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 등산길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어제 광교산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점심을 먹고 출발했습니다. 비가 온다는 걱정을 하여 우비를 준비하려 했다가 우산 하나 챙겨들고 복숭아 등 과일, 뜨거운 온수통, 기타 등등을 준비하고 버스카드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83-1버스를 타고 화성 행궁앞에 내려서 경기대로 가는 버스에 환승했습니다.

경기대 인근 달팽이 화장실 입구에서부터 일단은 차분히 걷기로 했습니다.

 

 

금년 들어 3번째인가 게으른 산행이므로 출발부터 차분히 서두르지 않고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등산 시작 단계에서 서두르면 멀리까지 갈 수 없다고 합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여행자 지침서도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차분히 천천히 걷기로 한 것입니다. 오전에 소나가가 내리기도 하였거니와 오후 1시 뜨거운 시간이므로 경기대에서 형제봉으로 향하는 길에는 등산객이 거의 없습니다. 그냥 나 홀로 차분히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 비가 내려 먼지 없이 축축한 습기가 기분 좋습니다. 신록이 깊어지고 무게를 더하는 시기이므로 피톤치드는 물론 산소공급이 충분한 듯 몸이 가볍습니다.

 

매주 1~2번 등산을 하여야 한다 생각을 하기는 합니다만 3달에 한번 등산을 한 꼴이니 참 게으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오늘 아침 광교산 형제봉을 가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점심 후 결행을 한 것은 참 잘한 일입니다. 오르면서 살펴보니 예산을 많이 들였습니다. 반영구적으로 석축을 쌓았는데 그 재질이 둥글둥글한 것이 제법 값이 나가는 재질이고 그래서 멋드러지게 등산로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나무로 만든 데크도 등산객을 편안하게 안내합니다. 사실 전에는 원시림 사이로 그냥 뾰족한 자갈길이 발목을 아프게 하곤 했는데 나무 데크위에 야자수 새끼줄로 만든 포대를 깔아 발목에 쿳션을 주므로 참 편안합니다. 정말로 걷고 싶은 길입니다. 수원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설이므로 시청 예산편성시 투자우선순위에 들기에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상부근에 이르러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성성하게 자태를 뽐내는 60세에서 100세쯤되어 보이는 소나무의 뿌리와 그 바위를 촬영하고 아내에게 송고하고 다시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정상왼쪽 바위탑은 철갑을 두르고 있습니다. 위험하니 올라가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대신에 오른쪽으로 역시 초콜릿 색의 나무 데크로 계단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무계단을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니 수원 용인의 회색 아파트 바다가 보입니다. 참으로 아파트가 많습니다. 전에는 수원권과 용인 일부에 아파트가 보였는데 이제는 밀물 만조인듯 온통 광교산을 향해 밀물이 밀려오듯이 아파트 파도가 일렁이고 있습니다.

 

야호~소리를 지르지는 못하였습니다. 정상에 도착한 시민들이 삼삼오오 간식을 먹으며 정상 등반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그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기분이 상쾌한 것은 정상에 올랐으므로 그러할 것이고 몸에서는 엔돌핀이 돌아서 그러하다고 합니다.

하산길은 형제봉 정상에서 내려오다가 우회전을 합니다. 중간에 운동시설이 있고 약수터에는 의자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약수터를 지나 운동시설을 만난 후 하산길로 이어졌었는데 산림보호를 위해 등산로가 폐쇄되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오른쪽 등산로를 타고 하산을 시작하였습니다.

 

천연림급의 산책로를 따라 차분히 걸어오면서 잠시동안 온통 나 하나만 이 산속에 존재하는 듯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이 자연이 이 산이 하늘이 바람이 나를 위해서 이 자리에 있다는 상상을 하는 것입니다.

더러는 살아가면서 이 정도 호사는 필요합니다. 영화 군함도 보러가서 4,600원짜리 카푸치노 커피 한 잔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로 잠시라도 등산길에 나홀로 존재감을 호사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차분히 내려가다 보니 영동고속도로 암거를 만났습니다. 무슨 바쁜 일이 그리도 많은지 고속도로 위에서는 수많은 차량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담고 4바퀴 6바퀴를 돌리며 내달리고 있습니다. 140km로 달리면서도 추월을 해야 할 정도로 바쁜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숨가쁘게 살아가는 영동고속도로 지하의 암굴에서는 천하태평 등산객이 걸어갑니다.

