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동안 이어폰 분실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아침 운동을 나갈 시간인데 이어폰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제저녁에 통근버스를 타고 고색역에서 하차하여 지하철을 타고 수원역을 거쳐서 매교역에서 내려 10분을 걸으면 집에 도착하는 코스입니다만 잠시잠깐 깜빡하고 조는 바람에 고색역을 지난 통근버스는 수원역 직전의 지하도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수원역을 조금 지난 대한통운 자리 건너편의 수원역 번화가, 청춘의 거리에 하차하였습니다. 

 

 

 

걸어서 지하철로 환승하는데 걸리는 거리나 시간을 생각하고 매교역에서 하차하여 집까지 걸어가는 거리를 계산해보니 지금 수원역 번화가에서 구 시청을 지나 구경기은행을 거쳐서 우회전하면 집에 도착할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그래서 복중이기는 하지만 차분히 서늘한 저녁 7시20분의 바람을 맞으면서 걸었습니다. 걸어가면서 고등학생시절, 초임 공무원 시절에 들렀던 수원극장, 극장식주점 판코리아를 지나갑니다. 수원시여성회관으로 이용되는 구 시청의 청사에서 경기일보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을 하신 임병호 시인의 문학특강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사무실 오른편의 작은 공간에 수성고, 영복고, 수원여고 학생들을 불러모아서 문학, 시를 강의했던 멋진 임병호 회장님을 훗날 언론팀에 근무할때 도민을 위한 시화전의 심사위원으로 초빙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는 도청 사무관이라는 면에서 예우를 하시던 당시의 경기일보 문화부장님은 1975년경 시청에서 문학강의를 들은 수성고 이강석이라는 소개에 대뜸 "너구나!"하시며 반가워하셨습니다. 지금도 문학지를 매분기 보내주시는데 제대로 참석하지 못하여 송구한 마음입니다.

 

그런 50년에 임박한 추억의 스토리를 되뇌이면서 그 길을 걸어 저만치 집의 실루엣이 보일 즈음에 이마에 땀이 흐릅니다. 적정한 운동량이라 자부하고 오늘저녁 운동은 쉬기로 합니다. 물론 매일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나간다는 다짐이 흔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정도 걸었으니 저녁식사도 맛질 것이고 몸에서도 운동을 하였다는 징후가 나타날 것이라 자부해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어폰으로 인강을 들으면서 집에 도착하여 식탁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다시 방에 들어와 하루를 정리하고 잠이 든 다음날 새벽에 어제를 추억하고 오늘을 구상하였습니다. 아침식사후에 어제저녁 거른 운동을 보충하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나가겠다는 마음이 서룰렀지만 이어폰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제저녁 식탁위까지만 기억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운동을 포기하고 그 시간동안 이어폰을 찾기로 하였습니다.

 

가방을 3번 뒤지고 양복주머니, 어제저녁에 입었던 바지주머니를 샅샅이 찾아봅니다만 보이지 않습니다. 비닐봉주 쓰레기통에 들어갔을까 하는 생각으로 봉지를 눌러보아도 묵직한 이어폰의 덩어리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혹시 침대위에 놓고 방치했다가 잠결에 발로 차서 침대아래 좁은 틈새로 날아가 저아래에 방치되었을 것이라는 상상에 이릅니다. 침대를 들고 시트를 흔들며 찾았지만 흰색의 탁구공 1.5배크기의 이어폰 케이스는 그 얼굴을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서랍을 다 열고 또다시 가방의 여러 틈새를 살폈습니다. 그러고보니 매일 지고 다니는 가방에는 모두 6칸의 격실이 있습니다. 마치 잠수함, 군용 잠수함의 격실이거나 화물선의 창고를 나눈 듯이 다양한 크기의 방과 방이 존재함을 새롭게 알았습니다. 그래도 이어폰이 보이지 아니하므로 충전을 위해 올렸다가 스르르 빠져서 책상 뒷편으로 내려갔을 것이라는 상상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늘 충전하는 책꽂이 위의 책틈에 끼워넣은 이어폰 케이스를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평소에는 잘 보이는 자세로 두었는데 어제는 왜 그랬을까, 틈새에 끼워넣었으므로 여러번 눈길을 주었지만 검은 충전기 선만 보이고 책틈에 숨어든 이어폰 케이스는 발견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어폰을 찾고나니 의욕이 충만합니다.

 

즉시 운동준비를 하고 이어폰으로 인강을 들으면서 기분좋게 헬스장으로 달렸습니다. 그리고 평소보다 두배의 거리를 힘차게, 기분좋게, 자발적으로 운동을 하고 다시 랄랄랄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자리에 앉으니 평소에 막히던 글도 시원시원하고 전진하고 여기까지 정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운동도 더 하고 생각도 넓어진 것은 그 이어폰을 책장 틈새에 끼워놓은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결코 분실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별별 상상을 다 했던 것이라 봅니다. 사실 짧은 시간동안 자신의 손전화기가 보이지 않으면 머리속아 하야진다는 말을 듣습니다. 전화기 분실은 지인의 번호, 통장, 카드, 신분증, 기타 더 많은 정보의 집합체로부터 일거에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폰 충전장소를 바꿨습니다. 책장위 공간에 올리던 방식에서 벽면에 투명한 비닐주머니를 매달고 충전라인을 연결한 후 눈에 보이도록 배치한 것입니다. 한번 분실하고나니 이런 아이디어가 착상된 것입니다. 이제는 이어폰을 잠시잠간 분실했다는 아찔함을 겪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스마트폰 역시 분실에 대비하는 다양한 전략을 구상중입니다.

 

현대인은 전화기를 분실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문명이 이 전화기속에 다양한 정보를 담아주었고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만 그 물체, 핸드폰 덩어리를 분실하는 순간 현대인은 숨쉬고 심장이 뛰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아니한다는 점에서 허리춤에 묶어주거나 이마에 테잎으로 붙여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년전부터 핸드폰 기능을 벨트형으로 만들어서 허리춤에 매고 두손은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개선, 개혁해야 한다는 점을 늘 강조해 오고 있기도 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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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