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화두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불가에서 어떤 명상의 주제를 화두라고 이해하고 있다. 고승의 한 말씀중 유명한 이야기는 차한잔 하고 가시라는 끽다거. 차한잔에도 깊은 의미가 담긴다는 뜻으로 이해하려 하지만 그 맑고 투명한 차한잔으로 어찌 인간의 고뇌와 번뇌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고승들의 선문답을 들으면서 어느새 그 경지의 무대속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스님 모두가 경전의 말씀만 하시는 것은 아니다. 시청에 근무할때 이 지역의 유력 사찰 총무스님이 방문했다. 방문목적은 급수 지원이었다. 이 사찰에는 아직도 수도물이 들어오지 않으니 하루빨리 급수시설을 갖추고 싶다는 말씀이다. 사실 놀라운 일이다. 주변에 식당도 많고 관광지로 발전하는 지역인데 정작 그 중심시설이라 할 수 있는 사찰에 급수시설이 없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었다.

 

그간의 사정을 알아보니 동네 이장님이 급수시설 우선순위에서 중간쯤으로 넣은 것 같다. 혹시 과거의 주지스님께서 수도시설을 설치하면 제자들의 수행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게으름으로 용맹정진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까 우려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가정도 해 보았다. 스님의 시작은 주방에서 불을 때고 물을 길어서 공양을 준비하고 공양후에는 설걷이를 하는 고행인줄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수돗물이 콸콸나오면 물을 길어오는 고행도 피하고 물이 잘 나오면 설걷이도 훨씬 편리할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역대 주지스님이나 총무스님이 수도시설을 서두르지 않으신 것일까. 그런데 현재의 주지스님이나 총무스님은 신세대여서 수돗물로 인한 편리함을 바탕으로 신임 후배 스님에게도 또다른 정진의 길을 제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신 것일까. 그래서 이제는 우리 사찰에 수도시설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신줄 가정하게 되었다.

 

수도부서와 협의하여 동네이장님과 논의한 결과 절차에 따라 다음번 시설대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의 답을 얻었다. 시청을 떠난후에 이 사찰에 수도시설이 들어갔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의 일이 기존의 방식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라는 점에 명상의 주제를 삼고자 한다. 즉, 세상은 변하고 방식은 바뀌고 있다.

 

실제로 스님중에 스마트폰이 없는 분이 얼마일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스님은 스마트폰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이는데 사찰을 방문해보니 젊은 스님들은 일상의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신주단지로, 부처님 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긴다. 물론 긴급한 연락이 있을 것이고 발빠른 소통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사찰에서 무슨 급한 일이 있을까. 새벽 4시에 법당에 모여서 법문을 하고 그날 하루의 일과와 일정에 대해 설명하고 논의할 시간이 충분할 것인데 스마트폰으로 24시간 팽팽하게 연결을 해야 할 일이 사찰에서 있을까. 민간, 속세에서도 불과 30년 전에는 아침에 출근하면 저녁에 퇴근하는 아내와 남편의 일상이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남편의 직장에 전화를 걸어서 신랑을 바꿔달라는 일이 '실례스러운'일인지, 우리는 사무실 전화로 누군가를 바꿔달라 청하면 습관적으로 '실례지만 누구신가'를 물었다.

 

실례할 일도 아니고 직장에 전화를 건 일이 실례스러운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물었을까. 그리고 전화가 오면 왜 '여보세요'로 시작했을까. 스마트폰이 일상화되기전의 드라마에서는 '청담동입니다'로 시작하던데, 청담동의 모든 집과 건물이 자신의것이 아니고 드라마상으로는 좀 넓은 2층 한옥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인데 늘상 그렇게 전화를 시작하는 것이 조금 건방져보이기도 했다.

 

결국 화두는 자신의 것이다. 점쟁이의 말중 '몸에 큰 상처가 있지요?'라고 물었을 뿐인데 용한 점쟁이라 평한다. 자신의 몸에 상처가 있는 것을 용케도 맞췄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가 있다. 연필을 깎다가 베인 상처, 요리를 하다가 다친 손가락, 공사장에서 큰 부상을 입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통념상 아주 작은 상처이어도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처는 크다. 옆사람의 10cm상처보다 나의 1mm 여드름 구멍이 더 크게 느껴지는법이다.

 

그래서 이를 화두로 삼고자 한다. 세상사 나자신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화합하는 화두를 만들어가자는 말이다. 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화두, 역지사지로 다른 이의 입장에서 고민하는 화두를 청하는 바이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