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협회 회원을 위한 강의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미용협회 회원을 위한 강의 ▦

여러분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시는 여러분은 아티스트, 예술가이십니다. 처음에 강의 요청을 하면서 위생법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하십니다.

위생법은 법전에 나오고 시청과 구청의 위생과 공무원들이 수십년전부터 해온 관행적인 행정영역입니다.

저도 공무원을 했습니다만 위생과에 근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위생검열이지 환경이니 이런 분야의 업무에는 접하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저는 공무원 7급때 공보실에 근무했습니다. 기업에는 광고부가 있다면 도청과 시청, 군청에는 공보실이나 대변인실이 있습니다. 두 부서 모두가 조직을 국민에게, 소비자에게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기업은 광고를 하고 공기관은 공보, 홍보를 합니다. 공보는 어느 시청이다 이름을 걸고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고 홍보는 알릴 내용을 적어서 언론인, 즉 기자에게 전해서 신문, 잡지, 방송, 인터넷을 통해 전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홍보를 하기 위해 간판을 걸고 싸인볼을 돌립니다. 이발소 싸인볼은 빨강색, 파랑색, 흰색이 있습니다. 빨강은 동맥, 파랑은 정맥, 흰색은 붕대를 의미한다고 들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이발소에서 이발과 수술을 겸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미용인들도 과거에는 의사들이 담당하였던분야일까 생각해 봅니다. 실제로 우리는 현업에서 얼굴과 머리와 귀 등 소중한 부분을 다루는 일을 합니다.

정말로 조심스럽게 진행하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을 추구합니다. 안전을 추구하면서 아름다움을 동시에 이룩해야 하는 일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미용에 대한 말씀을 드리지는 못합니다. 전문가 앞에서 무슨 말씀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사람이 이자리에 나온 이유는 제가 42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대인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드릴 수 있기에 용기를 냈습니다. 지금부터는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사실 미용실과 이발소는 동네 정보통이었습니다. 1980년대까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정보가 미용실로 몰리고 이곳에서 퍼져나갔습니다.

 

읍내에 다녀온 분이 면사무소, 동사무소에서 들은 최신 소식을 미용실에 전하고 이곳에서 가공된 이야기가 동네로 퍼지고, 어머니들은 미용실에서 들은 이야기를 다시 가족에게 전하면 가족은 나름의 학교, 직장, 동네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2021년 오늘은 모든 정보가 젊은이들의 손바닥 거울에 나타납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

 

백설공주가 예쁘다고 답하는 거울은 깨졌습니다. 공주는 마녀가 준 독이든 사과를 먹었고 잠이 들었지만 멋진 왕자가 와서 이마에 키스를 하니 잠에서 깨었습니다. 마녀의 저주는 왕자님의 키스를 견디지 못합니다.

이 거울이 바로 스마트폰이라는 것입니다. 과거 폴더폰은 뚜껑으로 덮었지만 오늘날 스마트폰은 달랑 거울입니다. 젊은 여성들은 거울로 쓰다가 아예 카메라를 열어서 자신의 얼굴을 찍으면서 화장을 고치고 있습니다. 머리를 다듬고 쓸어내립니다. 이 瑤池鏡(요지경) 속 거울 스마트폰은 이세상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꼴을 넣으면 곧바로 대한민국 청소년, 젊은이의 90%이상이 그 꼴인장면을 손바닥에서 보고 있습니다. 유명 정치인이 한마디 말을 하면 곧바로 수많은 국민들이 알게 됩니다.

 

여러분, 이탈리아 출신의 탐험가 컬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해는 1492년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입니다. 1392년에 조선이 창업되었고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그 중간지점인 1492년에 미대륙을 발견했습니다.

1492년에 미대륙을 발견한 역사적인 기록이 조선에 알려진 것은 아마도 1920년대일 것입니다. 조선에 이같은 사실이 알려졌다해도 이를 인식한 이는 극소수일 것입니다. 정치인과 양반층 일부에서만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2021년 오늘날에는 UN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미국 대통령이 오늘 행사에서 우리나라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는 정보가 실시간으로 들어옵니다.

