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동학사 ‘木石사랑’이야기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동학사 입구에서 만난 나무들은 모두 돌과의 사랑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 돌 하나에 도대체 몇 그루의 나무들이 대를 이어 살아왔을까요. 그 나무의 조상을 따라 올라가면 이산이 아니라 건너편 산에서 출발한 나무 가문의 자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에게 가문이 있다면 나무에게도 木門(목문)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 돌 속의 진액이 나무를 통해 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을까요. 혹시 저 돌들은 나무가 있어 제자리를 지키고 저 나무는 돌 틈에서만 생명이 유지되는 특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을 부여잡은 나무 모두는 왕성한 생명력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돌이 없는 나무는 웃자라거나 못자라서 고사하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 자리한 그곳이 최고의 명당이고 살아가기 딱 좋은 적지 일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가장 편안한 자기합리화라 해도 말입니다.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이 나무들은 돌 틈을 보금자리로 시작하였으므로 다른 곳에서 뿌리를 내렸더라면 저처럼 거목으로 크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나무가 거름이 많다고 크게 자라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간에게 밥을 많이 먹인다고 책을 많이 사준다고 모두 키가 더 크고 더 훌륭한 위인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해도 좋을 듯합니다.

오히려 척박한 산촌이나 강가, 빈민가에서 부족한 영양과 메마른 교육환경을 딛고 인고의 세월을 보낸 후에 위인이 탄생한다는 그런 진리 같은 말을 누군가가 우리에게 해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위인은 금수저보다 흙수저 집안에서 탄생하고 성장하고 이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계룡산 기슭의 동학사를 가는 오솔길에는 나그네를 맞이하는 나무들은 하나같이 한 두개, 서너 개의 돌을 부여잡고 있습니다. 그 돌이 이 나무에게 있어서 어머니 같은 존재인 듯 보입니다. 저 바위들은 제 몸을 녹여서 저 나무를 잉태하고 거목으로 키워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연은 더 큰 진리의 메시지를 늘 우리들 인간 세상에 보내고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동학사 입구에 가시면 수백년째 목석의 사랑을 보실 수 있습니다만 바쁘신 분은 훗날 가시더라도 저 나무와 돌과 산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할 것입니다. 나무와 바위는 늘 인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우리들이 그 산에 가지 못하고 그 나무와 바위를 만나지 않으려 합니다.

동학사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동학사에서 돌과 바위와 나무와 바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동학사는 죽어서 부연이 된 자식 나무, 베어져서 기둥이 된 부모나무가 사찰을 꾸미고 그 앞 암벽에는 10대조도 넘을 법한 살아있는 할아버지 나무가 공존하는 사찰입니다.

 

동학사에 가시면 긴 세월을 한 폭으로 감상하실 수 있고 전혀 다를 듯한 돌과 나무가 그렇게도 잘 어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숲과 바위 틈새에 동학사가 자리한 것인지, 동학사 주변에 그 많은 나무와 바위가 모여든 것인지는 더 살펴보아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굳이 그 선후를 닭과 계란처럼, 방금과 금방처럼, 부부 싸움처럼 우리가 알려고 애쓸 필요조차 없습니다.

 

동학사 나무아래 돌 의자에 앉아서 바람결에 떨어지는 도토리가 내 어깨에 떨어지는 순간을 맞이해 보시면 인생의 의미, 영겁의 세월, 그리고 돌과 바위의 어울림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참 좋은 참선의 시간을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나무가 커가면서 돌을 감싸 안고 그 나무에 안긴 돌이 엄마 품에 잠든 아이처럼 보이는 정경은 동학사에서만 가능한 서정이고 정서라 생각했습니다. 극과 극, 상극으로 생각하였던 돌이 나무와 어우러지는 모습은 제주도의 밭에 뿌려진 씨앗을 바람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기포 달린 돌덩이와 같다는 느낌입니다.

 

싸우는 개와 고양이가 아니라 젖 먹여 키우는 엄마개와 아기 고양이의 모습입니다. 동학사에 오셔서 세속의 묶은 껍질을 벗겨내시고 깨달음의 새살을 꽃피워 보시기 바랍니다.

10년전에 다녀온 동학사에 대한 기억이 이처럼 생생할 수 있는 이유는 그날 2시간의 산책에서 만난 그 정경이 감동을 넘어 감격스러웠기 때문인가 봅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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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