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시부시장의 자화자찬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지방행정연수원 1년간 파견 교육을 마친 후에 다시 수도권교통본부에 1년 파견되어 군무하고 이번에는 오산시청으로 전보되었습니다. 수원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오산시로 이동한 것입니다. 오산시는 과거 화성군 오산읍이었고 군청이 오산읍에 있을 때 필자는 5급을류 공무원, 현재의 9급으로 공직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청년 시절 초임 공무원으로서의 화성군청 근무 추억이 있는 오산시청에 근무하게 되어 고향에 돌아온 심정이었고 실제로 근무해 보니 확실히 고향마을이었습니다. 오산시청에 근무하면서 소소한 개선, 개혁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산시는 청렴도시입니다. 오산시청 공무원과 시민들 덕분으로 청렴을 주제로 하는 강연도 다녔습니다.

 

 

우선 발령 초부터 동료 공무원과의 소통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써보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부서방문입니다. 출근길에 또는 근무시간에 각 부서 사무실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녹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처음에는 부서에서 불편해 하는 듯 보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어느 부서에 방문한 스토리가 소문이 나고 그래서인가는 몰라도 우리과는 언제 오나 기대하는 눈치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판단이므로 모든 부서원이 그리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공직생활중 들은 이야기로 ‘무두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 아무리 존경을 받는 과장님이라 해도 부서원들은 그분이 출근하지 않으시면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우두머리가 없으니 ‘無(무)頭(두)日(일)’이라 칭하는 것입니다. 무두일은 업무를 쉬는 날이고 저녁에는 소주한잔 하기에 안성맞춤이라 했습니다.

무두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장거리 1막2일 출장, 중앙교육, 개인일정으로 인한 연가등이 있습니다. 과장님이 부재인 무두일이 되면 2번 계장님이 선임계장에게 다가와서 한잔하자 청합니다.

 

이때 들은 이야기가 ‘주무계장’이라는 칭호였습니다. 주무계장이라는 용어에는 2가지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그 일을 하는 ‘주무부장관’이라는 말처럼 ‘주무를 담당하는 계장’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주무계장은 수석, 선임계장입니다. 주무계장은 다른 계에 속하지 않은 서무 등 잡스러운 일을 담당하는 역할이 주어지고 과장님 일정이나 의전을 담당합니다. 1980년대이니 잘잘한 비용도 관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술한잔 하자며 2번, 3번 계장이 주무계장의 눈치를 보는 것입니다. 더 과거에는 1번, 2번 계장은 지방사무관이고 3번, 4번 계장은 6급 주사이던 시절도 있었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농담으로 주무계 차석은 말석 계장과 동급이다, 주무계 서무는 말석차석과 동급이라는 농담을 했습니다. 주무계 차석은 군대의 선임상사처럼 해당 부서이 6급이하 공무원을 대표합니다. 주무계장은 과장님 부재, 즉 무두일에 과장을 대행하여 결재를 하고 타부서와 마주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각 부서에서는 상급자 부재를 선호하는 바이니 지나가던 부단체장이 사무실에 오는 것을 모든 공무원들이 환호하는 것은 아닌줄 알았고 그래서 길게 머물지 않으려 애를 써 보았지만 천성이 말이 많았던 바이니 불편함을 겪은 후배 공무원들도 있었을 것이고 이 글을 통해 사과의 인사를 전합니다.

다음으로 저녁식사 시간에 자리배치 ‘사다리 타기’를 통해서 마음을 열었습니다. 일단 미리 준비해간 사다리타기 용지에 한 두 줄 더 그어서 공정성에 대한 시비를 차단하고 일단 정해진 사다리를 타면서 “다라라라라라~”로 소통의 길을 열었습니다.

 

사다리 결과가 어찌 나오든 부시장은 중앙에 안도록 합니다. 구석에 자리를 잡았더라도 소주 3잔을 마시고 나면 어느새 중앙에 앉아서 지난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 저곳을 이동하면서 공무원 9급, 8급 당시의 이야기를 소재삼아서 대화를 이끌어 갑니다.