 

제가 과거에 이발소, 미용실이 정보의 현장이었다 말씀드렸는데 이제는 온 국민이 스마트폰으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고 있으니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 보입니다만, 실제로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은 예쁨과 멋스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용실에서는 예쁨을 추구하고 이용업소에서는 멋스러움을 창조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고마운 일은 남성이 미용실에 오는 경우는 많은데 여성이 이발소에 가지 않습니다. 물론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1970년 전후에는 여학생들도 이발소에서 단발머리를 잘랐습니다.

지금부터는 미용실에 손님이 많이 오시도록 하는 방법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진실성과 정직성입니다. 제가 공무원으로 일하던 중에 도의원님 40명을 모시고 울릉도와 독도를 여행하였습니다.

2박3일 일정인데요, 우리쪽 경기도의회 여행사에서는 강원도 묵호항 1박, 울릉도 1박으로 진행하였는데 하청을 받은 울릉도 여행사는 울릉도 2박으로 알아들었습니다.

 

목요일에 도착하여 금요일 오후 막배로 나오는 일정인데 울릉도 여행사에서는 토요일에 출항하는 배표를 예매한 것입니다. 우리가 비행기 타고 해외를 가도 티켓에 날자가 정확한가 확인하는 예는 흔하지 않더군요. 더구나 저는 국내선 배표이니 예정대로 잘 준비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금요일 오후에 의원님을 모시고 항구에 나가서 담당자가 배표를 가져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출항 20분전이라 일부 승선을 하는데 우리는 가게앞에서 불편하게 서서 기다렸습니다.

의원님 몇 분이 승선하자 하시므로 컨테이너로 급조한 여행사 사무실로 달려갔습니다. 우리 담당자와 여행사 직원이 멍하니 앉아있습니다.

오늘이 아니고 내일 승선하는 배표 예약을 하였으니 승선표가, 배표가 없다는 말입니다. 급하게 되돌아왔습니다. 의원님, 죄송합니다. 배표가 없습니다. 저희가 잘못해서 내일 토요일 배표를 예매했습니다.

 

사실은 이랬습니다. 이 행사를 급히 준비하다보니 담당과장은 이번 주에 휴가를 갈 예정이니 지난주에 휴가를 다녀온 저에게 대신 의원님을 모시고 가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것도 울릉도, 독도 여행이라하니 기분좋게 승락하고 여행을 진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큰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속으로 미스매칭, 표를 잘못 예약한 책임은 제게 있는 것이 아니라 휴가간 과장에게 있다고 변명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냈습니다.

“의원 여러분, 제가 잘못했습니다.”

일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제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오늘은 하루 더 주무시고 사무실에 돌아가서 벌을 주시기 바랍니다. 기특하게도 그렇게 말씀드리니 '이 과장은 잘못이 없다'는 어떤 의원님의 격려말씀이 나왔습니다.

 

혹시 일하시다가 고객의 강력한 항의가 오더라도 일단은 수용하시고 차분히 응대하시기 바랍니다. 목소리가 커야 이기는 경우는 교통사고뿐이라고 합니다. 일상의 대화에서는 배려와 양보가 필요합니다. 큰 목소리가 필요한 때가 있고 작은 성량으로도 충분히 의사전달이 가능한 경우도 많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아프리카 청년이 가슴에 돌을 안고 강물을 건너가는 이야기입니다. 선교사들이 아프리카 마을에서 강건너 직장을 오가는 청년들의 모습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합니다.

강을 건널 때 50kg 체중의 청년은 30kg 정도의 큰 돌을 들고 가고 체중이 60kg쯤 나가는 청년은 오히려 20kg 정도의 돌을 가슴에 감싸안고 걸어갑니다. 즉, 어린아이는 큰 돌을, 다 큰 청년은 작은 돌을 들고가서 건너편 강변에 던지고 출근하고 다시 돌아와 돌을 내려놓고 집으로 갑니다.