 

불과 3m차이의 공간에서 이처럼 큰 격차를 보이는 또다른 인생길을 가고 있습니다. 세상사는 다 그렇게도 다른가 생각합니다. 급하기가 호떡집에 불이 난 운전자가 있는가 하면 그 영동고속도로 아래에서는 천하태평 베짱이들이 지나갑니다. 더러는 등산로에서도 앞 다투는 선수 아닌 선수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대략은 모든 등산객들은 여유롭습니다.

등산이란 여유이기 때문입니다. 산에 오르는 분들은 모두가 선하고 착하고 멋진 사람들입니다. 배려하고 양보하고 아끼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물건을 기꺼이 주변 사람과 나누는 호모사피엔스입니다. 휴머니스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시간을 내서 바쁜 시간 중에도 산에 갑니다. 광교산이 거기 있어서 가기도 하고 거기 서 있는 광교산까지 버스를 환승하고 승용차 주차요금을 내면서 이 산에 오르는 것입니다.

 

더 넓은 세상을 살피기 위해서 형제봉에 오릅니다. 정말로 두개의 봉우리가 형제처럼 서 있고 이쪽은 수원시에서 관리하고 저쪽은 용인시에서 관리합니다.

형제봉에 서면 수원과 용인시가 형제인 듯 보입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멀리 지평선 수평선 아파트 파도를 살펴보면 수원에서 시작한 아파트 파도가 용인을 거쳐 성남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아파트 파도 위를 나 홀로 서핑하곤 합니다. 등산을 하면 가끔은 나 혼자만이 이 시멘트 파도 위를 유유히 서핑하고 있다는 상상을 합니다. 아무도 없는 넓은 벌판위에서 나 홀로 노 저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조각배의 종착점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 채 나 홀로 이 아파트 바다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냥 20대에서 50대까지 인터넷 까페에 올린 글을 연대순이나 장르에 무관하게 죽 늘어 놓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행정가들은 늘 업무를 기획하고 분류하고 분석하기를 좋아해서 밤을 새우곤 합니다만 이제 야인으로 내려앉으니 분석할 일도 없고 그냥 하루 이들 사흘을 비오면 우산 들고, 해가 나면 맨 얼굴로 길을 나서게 됩니다.

지난 세월 속에서 이처럼 평온한 시간이 있었나 하면서 돌이켜 보니 오히려 여름휴가가 부담이었고 토요일에 일하는 것이 편안했던 기억이 납니다. 휴일에 일하면 능률이 오르고 나름 열심히 일한다는 자부심도 가져본 듯 생각합니다.

 

공직의 시간이 영원인 줄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일찌감치 마감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 허무함을 채우기 위한 노력중 하나로 그동안 써 올린 글을 모으다 보니 여기에 이른 것입니다.

순서 없이 늘어놓은 글이지만 편집자의 역량과 활자라는 레벌업 분위기를 타고 깔끔하게 책으로 나왔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난번 경험으로 두꺼우면 본인도 힘들고 주변의 지인들도 조금 불편할 것 같아서 좀 작은 두께로 마감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그동안 억지로 써둔 시 108편을 모아보고 싶습니다.

 

많이 부족하고 不肖(불초)하지만 작은 나비의 날개짓으로 봄을 불러오고 반복되는 매미의 노래 소리로 가을을 영글게 하듯이 생각과 느낌을 적은 글을 마치 흑탕물 속에서 砂金(사금)을 건지는 심정으로 하루 이틀을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문득 어느 해에 米壽(미수)에 이르면 그동안 모은 글을 담은 책을 모아놓고 기념사진 한 장 찍어두면 주변의 지인들이 작은 미소를 보내며 축하해 줄 것만 같은 기대감으로 다시 소년으로 돌아가 풍성해질 심성을 자랑하게 될 그 날을 미리 한 번 그려봅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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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