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 시장군수님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60년대에는 글씨를 잘 쓰면 승진하고 출세하는 시절이었습니다. 경기도농민교육원에서 농조조합장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저수지를 관리하면서 농사짓는데 물을 보내주고 수세를 받는 조합입니다.

이곳의 조합장님들이 일주일간 교육을 받으시고 마지막 날에 군대말로 '訴願受理(소원수리)'를 받아 이를 정리하여 원장님께 보고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자료를 종합하여 식사, 교육환경, 강사, 교직원 서비스 등을 평가하고 기타 의견을 정리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그 필체가 범상하지 않습니다. 싸인펜으로 슥슥 써 내려가시는 필력이 초서도 있고 행서도 있고 추사 김정희, 떡장수 아드님 한석봉입니다. 작업을 마치고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농조 조합장님들이 어찌 이리도 하나같이 글씨를 잘 쓰시나요. 농조라 하면 농사짓는 분들이신데 한문 공부를 엄청 하셨는지 다들 명필이십니다. 名筆(명필)뿐 아니라 名文(명문)입니다.

 

선배가 말했습니다. 이분들이 누구신지 그대가 잘 모르는가 보네. 어르신들은 직전에 군수영감, 시장을 하신 분들인데 정년 2년 전에 물러나서 농조 조합장으로 일하면서 정년을 맞이하시는 거라네.

요즘 공로 연수에 해당하는 기간에 농조 조합장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35년 40년 전에 공직에 들어오신 분들입니다. 1981년 이야기이니 1950년대 공무원이십니다.

앞서 말씀드린 하다못해 면서기는 면장님 빽이 있으면 공무원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면장님이 아무개 어르신 자제가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낙향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하는데 한번 보내시면 저희가 잘 쓰겠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일종의 蔭敍(음서 =고려ㆍ조선 시대에, 공신이나 전·현직 고관의 자제를 과거에 의하지 않고 관리로 채용하던 일)제도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필력이 좋으면 총무계로 가고 말을 잘하면 산업계로 가고 수판이 빠르면 재무계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군청 행정계장 눈에 들면 시청으로 군청으로 발탁되고 다시 도청 서무과로 가서 주사 5년에 사무관되고 사무관 9년에 서기관이 되어 군수영감이 되었던 것입니다.

 

군수영감을 하신 분이니 필력 약한 분이 있을 수 없고 그중 일부는 한 급 더 올라 시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58세에 이르러 사표를 내고 농조 조합장이 되거나 공기관, 산하단체에 책임자로 가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이어지는 공직 순환 시스템이었던 것입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