선교사들은 전통적인 종교의식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연구와 조사를 해보니 청년들이 들고가는 돌의 무게가 차이나는 이유가 물살을 이겨내는 무게였다는 점을 확인하게 됩니다. 즉 가냘픈 다리로 이 물살을 이겨내고 건너기 위해서는 체중과 돌의 무게를 합하여 80kg이면 적정하다는 자자손손 이어오는 경험에 의한 비책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돌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노라면 여러가지 어려움과 난관을 만나게 됩니다만 그것이 혹시 저 아프리카 청년이 여울목을 건널 때 가슴에 안고가는 검은 돌일까 생각해 보자는 말입니다.

지금의 걱정꺼리가 사라지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 같지만 막상 그 걱정이 지워지면 다른 어려움이 올 수도 있습니다. 禍不單行(화불단행). 어려움은 혼자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이 오늘이 우리 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인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오늘 나의 결정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교육장에 올까, 다른 일을 할까 고민하셨다면 오늘 강의를 들으시는 것은 여러분의 생에서 최선의 선택이고 최적의 결정이었다는 생각을 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혹시 고향이 강원도이시거나 친정이 속초이시라면 귀를 쫑긋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물주가 천하에 으뜸가는 경승을 하나 만들고 싶어 온 산의 봉우리들을 금강산으로 불러들여 심사했다고 한다. 둘레가 4km쯤 되는 울산바위는 원래 경상도 울산 땅에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덩치가 크고 몸이 무거워 지각하는 바람에 금강산에 들지 못했다합니다.

 

울산바위는 그대로 고향에 돌아가면 체면이 구겨질 것이 걱정되어 돌아가지 못하고 정착할 곳을 물색하였다. 그러다가 하룻밤 쉬어갔던 설악이 괜찮겠다 싶어 지금의 자리에 눌러앉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워낙 덩치가 큰 울산바위는 느리게 달려갔고, 다른 멋진 바위들이 먼저 도착하여 1만2천봉을 모두 채우고 콘테스트는 끝나고 말았습니다. 힘들게 땀을 흘리며 달여온 울산바위는 힘에 겨워서 다시 울산으로 돌아갈 생각을 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설악산 유람을 왔던 울산부사가 이 울산바위의 전설을 듣고 신흥사를 찾아가 주지 스님을 불러 세우고, “울산바위가 너희가 관장하는 사찰림에 와 있는데 땅세를 물지 않으니 괘씸하기 그지없다. 땅세를 내놓아라” 하였다. 억울한 일이긴 하나 주지스님은 마지못해 매년 산세를 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에 신흥사의 동자승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제 세금을 주지 못하겠으니 이 바위를 도로 울산 땅으로 가져가시오.”

이에 화가 난 울산부사가 말했습니다.

“이 바위를 재로 꼰 새끼로 묶어주면 가져가겠다.”

재로 새끼를 꼴 수 없으니 계속해서 산세를 받겠다는 심보였습니다.

그러자 꾀를 낸 동자승이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 지금의 속초 시가지가 자리한 땅에 많이 자라던 풀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동여맨 뒤에 그 새끼를 불로 태워 꼰 새끼처럼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울산부사는 이 바위를 가져갈 수가 없었고 세금도 더 이상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의 지역을 한자로 ‘묶을 속(束)’, ‘풀 초(草)’ 자를 써서 속초라고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여러분, 강원도 속초시의 지명 유래입니다.

 

이는 마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양민을 잡아다가 한겨울에 딸기를 따오라 한 사또와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이 사또에게 가서 '아버지가 딸기 따러 갔다가 뱀에 물려서 몸져 누웠다'고 말하자 원님이 한겨울에 뱀에게 물릴 수 있느냐 말하였고, 이를 기다린 아들은 '嚴冬雪寒(엄동설한)에 딸기를 딸 수 있습니까'라고 응수했다고 합니다.