과한 음주는 건강을 해치므로 원하는 만큼 소주를 따르거나 아예 다른 음료수를 권합니다. 요즘에는 업무지시를 강하게 해도 갑질이라면서 중앙 평가에서 감점이 되는데 술을 강권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 될 일입니다. 그래서 평온하고 재미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점심에는 일찍 도착해서 동료들이 기다리지 않도록 했습니다.

 

부시장으로서 부서 동료 공무원과의 소통이 중요합니다만 각종 위원회 위원들을 잘 모시는 일도 시정발전에 도움이 됩니다. 우선 도시위원회, 건축위원회, 경관위원회, 인사위원회 등 다양한 회의가 부시장이 위원장이 되어 운영됩니다.

공직사회의 영원불변의 회의 시간은 화요일 14:00입니다. 오후 2시로 회의 시간을 잡는 이유는 참석자들을 배려하기 보다는 공무원들의 편리함 때문입니다. 점심 이후 1시간이 지났으니 점심 대접할 걱정이 없고 길어야 2시간 회의를 해도 16:00경이니 18:00시 저녁시간까지 또다시 2시간을 기다릴 일도 없으니 말입니다.

 

최초 누군가가 14:00로 회의시간을 잡은 것은 다수의 공무원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지만 부시장으로서 14:00는 참으로 애매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 안을 제시하였습니다.

간명한 회의는 11:00로 하여 11:40분에 마치고 점심을 먹습니다. 좀 길게 시간이 필요하다면 16:00에 시작하여 90분간 회의하고 저녁 6시 전후에 저녁을 먹는 것입니다.

 

회의를 소집하면서 미리 오찬이 있고 만찬이 예정되었다는 점을 알려드려야 합니다. 아마도 시청에 회의차 오시는 위원님들은 오전 11시는 점심과 연결되고 오후 4시 회의는 저녁까지 먹을 수 있는 금상첨화, 일석이조, 도랑치고 가재도 잡는 황금코스의 스케줄 관리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다음으로 식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위원장이 일찍 회의실에 가서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부시장의 평균 근무기간이 1년 전후일 것이니 1년에 한두번 열리는 위원회 위원님들은 모두 초면입니다. 따라서 부시장이 일찍 회의실에 가서 오시는 위원님 한분 한분과 명함을 드리며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회의시작 정시에 정갈하게 준비된 위원회 회의실에 수첩 들고 뚜벅뚜벅 구두굽 소리를 내면서 도착하여 앞줄부터 명함을 주고 인사하고 이내 위원장 자리에 않으면 사회자가 상투적인 시나리오를 읽어가는 그런 위원회는 개선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11:00에 위원회가 열리는 날에는 10:45분에 회의실로 갔습니다.

그리고 위원님 오시는 분마다 인사드리고 명함을 드리고 다시 자리에 가서 기다렸다가 다른 위원님 오시면 인사하고 안내하고 다시 기다렸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해 하셨지만 이내 분위기에 익숙해지십니다. 그리고 바로 옆 간부들이 도착하면 회의를 시작합니다. 국장급 간부일수록 정시에 도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실 위원님들은 지역사회의 지도층입니다. 교장 선생님, 건축사, 회계사, 변호사가 참여하십니다. 전직 공무원 선배님도 위원이시고 여성단체협의회장, 통장협의회장님 등 시단위 단체장님이 위원으로 오십니다. 위원회 형식상 부시장이 위원장이고 이분들이 위원으로 참여하시는 것이지 시단위 행사에 가면 상황이 많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시장이 미리 회의실에 도착해 있으면 담당 팀장님의 체크리스트 하나가 줄어듭니다. 위원님들 모두 모이신 후 급하게 수첩을 꼭 왼손에 들고 와서 부시장실 노크하고 들어와서 회의준비 다 되었다 말하고 다시 회의실까지 안내하는 繁文縟禮(번문욕례)와도 유사한 부담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특히 어느 시점에 이른바 부시장님을 모시러(?)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덜어주는 것입니다.

