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의 역할에 대한 소견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70년대 당시 시골 어르신들 말씀에 '하다못해 면서기,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말이 있었고 정말로 하다못해 5급 공무원도 못하느냐는 말도 돌았습니다. 이 일도 저 일도 못하겠으면 면서기라도 하라는 말입니다. 그만큼 그 당시 공무원에 대한 평가, 특히 지방공무원에 대해서는 저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은 정말로 서류를 만져보지 못한 분들이 면장을 하였기에 나온 말입니다. 면장으로 발령받은 분이 취임식을 하고 면장실에서 총무계장의 보고를 받습니다. 기안 갑지에 기안해서 면장님 결재를 받으러 간 것입니다. 내용을 설명하고 결재판을 내밀자 면장님은 '제가 어떤 조치를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답니다.

 

‘이곳에 결재를 하시면 됩니다.’

총무계장이 설명하였습니다. 도장을 찍어야 하는지 서명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쩔쩔매기에 서명을 하도록 했던바 이름 석자를 간신히 쓰셨다고 합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결재하기도 버거운 어르신이 면장을 하셨나 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왔을까요.

'알아야 면장을 하지’

'하다못해 면서기라도 해 보아라’

 

요즘 9급 공무원 합격하면 동네 입구에 ‘아무개 아들 9급 공무원 합격’이라고 입간판이 걸리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하다못해 면서기라도 하라는 시절이 있었답니다. 하다 하다가 할 일이 없으면 면서기를 하라는 말이니 참 기가 막힙니다.

1970년대에 '하다못해 면서기'는 대부분 5급 을류 공무원으로서 현재의 9급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공무원 급을 비교해 보년 5급을=9급, 5급갑=8급, 4급을=7급, 4급갑=6급, 3급을=5급, 3급갑=4급, 2급을=3급, 2급갑=2급입니다.

 

그래서 5급 공무원으로 들어와서 25년 만에 5급 공무원 하고 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1977년에 공무원에 응시하여 2월17일에 등기우편으로 받은 합격통지서에는 '5급을류행정직'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초임발령장에는 ‘지방행정서기보시보’에 임한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4개월이 채 안된 1977년 5월16일부터 1개월 동안 정신없이 따라다니며 공무원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도 모르면서 근무하다가 느닷없이 1번계에서 4번계로 전출발령이 났습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도 이것이 '左遷(좌천 = 낮은 관직이나 지위로 떨어지거나 외직으로 전근됨을 이르는 말. 예전에 중국에서 오른쪽을 숭상하고 왼쪽을 멸시하였던 데서 유래한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사표서'를 내고 집으로 갔습니다.

제대로 내려면 '사직원'을 냈어야 하고 '개인 사정으로 공직을 사임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데 아마도 제 기억으로는 '저는 오늘부터 공무원을 그만두겠음'이라고 적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9시경 민병일 부면장님과 권병춘 선배형이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오셨고 '오늘 쉬고 내일 나오라'는 말씀에 재수생을 포기하고 출근한 것이 39년8개월 전의 사건 아닌 사건이었습니다.

다음날 출근하여 면장님께 사과드리니 '이제라도 원래 자리서 일하도록 하라'하시는 면장님의 말씀을 듣고 "발령하신 자리에 가서 일하겠다"는 참 대견한 말씀을 드리고 발령된 자리에서 일하고 이후의 기나긴 공직을 이어왔습니다.

 

이날 사건 이후 공직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조차 없이 주어지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일하고 대응하고 처신한 것이 그처럼 긴 세월을 지루하지 않게 근무했습니다. 같은 사무실에 연속해서 7년을 근무하면서도 지루한 줄 몰랐습니다. 공직을 즐겼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월급을 받기 위해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워서 아침 일찍 나와서 좋아하는 이화수 선배님, 조성범 계장님(광주부시장 퇴직)과 마대자루 청소하고 커피 한잔 마시고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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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