이항복은 권율장군의 사위입니다. 이항복의 집에 뿌리를 내린 감나무 가지가 권율장군의 집으로 넘어가 있으므로 하인들간의 소유권 싸움이 일어났지요. 그래서 어린 이항복은 권율장군의 방문 창호지에 주먹을 디밀어 이 주먹이 자신의 주먹임을 인정받고 감나무의 열매 또한 이항복의 것임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다음은 조선시대 황희정승 이야기입니다. 젊은 청년 2명이 각자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을 하다가 황희정승에게 판단을 내려달라 부탁을 했습니다. 첫번 청년이 주장을 말하니 그대말이 맞다고 답했습니다. 다음 사람이 주장하니 거기에도 동의한다 했습니다. 이에 옆에 있는 하인이 이 사람 말도 맞도 저 사람 주장도 옳으면 도대체 누가 맞는다는 말이냐 질문하니 자네 말도 맞다고 했습니다.

혹시 우리가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할 때에는 모두의 주장이 맞는다는 전제로 들어야 하고 답해야 한다는 愚問賢答(우문현답)이라 하겠습니다. 저도 공무원으로서 어려운 민원을 만나면 공무원의 말도 맞고 민원인의 주장도 틀리지 않으니 난감할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무원이 의회에서 '검토하여 처리하겠다'는 답변은 '아니되옵니다'라는 의미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언어는 단언적인 표현보다는 부드러운 설명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일아침 동쪽에서 해가 뜰 것 같다는 말은 안됩니다. 공무원이 가장 비겁한 답변은 '그렇게 보고를 받았습니다'이고 청년들의 애미한 이야기는 '아름다운 것 같아요'입니다. 더구나 식당에서 '공기밥 하나 더 주시면 안돼요?'라고 질문하는 것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는 혹시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되는 것보다 안되는 것만 지적해서 시작된 용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자녀들에게 잘한 것을 잘한다고 칭찬해야 하는데 이보다는 안되는 것만 강하게 지적한 때문일까 걱정해 봅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부모가 안보는 순간 잘못을 저지르고 이를 발견하지 못하여 적정한 지적을 하지 않으니 이것은 잘못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말해서 자녀들에게 잘한 것을 칭찬하여 더욱 더 잘하려 노력하도록 해야 하는데 안되는 것, 잘못한 것만 지적하다보니 정말로 잘못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아여 그것이 옳은 일인줄 알게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됩니다.

 

임금님 3대에 걸쳐서 멋진 궁궐을 짓기 위해 100년동안 목재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궁궐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도편수, 도목수라고 해서 왕궁을 건설하는 최고 책임자가 있었습니다.

도목수의 지휘아래 100년동안 모아온 목재를 재단하였습니다. 가장 갯수가 많은 석가래를 길이에 맞춰서 잘랐습니다. 석가래를 다 자르고보니 4자(120cm)정도 짧게 자른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도목수는 3족이 멸하는 멸문지화의 죄를 지었다 생각하고 궁궐 건설을 중지하고 집으로 돌아와 몸져 누웠습니다. 흰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누워있는 시아버지를 보고 막내며느리가 귀찮게 질문을 합니다.

 

"궁궐을 지으시다 말고 집에서 누워계시면 어찌합니까?"

"네가 알 바가 아니다."

"그래도 가족이 이유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네가 알아서 뭣하겠느냐만, 석가래를 짧게 잘못 잘랐으니 우리는 모두 죽을 목숨이다."

"석가래를 짧게 잘랐다면 다시 이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며느리의 이야기를 들은 시아버지 도목수는 벌떡 일어나서 궁궐터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잘려 나간 목재를 네모로 깎아서 석가래에 연결하여 설계대로 공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간에는 단순한 형태의 추녀끝이 화려하게 꾸며졌습니다.

임금님이 현장을 보시고 아름다운 추녀라며 크게 칭찬하시고 상을 내렸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附椽(부연)이라 불렀습니다. 며느리의 의견을 받아서 연결하였다 하여 婦椽(부연)이라 합니다. 부연이란 그래서 편지 末尾(말미)에 한마디 더 강조하는 말로도 쓰입니다. post·script. 연설에서도 부연하여 설명한다고 합니다.

 

똑똑한 며느리가 또 있습니다. 이번에도 시아버지가 장에서 막걸리를 한탁배기 하시고 집으로 오시다가 '삼년고개'에서 넘어졌습니다. 이 고개에서 넘어지면 3년밖에 못산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시아버지는 집에 오자마자 몸져 누웠습니다. 3년 후에는 죽을 목숨이라면서 슬퍼했습니다. 하나의 샤머니즘으로 생각한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의견을 말했습니다.