 

한번은 15분 미리 와서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위원장석에 의사봉이 없는 것을 발견합니다. 담당자에게 의사봉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하는 순간 이 직원은 마치 119 소방관 출동하듯이 내달리는데 왜 저래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갑니다. 그래서 의사봉을 가지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방송기자는 마이크를 든 펜기자와 카메라 감독이 한 팀입니다. 아나로그 시절에는 무거운 배터리통과 삼각대를 들고 따라다니는 보조가 한명 더 있었습니다. 이분들의 임무분담을 자세히 살펴보면 촬영전 테잎은 보조 또는 카메라감독이 가지고 다니는데 일단 촬영된 테잎은 펜기자 가방에 보관합니다.

 

여기에 힌트가 있었습니다. 의사봉을 치지 않는 담당자가 그것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불합리하니 세 번 두드리는 부시장이 의사봉을 가지고 다니면 될 일입니다.

사실 도시와 건축위원으로 참여하시는 교수님들은 인근 3~4개 시군을 담당하십니다. 건축 안전 조경 교통 등 다양한 분야의 검토를 하시는 위원님들을 우리 시에서 모두 다 모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서부영화 이야기입니다. 영화에는 늘 보안관, 강도, 군인 들이 출연합니다. 모두 모자를 쓰고 허리에는 권총을 차고 언제든지 뽑아들 자세와 마음의 준비를 하고 황야를 돌아다니고 말을 타고 계곡을 질주합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권총을 다른 이에게 위탁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뽑아들 권총은 자신의 허리춤이나 왼쪽 가슴속에 있어야 합니다. 왼손잡이 총잡이라면 오른쪽 가슴에 권총이 위치해야 순간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경쟁에서 지면 죽음뿐입니다. 의사봉으로 인해 생사를 오가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는 늘 “탕탕탕!!!”세번의 총성이 울립니다. 이 총성에서 살아남으려면 의사봉을 자신이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엉뚱한 논리를 제시합니다.

 

그리하여 참석자들의 말씀을 통해 오산시에 갔더니 부시장이 미리 회의실에 와 있더라, 의사봉을 들고 다니면서 활용하더라는 이야기가 주변에 전파되고 위원님들을 통해 膾炙(회자)됩니다. 회자는 날음식과 익은 음식을 말합니다. 우리는 회는 차갑게 먹고 익은 음식은 뜨겁게 먹습니다. ‘인구에 회자된다’는 말입니다.

건배사를 할 때 酒香(주향)천리, 人香萬里(인향만리)라는 고급진 어휘를 구사하는 선배님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소문이 널리 퍼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좋은 이야기는 비중이 높아서 자꾸만 수면 아래로 가라 앉는가 봅니다. 나쁜 이야기 비판받는 이야기는 가벼워서 건물 창문을 나가 들을 지나 산을 넘어 멀리멀리 퍼져나갑니다.

하지만 조금은 특이하고 긍정평가를 받은 부시장 의사봉 이야기는 널리 퍼졌습니다. 아마도 전국의 민관에서 하루에도 수십 곳에서 의사봉을 쓰겠지만 봉을 두드리는 본인이 의사봉을 들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실용신안특허라도 받아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인근의 교수님들이 다른 시군에 가서 오산시의 사례를 이야기하시고 그래서 점차 이 소식이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합니다. 널리 알리고자 한 일은 아닙니다만 금상첨화 격으로 알려지니 이 또한 기분 좋은 일이 되었습니다.

각종 위원회 위원들과의 오찬은 고급정보를 얻고 시정을 홍보하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오산시는 전쟁의 역사가 있습니다. 1592년 왜구가 침략하여 권율장군과 휘하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는 독산성을 포위합니다.

 

斥候兵(척후병) 보고에 의하면 독산성에는 샘물이 없어 건너편 황구지천의 물을 길어 먹고 있으므로 일주일 동안 성 주변을 포위만 하고 기다리면 스스로 투항할 것이라 왜장은 판단하였습니다. 이 야기는 전설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왜군이 벌거숭이산에 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 한 지게를 산위로 올려 보내는 등 우리측 군사를 희롱했다고 합니다.

