공직자들은 근무내내 승진과 보직관리에 신경을 스면서 일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승진과 깊은 관련성이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도 더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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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