"아벗님, 삼년고개에서 한번 넘어지면 삼년을 사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나는 이제 삼년밖에 못사는 것 아니냐?"

"한 번 더 넘어지시면 6년이 아닐까요?"

"그럴 수 있겠구나."

 

시아버지는 다시 삼년고개로 달려가서 여러번 데굴데굴 굴렀고 이후 천수를 누리고 잘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삼천갑자 동방삭은 60,000번을 굴렀답니다.

삼천갑자는 3,000년이라고 해석을 합니다만 3,000갑자라면 3,000×60=180,000년을 살았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동방삭도 염라대왕이 보낸 에이스 저승사자의 변신술에 넘어가고 잘난척 하다가 저승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서류 착오로 동방삭이 3,000년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염라대왕이 怒發大發(노발대발)하였습니다. 특명을 받은 고참 저승사자는 경기도 탄천의 상류에서 검정색 숯을 돌에 문질렀습니다. 검은 물이 흘러내리자 사람들이 그 상류까지 찾아왔고 노인으로 변장한 저승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찌하여 검은 숯을 숯돌에 문지르는가 물으니 검은 숯을 흰 숯으로 만들기 위해 물에 씻고 수세미로 문지르는 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소식이 근동에 퍼져나갔고 결국 동방삭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3,000년을 살아온 동방삭으로서는 어처구니 없는 일에 궁금증이 나서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역시 노인으로 변장한 저승사자가 검은 숯을 물에 씻고 있으므로 그 사유를 물었습니다. 노인은 또다시 검은 숯을 흰 숯으로 만들기 위해 물에 씻는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이에 동방삭이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3,000년을 살아왔지만 검은 숯으로 흰 숯을 만들 수도 없거니와 그런 해괘한 짓을 하는 사람은 처음본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즉시 저승사자로 돌아오더니 동방삭의 옷소매를 덥석 잡았습니다.

"네가 바로 우리를 고생시킨 동방삭이구나!!!"

어깨에 힘을 쓰고 잘난체한 동방삭은 결국 3,000년만에 저승사자에게 잡혀서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승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부자영감님과 규수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70여년을 부자로 산 노인이 저승에서 자신에게 배정된 방에 들어가보니 돼지죽 한그릇과 짚한단이 있습니다.

바로 옆방에는 17살에 夭折(요절)한 규수가 들었는데 쌀이 여러섬 풍성하게 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노인이 화가나서 저승사자에게 항의했습니다.

 

"내가 부자로 살았는데 이처럼 허술하게 대우할 수가 있는가?"

저승사자가 대답했습니다.

"이승에서 남에게 베푼 것을 그대로 배정됩니다."

이야기가 이러합니다. 욕심쟁이, 구두쇠였던 노인이 평생을 살면서 남에게 물건을 베픈 것은 두 번 있었습니다. 한 번은 아침 일찍 돼지죽을 주기 위해 밖으로 나서는데 스님이 탁발을 오셨습니다. 새벽부터 재수없게 탁발을 왔다면서 스님의 머리에 들고있던 돼지죽을 뿌렸습니다. 스님은 황망하게 돌아갔습니다.

또 한번은 만삭의 부인이 급하게 아기를 낳게 되었다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에 마굿간에 짚 한단을 던져주면서 여기에서 아기를 낳으라 했습니다. 이것도 베푼 것이라고 단순평가를 한 저승사자들이 노인의 방에 짚 한단과 돼지죽 한 그릇을 배정한 것입니다.