이에 권율 장군은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백마를 산 위로 끌어올려 세우고 흰 쌀을 말에 끼얹어 목욕시키는 시늉을 했고, 이를 본 왜군은 산꼭대기에서 물로 말을 씻을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생각하고 퇴각하였다는 역사적 일화가 있습니다. 지금도 독산성 문화재에 가면 말의 등과 몸통에 쌀을 뿌리는 퍼포먼스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후 고양지역으로 이동한 권율장군은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크게 격퇴하였습니다. 幸州大捷(행주대첩)은 진주대첩(김시민 장군), 閑山島大捷(한산도대첩, 이순신 장군)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리고 1950년 6.25당시에는 일본에 주둔하였던 맥아더 장군 휘하의 스미스부대 (대대장 : 스미스 중령)원 540명이 오산 죽미령 전투에 참전하였습니다.

미군이 참전한 것인데 UN군 초전비로 불리는 이유는 미군이 UN군의 일원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540명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소련제 탱크를 감당하지 못하고 181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습니다.

 

미군의 피해가 많았습니다만 이 전투로 인해 북한군은 잠시 남하를 멈추게 되고 아군은 낙동강 전선을 구축하는 시간을 갖게 되고, 소련과 북한의 남침에 대해 우방은 긴급히 UN군을 결성하여 참전하고 의료지원과 물자지원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일성이 소련에 지원을 요청하고 미군이 방어를 하니 어찌 대응해야 하는가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5년전인 1945년에 미국과 소련은 독일, 일본을 물리친 연합의 상대였는데 불과 5년만에 공동으로 신탁통치를 하였던 3.8선 경계를 탱크로 밀고 내려온 것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웅변시간에 자주 쓴 용어인 이른바 同族相殘(동족상잔)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산시는 이곳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고자 준비하고 있으며 죽미령 전투와 관련한 자료를 모아서 자료실을 보충하는 등 다각적으로 힘쓰고 있습니다. 18살 전후의 젊은 미국 병사들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역사를 우리는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참 많은 것을 안다고 하십니다. 사실 오산을 거론하면 죽미령 전투와 洗馬臺(세마대)의 역사, 그리고 고인돌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공자님을 모시는 궐리사가 있습니다. 闕里祠(궐리사)는 절이 아니고 孔子(공자)님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매년 봄가을 제사를 올리는데 부시장이 초헌관으로 참석하여 제를 올렸습니다.

 

어느날 오산시청 2층 사무실에서 내다보니 시청 청사뒷편 주차장의 동선이 복잡하므로 지름길로 무리하게 들어오던 여성 민원인이 주차장 경계로 심어놓은 가시나무에 옷이 걸려 고생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주변의 다른 여성공무원 2명이 달려가서 가시에 걸린 원피스 옷자락을 풀어내서 그 민원인을 구해냈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모습을 보고 머리에 딱 들어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 지름길 자리에 있는 주차면을 포기하고 길을 내자고 제안했습니다.

디귿자 형태로 들어오는 길을 일직선으로 바꾼 것입니다. 담당 팀장과 과장은 10년 넘게 근무하였지만 주차장에 이 같은 불편이 있는 줄 몰랐다면서 단번에 불편함을 간파한 것에 대하 참으로 신기하다 합니다.

 

4층 회의실에서 직원 조회나 포럼이 열리는 날에 동료 공무원들이 공무원증으로 참석 체크를 하는데 두 개의 문이 열려서 좁아진 틈새로 한 명씩 들어가서 출석 확인하는 것을 보고 체크기의 선을 길게 늘려 복도에 테이블을 놓고 체크기를 쓰도록 해서 마치 전철역에서 카드 체크하고 들어가듯이 두 줄로 이용이 가능해졌습니다.

간부회의를 개최하는 상황실의 두 가지 개선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하나는 라운드 책상 중 하나를 빼내서 통로를 만든 일이고 다른 하나는 국장은 뒤편으로 배치하고 PPT화면을 벽으로 이동하고 추가로 화면을 설치하여 다원화된 자료설명이 가능하게 한 일입니다.