아마도 저승사자들은 감성이 메마른 것 같습니다. 사실 드라마에서 보아도 저승사자는 표정을 감추고 있습니다. 저승으로 데려가는 임무에 맞게 냉철한 성격으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물품을 보내는 방법을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본인이 직접 가져갈 수 없습니다. 다른 이에게 선의의 마음으로 베풀어야 저승으로 전달됩니다. 저승 택배의 방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보내면 전달되지 않습니다. 아직 저승에 자신의 문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금은보화는 물론 곡식과 비단과 아름다운 모든 것을 다른이이게 베풀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분들을 통해서 저승의 나의 방, 자신의 집에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택배가 쌓이고 모여서 커다란 저승의 집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승으로 가는 수의에 주머니가 없습니다. 주머니에 넣어 갈 것이 없고 넣을 수도 없습니다. 염습을 할때 동전 몇개로 수만냥이라 합니다. 쌀 한숫가락으로 3천석이라 말합니다. 하관할때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손녀가 路資(노자) 돈을 넣어드리지만 지하의 사각지대에서 장례작업자 양말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니 이승에 살면서 남에게 베풀어야 저승에서 부족함이 덜하게 살 수 있습니다. 금은보화를 남에게 베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니 좋은 마음씨를 전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수많은 사람을 만날 것이고 그때마다 좋은 기운드로 친밀하게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이 훗날 저승에서 이승보다 더 긴 세월을 평온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승을 떠나면 더 긴 세월동안 저승에서 살 것입니다. 이것을 영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영생을 강조합니다.

 

앞에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처구니란 '돌로 만든 농기계, 생활용품의 손잡이'라고 나옵니다. 대표적인 어처구니가 맷돌의 손잡이입니다. 맷돌로 콩을 갈기 위해 여러가지 준비를 하였는데 막상 맷돌을 돌리는 손잡이가 없다는 말입니다.

기관에서 월례조회를 하는데 '국기에 대하여 경례'라고 사회자가 행사를 진행하였는데 단상 어디에도 태극기가 보이지 않는 경우에도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아주 중요한 것이 아닌듯 보이지만 꼭 필요한 것이 없을 때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순진하고 착하기만 한 며느리도 있습니다. 시집온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퍼주는 쌀로 밥을 지어서 시부모와 남편의 밥그릇을 퍼주고 나면 남는 것은 주걱에 붙어있는 누룽지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쌀을 퍼주는 시어머니의 쪽빡이 조금 더 큰 것으로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수년동안 작은 쪽빡으로 쌀을 퍼주었고 며느리는 영양부족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며느리의 혼령은 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밤마다 남편의 창문이 보이는 나뭇가지에 앉아서 슬프게 울었습니다. 시어머니의 쪽빡을 큰 것으로 바꾸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던 며느리의 혼령은 밤마다 나뭇가지에 않아서 배고픔을 달래고 있습니다. 그 울음소리를 들어보면 이런 소리가 납니다.

 

쪽빡바꿔주 쪽빡!!!, 쪽빡바꿔주 쪽빡!!!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인정신이 필요합니다. 족빡을 바꿔주기를 소원하다 굶어죽은 며느리가 있는가 하면 적극적인 며느리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역시나 시어머니가 쌀창고 열쇠를 쥐고 살림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매번 시어머니가 밥할 쌀을 조금만 퍼주고는 창고를 잠가버립니다. 며느리가 결심을 합니다.

쌀항아리에 쌀이 반쯤 남았을 즈음에 결행을 합니다. 시어미니가 쌀을 퍼내기 위해 몸을 쌀독으로 반쯤 구부렸을때 그릇을 들고 기다리던 며느리가 시어머니 다리를 잡아서 쌀독에 거꾸로 집어넣고는 방망이로 발바닥을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그리고 쌀을 받아와서 저녁밥을 지었습니다.

저녁을 먹을때 시어머니는 아들과 남편에게 조금전 며느리의 만행을 이야기합니다. 며느리가 나를 쌀독에 집어넣고 발바닥을 방망이로 수없이 때려서 죽을뻔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들이 말합니다. 설마요,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를 때렸을까요?

 

남편조차 아닐 것이라 하니 속이 터질 노릇입니다. 하지만 며느리는 시침이를 뚝 떼고 있습니다. 여러분, 시치미를 뗀다는 말의 어원이 있습니다.

매의 주인을 밝히기 위하여 주소를 적어 매의 꽁지 속에다 매어 둔 네모꼴의 뿔을 시치미라고 합니다. 남의 집 매인데 그 이름표를 떼고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이지요.

낙인이란 나쁜 사람으로 직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본래 어원은 소, 말, 양 등의 등에 농장주의 표식을 찍은 것입니다. 쇠붙이로 만들어 불에 달구어 찍는 도장. 목재나 기구, 가축 따위에 주로 찍고 예전에는 형벌로 죄인의 몸에 찍는 일도 있었습니다.

설명이 길었습니다. 그리하여 며느리는 시치미를 떼고 시어머니를 때린 일이 없다고 하므로 결국 시어머니 편은 한명도 없고 그래서 쌀창고 열쇠를 며느리에게 넘겼습니다. 시어머니가 광열쇠꾸러미를 안바당에 던지면서, 네가 대 해먹어라 했답니다.

 

이런 스토리는 1960년대 시골동네에서는 자주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신식 며느리와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인 시어머니 사이, 고부갈등 스토리입니다.

그런데 쪽빡을 바꿔주기를 기다리다 굶어 죽은 며느리와 시어미와 투쟁을 해서 광 열쇠를 꿰찬 며느리도 모두가 실패한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두 며느리의 중간정도에서 합의점, 합일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요즘 사회에서 말하는 소통이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하고 나의 생각을 부드럽게 상대에게 전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부부간 소통, 고부간 소통, 조손간의 소통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앞에서 시치미를 뗀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시치미를 뗀다는 말의 뜻은 모두가 아실 것입니다만 시치미에 대한 설명이 조금 필요하겠습니다. '시치미'란 원래 매의 이름표를 뜻하는 말로, 매 도둑들이 이 시치미를 떼고 매를 훔쳐 가곤 했답니다.

 

여기에서 '시치미를 떼다'라는 말이 생겨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도 안 한 체,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 태도를 '시치미'라고 합니다.

동시에 주인정신을 강조하는 스토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한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손님이 공기밥에 파리가 들어갔다며 종업원을 불렀습니다. 젊은 종업원이 급히 달려가서 공기밥을 살피더니 손님이 지적한 파리를 손가락으로 집어 곧바로 먹어버렸습니다.

"손님, 이것을 파리가 아니고 검정콩의 껍질입니다."

증거물이 사라지니 손님은 더이상 할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손님은 파리임을 확신하므로 이번에는 주인을 불렀습니다.

"주인 정신이 높은 사람이니 큰 인물로 키워주세요."

훗날에 이 종업원은 큰 인물이 되어서 사회에 크게 봉사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남을 돕고 다른 사람 위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손님도 칭찬하고 아이들도 칭찬하고 격려하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합니다.

'같아요'가 아니라 '안되요'가 아니라 '잘 했어요'로 상용어가 바뀌기를 바랍니다. '같아요'는 참으로 불확실한 표현이니 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 자신을 칭찬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자존심이기도 하고 자기애를 어느정도 가지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피자와 치킨만 먹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집 아이들은 치킨을 좋아하고 피자를 종하한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엄마들이 편안하게 전화주문으로 배달받을 수 있는 피자와 치킨과 자장면, 탕수육을 먹였기 때문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셔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삼계탕, 파전, 녹두전, 물국수를 먹였다면 그 맛을 알게 했다면 피자집, 치킨집이 이처럼 대형공장으로 커졌을까요. 삼계탕 공장이 크게 번창하고 녹두전, 해물파전, 녹두전이 고급화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여러 사장님, 미용업계가 많이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19도 어느정도 관리되고 있고 경제도 좋아진다고 합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손님이 늘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 흥미로운 스토리를 메모하셨다가 한마디씩 들려드리면 새로운 정보의 산실 미용실이 될 것입니다.

작지만 흥미로운 조크 손수첩을 준비하시고 오시는 손님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보시기 바랍니다. 작은 혁신이 나를 발전시키고 적극적인 노력이 사업을 번창하게 합니다. 어제의 강물이 오늘의 강물이 아닌 것처럼 어제의 나 자신이 오늘은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긍정의 마인드로 습관화하면 변화와 발전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웃는 연습을 하면 황수관박사님 같은 명강사가 된다는 신념으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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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