 

아마도 간부 20명 당시에 설치된 스크린은 상황실 2/3지점에 있었습니다. 이후 간부들이 50명으로 늘어나도록 스크린은 그 자리를 지켰고 가끔 회의 중에 PPT를 보려면 스크린 뒤편의 간부들이 우르르 앞쪽 좌우의 빈자리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면은 벽으로 5m이동 설치하였고 양쪽에 대형화면을 추가하였으며 시장님 자리에는 작은 모니터를 설치하는 등 동시에 5개 화면을 구현함으로써 상황실 어디에서나 화면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개선하였습니다.

 

실무자 한 두 명이 조금만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면 수많은 동료 공무원은 물론 시민들에게도 큰 편리함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변화이고 혁신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오산시는 청렴의 도시입니다. 청렴평가는 시민평가와 내부 공무원의 평가를 합산합니다. 공무원이 열심히 일하면 시민의 청렴평가가 올라갑니다.

인사를 명쾌하게 하고 상하간 의사소통이 원활하면 내부평가 점수를 잘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잘한 결과 2년 연속 최우수 청렴기관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복권 당첨의 확률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코끼리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격이라 할 것입니다.

 

20년 내에 10위안에 들기도 쉽지 않은 일이고 1등 한 번도 어려울 것을 2년 연속으로 청렴평가 1등을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산시 간부 공무원들에게 청렴사례를 소개해 달라는 주문이 몰렸습니다. 아마도 담당 과장님이 일정이 바쁠 때 슬쩍 부시장에게 강의일정을 넘겼나 봅니다.

지방행정연수원에 강의를 가게 되었습니다. 수원시 파장동에 있던 지방행정연수원이 전북 완주시로 이사갔습니다. 사무관 교육을 받는 교육장으로도 유명합니다만 전국에서 감사부서 공무원들이 교육을 받으러 옵니다. 거기 가서 오산시의 청렴사례를 소개하였습니다.

 

청렴교육 강의를 하면 강사수당을 받습니다. 사무실 차를 타고가서 강의하고 연수원에서 점심을 먹고 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공적 경비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근무치도 매월 월급날에 연봉을 받습니다. 그러니 이 강사수당은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강의를 하고 받은 강사수당에 더 보태어 해당기관에 성금을 내시는 존경하는 선배 공무원도 있습니다. 이 강사수당으로 수박, 오렌지, 땅콩 등 부럼을 구매하여 부서와 나눴습니다.

30만원 강사수당을 300명과 나누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30개짜리 계란을 구매하는 것입니다. 요즘시세로 계란 1알에 200원정도 합니다만 당시에는 1판 30개에 3,000원이었으니 1알에 100원꼴입니다. 군대에서 500원을 10명이 나누기 위해선 은단을 사서 몇알씩 주었다는 말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계란을 삶아서 나누는 모습을 본 주변사람들은 부시장이 선거에 나오려 한다는 오해의 말도 했습니다만 차분하게 천천히 시장을 뽑는 지방선거가 포함된 18개월간의 시간을 잘 보냈습니다.

이상으로 오산시청 근무한 자화자찬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열심히 했다고 자랑을 하지만 근무과정에서 다소간의 불편을 겪은 후배공무원이 있을 것입니다. 송구한 마음을 전합니다. 하지만 요즘 공직사회가 5년단위로 훅훅 바뀐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 한 편으로 공허함을 느낌니다.

홍길동이 호부호형을 허하는 아버지를 떠나서 전국을 유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후배 공무원들에게 호소하였습니다. 간부공무원들에게 호부호형을 허하라. 국장이 국장다워야 하고 과장이 과장스럽게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후배들이 지지하고 기반을 닦아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솔직히 현직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과장님이 부재인 ‘무두일’에 환호했지만 인사사정으로 과장님 발령이 늦으면 우리 과가 ‘아비없는 자식’취급을 받았던 아픔이 있었음을 소개해 드리면서 2024년을 이끌어가고 2025년을 준비하는 공직자들에게 배전의 분발을 당부드립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